강화도 아트팩토리 참기름(Charm 呩稟) - 고흐전
고흐 자화상
2024년 8월 15일(목), 강화도 아트팩토리 참기름(Charm 呩稟)
강화도 ‘아트팩토리 참기름’을 찾아갔다.
고흐전을 상영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벽하 님이 거길 가서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신 것을 보고 나도 가고 싶었다.
강화도 아트팩토리 참기름(Charm 呩稟)은 세기의 작가와 작품을 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스페이스
오페라극장이다. 8미터 초대형 전시관에 서라운드 음향시설을 자랑하는 극장이라는데 바닥을 제외한 사방과
천정이 화면이다.
그 화면의 일부만 사진 찍었다.
십여 년 전에 프랑스 남부를 여행할 때 고흐의 흔적을 찾아 ‘아를 포룸 광장의 밤의 카페(Cafe at Night, Place du
Foruem, Arles)’와 그가 요양했던 아를 정신병원도 가보았기에 더욱 반가웠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약전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약한 화가로, 프로트 즌델트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사망
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69~1876년 화상 구필의 조수로 헤이그, 런던, 파리에서 일하고 이어서 영국에서
학교교사, 벨기에의 보리나주 탄광에서 전도사의 일을 보고, 1880년 화가에 뜻을 두었다. 그때까지 짝사랑에 그친
몇 번의 연애를 경험했다. 1885년까지 주로 부친의 재임지인 누넨에서 제작활동을 했다. 당시의 대표작 『감자를 먹
는 사람들』(1885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이 있다.
네덜란드 시절에는 어두운 색채로 비참한 주제가 특징적이었다. 1886~1888년 파리에서 인상파,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는다. 1888년 봄 아를에 가서, 이상할 정도로 꼼꼼한 필촉(筆觸)과 타는 듯한 색채에 의해 반 고흐 특유의 화풍을
전개시킨다. 주작품은 『해바라기』, 『아를의 침실』, 『의사 가셰의 초상』 등이 있다.
1888년 가을, 아를에서 고갱과의 공동생활 중 병의 발작에 의해서 자기의 왼쪽 귀를 자르는 사건을 일으켜 정신병원
에 입원, 계속되는 생 레미 시대에도 입퇴원의 생활을 되풀이한다. 1890년 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정착했으나 같은 해 7월 권총으로 자살했다.
병 때문인 자기 응시가 자화상의 다작과 관련되며, 그것도 불가능한 때에는 자주 밀레나 들라크루아의 모사를 했다.
생전에는 의사 가셰나 시냐크 등,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평가되었다. 동생 테오와 다른 사람에게 보낸 방대한
양의 편지는 서간문학으로서 중요하다. 오테를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등에 주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다음은 ‘아트팩토리 참기름’의 팸플릿 내용이다.
숲으로 둘러싸여 세월을 머금고 있던,
강화군 길상면의 오래된 참기름 공장이
북합문화공간 아트팩토리 참기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대지 약 7천평, 높이 8미터, 길이 120미터에 달하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실내 전시관으로 업싸이클링 된 참기름 공장은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용전시관,
세기의 작가와 작품을 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스페이스오페라 극장,
연령 제한 없이 작가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미디어관,
국내 최고의 작가 작품이 전시된 특별 전시관,
아티스트 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강화도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예술 공간입니다.
첫댓글 와우^ 참기름엘 다녀가셨군요. 아주 멋진 후기 덕분에 다시 한번 가본 느낌입니다. 많은 사진 찍으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이리 오실 줄 알았으면 식사라도 대접했어야 하는데 죄송하군요.ㅠㅠ
덕분에 모처럼 문화생활하였습니다.
날이 선선했더라면 전등사도 들를까 했는데 그냥 순무와 인삼막걸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