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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의 전각 및 문화재
목차
1. 법당
1.1. 대웅전
1.1.1.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 대한민국 보물 제1819호 (2014년 3월 11일 보물 지정)
1.1.2.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 (奉恩寺 靑銅 銀入絲 香垸) - 대한민국 보물 제321호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
1.1.3.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
1.1.4. 신중도
1.1.5. 삼세불도
1.1.6. 삼장보살도
1.1.7. 감로도
1.2. 법왕루(法王樓)
1.3. 지장전
1.4. 미륵전
1.5. 영산전
1.5.1. 삼존불상(석가불, 가섭존자, 아난존자)
1.5.2. 십육나한상
1.5.3. 영산회상도
1.5.4. 십육나한도
1.5.5. 사자도
1.5.6. 신중도
1.6. 북극보전
1.7. 영각
1.8. 판전
2. 요사 및 선방
2.1. 선불당(選佛堂)
2.2. 심검당(尋劍堂)
2.3. 운하당(雲霞堂)
3. 불상
3.1. 미륵대불
3.2. 해수관음상
4. 문
4.1. 일주문
4.2. 진여문(眞如門)
5. 기타
5.1. 서래원(瑞來院)
5.2. 전통문화체험관
5.3. 매화당(梅花堂)
5.4. 연회루(緣會樓)
5.5. 종루
5.6. 종각
5.7. 날물곳
5.8. 보우당
5.9. 향적원
1. 법당
1.1. 대웅전
봉은사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이다. 1939년 대화재 때 소실되었다가 1941년 다시 지어졌다. 현재의 대웅전은 1982년에 진여문과 함께 새롭게 중창된 것이다. 대웅전 전면 계단에는 왕실에서만 사용되는 용을 조성해 놓았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또한 대웅전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쓴 작품이다.
대웅전 전면에는 3층 석탑이 있고, 양 옆으로 석등이 있다. 3층 석탑의 앞으로는 초를 공양하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그 양 옆으로는 향에 불을 피운 후 향을 꽂는 향로가 마련되어 있다. 법당 안에는 총 6개의 문화재가 있다.
1.1.1.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서울 奉恩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대한민국 보물 제1819호 (2014년 3월 11일 보물 지정)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시설 : 불상 3점
제작시기 : 1651년
대웅전 안에 모셔진 좌상(坐象) 형식의 삼존불로, 목조로 만들고 삼불 모두 금을 입혔다. 가운데에는 본존불로 석가모니, 좌우 협시불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셨다. 1651년 조각승 승일(勝一)이 수(首)조각승으로 9명의 보조 조각승들을 이끌고 제작한 상이다. 이 중 본존 석가상은 1689년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765년에 다시 만든 것으로, 당시의 개금발원문(改金發願文)을 통해 알 수 있다.
승일이 제작한 본존 석가상은 좌우협시상에 비해 30cm 정도 크고, 변형식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법의를 걸치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한 모습이어서 조형적인 면에서 구별되나 착의와 수인(手印) 등은 17세기 중엽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존 석가불상은 좌우의 아미타불, 약사불과는 다른 조각가에 의해 제작되었지만, 조각적으로 우수하고 발원문과 개금문을 통해서 삼세불의 봉안과 개금에 참여했던 시주자들, 조각을 담당했던 조각승들을 알 수 있으므로 조선 후기 17세기 중후반 불교조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2007년 9월 27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6호로 지정되었고, 2014년 3월 11일에는 보물 제1819호로 지정되면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에서는 지정해제되었다. 이 삼불상은 봉은사에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1.1.2.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 (奉恩寺 靑銅 銀入絲 香垸)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고려 말기의 향로.
이칭 : 지정4년명 고려 청동 누은 향로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 불교중앙박물관 (견지동,광교빌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3.4㎝, 입지름 51㎝. 향로의 일반적 형태를 따른 통식의 향로이다. 형태는 각부(各部) 비례가 적절하여 매우 안정감 있고 아름다우며, 표면의 의장문양(意匠文樣)도 공교하여 높은 격조를 보인다.
향로의 구연부 전에는 쌍구체(雙鉤體)의 연화당초(蓮花唐草)가 장식되었고, 테두리는 둥근 태선(太線)을 도드라지게 돌려서 윗면은 당초문을 은입사하고 측면은 뇌문(雷文)을 시문하였다.
몸체에는 여의두문(如意頭文)을 돌린 두 줄의 원권(圓圈) 안에 굵게 범(梵)자 한 자씩을 상감(象嵌)하여 4개소에 구성하고, 아래에는 긴 연꽃을 장식하였다. 나머지 바탕에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을 유려하게 새겨 넣었다. 받침에는 위에 연꽃을, 밑에 연잎을 새겼으며, 2단으로 된 굽에는 연화당초문과 여의두문, 구름당초문 등을 세련되게 장식하였다.
구연부 테두리 밑에는 100여 자의 은입사로 새긴 명문(銘文)이 있는데, 일부 내용을 보면, ‘至正四年五月日敬造靑銅縷銀香爐一座奉獻于三角山重興寺大殿佛前(지정4년5월일경조청동누은향로1좌봉헌우삼각산중흥사대전불전)’이라 하여 1344년(충혜왕 5)에 제작되었고, 본래 삼각산 중흥사에 봉헌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1.1.3.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洪武 25年 長興寺銘 銅鐘)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9호 (지정일 : 1991년 5월 3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제작시기 : 1392년
대웅전 안에 보관 중인 동종으로, 높이 60cm, 입지름 49.5cm이다. 종을 매다는 부분(이를 용뉴라고 한다.)이 떨어져 나가 완전한 원형을 알 수는 없으나, 몸통은 온전히 남아 있다. 본래 이 종은 경기도 여주의 장흥사라는 절에 있었다고 한다. 장흥사는 1705년(숙종 31년)에 헐렸는데, 이때 장흥사의 물품들을 봉은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그래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동종도 그때 봉은사로 온 듯 하다.
종의 몸통에 양각으로 새겨넣은 글이 있다. 이렇게 새긴 글을 명문(銘文)이라 하는데, 이 명문은 제작 시기와 종을 만들 때 참여했던 사람들을 언급한 글이다.
