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학도병의 일기
이우근 (1950년 8월10일 쾌청)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린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壽衣)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학도병 이우근의 수첩에서-
|
첫댓글 잘읽고갑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