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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자간희(矮者看戲)
키 작은 사람이 놀이판을 본다는 뜻으로, 제 생각은 없이 다른 사람의 뜻에 빌붙어 부화뇌동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矮 : 난쟁이 왜(矢/8)
者 : 놈 자(耂/5)
看 : 볼 간(目/4)
戲 : 놀이 희(戈/13)
(유의어)
왜인간장(矮人看場)
왜인간희(矮人看戲)
왜인관장(矮人觀場)
왜자간희(矮者看戱)
출전 : 주자어류(朱子語類) 卷27 훈문인(訓門人)
이 성어는 난쟁이가 연극을 본다는 뜻으로, 주관이 없이 남을 따라하는 경우 또는 그러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속담에서 유래한 성어로,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에 보인다. 왜인관장(矮人觀場), 왜인간희(矮人看戱), 왜인간장(矮人看場), 왜자간희(矮者看戱)라고도 한다.
주자어류의 훈문인(訓門人)에 '마치 난쟁이가 연극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면 그도 좋다고 말하지만(如矮子看戱相似, 見人道好, 他也道好), 그에게 어디가 좋은지 물어보면 아는 것이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연극을 볼 때 난쟁이처럼 키가 작은 사람이 키가 큰 사람들 틈에 끼여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도 앞사람이 웃으면 이유도 모르면서 덩달아 웃고, 앞사람이 좋다고 말하면 덩달아 좋다고 말하는 태도를 빗대어, 주관이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태도나 그러한 사람 또는 소견이 부족한 사람을 비웃는 투로 사용된다.
왜자간희(矮子看戱)
신체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에 문제가 있어 정상인보다 약간 모자라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업신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유달리 시각 장애인(장님)이나 청각(귀머거리), 언어 장애인(벙어리) 등을 칭하는 낮춤말이 많고 관련된 속담도 숱하다.
본인들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사람들에게 비하까지 당하니 분통터진다.
기형적으로 유난히 키가 작아 난쟁이가 된 사람들도 억울하다. 난장이에서 표준말이 된 난쟁이는 정상인보다 재주가 많아도 한 수 접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난쟁이가 연극을 본다는 성어 왜자간희(矮子看戱)는 아주 오래 전부터 널리 유행했던 말이다.
1270년에 나온 주자어류(朱子語類)의 훈문인(訓門人)에 구절이 보인다. 송(宋)나라 때의 대학자인 주희(朱熹)의 어록을 모아 여정덕(黎靖德)이 편찬한 책이다.
거기엔 '마치 난쟁이가 연극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면 그도 좋다고 말하지만(如矮子看戲相似, 見人道好, 他也道好), 그에게 어디가 좋은지 물어보면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矮子로 표기했지만 같은 뜻이다.
장터서 벌어진 연극판을 구경하려 해도 키 큰 사람이 둘러싸 보이지 않는다. 대사도 들리고 관객 환호로 느껴 대충 알 수 있지만 직접 보지 못한다고 남이 웃으면 웃고, 남이 좋다고 하면 덩달아 좋다고 하는 행동으로 비웃는 것이다.
거기다 주관이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태도나 그러한 사람, 또는 소견이 부족한 사람을 지칭하기까지 한다.
전번 청와대의 정무특보단 인선을 두고 '백설공주와 세 난쟁이'에 비유한 야당 의원이 있었다.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의 난쟁이는 억압당하며 소외되고 있는 사회적 존재를 상징했다.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을 하는 법이 만들어져 있고 '장애인의 날'도 제정돼 있다. 4월 20일이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깊게 하고 재활 의욕을 높이게 도움 주는 일만 남았다.
왜자간희(矮者看戲)
직접 경험한 일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기억의 왜곡이 일어난다. 떠나간 열차가 아름답다거나, 힘든 과거를 회상할 때 낭만적으로 착색되는 것은 그 왜곡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신기루거나 무지개 같은 것이다. 아름답지만 실체는 없는 것, 그것이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신에게서 받은 최고의 선물은 망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사람에게 인생은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우리의 삶에 행복한 기억만 있지 않다면, 적절하게 기억 속에서 털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의 기억을 구성하는 것은 언어다. 언어가 없다면 대부분의 기억은 구성되지 않거나 모호한 이미지만으로 연상되기 때문에 기억으로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언어는 경험이나 인류의 축적된 지식을 후대에 전하는 중요한 매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험의 구체적 실상에서 한 걸음 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언어는 구체적인 것들을 개념화하거나 추상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 언어로 전환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현실에서 떨어지게 된다.