武貳拾伍年九月拾七日川寧土 象頭山長興寺鐘造成 金三百斤以入鐘 施主 戶長 信善 施主大原 化主信雲 同願覺瓊 同願金光才 同願信哲 同願信瓊 大匠 朴□□
홍무 25년 장흥사 명 동종의 명문
이에 따르면, 1392년(태조 원년) 9월 17일에 제작했다고 한다. 명나라 연호로 환산하면 홍무 25년이다. 당시에는 중국의 연호를 사용했으므로, 저렇게 연도를 새긴 것이다. 만든 곳은 천녕(여주의 옛 지명)에 있는 상두산 장흥사라 쓰여 있다. 시주한 사람의 명단을 보면 호장이란 직책이 눈에 띈다. 호장은 고려 때 향리들 중 으뜸가는 직책으로 그 지역의 세력가였다. 즉, 천녕의 유력인사들이 힘을 합쳐 제작한 종임을 알 수 있다.
1.1.4. 봉은사 대웅전 신중도(奉恩寺 大雄殿 神衆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9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 괘불화 / 석가불도
수량 / 면적 : 1폭
제작시기 : 1844년
봉은사 대웅전 내부 우측에 마련된 신중도로, 1844년 7월 현왕도와 함께 봉안된 것이다. 세로 200.5cm, 가로 245cm의 비단바탕에 그려졌는데 신중도로는 꽤 큰 편에 속한다.
화기에 의하면 여러 상궁들의 시주로 송암당 대원, 월하당 세원, 도운당□□, 석암당 □□, 한운당 □□ ,비구 □□, 비구 □□, 비구 □□, 비구 □□, 비구 □□ 등이 그렸는데, 이중 송암당 대원(松巖堂 大園)은 같은 해(1844년) 현왕도를 그렸다. 이 불화는 또한 1844년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된 작품으로서 조선말기 상궁들에 의해 활발하게 행해졌던 불사(佛事)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화면의 위쪽에는 구곡병(九曲屛)을 두르고, 향 우측에는 위태천과 천룡팔부 등의 신장, 향 좌측에는 범천과 제석천을 비롯한 천부중을 배치하였다. 이 신중도는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을 함께 묘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원래 보통은 제석천과 범천을 위쪽에, 위태천과 천룡팔부를 아래쪽에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서처럼 한쪽에 범천과 제석천, 다른 한쪽에 위태천을 배치하는 구도는 19세기 서울, 경기도 지역의 사찰에 있는 신중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현등사 지장암 신중도(1790년)를 비롯하여 남양주 흥국사 신중도(1868년), 서울 사자암 신중도(1880년), 서울 흥국사 신중도(1892년), 서울 미타사 칠성각 신중도(1899년), 서울 진관사 신중도(1910년) 등이 있다. 봉은사 대웅전 신중도는 그 중 이른 시기의 작품 중 하나이다.
범천과 제석천은 네모난 신광을 두르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왼쪽에는 이마에 제3의 눈이 그려진 범천이 높은 보관을 쓰고 합장하였고, 맞은편에 황금의 보(補)가 달린 옷을 입은 제석천은 옷 속에 두 손을 넣고 서있다. 범천은 녹색, 제석천은 붉은 옷을 입고 있어 서로 보색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옷에는 아름다운 문양과 화려한 금니의 채색으로 인해 이들이 신중 가운데 으뜸가는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얼굴과 손 등에는 호분을 칠하였으나 다른 권속들과 마찬가지로 퇴색과 박락이 심하다. 그러나 둥근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가 단정하면서도 원만한 모습이다.
범천과 제석천 아래에는 문관복에 원유관과 경전을 얹은 관을 쓴 일궁천자와 월궁천자가 나란히 서있는데, 금색의 화려한 각대(角帶)와 금으로 장식한 보관이 천자의 위상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들의 오른쪽으로는 비파ㆍ생황ㆍ대금ㆍ피리ㆍ장구 등을 연주하는 주악천녀와 향로를 들고 있는 천녀, 당ㆍ번을 들고 있는 천녀 및 동자가 그려져 있다. 이들은 범천, 제석천과 같이 둥글며 원만한 상호에 작은 이목구비를 하고 있는데, 하단의 피리와 대금을 부는 인물들이 서로 마주본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별 움직임이 없이 조용하게 서있다.
위태천을 위시한 천룡팔부는 칼과 창을 들고 오른쪽을 향하고 있어 마치 주악천녀의 음악을 듣는 듯한 모습이다. 위태천은 새 날개깃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투구를 쓰고 금색의 삼지창을 들고 있으며, 그 아래로 백익선(白翼扇)을 든 산신(山神)과 주조신(主竈神), 용왕(龍王), 주정신(主井神), 무기를 든 신장들이 당당하게 서있다. 천부중들과 달리 얼굴을 짙은 갈색으로 칠하고 부릅뜬 눈과 무성한 턱수염 등 호법신으로서의 특징을 잘 표현하였다.
