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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대륙백제 관련 질문 글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키보드를 들었습니다.
박영규 씨의 "한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는 한국 역사 관련 저작물(※주의 :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 저작물임) 중에서는 가히 공전의 히트를 친 놀라운 책입니다.
솔까말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왕조실록까지는 상당히 균형잡힌 시각을 갖춘 괜춘한 역사 교양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안드로메다행을 탄 기가막힌 물건인지라...
박영규 씨의 삼국 실록 시리즈 중 백제왕조실록과 고구려왕조실록을 보면, 그야말로 개삽질이란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터무니없는 내용과 협잡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허나 박영규라는 인간의 네임벨류에다가, 한국 역사 관련 출판 시장의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박영규의 삼국 실록도 상당히 많이 팔리고, 심지어 문광부 지정 추천 도서(맞나?)로 지정되기도 하는 등 안드로메다에서 허우적대게 되었죠.
아직도 박영규의 고증 따위는 지하에서 핵실험과 함께 날려버린 지도가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꼬락서니를 보다보면 열불이 터진다는....
아무튼, 한 번 아주 거칠게나마 박영규의 책이 얼마나 쓰레기인지에 대해서 짧고 간단하게 고찰을 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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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박영규의 역사적 소양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박영규는 그의 저서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과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을 통틀어서, 상당히 독특한 주장을 펼친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참으로 알흠다운 주장으로 눈에 띄는 것이 있죠. 바로 태조왕, 온조왕 떡밥입니다.
박영규는 <고구려왕조실록>을 통해서, (정확하게는 그보다 앞선 저서인 <고구려본기> 때부터) 태조대왕의 왕호를 두고 "태조(太祖)라는 묘호를 사용한 세계 최초의 예"라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그와 함께 그는 묘호에 대하여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를 넘나드는 고찰을 펼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가관입니다. 아래는 그 내용의 대강을 요약한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옛부터 무왕, 문왕, 문제, 무제와 같은 형태의 묘호를 사용하였다. 중국에서 祖자가 들어가는 최초의 묘호는 전한의 고조(高祖)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祖, 宗의 묘호는 본격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다. 물론 태조라는 묘호는 당나라 때도 사용하지 않았다. 신라에서도 태종(太宗)무열왕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祖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태조라는 묘호는 태조대왕이 세계 최초이다."
자, 여기서 동양 역사에 약간의 지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인가 이상한 점을 느끼셨을 겁니다. 박영규는... 묘호(廟號)와 시호(諡號)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려 무왕, 무제와 같은 시호를 두고 묘호라 일컫고 있습니다. ㅎㄷㄷ
그러나, 사실 이보다 더 우리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가는 사실은, 실상 묘호와 시호를 구분해서 본다손 치더라도, 저 소리는 여전히 개솔히라는 사실입니다. 박영규는 묘호가 사용된 것이 무려 은나라 시대의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참고 : 高宗伐鬼方 <주역> 63 기제(既濟) 中 ※여기서 말하는 고종은 은나라 무정(武丁)을 말함
게다가, 한고조의 묘호가 고조(高祖)라 말씀하시는 것에는 그저 좌절할 뿐....... 한고조 유방의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고황제(高皇帝)라는 것은 아마 꿈에도 모를 테지요. (원칙적으로 유방은 고조가 아니라 고제{高帝}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사마천이 고조라고 칭한 이래로 고조라는 호칭이 더 일반적으로 고착되었다고 합니다.{중국어 위키백과 참조})
물론 그 후에도 묘호가 얼마나 수없이 사용되었는지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듯 합니다.
솔까말, 이정도만 해도 박영규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는 충분히 알만한 일이지만, 우리의 박영규는 여기서 삽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백제왕조실록>에서, 박영규는 온조왕의 왕호 온조에 대해서 참으로 가공할만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백제의 왕들은 대부분 이름을 남기지 않고 있는데, 온조왕도 이름이 없다. 왕의 이름을 그대로 묘호로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온조는 이름이 아님이 분명하다. 온조의 온(溫)을 우리말의 '100' 혹은 '모두'로 해석하고, 조(祚)를 등조(登祚:왕위에 오른다) 등에서 볼 수 있듯, 일반적으로 묘호에서 사용되는 조(祖)와 같은 것으로 해석하여, 온조라는 묘호를 '모든 것의 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도 시호와 묘호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박영규는... 묘호에서 사용하는 祖를 무려 "왕/군주"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OTL............박영규... 그럼 태조왕은 태왕왕이냐??
