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따뜻한 기억
표주박 통신
한 송이 꽃으로
지금 생각하니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집은 꽃밭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 속에서 꽃과 함께 살았다. 꽃인지 모르는 속에서 꽃과 함께 꽃으로 살았다. 내 조상님들께서 일부러 집울타리나 담옆에 당신 지역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심은 것도 있지만, 그냥 꽃씨가 날아와 떨어져 싹이 나서 꽃을 피운 것들도 많다. 어찌 되었든 내가 집에 앉아서 눈만 돌리면 볼 수 있었던 꽃들을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어느 훌륭한 정원사가 이렇게 많은 꽃들을 한 곳에 심어 가꿀까? 그냥 삶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굉장히 크고 고통스러운 노동이었겠지만, 삶이 그것을 필요하다고 하였기에 하나 심고 둘 심어 이루어진 아름다운 꽃밭이었다. 대강 생각나는 이름들만을 들어보아도 황홀할 만큼 너무 많다.
봄이 되면 살구꽃, 복숭아꽃, 앵두꽃, 골단초꽃, 아까시아꽃, 산벚꽃, 진달래(참꽃; 창꽃), 철쭉(개꽃), 황매화, 백매화, 버들강아지꽃, 조팝꽃, 개나리꽃, 오동꽃, 송화, 할미꽃, 삐비꽃, 냉이꽃, 꽃다지꽃, 나리꽃, 붓꽃, 풀솜꽃, 장다리꽃, 뻐꿈대꽃, 다알리아, 함박꽃, 모란꽃, 벌금자리꽃, 국수뎅이꽃이 우리집 울타리나 남새밭이나 울밑에 피었다.
여름이면 감꽃, 고염꽃, 구기자꽃, 석류꽃, 포도꽃, 대추꽃, 옹아꽃, 산딸기꽃, 느티나무꽃, 뽕꽃, 벽오동꽃, 무궁화꽃, 감자꽃, 보리꽃, 밀꽃, 마늘꽃, 파꽃, 메밀꽃, 도라지꽃, 담배꽃, 인삼꽃, 말풀꽃, 자운영꽃, 복새꽃, 칡꽃, 한삼덩굴꽃, 찔레꽃, 강냉이꽃, 상치꽃, 질경이꽃, 소엽꽃, 호박꽃, 옥잠화, 역귀풀꽃, 미나리꽃, 박꽃, 왕골꽃, 물외꽃, 고마니꽃, 역퀴꽃, 가지꽃, 고추꽃, 깨꽃, 싱아꽃, 달맞이꽃, 상치꽃, 시금자꽃, 엉겅퀴꽃, 패랭이꽃, 봉숭아꽃, 나팔꽃, 채송화꽃, 난초꽃, 달래꽃, 수수꽃, 명꽃(목화), 나팔꽃, 메꽃, 접시꽃, 가지꽃, 맨드라미꽃, 취꽃, 쑥꽃, 육모초꽃, 질경이꽃, 마꽃, 돼지감자꽃, 아욱꽃, 우웡꽃, 우슬초꽃, 장뇌꽃, 달개비꽃, 제비꽃이 때에 따라서 경쟁하듯이 피고 졌다.
가을이면 벼꽃, 온갖 종류의 콩꽃, 팥꽃, 메밀꽃, 국화, 억새풀꽃, 싸리꽃, 감잎꽃, 서광, 코스모스.
물론 학교에 가거나 다른 집에 놀러 갔을 때는 또 다른 낯모르는 꽃들이 많았지만, 내가 눈만 뜨고 조금만 움직이면 내 집에서 100여 미터 이내에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었던 꽃들이 이렇게 많았다. 이 꽃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정서를 우리 식구들에게 주었던 것, 깊은 기쁨과 즐거움과 황홀함을 주었던 것이다. 모든 세계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다. 나도 꽃이었겠지.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우리집에 아주 훌륭한 기쁨과 즐거움을 준 귀한 존재였다. 하나하나 움직임과 살아서 꿈틀거림이 어른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준 기쁨이요 향기요 구원이었으며 한 송이 꽃이었다. 그 꽃이 오늘 자라서 꽃이 그리워 꽃을 기르는 늙은 꽃으로 산다. 시든 꽃이 아니라 늙은 꽃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향기를 품고, 위안과 기쁨을 주는 한 송이 늙은 꽃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순히 꽃이라고 부르는 꽃을 피우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 꽃들의 일생이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다. 초봄 연둣빛으로 솟아나는 새싹이나 이파리들은 향기 없는 아름다운 꽃이었고, 짙은 잎들 역시 꽃이었다. 그러다가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힐 때 그 열매들 역시 꽃이었다. 특히 열매가 익어 노랗거나 빨갛게 익을 때, 잎이 노랗거나 붉게 단풍 들 때 그것들은 장관으로 아름다운 꽃일 수밖에 없다. 꽃은 어려서나 젊을 때나 늙어서 열매를 남길 때도 역시 아름다운 꽃으로 산다. 새싹꽃, 잎꽃, 꽃꽃, 열매꽃, 단풍꽃. 누가 떨어진 꽃, 시든 꽃이라서 꽃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꽃으로 시작하여 꽃으로 생을 마치는 꽃들. 우리가 어리나 젊으나 늙으나 한 평생을 인생으로 마치듯이 꽃도 한 평생을 꽃으로 시작하고 마친다.