채색은 적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녹색과 흰색, 갈색, 금색 등을 함께 사용하였는데, 특히 권속들의 보관과 옷, 무기, 지물 등에 금색을 많이 사용하고 권속들의 얼굴에 흰색을 칠하여 화면이 화려하면서도 환한 느낌을 준다. 음영법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호법신들의 수염과 천부중의 머리 등을 세필로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1.1.5. 봉은사 삼세불도(奉恩寺 三世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4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 사경화
수량 / 면적 : 1폭
제작시기 : 1892년
봉은사 삼세불도는 대웅전에 안치되어 있는 목조석가여래삼불상의 뒤 후불벽에 안치되어 있는 후불탱화이다. 세로 319.7cm, 가로 291.8cm의 대규모 면본 채색화로 현 대웅전의 후불벽보다는 폭이 좁지만 1892년 당시 대웅전의 후불벽 규모에 맞춰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앞에 모셔져 있는 삼세불상이 17, 8세기경의 작품인 것을 볼 때 1892년 대웅전의 불화를 제작하면서 불상과 같은 형식의 삼세불화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화는 인권시주(引勸施主)인 오청정월(吳淸淨月)과 민두호(閔斗鎬)를 비롯하여 여러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이 그림을 주관한 화승 영명 천기(永明 天機)가 본사질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영명천기는 당시 봉은사에 주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형식은 상단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측에 약사불, 우측에 아미타불 등 삼세불을 나란히 배치하고 상하 좌우로 보살 6구과 나한 8구, 사천왕, 화불 2구, 용왕, 용녀 등이 삼세불을 에워싸는 구도를 보여준다. 석가모니불은 키형의 광배를 뒤로 하고 높은 수미단 위 청련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는데, 이마부분이 넓고 턱부분이 다소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작으며, 육계가 뾰족하다. 신체는 건강한 편으로 왼쪽 어깨에 붉은 대의를 걸친 후 대의 자락을 오른쪽에 살짝 걸친 변형된 통견식 착의법을 하고 있다. 대의의 가장자리에는 화문이 그려졌으며, 역시 동일한 화문을 장식한 군의의 윗부분이 넓은 U자형으로 처리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였고 길상좌(吉祥坐)를 취한 자세가 안정감을 준다. 약사불(향우측)과 아미타불(향좌측)은 석가모니와 동일한 얼굴, 착의법, 자세 등이 동일하지만 광배는 이중륜광으로 처리하였으며 두 상 모두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결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아래에는 가섭존자(향우)와 아난존자(향좌)가 본존을 향해 서있고 광배 주위로 좌우 각 3구씩의 제자와 분신불이 배치되었으며, 약사불 위쪽으로는 용왕, 아미타불 위쪽으로는 용녀가 얼굴부분만 표현되었다. 석가모니의 대좌 아래쪽에는 6구의 보살들이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다소 무거운 듯한 보관에 붉은색 천의를 입고 중앙을 향해 서 있다. 정중앙의 두 보살은 석가모니의 좌우보처인 문수보살(如意)과 보현보살(연꽃)이며, 옆의 보살은 머리에 붉은 해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일광보살, 반대쪽의 보살은 월광보살을, 가장자리의 두 보살은 특별한 표식은 없으나 아미타불의 협시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묘사하였다고 생각된다.
화면의 아래, 위 네 방향에는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향 우측 상단의 천왕은 비파, 하단의 천왕은 칼을 들었으며, 향 좌측 상단의 천왕은 탑, 하단의 천왕은 각각 여의주와 용을 들고 서있는데 위쪽의 두 천왕은 화면의 중앙을, 아래쪽의 두 천왕은 바깥쪽을 향하고 있어 마치 사방을 모두 호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인 화면구성은 1878년에 제작된 안성 청룡사 삼세불화와 유사한데, 두 불화는 일부 권속의 가감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본에 의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삼세불의 뾰족한 육계, 착의법을 비롯하여 사이 사이에 배치된 분신불과 제자들이라든가 사방을 호위하고 있는 사천왕의 모습 등이 동일하며, 봉은사 삼세불화에서는 6보살이 표현된 것에 비하여 청룡사 삼세불화에서는 8보살과 두 천녀가 배치된 점이 다를 뿐이다. 이처럼 두 불화가 동일한 도상을 보여주는 것은 봉은사 삼세불화를 그린 화승 중 영명 천기(永明 天機), 금곡 영환(金谷 永煥). 덕월 응론(德月 應惀)이 청룡사 삼세불화 제작에도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채색은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청색과 흰색, 녹색, 금색 등을 함께 쓰고 있다. 특히 석가모니의 신광 내부를 금색으로 칠한 것은 판전 비로자나후불도(1886년)와 같으며, 아미타불과 약사불의 신광 내부는 다양한 색대(色帶)로 표현하여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으로 보인다. 불, 보살의 얼굴은 음영 없이 처리하였으나 나한과 사천왕은 음영을 강하게 사용하였는데 다소 과장되면서도 능숙한 음영처리가 돋보인다. 필선은 철선묘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머리카락과 수염 등의 묘사에서 세밀한 필치가 엿보인다.
이 불화는 세밀한 필치와 섬세한 음영구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청룡사 삼세불화와 함께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삼세불화이므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1.1.6. 봉은사 삼장보살도(奉恩寺 三藏菩薩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5호(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 사경화
수량 / 면적 : 1폭
제작시기 : 1892년
1892년에 삼세불도, 감로도 등과 함께 제작된 탱화로서 세로 198.4cm, 가로 402.5cm에 달하는 대형의 탱화로 면본에 그렸다. 조성 당시에는 중단탱으로 조성되어 대웅전 측벽에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대웅전 후불벽 뒷면에 봉안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고, 삼불상을 끼고 뒤로 돌아가야 보인다.
구도는 가로가 4m나 되는 긴 직사각형의 화면 중앙에 천장보살(天藏菩薩)과 권속을 배치하고, 향우측에 지지보살(持地菩薩)과 권속, 향좌측에 지장보살(地藏菩薩)과 권속을 배치한 전형적인 삼장보살도의 구도를 보여준다. 화면의 윗부분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채운(彩雲)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세 보살의 회상(會上)이 펼쳐져 있다. 천장보살과 지지보살, 지장보살은 모두 높은 수미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는데 좌우와 아래 부분에는 많은 권속들이 이들을 꽉 둘러싸고 있다. 세 보살은 둥근 얼굴에 작은 눈, 코, 입 등이 알맞게 표현되었으며 이중륜광을 지니고 있는데, 지지보살과 지장보살의 신광 내부를 구불구불한 색대로 표현하여 마치 보살들의 몸에서 빛이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천장보살은 화면의 정중앙에 권속들과 함께 묘사되었다. 단정한 자세에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원문이 그려진 붉은색의 옷을 걸쳤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 손가락을 마주잡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아 두 손가락을 마주잡고 있다. 천장보살을 둘러싼 권속들의 명칭은 알 수 없지만, 천은사 삼장보살도(1776년)의 화기에 적힌 바와 같이 좌우보처는 진주보살(眞珠菩薩)과 대진주보살(大眞珠菩薩), 그 외의 권속들은 사공천중(四空天), 십팔천중(十八天衆), 육욕천중(六欲天衆), 일월천중(日月天衆), 제성천중(諸星天衆), 오통선중(五通仙衆) 등으로 추정된다. 이들 역시 천장보살과 마찬가지로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작게 묘사되었으며 합장하거나 지물을 든 모습으로 보살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천장보살의 향좌측에 그려진 지지보살은 주위에 묘사된 권속만 다를 뿐 착의법과 보관, 영락 등이 천장보살과 거의 같다. 지지보살의 권속 역시 정확한 존명을 알 수 없으나 천은사 삼장보살도 중 지지보살의 권속인 용수보살(龍樹菩薩)과 다라니보살(陀羅尼菩薩)을 비롯하여 제견색신중(諸牽索神衆), 제금강신중(諸金剛神衆), 제8부신중(諸八部神衆), 제용왕신중(諸龍王神衆), 대약차중(大藥叉衆), 나찰파중(羅刹婆衆), 귀자모중(貴子母衆), 대하천중(大河川衆) 등이 묘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보살형의 권속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용수보살(龍樹菩薩)과 다라니보살(陀羅尼菩薩)은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천장보살 우측의 지장보살은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마주잡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체발비구형(剃髮比丘形)으로 머리와 반가좌한 자세만 다를 뿐 얼굴이나 신체형태 등은 천장보살, 지지보살과 같이 단정하면서도 군형잡힌 모습이다. 지장보살의 권속들은 향좌측으로 치우쳐져 배치되었는데, 아래로는 도명존자(錫杖)와 무독귀왕(합장)이 협시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 시왕과 판관, 사자, 동자, 옥졸 등이 둘러싸고 있다.