언어로 구성하는 현실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은 개인의 사고가 현실을 파악하는 방식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사고방식이 다르고 표현방식이 다름은 언어에 의한 세계 구성 방식이 다르다는 의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장터 구경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집으로 돌아가려면 장터를 지나야 했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내 하교시간은 훨씬 더뎌졌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즐거운 볼거리가 있는 곳이 장터다.
제일 신나는 날은 떠돌이 약장수가 와서 판을 벌일 때였다. 약장수는 흥미진진한 쇼를 하는 것은 물론 노래와 춤과 재담을 펼쳐 주위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약장수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애들은 가라”류의 사설을 기억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장면을 직접 본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말린 것일지라도 약장수가 여러 종류의 뱀과 두꺼비와 지네 등속을 펼쳐놓고 무언가 약을 파는 모습은 자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애들은 가라”고 외치면서 손님들에게 약을 파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 듯하다.
내가 기억하는 떠돌이 약장수의 모습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기 보다는 오히려 훗날 사람들과의 술자리 재담을 통해 기억에 착색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인가!
왕년에 나도 해보았다는 주장의 대부분은 아마도 이렇게 만들어진 기억에 의존한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만 해도 어느 정도의 경험에 근거하는 만큼 거짓말을 한다는 죄책감도 없고, 무언가 자신의 경험을 포장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 경험의 실상이 어떠하느냐다.
약장수가 처음 자리를 잡을 때부터 그곳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어린 초등학생 처지에 맨 앞에 앉아서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내 경우는 대부분 하굣길에 우연히 만난 약장수를 구경하는 경우였으니 뒤에서 지켜보기 일쑤였다.
키 큰 어른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구경거리,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들리는 그들의 재담을 온전히 다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차력을 하거나 재주를 보일 때는 틈새로 보이는 몇 개의 조각만으로도 사정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고, 나중에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에도 마치 내가 모든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자랑 삼아 말할 수 있었다.
전모를 다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 않으냐 하는 심리적 태도가 내 마음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니, 그렇다고 해도 모든 장면을 다 본 것처럼 경험을 과장했던 이유는 어쩌면 내 스스로를 과시하고픈 마음에서였던 듯하다.
왜인관장(矮人觀場)
키 작은 사람이 놀이판을 본다
키 작은 사람이 놀이판에 가서 구경하는데 뒤에서 보면 키 큰 사람들에게 가려 당연히 무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키 큰 앞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고, 앞사람이 박수 치면 덩달아 박수를 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일컫는 말이 바로 ‘왜인관장(矮人觀場)’이다. ‘왜자간희(矮子看戱)’라고도 한다. 키 작은 사람이 놀이판을 본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유학자로 성리학을 완성시킨 주희(朱熹)의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나오는 단어로, 제 생각은 없이 다른 사람의 뜻에 빌붙어 부화뇌동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여러 글에 자주 사용되었는데, 양명좌파(陽明左派)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명(明)나라의 철학자 탁오(卓吾) 이지(李贄)의 ‘동심설(童心說)’에 흥미롭게 인용된 바 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진실을 볼 수 있는 바탕이다. 공부를 많이 해도 동심을 잃지 않으면 성인이 될 수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공부하면 할수록 지식이 자신의 마음을 가려 동심을 잃어버린다. 온갖 세속의 욕망이 공부와 함께 마음속으로 들어와 동심을 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공부하는 목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할 공부가 명예나 부 같은 욕망을 향해가니, 그 공부가 동심을 가릴 수밖에 없다.