그래도 이 많은 꽃들 중에서 내 맘 속에 가득한 꽃으로 남아 있는 것은 황매화다. 언젠가도 어디에서 말한 기억이 있지만, 우리집 사랑채 앞울타리는 황매화로 돼 있었다. 약 30미터 정도 길이의 행길과 우리집을 구별해 주는 사랑채 울타리는 황매화였다. 그 중간중간에 백매화 두 그루, 며느리 산후조리를 위해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몇 가지 씩 선물되던 큰벽오동 한 그루, 가죽나무 두 그루, 구기자나무 몇 그루, 가죽나무에 기어오른 포도넝쿨 하나, 사랑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을 반기는 골단초나무 한 그루, 별로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곧고 높게 자란 자두나무 한 그루, 그리고 사랑채 옆에 있어서 안채와 남새밭을 구별해주던 대나무밭.
한여름이 지나면 할아버지는 항상 무성하게 자란 황매화 가지를 낫으로 적절히 쳐냈고, 새끼로 동아줄을 틀어 깡똥하게 하여 길과 마당을 너무 많이 차지하지 않게 했다. 요사이 전기톱이 있어서 정원사들이 나무울타리를 쪽 고르게 자르는 것과는 다르다. 순은 남겨 두되, 길로 드리운 왕성한 것들을 쳐올리는 일이다. 그 일을 옆에서 내가 많이 도와드렸다. 늦여름에 이렇게 정리된 황매화나뭇가지는 가을에 잎을 다 떨구고 난 뒤 살을 에는 듯이 추운 겨울에도 새파랗게 싱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잔 가지들을 한 두개 어른 가운뎃손가락만큼 크기로 잘라 가운데 나무 속을 가느다란 대나무 가지로 밀어 올리면 속이 텅 비게 된다. 아주 작은 관이 된다. 그것을 칼로 삐져낸 다음 대나무잎을 날로 끼우면 좋은 악기가 된다. 그것을 입에 대고 불면 봄에 버들피리를 불던 때 듣던 소리가 난다. 그냥 아름다운 소리가 모든 잎을 다 떨군 황량한 겨울 산천에 울려 퍼진다. 겨울이니, 버들피리를 집안에서 불면 뱀을 불러들인다는 어른들의 염려스런 말도 들을 필요 없이 황매화피리를 만들어 불곤 하였다.
이른 봄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되면 소담스럽게 황매화꽃이 피기 시작한다. 약간의 푸른잎과 함께 아주 소담스러운 매화송이가 천지를 노랗게 물들인다. 그 울타리는 길가에 죽 늘어서 있었기에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감정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아따, 그 꽃 참 좋다!’고 한 마디씩 감탄했다. 사랑방이나 마루에 앉아 있을 때 그 말을 들으면 나를 칭찬하는 듯한 소리로 들려 기분이 몹시 좋았다. 노랗게 핀 황매화, 길과 마당과 사랑채를 황금빛으로 물들인 황매화, 그 속에 내가 앉아 있다. 앉아 있는 나도 황매화 따라서 환하고 노랗게 피어오르는 느낌을 가진다. 그 매화의 환한 기(아우라: aura)가 나를 감싸고 내 속에 가득하다. 어린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황매화의 황홀경에 빠진다.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매화가 피는 몇 일 동안 나는 참으로 맘껏 매화의 환한 기운을 마시고 살았다. 지금도 그 때를 되살려내면 어딘가 모르는 깊은 속으로부터 노랗고 환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한 때 행복한 순간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면서 행복하게 한다. 행복한 기운을 내 온 몸과 삶 전체에 뿌려준다. 내가 낳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8년이란 긴 세월을 매년 그렇게 기쁘게 맞이했던 황매화, 지금은 꽃을 싫어하는 숙부의 손에, 길을 넓혀 자동차가 다니게 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다 캐 내어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는 아주 깊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황매화 울타리. 이제는 내가 한 송이 꽃이 아니라, 황매화 울타리처럼 환한 꽃기운을 퍼치는 늙은 꽃무더기가 될 수는 없을까? 사라진 황매화 울타리가 내 속에 다시 살아나 나를 황매화울타리로 살게 할 수는 없을까?(표, 04. 0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