채색은 주조색인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흰색과 황색, 청색, 금색 등이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적색을 많이 사용하였지만 흰색의 문양을 많이 그려 넣어 탁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또 하늘바탕을 비롯하여 권속들의 옷과 무기 등에 부분적으로 청색을 사용한 점도 눈에 띄며, 곳곳에 금색을 설채하여 화려한 느낌을 준다. 필선은 곧고 단정한 철선묘가 위주이며, 권속의 얼굴에 강한 음영법을 사용하고 수염 하나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하는 등 섬세한 필치를 보여준다.
이 삼장보살도는 조선말기 문신이자 세도가였던 민두호가 장수와 제액소멸 등을 기원하며 시주, 제작한 것으로, 금어인 영명 천기, 금곡 영환, 명응 환감, 경엽, 긍조, 소현, 창조 등이 제작하였다. 강한 음영법과 세밀한 필선 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드물게 남아있는 삼장보살도의 한 예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1.1.7. 봉은사 감로도(奉恩寺 甘露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5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 사경화
수량 / 면적 : 1폭
제작시기 : 1892년
1.2. 법왕루(法王樓)
봉은사의 보제루로, 법왕루란 문자 그대로 법의 왕, 즉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한다. 맞배지붕에 전면 7칸, 측면 4칸 규모이며, 봉은사 경내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다.
본래 사천왕상을 모신 천왕문이 있던 자리였으나, 사천왕상은 1982년에 진여문으로 옮기고, 1997년에는 이 자리에 있던 기존의 법왕루를 서측으로 옮기면서 미륵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터에는 기존 법왕루보다 규모가 큰 건물을 새로 신축하였다.
1층은 종무소, 2층은 사시예불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대법회와 기도, 수행 등이 이뤄지고 있다. 법당 내에는 3,300분의 관세음보살 원불을 모심으로 명실상부한 관세음보살 신앙의 모범적인 신행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법왕루는 대법회 등 많은 인원이 있을 경우 부족한 기도공간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법왕루 아래를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뜰에 닿게 되므로 대웅전의 입구라고 볼 수 있다. 진여문에서 법왕루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공중화장실이 있다.
1.3. 지장전
대웅전 동측에 있는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지장전은 명부를 다스리는 보살인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심으로써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현재의 지장전은 2002년 6월 화재로 전소된 것을 2003년 12월에 중건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본래 12평이었던 전각을 40평으로 중창하였다.
1.4. 미륵전
미륵대불과 마주보고 있는 누각 형태의 건물로, 팔작지붕에 전면 5칸, 측면 3칸 규모이다. 본래는 이 건물이 법왕루였으나, 1997년 법왕루를 신축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미륵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륵전을 통과하면 곧장 웅장한 미륵대불이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미륵전 안으로 들어가면 따로 미륵 불상을 놓지 않고, 유리창을 뚫어 실내에서 미륵대불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봉은사 말고도 통도사 적멸보궁이나 낙산사 관음전 역시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유리창을 뚫어 야외에 있는 불상을 보게 되어 있는데, 전국에 그런 형태의 건물이 꽤 많다.
1.5. 영산전
대웅전 뒤 계단을 올라가면 있는 전각으로, 맞배지붕에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고 좌우보처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양 옆으로 16아라한이 옹위하고 있으며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그 외에 십육나한도, 신중도, 사자도 등의 불화가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아담한 전각이지만, 이 작은 전각 안에 문화재가 무려 6점 존재한다.
신도들이 많이 찾는 대웅전보다는 한적한 편이기 때문에 홀로 오랫동안 집중해서 기도하고 싶다면 영산전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1.5.1. 봉은사 목 삼존불상(석가불, 가섭존자, 아난존자)
奉恩寺 木 三尊佛像(釋迦佛,迦葉尊者, 阿難尊者)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7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수량 / 면적 : 3구
제작시기 : 18세기 후반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좌상(坐象) 형식의 삼세불상으로, 본존불로 석가모니상, 좌우에 협시불로 가섭존자상과 아난존자상을 모시고 있으며, 삼존상의 좌우에는 십육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삼존불상은 목조로 만들고 본존불인 석가모니상만 금을 입혔으며, 가섭존자상과 아난존자상은 채색을 하였다. 조성 시기는 영산전 후불탱화의 화기에 1895년에 개금되었다고 하므로 최초의 조성은 이보다 이른 시기일 것으로 생각된다. 2007년 9월 2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7호로 지정되었다.