보고 들은 경험과 책을 통해 익힌 도리가 동심을 가리면 어떤 견문도리를 이야기하더라도 동심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말이 아무리 아름답고 문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모두 거짓이며, 그 말과 문장을 듣거나 읽는 사람이 거기에 감동받더라도 모두 거짓 감동이다. “온 장내(場內)가 거짓이니 구경하던 난쟁이가 무슨 말을 재잘거릴 것인가?”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말이 떠다닌다. 그런 말잔치는 과연 진실에 토대를 둔 것일까?
거창하게 진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속 경험이나 독서 경험에서 우러난 것일까?
어쩌면 남들의 경험과 독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습득하고는 마치 자신이 경험한 듯이 떠들지는 않았는가?
만약 그런 삶을 살았다면 우리는 키 큰 사람 뒤에 서서 앞사람을 따라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키 작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남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남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삶, 내 생각은 없이 남의 생각을 마치 제 생각인양 착각하거나 속이는 삶 말이다.
이렇게 보면 소문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떠도는 소문치고 제대로 된 것 하나 없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내용들이 허망한 경계 속에서 홀연 나타났다 홀연 사라지곤 한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환호하거나 슬퍼한다.
내 마음의 키가 클 수 있도록 공부하는 일이야말로 부박한 말들의 시대를 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矮(난쟁이 왜)는 형성문자로 躷(왜)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화살 시(矢; 화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委(위, 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矮(왜)는 ①난쟁이 ②(키가)작다 ③짧다 ④짧게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난쟁이 주(侏), 짧을 단(短)이다. 용례로는 키나 체구가 보통의 경우보다 작음을 왜소(矮小), 짧고 낮은 처마를 왜첨(矮檐), 빛이 동일한 별 가운데서 발광량이 적고 크기도 작은 별을 왜성(矮星), 낮고 조그마한 집을 왜옥(矮屋), 기형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을 왜인(矮人), 기형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을 왜자(矮者), 왜소하고 잔약함을 왜잔(矮孱), 키가 작음을 왜단(矮短), 키가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수풀을 왜림(矮林), 조랑말로 몸집이 작은 종자의 말을 왜마(矮馬), 다복솔로 가지가 많아 다보록한 어린 솔을 왜송(矮松), 키가 작은 나무를 왜수(矮樹), 작은 꽃을 왜화(矮花), 물건 따위가 납작하게 쪼그라짐을 왜축(矮縮), 키가 작은 체구를 왜구(矮軀), 키가 작고 보기가 흉함 또는 집 따위가 조그맣고 초라함을 왜루(矮陋), 짧은 화살을 왜전(矮箭), 키 작은 사람이 놀이판을 본다는 뜻으로 제 생각은 없이 다른 사람의 뜻에 빌붙어 부화뇌동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말을 왜자간희(矮者看戲) 등에 쓰인다.
▶️ 者(놈 자)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者(자), 者(자)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은 耂(로)와 白(백)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老)이 아랫 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白)는 뜻을 합(合)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者자는 ‘놈’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者자는 耂(늙을 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者자는 耂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노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者자의 갑골문을 보면 이파리가 뻗은 나무줄기 아래로 口(입 구)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탕수수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즙을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탕수수’를 뜻했었다. 