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내 고향에서 진천 이야기가 나온다.
생거진천은 진천이 살기 좋고, 사람도 착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孝婦 孝子가 많다.
국가대표 훈련장이 있으니 알만하지 안은가.
고은 선생은 언젠가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작품 중에 대표작 한 편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노시인은 선뜻 시 ‘자작나무숲으로 가서’를 꼽았다. 이 시는 시집 <조국의 별>(창비)에 실려 있다.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지나온 삶의 길을 돌아보며 전환기적인 각성을 하게 되는 자아가 등장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 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는 유명한 구절이 시의 뼈대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광혜원이 어디인가 했는데 충북 진천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이정표에서 그 이름을 만났다.
1939년 초 백석은 수필 ‘입춘’에서 이렇게 썼다.
“이번 겨울은 소대한 추위를 모두 천안 삼거리 마른 능수버들 아래 맞았다. 일이 있어 충청도 진천으로 가던 날에 모두 소대한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두 번째로 장가를 들기 위해 진천을 몇 번 찾았다.
이 무렵은 서울 청진동에서 자야와 동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진천의 어떤 집 규수와 혼인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게 없다.
KAPF 출신인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가 진천 출생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조명희의 생가가 있었던 자리에 조명희문학관이 세워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늦었지만 참 다행이다.
사람 살기 좋은 땅이라는 ‘생거진천’에 문화적인 조명을 더하는 건 무엇보다 좋은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