본존불인 석가모니상은 불신 좌우, 앞, 뒤로 양감이 느껴지는 체구로 무릎 폭은 체구에 비해 좁은 편이다. 세부를 살펴보면, 머리와 육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마치 투구를 쓴 것처럼 두부가 둥글게 표현되었고, 그 정상에는 정상계주를, 두부의 전면중앙에는 반원형의 중간계주가 새겨져 있으며 머리위에는 나발이 촘촘하다. 얼굴은 방형에 가까운 둥근 상호에 이마의 선이 수평하고 이목구비는 다소 평면적이며 차분한 인상을 주는데 입의 양끝이 올라간 고졸한 표현이 눈에 띤다. 어깨는 둥글고 대의는 우견편단식으로 입었는데 오른쪽 어깨를 감싼 대의자락이 허리안으로 들어가는 형태의, 이른바 변형식 우견편단 착의법을 나타내고 있는데, 조선 후기에 흔히 보이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가슴에는 군의의 윗부분이 드러나고 양쪽 무릎에는 부채꼴로 옷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매우 도식화되었다. 오른손은 촉지인처럼 아래로 내렸고 별재로 제작하여 손목에 끼워 넣은 왼손을 무릎위에 올려 손가락을 약간 구부려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데, 오른손은 아래로 내렸는데, 이 수인은 조각승 무염이 조성한 불갑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의 본존 석가불상(1635년)을 비롯한 조선 후기 석가불에서 자주 표현되는 수인이다.
본존상 좌측의 가섭존자는 머리 정상이 솟아오른 수행자의 모습으로 동안의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으며, 원령의 내의 위에 가사를 입고 복부 주변에는 요포 같은 것을 덧입었으며, 그 아래로 신대(紳帶)가 두 발 사이로 내려온다. 두손은 모아서 합장하였다. 우측의 아난존자는 삭발한 승형으로 역시 원령의 내의 위에 가사를 걸치고 군의 중앙으로 신대가 흘러내리고 있다.
1.5.2.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奉恩寺 木 十六羅漢像)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8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나한상
수량 / 면적 : 12구
제작시기 : 1895년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십육나한상은 189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삼존불상의 좌우에 8구씩 총 16구가 배치되어 있으며, 목조로 만들고 채색을 했다. 2007년 9월 2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이 중 4구는 소실되어 새로 만든 것이며, 원래 있던 12구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체로 십육나한상의 배치는 좌측에 1, 3, 5, 7, 9, 11, 13, 15상이 봉안되고, 우측에 2, 4, 6, 8, 10, 12, 16상이 봉안되는 것이 통례이나, 현재 봉은사 영산전의 십육나한상은 그 순서가 교란되어 원 위치와 다르다. 향 우측의 제1상은 승형의 머리에 두 손으로 합장한 젊은 모습의 나한상으로서 얼굴의 형태와 이목구비의 표현은 본존석가상이나 아난존자와 매우 유사하며 원령의 내의에 가사를 입었는데, 암좌의 정면에는 괴수면이 새겨져 있다. 그 옆의 나한상은 착의형식은 앞의 나한상과 같은데, 오른쪽 무릎을 세운 윤왕좌의 자세이며 무릎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향 우측 제3상은 신작(新作)으로 왼손에는 보주를 쥐고 유희좌의 좌세로 앉아 있다. 제4상은 무릎위에 올려놓은 왼손에 긴 염주를 들었고 오른손은 오른 무릎 위에 놓았는데, 손가락을 구부린 표현이 재미있다. 제5상은 두 손을 마주 포개어 배위에 올려놓은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제6상은 같은 형태의 승형 나한상으로 왼 무릎을 세운 윤왕좌로 앉아 오른손에 경권을 쥐고 있다. 제7상은 신작으로 유희좌로 앉아 등을 긁고 있다. 제8상은 두 손위에 경책을 펼쳐들고 있다.
다음으로 향 좌측의 나한상은 제1상은 가사의 앞섶을 풀어헤쳐서 상체의 나신이 드러나며 의자에 앉은 의상인데 오른손으로 동자를 안고 있다. 제2상은 가사위에 두건을 덮어쓰고 두 손을 옷속에 가린 나한상이며, 그 옆의 제3상은 신작(新作)으로 오른손에는 석장, 왼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다. 제4상은 두 손위에 경책을 펼쳐 든 모습이 향 우측 제8상과 유사하다. 제5상은 오른 무릎을 세워서 몸쪽에 붙이고 두손으로 무릎을 감싼 자세로 앉았는데, 이와 같은 유형은 오대와 송대의 나한상에서 보이며 원래는 세운 무릎위에 얼굴을 기대고 앉아있는 경우도 있다. 제6상은 신작으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위에 왼손을 올려놓았다. 제7상은 제4상과 마찬가지로 두 손위에 경책을 펼쳐든 나한상이며 제8상은 손의 모습으로 보아서 원래는 지물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십육나한상은 전체적으로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획일화된 얼굴과 경직된 신체의 표현에서 조선말기 나한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이 상들이 봉안되어있는 영산전 후불탱화 화기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1895년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 말기의 기년작으로서 중요한 예라고 생각된다. 함께 섞여있는 신작(新作)의 나한상들은, 향 우측의 나한상들 가운데 세 번째와 일곱 번째 상, 향 좌측의 나한상 가운데 세 번째와 여섯 번째 상으로, 원래의 나한상들보다 체구와 두부가 크며 얼굴의 표현도 다르다.
1.5.3. 봉은사 영산회상도(奉恩寺 靈山會上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7호
영산회상도
서울특별시 휘장 White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기타
수량 / 면적 : 1폭
제작시기 : 1895년
1.5.4. 봉은사 십육나한도(奉恩寺 十六羅漢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8호
십육나한도[편집]
서울특별시 휘장 White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기타
수량 / 면적 : 12폭
제작시기 : 1895년
1.5.5. 봉은사 사자도(奉恩寺 使者圖)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8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수량 / 면적 : 1폭
제작시기 : 1895년
1.5.6. 봉은사 영산전 신중도(奉恩寺 靈山殿 神衆圖)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9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수량 / 면적 : 1폭
제작시기 : 1895년
1.6. 북극보전
영산전 서편에 있는 법당으로, 산신, 칠성신, 나반존자를 모신 삼성각이다. 북극보전(北極寶殿)이라는 전각의 이름은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존재인 칠성신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1942년에 영산전과 함께 건립되었다. 팔작지붕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작은 전각이며, 전각의 주위에 아크릴판을 덧대어 기도할 공간을 확장해 놓았다.
