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고구려 지방관 파견 시기와 관련하여 질문 드리고자 글을 올렸습니다.
수업을 듣고 3세기 봉상왕 대에 부체제 극복의 일환으로 지방관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비상 역사2 p25에서는 “2세기 고국천왕 시기에는 수도와 지방을 각각 5부로 나누었고,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여 행정과 군사 업무를 처리하였다”고 나와 있어 제가 이해한 내용과 혼동이 생겨 어느 내용이 맞는 것인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그 부분도 설이긴 합니다. 고국천왕 진대법 관련 기록에 보면 다음의 기사가 전합니다. "서울과 지방의 해당 관청에 명하여 홀아비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 늙고 병들고 가난하여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자들을 찾아 구휼하게 하였다. (중략)" <-- 지방의 관청이라는 부분을 보고 지방관의 파견으로 보기도 합니다.
다만 한국고대사 2권 143쪽 등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고구려는 3세기 후반에 종속 집단을 해체하고, 그들 지역을 지방 통치 구역인 성이나 곡으로 편제해 직접 지배를 실현했다. 이때 중앙 정부는 성이나 곡으로 편제한 지역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수(또는 수사)나 재를 파견했다.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부체제 극복은 3세기 말로 설명합니다. ^^;;시민의 한국사 1권 111쪽도 비슷한 뉘앙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구려는 3세기 후반 이래 각지에 성곽을 축조하고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성곽을 중심으로 한 지방제도를 갖췄다."
해당 부분들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