물론, 백제 왕의 이름이 없다는 말도 개솔히입니다. 백제의 왕호는 동성왕 이전까지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물론, 저 이름이 정말 그 왕 본인의 "이름"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주장이 있습니다만, 적어도 묘호나 시호와 전혀 다른 형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이비로 역사공부한 찌질이 학사 학위 소지자보다 못한 역사 소양을 갖춘 박영규 사마에게 삼가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드리며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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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박영규는 과연 한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인가?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중국 병주(산서성) 남부에 존재했던 평양에 비정하는 일부 대륙론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주장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지요. 병주의 평양은 平陽이기 때문입니다. 평안도 平壤과 전혀 다른 한자를 사용합니다. 물론 대륙론자들은 그딴것 쯤은 가볍게 스킵 하시거나, 혹은 발음이 중요하다는 뻘소리를 하곤 하지만.....
박영규의 헛소리가 절정에 이르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죠. 박영규는 기본적으로 대륙고구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병주의 평양 설을 일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영규가 병주의 평양 설을 일축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고구려 평양을 平陽이라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병주의 평양 설을 일축하는 고증에서 한자 관련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병주의 평양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자 병기가 나타난다면 모르겠지만, 박영규는 병주의 평양 설을 일축하기 이전에 "동천왕의 평양 천도"를 설명하면서 평양(平陽)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평양의 한자는 다시 병기되지 않는 점을 말할 필요도 없죠.
즉, 박영규의 책 속에 등장하는 평양은 平陽입니다............
이로써 박영규는 한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재야의 학설들을 Ctrl + C, Ctrl + V 밖에 할 줄 모른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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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박영규의 눈물겨운 역사왜곡 기행
박영규 사마의 눈물겨운 사투, 낙랑을 황하 하구에 가져다 놓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신파극.
"백제사에 등장하는 낙랑은 대륙의 낙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으로 구분될 수 있다. 대륙의 낙랑군은 한나라 무제 때 설치한 4군의 하나이고 한반도의 낙랑국은 흔히 동예로 불리던 나라이다. 하지만 <삼국사기> 편자들은 대륙의 낙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을 혼동하여 서술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의 왜곡된 역사 서술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운을 떼신 박영규 사마께서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가져오십니다.
1. 백제 기록에는 그냥 낙랑하고 태수가 있는 낙랑이 따로 나온다능. 태수 낙랑은 낙랑군이고 그냥 낙랑은 낙랑국이라능.
2. 낙랑태수는 위나라 시기에 유주 자사의 명령을 받는다능. 유주는 북경에 잇으니 낙랑군도 북경 근처에 있을 거라능.
3. 온조왕이 동쪽에 낙랑이 있다고 했다능. 그 낙랑은 낙랑국이라능.
4. <삼국지>에는 낙랑국이 있다는 위치에 예가 있다고 기록했다능.
그러면서 장황하게 써 갈기는 <삼국지> 동이전 예條
"예는 남쪽으로 진한과 접해 있고, 북쪽은 고구려 및 옥저와 접해 있으며, 동쪽은 대해에 닿아 있으니 지금의 조선 동쪽이 모두 그들의 땅이다.
(중략)
단단대산령으로부터 서쪽은 낙랑에 속하고, 산령 동쪽의 일곱 현은 도위가 그곳을 주관하는데...
(중략)...
한 말기에 다시 구려에 속하였다.
(중략) ※ 이 생략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박영규가 한 생략임
정시 6년에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이 단단대산령 동쪽의 예가 구려에 복속된다 하여 군대를 일으켜 예를 정벌하니..."
이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가관입니다.
1. 앞부분의 예는 온조왕이 말한 낙랑하고 위치가 같다능. 그러니까 이 예는 동예고, = 낙랑국이라능.
2. 근데 예 위치를 쓰면서 서쪽은 안썼다능. 서쪽 얘기는 한참 뒤에 나오니까 뭔지 껄쩍지근 하다능. 그러니까 이 예는 동예랑 다른 놈들이라능.
3. 낙랑태수가 때찌한 예는 부여에서 온 놈들이라능. 그니까 동예도 낙랑군이랑 관계가 없다능.
4. 그니까 진수는 동예랑 예랑 같이 쌈싸먹을라고 일부러 이렇게 왜곡한 거라능.
........................
낙랑하고 예라는 두 가지 국명(종족명)을 가지고 세기도 힘들만큼 많은 굽이를 돌아서 결국 4개의 국가(종족)을 만들어 버립니다...