1.7. 영각
맞배지붕에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전각이다. 1967년 7평으로 지어졌던 충령각을 1992년 두 배 규모로 증축하여 영각으로 개칭했다. 벽면에는 봉은사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연회국사를 비롯하여 조선 불교의 중흥조 보우대사와 서산대사, 사명대사, 남호 영기율사, 영암, 석주 스님 등 7분 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고, 불단에 지장삼존불상과 탱화가 있다. 오른쪽 벽면으로는 6.25전쟁 전후 희생된 201위 호국영가의 영단이 설치돼 있다.
1.8. 봉은사 판전
봉은사의 건물로, 목재 경판을 보관하며 예불을 드리는 공간이다. 현재 봉은사에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
1856년(철종 7년)에 지었다. 당시 봉은사의 남호 영기 스님이 《화엄경수소연의본(華嚴經隨疎演義本)》을 무려 80권이나 직접 손으로 썼다. 남호 영기 스님은 자신이 쓴 《화엄경수소연의본》을 인쇄하여 책을 만들 목적으로 목판을 제작했고,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새로 건립한 전각이 이 판전이다.
1878년(고종 15년)에 다시 고쳐지었고 2012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2018년 7월 12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25호로 지정받았다.
단층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4단으로 쌓은 장대석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기둥은 둥글고 주춧돌은 네모나다. 정면 기둥마다 주련을 달아두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용마루 끄트머리에 취두를 올렸으며 지붕마루는 기와로 마감했다. 합각 부분에는 나무로 만든 풍판을 덧대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공포는 삼익공이다.
정면은 전부 세살창호를 한 문이 달려있는 모습이며 교창은 없다. 측면 모습은 정면과 많이 다르다. 머름 위에 붉은색 나무 판으로 만든 창이 달려있으며, 창 위에 나무로 만든 벽을 세웠다. 머름의 크기는 일반적인 다른 한옥의 머름보다 큰 것이 특징이다.
실내 벽 가장자리에 받침대를 만들어 경판을 보관하고 있다. 경판에 습기가 스며들지 않게 하려고 바닥에 온돌을 깔았다.
봉은사 판전 현판(奉恩寺 板殿 懸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83호 (지정일 : 1992년 12월 31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기록유산 / 서각류 / 목판각류 / 현판류
수량/면적 : 1点
제작시기 : 1856년(조선 철종 7년)
판전의 현판으로,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이다.
길이는 가로 181cm, 세로 77cm이다. 조선시대의 작품이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를 읽는다. '전(殿)' 자 왼쪽에는 세로로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란 글씨가 쓰여있는데, 이는 '71세에 과천에서 병을 앓고 있을 때 썼다'는 뜻이다.
일설에 의하면 김정희가 사망하기 3일 또는 4일 전에 썼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김정희 최후의 작품인 셈이다. 실제로 김정희는 판전이 완공된 1856년(철종 7년)에 봉은사에 와서 잠시 머물렀다가, 그 해 10월에 과천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 달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상술했듯, 현판 글씨를 과천에서 썼다고 적은 것을 보아 저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1992년 12월 31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83호로 지정받았다.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初木版0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84호 (지정일 : 1992년 12월 31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73)
기록유산 / 서각류 / 목판각류 / 현판류
수량 / 면적 : 3,190판
판전에 두고 보관하는 목판이다. 상술한 남호 영기 스님이 만든 목판이 이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경》의 정식 이름으로, 편의상 줄여서 '화엄경'이라 부르는 것이다.
1992년 12월 31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84호로 지정받았다. 처음 문화재가 될 때에는 3,175판이었다. 그러나 2018년에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함께 전국 사찰에 있는 목판들을 조사하던 중에 미처 문화재로 지정하지 못한 목판 15판을 새로 찾아냈다. 이에 서울특별시에서는 저 목판 15판을 2019년 10월 10일에 추가로 지정했다.
봉은사 판전 신중도(奉恩寺 板殿 神衆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30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 괘불화 / 석가불도
수량 / 면적 : 1幅
제작시기 : 1857년(철종 8년) 경
판전 향 왼쪽 벽에 모신 신중도(神衆圖)이다. '신중(神衆)'은 직역하면 '신(神)의 무리(衆)'로, '신중도(神衆圖)'는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는 신들(神衆)을 그린 그림(圖)'이란 뜻이다. 사실 신중은 원래 불교의 신이 아니었고, 불교가 생기기 전에 인도에 존재했던 다른 종교들의 신이었다. 처음에 불교는 이들과 경쟁할 수 밖에 없었지만, 경쟁 대신 이들을 감화해 귀의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기존 종교의 신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신으로 삼았으니 이들이 바로 신중이다.
이 신들은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파할 때 나타난다고 하여 '화엄신중(華嚴神衆)'이라고도 일컫는데, 상술한 목판이 화엄경인만큼, 건물의 목적과 잘 맞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로 224.4cm, 세로 237cm이다. 신들의 배치는 4열이고 총 39신을 빼곡하게 그려두었다.
2007년 9월 2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30호로 지정받았다.
봉은사 비로자나불도(奉恩寺 毘盧舍那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32호 (지정일 : 2007년 9월 20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73)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불도
수량 / 면적 : 1幅
제작시기 : 1886년(고종 23년) 경
판전 내부 중앙에 있는 불상 뒤편에 걸린 탱화이다. 1886년(고종 23년)에 그렸다. 이 그림을 제작하기 위해 상궁 8명이 시주를 했다고 한다. 원래는 같은 시기에 그린 〈칠성도〉 및 〈산신도〉와 한 자리에 있었는데, 〈칠성도〉는 1942년에 새로 지은 북극보전으로 옮겼고, 〈산신도〉는 지금 없다.
이 그림 속 부처님은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광명' 혹은 '태양'이란 뜻의 산스크리트어 '와이로짜나(vairocana)'를 음차한 말로, '두루 빛을 비추는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불교의 입장대로는,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들, 모든 보살들, 모든 중생들은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다. 오직 불변하는 하나의 중심이 있는데 이를 '중앙 비로자나불'이라고 부른다. 우주의 중심에 있는 불국토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존재하면서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총괄할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의 최고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자, 우주일체 만물을 고루 평등하게 밝히고 있는 법성체(法性體)로, 안으로는 진여법계를 비추고, 밖으로는 모든 중생에게 법성을 비추어 우주를 밝히며, 항상 변하지 않고, 우주의 대생명체 바로 그 당체를 말한다고 한다.
