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치프의 소식을 전해들은 일행은 식당에서 삼겹살을 녹이기 시작했다. 냉동실에서 꺼낸 삼겹살 봉지는 꽤나 크고 묵직했다. 못 해도 12인분은 되는 것 같았다.
바닥에 언 삼겹살을 내려놓은 다섯 남녀는 빙 둘러앉아 논의를 하기에 이른다.
“오븐에다 녹이면 되려나?”
“시간 조절 적당히 잘 해야지. 안 그러면 구워질 거예요, 라이아 마마. 구워지면 간장에 못 절여요.”
“그렇겠지?”
오스카의 대꾸에 홀랑 넘어가는 라이아다.
“얼어 있는 놈을 녹이는…….”
뭔가를 느꼈을까.
신은 말을 하다 말고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리더니, 휙 식당을 나가버렸다.
“뭐가 오네요?”
칼리프도 느꼈다. 이윽고 일행은 열린 창문 너머로, 신의 어깨에 앉는 갈매기를 볼 수 있었다.
갈매기 배달부는 신이 편지를 빼어내기 무섭게 후다닥 날개를 펼쳤다. 그 모습을 본 신은 얼른 변신을 시도했고, 여의주를 목에 달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꼬리로 갈매기의 발목을 후려잡았다.
「어딜 가나.」
갈매기를 향해 신이 말했으나, 용의 모습으로 내뱉은 말인지라 아무도 알아듣지 못 한 게 문제다.
갈매기 배달부는 자신을 낚아챈 신을 향해 번개 같은 시선을 날렸으나, 소용없었다. 금방 풀 죽은 갈매기는 날개를 접었고, 씨익 웃은 신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편지를 줬으면 답장을 받아가야 할 거 아냐.”
손으로는 편지를 풀고, 눈은 어깨의 갈매기에 가 있던 신. 그는 연보라색 눈으로 편지를 모두 읽은 뒤 계단을 내려갔다. 자신의 침실로 들어온 신은 책상 위의 펜을 들어 편지지에 답을 적었다. 그리고 갈매기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
“됐다. 가거라.”
갈매기 배달부는 계단을 통해 배를 빠져나와 하늘을 날았다. 돌아가는 것이다.
식당으로 돌아온 신은 바닥에 뭔가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윙- 소리를 뿜고 있는 오븐을 봤다.
“몇 분 돌리는 것인가.”
“일단 2분 돌리고 있어요. 적당히 녹으면 그냥 두려고요.”
치프의 답이다. 이어 오스카가 물었다.
“무슨 편지에요?”
“레이더다. 카인 녀석에게 뭔 일 있나 해서 편지를 보냈더군. 있는 그대로 써서 보냈다. 감기기운 있다고 했나, 치프?”
“예.”
“음. 그렇게 보냈으니 됐겠지.”
심드렁한 대꾸를 한 신은 오븐을 바라봤다.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오븐 안에선 삼겹살이 녹고 있다.
칼리프와 라이아는 양념장 하느라 바쁘다.
◆ ◆ ◆
포르트의 다음 대륙 훼멘더.
“왔군.”
돌아온 갈매기 배달부의 편지를 빼낸 레이더는 편지를 펼쳐 답을 읽었다.
『아쿠아리버 호 일동.
혹시 함장에게 무슨 일 있어? 밤새 이상한 꿈을 꿔서 그런다. 읽는 즉시 너희 전원 무사한지를 알려다오. 그리고 지금이 어디쯤인지도.
-레이더가.
신이다. 답을 하겠다.
첫째, 전원 무사하다.
둘째, 카인에 대한 걸 설명하겠다.
일전에 넨갈에서 웬 산적패거리를 만났었는데, 산적 패거리를 이끄는 산장의 딸이 몸이 안 좋더군. 그래서 우리 쪽에서 치료를 담당했는데, 아이가 카인을 보고 한 눈에 반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상사병에 걸렸던 거지.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엄마라는 작자가 나타나서는, 결혼시키려고 카인을 데려가려고 했는데, 카인이 자신은 애인이 있는 몸이라며 살벌하게 거절했다. 하필 그 때 세발낙지 놈들이 배에 들러붙어 있는 통에 배가 기울어졌고, 중심을 잃은 몇 몇이 선미로 미끄러졌었다.