ㅎㄷㄷ.....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들어나 보셨는지 몰라요.... ㅡㅡ;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게 굽이 굽이 넘어 넘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각 굽이마다 오류가 너무 많아서 오캄의 면도날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대충 몇 개만 까보면,
(1) 예의 위치
온조왕이 말한 낙랑 위치는 백제의 동쪽 말고는 없다. 말갈은 백제의 북쪽이지 낙랑의 북쪽은 아니다. 게다가 남쪽 이야기는 아예 한적도 없다.
그런데 박영규는 <삼국지>의 예의 위치와 온조의 낙랑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지>의 예는 북쪽이 고구려와 옥저지 말갈이 아니다. (물론 낙랑의 북쪽조차도 말갈은 아니다.) 박영규는 이에 대해서 "북쪽으로 고구려 및 옥저와 접해 있다는 것은 고구려의 속국이었던 말갈과 옥저에 접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라고 또 몇 다리를 건너서 추론해 버린다. 이젠 몇 굽이를 넘었는지 세기도 지친다.
게다가, 박영규는 <삼국지>에 "예의 남쪽은 진한"이라는 기록을 가지고도 또 다리를 건넌다. 진한=신라니 동예는 역시 낙랑국(즉, 평양 일대)라는 결론이다. 그런데, <삼국지>에는 변진과 마한을 명백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박영규 사마는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삼국지>의 기록대로 따지자면 동예는 죽었다 깨어나도 평양 일대가 될 수 없다.
(2) 예의 위치를 서술한 <삼국지>의 껄쩍지근함.
박영규는 <삼국지>를 인용하면서 아주 깜찍한 사기를 친다. 예條의 시작부터 예의 서쪽 이야기를 하는 부분까지는 전체 분량을 모조리 서술해 놓고, 그 뒤는 깔끔하게 -중략- 처리를 한 후에 낙랑태수가 예를 친 이야기를 서술한다. 이유는 뻔하다.
박영규의 주장을 그대로 읽어보면 <삼국지>는 마치 이렇게 써진 것 같다.
예의 위치(서쪽은 뺀) 설명 - 예 관련 한군현 역사 - 예 풍속 - 예 서쪽 위치 - (중략) - 낙랑태수의 예 정벌
뒷부분의 내용을 생략함으로써 예의 서쪽 위치를 서술한 다음에 바로 낙랑태수의 예 정벌이 서술된 것과 같이 읽히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왠지 설득력있게 들리게 된다.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이 예를 공격하였는데, 이 공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서술적 장치였던 것이다. (중략) 진수가 기록의 첫 부분에서 예의 서쪽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진수는 한반도 동쪽의 동예와 발해만 연안의 예국을 동일한 국가로 취급하여, 양쪽 모두 낙랑군에 속한 땅으로 인식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 넘어야 하는 산도 참 많지만, 산을 넘으면서 배를 타고 간다고 말하는 꼴이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박영규 사마는 산넘고 물건너 낙랑과 예라는 2개 국(족)을 4개 국(족)으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참 잘했어요. 짝짝짝. (뺨 갈기는 소리)
첫댓글 음. 그렇군요. 저도 박영규의 고구려왕조 실록을 읽었습니다만...그냥 아무 생각없이 믿어버릴 뻔 했군요. 다양한 의견을 들어봐야하는데 말이죠...음. 고려왕조실록이나 조선왕족실록이 참 내용이 좋아서. 잘 알겠습니다. 짝짝짝( 박수소리)
전 그래도...저를 비롯한 독서를 안하고 역사책은 지겹다는 선입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좋게 봅니다.
고려왕조실록이나 조선왕조실록까지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본문에서도 말했다시피 고려와 조선 편은 진짜 괜찮은 교양서적이지요. 하지만 삼국은... 그저 싸댝션을 날려드릴 뿐...
조선왕조실록은어떤가요??설마 그것도?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왕조실록은 상당히 괜찮은 편입니다. 괜히 삼국에서 헛소리를 해서 문제지요.
쫌 기우일지 모르겠으나 호빵맨과 이름이 같으신 역사학자분도 떡사마(이덕일)나 위 영규아찌처럼....환빠스러움은 아니더라도... 주화입마로 빠질 우려는 없는지.......... 이분을 흠모하는 카페를 가보니 이분께서 신라에 관한 책을 새로 낸다고 해서요...또...백제에 관한 책도 낼 계획에 있고.....
험... 그분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몰라서요.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논평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실한 답변 감사 드립니다.
저도 책좀 가려 읽을께요 ㅡㅡ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