가로 224.4cm, 세로 302.3cm이다. 가부좌를 한 채 앉아있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양 옆에 양 손을 모은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그려두었다. 비로자나불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사천왕이 각 면에 2명 씩 있다.
2007년 9월 2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32호로 지정받았다.
여담
현재도 예불하는 장소로 쓰이는 만큼, 실내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경판을 사진 촬영하는 것은 금지이니 참고하면 좋다.
2. 요사 및 선방[편집]
2.1. 봉은사 선불당(奉恩寺 選佛堂)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4호 (지정일 : 1985년 12월 5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당우
수량 / 면적 : 건물 1棟, 토지 344.3㎡
제작시기 : 1941년
대웅전 동측에 있는 선방(禪房)으로, 1985년 12월 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이곳에서 승과 시험을 보기도 하였다. 때문에 참선의 '禪' 자를 쓰지 않고, '가리다', '고르다'라는 의미의 '選' 자를 쓴다.[17]
승과는 스님들이 보던 과거 시험으로,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다. 조선 초에는 몇 년에 한 번 씩 열렸으나 성종과 연산군이 중지시키더니 나중에는 중종이 아예 폐지시켰다. 그러다 불교에 관심이 많은 문정왕후가 자신이 수렴청정을 하던 명종 시기에 승과를 부활시켰다. 승과는 크게 선종시와 교종시로 나뉘었는데, 문정왕후는 봉은사를 선종 수사찰로 지정하여 선종 시험장으로 삼았다. 이 때 쓰인 건물이 바로 선불당이다. 당시 이름은 선불당이 아니었으며, 정확한 것은 불명이다.
그러나 1565년(명종 20년)에 문정왕후가 승하한 후 승과는 폐지되었다. 그래도 선불당 건물 자체는 계속 남았으나,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불탔고 이후 재건했으나 다시 불타고 새로 짓는 것을 반복했다. 조선 후기에는 심검당이란 이름의 승방으로 기능했다. 현재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41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지금까지 쓰이고 있으며 명종 시기 부활한 승과 시험을 여기서 봤다는 기록을 확인한 후에는 역사성을 기려 '선불당(選佛堂)'으로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 한편, 이 자리에 있었던 심검당은 화재로 소실된 후 대웅전 서측, 선불당과 마주 보는 자리에 다시 지어지게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8칸이다. 지붕의 합각 아래에 현판을 달았는데 사실 그 부분은 일반적으로 측면으로 여기는 면이다. 하지만, 현판을 둔 곳이 정면이기 때문에 그쪽을 정면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이런 형태는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소수서원 강당에서도 볼 수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인데 앞면과 뒷면에도 각각 2개 씩 작은 합각을 결합시켜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면 합각에는 원이삼점(圓伊三點)을, 정면과 맞닿은 측면 합각에는 '만(卍)'을 그려 넣었다. 처마는 겹처마로 공포는 초익공이다. 그리고 사방에 툇마루를 둘렀다. 툇마루는 밖과 통해있어 사람들이 편히 앉아 쉴 수 있다. 툇마루 안쪽에는 온돌방이 있고, 우측면 제일 오른쪽 끄트머리에는 부엌이 있다. 부엌문에는 신장도가 그려져 있다.
2.2. 심검당(尋劍堂)
대웅전 서측에 있는 선방(禪房)이다. 심검당은 사찰에서 선방이나 강당의 이름에 많이 붙여지는 명칭으로, 지혜의 칼을 찾아 무명의 풀을 벤다는 뜻으로 검이란 날카로움 즉 지혜를 상징하고 심(尋)은 '찾는다' 는 뜻이 있으니 심검당은 바로 지혜를 찾는 곳, 즉 선방(禪房)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심검당은 팔작지붕에 앞면 5칸, 남측면 3칸, 북측면 4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 <정릉지>의 '봉은사 사적'에 의하면 창건 때부터 있었던 건물인데 1939년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 것은 1941년에 새로 지어진 당우이다. 본래 선불당 자리에 있던 전각이 심검당이라는 이름을 썼으나, 1941년 중건 이후에는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2.3. 운하당(雲霞堂)
대웅전에서 서쪽으로 2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선방(禪房)으로, 운하당이 올라앉은 축대도 대웅전 축대가 계속 이어진 것이다. 용도는 심검당과 마찬가지로 승방으로 쓰이며,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전각이지만 1939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41년에 중건되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3. 불상
3.1. 미륵대불
미륵대불은 봉은사 성보로써 높이 23m로 국내 최대의 크기의 대불이다. 1986년 당시 봉은사의 주지였던 영암스님이 민족 통일을 발원하며 일으킨 불사에 1만 명 이상이 동참하여 10년 간에 걸쳐 이루어진 대작불사로, 1996년에 완공되었고, 2018년에 미륵대불 주변의 벽면에 3999위의 미륵원불과 23위의 보살입상을 봉안했다.
미륵대불은 가히 봉은사, 아니 강남의 랜드마크로도 볼 수 있다. 미륵대불의 크기가 워낙 거대해서 주변 지역에서 잘 보인다. 미륵대불 앞으로 기도를 할 수 있는 광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법회가 열리거나 경우에 따라 공연 등 문화 행사장으로 사용된다.
드라마에서도 서울의 야경과 함께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며, 2012년에 방영된 타임슬립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 신의에서도 코엑스와 함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3.2. 해수관음상
진여문의 서쪽에는 연못 가운데 한국의 전통적인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관세음보살상의 손에는 감로수를 담은 병을 들었고 보관(寶冠)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다. 또한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진 연못은 아미타불 극락세계의 연꽃이 핀 아홉 개의 연못 중 하나를 표현하고 있다. 본래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이란 바다가 보이는 사찰에서 커다란 규모로 관세음보살상을 세우지만, 봉은사는 도심 속에 있으므로 부득이 연못 가운데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다고 볼 수 있다.
