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라고 증거된 말씀을 포함한 아래의 본문 전체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잘 통찰해 보면 성전과 연계되고 의지함으로 인한 은혜들, 특히 성전을 향한 기도들에 있어서의 응답들 등에 있어 모든 전제와 기준과 관건은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를 들면 그 중에서도 그와 같이 성전을 의지하며 사모하고 향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로 치면 그 있는 자리에서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것이라고 계속해서 반복해 왔는데..
그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음은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기 전인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오늘날의 우리들과 근본적으로는 결코 다를 바 없이 같은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함과 함께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요한복음 2장 19~21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대로 구주 예수님께서 알게 해 주신 말씀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러한 성전이야 말로 구주 예수님에 대한 예표와 모형들, 약속과 계시들 등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바로 그러한 믿음, 그러한 기도 등에 있어서,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의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함과 함께 실제로 응답 받게 되며, 그 이름을 의지하면서 살아 있는 신앙이 됨으로 인해 더 이상 크고 작은 진노와 징계들이 아닌 온갖 모양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생생하게 누리게 됨에 있어서 다름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직결된다는 것이며, 사실상 절대적인 연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들이 그 이름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바로 그 구주 예수님께서,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택하심을 입은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으며 특히 기도의 응답 한 번이라도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에 있어서 바로 그 예수님께서야 말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에 다른 그 무엇보다, 다른 그 누구보다 말씀의 신앙, 말씀의 사람이 그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역사와 사안들, 영역과 실제들 등에 있어 가장 합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그 어떠한 구원의 일이라 하더라도 결코 단 한 번, 단 하나, 단 한 순간일지라도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반드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실상 오직 말씀으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하신 것이고, 말씀과 함께 준비, 진행하시면서 말씀 그대로 누리고 이뤄지게 하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바로 그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그러한 말씀을 이 세상에 기록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게 하신 직접적, 실질적인 힘이신 분인 것이며, 게다가 그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누리고 증거하며 성취되어 지게 하는 현실적, 경험적인 힘이신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볼 때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은 그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실 수 없는 것이고, 진정 그러한 삼위일체라는 존재와 개념 자체부터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인 것인데..
사실 그와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솔로몬이나 그로 인한 믿음의 후세들이, 더 나아가 그와 연결 선상에 있고 그들과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믿음의 후손들인 우리들이야 말로 마땅히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마치 옛 사람과 같이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잠자고 미지근해 지며 마치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될 때는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와 여러 연관된 상황 등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그 백성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응답과 승리와 복과 열매들 등은 막으시곤 하는 것이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이며, 또한 적지 않은 경우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케도 하시는 것이기도 하나 반대로 그 어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며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때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생생하고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사와 은혜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갈수록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9:1~9)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26일(목)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