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면(東二面)
충청북도 옥천군 중앙부에 있는 면.
금강(錦江)을 경계로 북쪽으로 안남면(安南面), 동쪽으로 청성면(靑城面), 남쪽으로 이원면(伊院面), 서쪽으로 옥천읍과 접한다. 금강 본류가 남으로부터 북으로 면을 관류하여 흐른다.
신라 때는 고시산군(古尸山郡)·관성군(管城郡)에 속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옥주(沃州)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옥천군 군동면과 이남면에 속하였다.
현재의 면은 조선 시대 군동면과 이남면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군동면은 『여지도서』에 수북리(水北里) · 지장리(紙匠里) · 갈마동리(加乙馬洞里) 등 9개 리를, 이남면(利南面)은 하리(下里) · 상리(上里) · 세곡리(細谷里)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각 동리마다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해동지도』와 『동여도』에는 군동면과 이남면(利南面)이, 『1872년지방지도』에는 군동면과 이남면(伊南面)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남면의 표기는 '이(利)'가 '이(伊)'로 변경되어 선호하는 한자로의 음차 표기 경향이 발견된다. 구한말에는 군동면과 이남이소면 지역이었다. 『신구대조』에는 군동면의 13개 리와 이남이소면의 6개 리를 통합하여 동이면이라 명명하고 10개 리로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910년 이소면의 일부가 되었다가,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동면(郡東面)과 이남이소면(伊南二所面)이 합하여 군동면의 동(東)과 이남이소면의 이(二)를 따서 지금의 명칭이 되었다.
-1949년 수북리가 옥천읍으로 편입된 뒤,
-1973년 우산리를 편입해 오늘에 이른다.
지명은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기존의 군동면(郡東面)과 이남이소면(伊南二所面)의 한 자씩을 취하여 만든 지명이다.
동부 지역은 해발고도 5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나, 서쪽 지역은 해발고도 100m 이내의 낮은 평지가 옥천까지 이어져 옥천분지의 일부를 이룬다. 또 북동쪽의 면계를 따라 흐르는 금강이 산악지대의 협곡을 휘돌아 경지는 빈약한 편이지만, 하안(河岸)의 계곡은 명승지로 꼽힌다. 서부 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관개가 편리하여 쌀·보리 등 주곡농업이 발달하였으며, 인접한 옥천읍과 대전광역시의 근교적 입지를 이용해 포도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공업은 활발하지 않으나, 옥천군 내에서는 비교적 많은 업체가 들어서 있는데, 특히 동이농공단지에는 27개의 기계·자동차부품·식료품 등의 소규모 업체가 들어서 있다.
면의 서부에는 보은과 충청남도 금산을 연결하는 4번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옥천읍과 영동읍을 연결하고, 남단부에는 면 중앙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그 밖에 향토요리로 피라미를 조린 도리뱅뱅이가 유명하다.
문화재로 옥천 지석묘(沃川支石墓:충북유형문화재 10), 석탄리 지석묘인 옥천 석탄리 입석(충북유형문화재 156), 사서공(전식) 영정(충북유형문화재 171), 청마리 탑신제당의 옥천 청마리 제신탑(靑馬里祭神塔:충북민속자료 1), 옥천 양신정(養神亭:충북기념물 29), 이기윤 망북비(李箕允望北碑:충북문화재자료 15)과 석탄리(石灘里) 고인돌 및 고분, 김상기(金相基) 효자문 등이 있다. 또 관내에 금강유원지가 있다.
현재 평산리 · 세산리 · 적하리 · 금암리 · 조령리 · 청마리 · 석탄리 등 10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면 소재지는 평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