4. 문
4.1. 일주문
본래 봉은사의 일주문은 1886년, 지금의 휘문고등학교 자리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그 후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하며 지금의 진여문 자리로 옮겨졌으며, 1986년 경기도 양평군의 사나사로 이건되었다. 2011년에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석굴암[18]으로 옮겨져 불이문으로 사용되었다. 그동안은 진여문이 일주문 대신이다가, 2020년 5월 29일에 일주문이 다시 봉은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원래 세워졌던 위치는 아니고 봉은사 입구에 복원되었다.
일주문의 좌우로는 두 마리의 코끼리 석상이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잉태했을 때 태몽으로 코끼리 꿈을 꿨다고 해서 신성시 하고 있는데, 거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4.2. 진여문(眞如門)
봉은사의 천왕문으로, 일반적인 천왕문에 비해 크기가 엄청 크다. 건축 양식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지만 일반 건물에 비해 기둥의 간격과 높이 등에서 훨씬 크게 지어졌기 때문에 칸수에 비해 실제로는 규모가 큰 건물이다. 좌우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60호인 봉은사 목조(木造) 사천왕 입상이 있고, 가운데 대문에는 각각 칼과 창을 든 신중상이 그려져 있으며, 천정에는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진여(眞如)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한다. 그러므로 진여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부처님의 세상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지붕 아래에 걸려 있는 현판은 앞에는 '수도산 수선종 봉은사'라고 하여 봉은사가 선종의 으뜸 사찰임을 나타내고 있다. 뒤에는 '진여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봉은사라는 현판은 한때 해인사로 출가한 뒤 만해 한용운스님과 '만당(卍堂)'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던 서예가 청남(菁南) 오재봉(吳齋峯, 1908~1991년)이 쓰고, 진여문이란 현판은 봉은사 주지를 역임한 석주스님이 썼다.
봉은사 진여문은 『선정릉지(宣靖陵誌)』의 「봉은사사적」에 의하면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봉은사 경내에는 진여문과는 별도로 지금의 법왕루 자리에 사천왕상을 모신 천왕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 뒤 기록은 알 수 없고 1939년 대화재 때 소실된 후로 1970년대에 휘문고 근방에 있던 일주문을 옮겨와 세워 놓았다. 1982년에는 영암스님과 밀운스님이 주지를 이어 맡으며 진여문의 복원을 발원하여 1982년 일주문 자리에 진여문을 세웠다.
5. 기타
5.1. 서래원(瑞來院)
서래원(瑞來院)은 상서로운 기운이 들어오는 전각이라는 의미이다. 일주문으로 들어오면 우측에 있는데, 가운데에는 불교용품 전문점이 있는데, 염주나 향초를 판매하고 있으며, 건물 바깥에 있는 라벨에다가 기도하는 사람의 이름과 기도할 내용을 적어 초에다 붙여 대웅전 앞에 공양하면 된다.
좌측에는 베이커리 및 카페인 여여, 우측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지하에는 공양간과 꽃집인 로터스플라워가 있다. 공양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오후 4시 30분부터 6시까지 하루 2회 운영한다. 단순히 신도들 뿐만 아니고 인근 직장인들까지 몰려들어 자리가 없을 정도다. 잔치국수, 막국수, 메밀, 순두부 등 메뉴가 다양하다.
5.2. 전통문화체험관
지장전 서측에 있는 건물로, 본래는 요사로 쓰이던 건물이 있었는데, 봉은역사공원 마스터플랜 1단계 사업으로 지정되어 그 자리에 전통문화체험관을 짓게 되었다. 2016년 6월 3일에 착공하여 2017년 7월 25일에 완공되었으며, 총 2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층수는 지하2층, 지상2층으로, 지하층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이며 지상2층은 전통 한식목구조로 시공되었다. 지하는 식당, 신도회 사무실, 대회의실, 강의실을 갖추었고, 지상은 체험관 및 방으로 설계되었으며, 바닥 면적은 1관이 1,340㎡(406평), 2관은 1,062㎡(322평)으로 시공되었다. 이곳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한 사찰음식·다도·참선 등 전통문화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진행하고 있다.
5.3. 매화당(梅花堂)
법왕루 동측에 있는 건물로, 2018년 9월에 착공하여 2020년 2월에 완공되었다. 본래 매화당은 유서 깊은 건물로,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1604년에 사명대사가 일본에 갔다 돌아오면서 나가사키와 사쓰마 사이에 정박하고 있던 중국 상선에서 매화를 얻어 돌아온 뒤 이곳에 그 매화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매화당은 한 차례 소실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현재는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편의시설로 접수처 및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5.4. 연회루(緣會樓)
봉은사 창건주인 연회국사의 법호를 딴 전통차체험관으로, 緣(인연 연), 會(모일 회) 뜻과 같이 많은 사람이 봉은사에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길 바라는 마음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불교문화와 차 문화의 우수성 알리고자 하는 취지와 의미를 두고 구 종루 위치에 리모델링하여 2018년 6월 20일 개원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
5.5. 종루
종루에는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의 사물(四物)이 봉안되어 있으며, 새벽 예불과 저녁 예불을 시작할 때 사물을 치는데, 스님이 사물을 치는 모습이 장관이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법고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하며,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래 종루는 지금의 연회루 자리에 있었으나, 2014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옛 종루 자리에는 연회루를 세워 사찰을 방문하는 내·외국인을 위해 다도와 신도들을 위한 휴식공간인 전통문화체험관을 건립했다.
5.6. 종각
1974년에 조성된 것으로, 현재의 종루가 세워지면서 사용되지 않고 보존만 하고 있다.
5.7. 날물곳
종각과 미륵전 사이에 있는 약수터이다. 수질검사 결과 음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5.8. 보우당
보우당은 2000년 10월 아셈(ASEM) 정상회의를 위해 국가의 지원을 받아 사하촌을 정리하고 건립한 건물로 보우대사의 불교 중흥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보우당이라 이름 하였다. 각종 교육 및 신행활동 공간으로 상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요일에는 어린이 법회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지하층엔 무의탁자나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와 종무원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5.9. 향적원
400여명의 대중공양이 가능한 공간으로 매주 화요일 사찰음식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대중공양 이용시간은 오전 11시 30분에서 오후 12시 30분까지이며, 법회 및 행사에 따라서 변경될 수 있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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