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어제 아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이 된 것인데요..
계속해서 이 소식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보도국 이상도 기자와 함께 추가로 들어온 내용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상도 기자
1) 염수정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 발표 소식부터 정리해 볼까요?
- 네, 말씀하신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지시각으로 어제 낮..우리 시각으로는 어제 밤 성 베드로광장에서 삼종기도를 바친 직후 염수정 대주교를 비롯한 19명의 새 추기경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1943년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올해 71세인 염수정 추기경은 70년 사제로 수품된 뒤 서울대교구 불광동 성당과 당산동 성당 보좌로 사목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소신학교인 성신고등학교 교사와 이태원성당, 장위동과 영등포동 성당 주임을 지낸 뒤 87년부터 92년까지 가톨릭대 성신교정 사무처장을, 92년부터는 서울대교구청 사무처장을 역임하다 지난 2002년 주교로 수품됐습니다.
이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로 김수환.정진석 두 추기경을 보좌하다 지난 2012년 교구장직에서 물러난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이어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습니다.
온화한 성품의 염 추기경은 지난해 초 10여년 만에 사제 전체모임을 열어 일선 사제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등 소통과 화합을 중시하는 사목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염 추기경의 추기경 서임식은 다음달 22일 바티칸 현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거행됩니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고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세 번째 추기경을 배출하게 됐습니다.
2) 염수정 추기경은 어떤 분인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 염수정 추기경은 1943년 경기도 안성에서 아버지 염한진(갈리스도, 1908~1983)과 어머니 백금월(수산나, 1908~1995) 사이에서 5남 3녀 중 여섯째(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염수정 추기경 집안이 천주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교회 초기 무렵 신앙을 받아들인 파주(坡州) 염씨 15세손 의암공 염덕순(요셉, 1768~1827)공 때부터로 염덕순공은 염 대주교 5대조입니다.
염수정 추기경 부친은 아버지인 염재원 요한 때부터 경기도 안성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진천을 떠나 안성으로 이사를 간 것은 가족이 늘면서 옹기를 구울 점토가 부족했을 것이라는 추측이고 염 추기경 고향이 안성인 것도 이 때문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어머니 백 여사는 염수정 추기경을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면 사제가, 딸이면 수녀가 되도록 성모님께 바치겠다`고 남몰래 기도해왔다고 합니다.
백 여사의 정성 어린 기도는 염 추기경이 사제품을 받은 1970년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막내 염수의 신부가 1981년 사제품을 받던 그날 저녁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비로소 "세 아들이 모두 사제가 되기를 기도해왔다"고 밝혔습니다.
3) 염수정 추기경 집안에는 사제가 많죠?
- 염수정 추기경은 염씨 일가 가운데 첫 번째 사제입니다. 동생 염수완ㆍ염수의 신부도 사제가 됨으로써 그의 가문은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삼형제 사제`를 낸 성소 못자리가 됐습니다.
친척으로는 김순진(서울대교구, 1992년 수품)ㆍ염동규(살레시오회, 1992년 수품) 신부가 있고, 손자뻘로는 염영섭(예수회, 1997년 수품) 신부가 있습니다.
염수정 추기경 가족은 "주교님은 일생을 `사제`라는 외길을 걸어온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4) 염수정 추기경은 기도하는 사제로 유명하시죠?
- 후배 신부들을 만나면 "부족한 사람이 주교가 돼 하느님께 송구스럽다"면서 늘 기도 속에서 하느님 도우심을 청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염추기경의 둘도 없는 장점은 친화력입니다.
주교이지만 최창화(교구 특수사목담당 교구장 대리) 몬시뇰 등 동기 사제들과 여전히 격의 없이 어울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합니다.
신학생 시절부터 축구를 무척 좋아했고, 수영과 테니스ㆍ스키에도 일가견이 있습니다. 사제가 된 뒤에도 등산과 테니스 등을 즐겼습니다.
5)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염수정 추기경의 업적이라면 무엇일까요?
- 한국 최대 순교성지인 서울 서소문순교성지의 역사문화공원 조성 사업입니다.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중구 의주로 서소문순교성지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주례로 순교자 현양미사가 봉헌됐습니다.
염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한국교회의 특별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서소문순교성지의 품격을 높이는 데 힘을 모으자"면서 "신앙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순교성인을 더욱 기리기 위해 성인 한 분 한 분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어 전하는 데에도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6. 3번째 추기경이 탄생한 서울대교구는 어떤 곳입니까?
- 교회법적으로는 서울대교구도 여느 교구와 마찬가지로 전국 16개 교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서울대교구를 그렇게 보는 이는 없습니다.
수도(首都) 교구로서 한국교회 모든 교구를 분가시킨 맏형일 뿐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여타 교구와 비교가 되지 않는데요..서울대교구는 한국교회를 상징하는 얼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초창기 한국교회사는 곧 서울대교구사입니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된 한국교회에 처음으로 교구가 설정된 것은 1831년으로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조선대목구(지금의 서울대교구)를 설정하고, 조선에서의 전교와 사목을 파리외방전교회에 맡겼다. 초대 교구장은 브뤼기에르 주교였습니다.
서울대교구는 1942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주교가 된 노기남 주교가 제10대 교구장에 오르면서 파리외방전교회에서 독립했습니다. 이전 교구장은 모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주교였다.
서울대교구는 1962년 한국교회 교계제도가 설정되면서 대구ㆍ광주대교구와 함께 3개 관구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 분가했던 기존 춘천ㆍ인천ㆍ대전ㆍ평양ㆍ함흥교구가 이때 서울관구에 소속됐고, 이후 서울대교구에서 분가한 수원(1963년)ㆍ원주(1965년 춘천교구에서 분리)ㆍ의정부교구(2004년)도 차례로 서울관구에 속하게 됐습니다.
서울대교구는 모진 박해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신앙 선조의 피땀으로 말미암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1945년 해방 당시 신자 수가 65,795명이었던 서울대교구는 한국전쟁 이후 신자 수가 급증했으며, 1970년대의 어두운 시대에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면서 급성장했습니다.
서울대교구의 현황을 살펴보면, 관할 지역은 서울특별시 전역과 황해도 전 지역으로 면적은 17,053.41㎢입니다.
1969년에는 제12대 교구장 김수환 대주교가 한국교회 첫 추기경에 임명되는 영예를 안았고 13대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2006년 두 번째 추기경에 올랐습니다.
이어 이번에 염수정 대주교가 추기경에 임명됨으로써 서울대교구는 3번째 추기경이 탄생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