후에 者자는 ‘놈’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者(자)는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놈, 사람 ②것 ③곳, 장소(場所) ④허락하는 소리 ⑤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⑥이 ⑦~면(접속사) ⑧~와 같다 ⑨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어떤 일에 관계되는 사람을 관계자(關係者), 물자를 소비하는 사람을 소비자(消費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근로자(勤勞者), 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被害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노동자(勞動者), 희생을 당한 사람을 희생자(犧牲者), 부부의 한 쪽에서 본 다른 쪽을 배우자(配偶者), 그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을 당사자(當事者), 권리를 가진 자 특히 선거권을 가진 자를 유권자(有權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 看(볼 간)은 ❶회의문자로 看(간)은 눈위에 손끝을 대고 바라보는 모양으로 보다라는 뜻이다, 見(견)과 옛 음(音)이 비슷하여, 같은 근본에서 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❷회의문자로 看자는 '보다'나 '바라보다', '관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看자는 手(손 수)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看자는 눈 위에 손을 올려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看자는 사물을 세심히 관찰하기 위해 눈언저리에 손을 갖다 대고 살펴본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看자는 단순히 '보다'가 아닌 '자세히 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看(간)은 ①보다, 바라보다 ②지키다, 감시하다, 번서다 ③관찰하다, 헤아리다 ④가리다, 고르다 ⑤방문하다 ⑥환대하다, 극진하게 대접하다 ⑦진료하다 ⑧행하다, 분별하다 ⑨결정되다, ~에 달려있다 ⑩대접(待接), 대우(待遇) ⑪해득(解得)한 것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묏자리를 잡으려고 산을 살핌을 간산(看山), 책을 소리내지 않고 읽음을 간서(看書), 교도소에서 죄수의 감독과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간수(看守), 자세히 보아 살핌을 간심(看審), 그러한 것으로 여김을 간주(看做), 아픈 사람의 곁에서 돌봄을 간병(看病), 환자를 돌보는 사람을 간호인(看護人),보아서 속을 확실히 알아냄을 간파(看破), 상점 등에 내 건 표지를 간판(看板), 앓는 사람을 잘 보살펴 구호함을 병간(病看), 활용하여 봄을 활간(活看), 돌이키어 봄 또는 여러 사람이 차례로 돌려봄을 회간(回看), 탐탁하지 않게 보아 넘김을 헐간(歇看), 조용히 바라봄을 서간(徐看), 싫도록 봄을 포간(飽看), 가로로 줄을 친 안에 벌여 적은 표 또는 글을 가로로 보아서 읽어 감을 횡간(橫看), 자세히 살피어 보도록 여쭈어 아룀을 주간(奏看), 모르는 사실을 알아 내기 위하여 샅샅이 찾아보거나 살펴봄을 추간(推看), 자세히 살펴 봄을 검간(檢看), 세로로 줄을 친 안에 벌려 적은 표를 직간(直看), 눈여기어 보지 않음을 범간(泛看), 고향 생각이 간절하여 낮이면 고향 쪽 구름을 보고 밤이면 달을 보며 거닌다를 일컫는 말을 간운보월(看雲步月), 나중에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제간하회(第看下回), 서로 한 자리에서 마주보고 사무를 인계함을 일컫는 말을 면간교대(面看交代), 달리는 말 위에서 꽃을 본다는 뜻으로 사물의 겉면만 훑어보고 그 깊은 속은 살펴보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주마간화(走馬看花) 등에 쓰인다.
▶️ 戲(놀이 희, 서러울 호, 기 휘)는 형성문자로 戱(희)의 본자(本字), 戏(희)는 통자(通字), 戏(희)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창 과(戈; 창, 무기)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戲(희, 호, 휘)는 ①놀이 ②산(山)의 이름 ③고을의 이름 ④성(姓)의 하나 ⑤놀다 ⑥희롱(戱弄)하다 ⑦험(險)하다 ⑧겨루다, 그리고 ⓐ서럽다(호) ⓑ탄식하다(호) 그리고 ㉠기(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먹으로 장난함으로 곧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을 희묵(戲墨), 쌍륙 따위의 놀이 기구를 가지고 놂을 희박(戲博), 훈련이나 놀이를 하기 위하여 설비를 갖추어 놓은 곳을 희장(戲場), 희롱하는 어조를 희조(戲調), 판을 차리고 마주 향하여 하는 놀이로 바둑이나 장기 같은 것을 국희(局戲), 남의 일을 방해함을 작희(作戲), 지나치게 희롱하며 놀림을 침희(侵戲), 익살스러운 짓거리를 배희(俳戲), 산기슭에 무대를 설치하고 행하는 연극을 산희(山戲), 동족이나 동류끼리 장난하며 놂을 족희(族戲), 강이나 바다의 물 위에서 노는 놀이를 수희(水戲),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노는 놀이를 군희(群戲), 가면극을 가리켜 이르는 말을 야희(野戲), 여러 가지의 잡스러운 놀이를 잡희(雜戲), 키 작은 사람이 놀이판을 본다는 뜻으로 제 생각은 없이 다른 사람의 뜻에 빌붙어 부화뇌동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말을 왜자간희(矮者看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