그 중에는 다이아도 있었고, 녀석이 언니랑 나랑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끼어들었지. 그걸 무시당했다고 여긴 안대한 아이 엄마가, 다이아를 향해 도를 휘둘렀었다. 바다에 떨어질 위기에 처한 다이아를 본 카인이 급히 그녀를 구하기에 나섰고, 이어 공중비행을 하이브에 놓고 왔는지 그대로 바다에 빠졌다.
치프가 녀석을 구조했지만 2시간이나 빠져 있던 탓에 감기기운이 있어 앓아누웠다. 그리고 지금은 포르트를 향해 가고 있으며, 앞으로 한 23일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다.』
답장을 모두 읽은 레이더는 편지를 접으며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여관으로 향했다. 대기 중인 부하들과 선원들을 모두 일으킨 그는 다시 출항을 알린다.
“출항하자! 아. 덴헤이, 포르트의 <피라델피아>에서 축제가 있는 게 언제지?”
“모레로 알고 있습니다. 유학 갔던 두 왕자가 내일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국연회를 모레 여는 거지요. 축제는 한 사흘 동안 벌어진다고 하고, 가면무도회도 있다고 하네요.”
“으흠. <피라델피아>라면, 포워드와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아는데.”
선장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있던 정보를 꺼낸다.
“예. 두 왕세자 마마의 호위부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포워드 소령 휘하의 군대니까요. 7년 전 다른 대륙에서 온 도적떼에 의해, 왕비마마가 죽을 고비를 맞이했다가 살아나신 것도, 포워드 소령이 도우셨기 때문이지요.”
“그럼 초대를 받겠군?”
“예. 아!”
“음?”
“그 초대장, 우리도 있습니다.”
따악!
덴헤이의 뒤늦은 초대장을 꺼내는 모습에, 레이더는 꿀밤으로 대응했다.
“아파요, 선장!”
“아프라고 때린 거다. 받은 즉각 줬어야지, 이 멍충아!(오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깜박했습니다.”
“그럼 아쿠아리버 호에도 갈 텐데? 포워드의 아들래미가 있으니까.”
“아마도요.”
“이틀 후면 축제가 시작되는데 아쿠아리버 호는 아직 멀었단 말이지. 얼른 가자. 끌어서라도 데려와야지.”
“예! 얘들아~ 출항 준비하러 가자!”
“예, 부관!”
레이더가 이끄는 스플린터 해적단은 훼멘더를 나왔다. 목적지는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아쿠아리버 호.
스플린터 해적선이 아쿠아리버 호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 동안 카인 일행은 아침을 먹은 뒤, 또 한 마리의 갈매기 배달부를 맞이했다. 레이더가 예상한대로 포르트의 <피라델피아> 라는 나라에서 온 초대장이다.
갈매기가 가려고 하자 신은 이번에도 변신을 해서 붙잡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간덩이가 부었는지 어쨌는지, 부리로 신의 꼬리 부근을 쿡쿡 찔러 타격을 준 뒤 빠져나갔다.
몸이 너무 긴 이유로 속절없이 당해버린 신은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복수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게, 갈매기가 다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다.
“아쿠아리버 호 귀하 여러분께. 귀하? 그럼 우리가 레이더 귀하와 동급이라는 건가?”
“…….”
치프의 썰렁한 말장난에 반응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라에서 온 편지인 만큼 무슨 의뢰이겠거니~ 하고, 다들 긴장한 탓이다.
때문에 치프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어험. 저는 피라델피아 왕국의 수도, <에란제>에서 대신을 하고 있는 ‘죤 타빌’ 이라고 합니다. 오는 3월 14일부터 사흘 동안 대축제가 있습니다. 그 축제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특히 함장이신 카인님께서는 ‘꼭’ 오시기 바랍니다. 아버님도 초대를 해두었습니다. 유학을 떠나셨던 두 왕세자 마마께서 돌아오시는 날이 내일, 13일입니다. 모두 오셔서 귀국을 축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되어 있는데?”
치프의 편지 읽기가 끝나자 신이 대뜸 한 마디 한다.
“혹시 가짜 아닌가? 우리를 꾀어내기 위한.”
오스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응한다.
“그런데 많이 당해봤나 보죠, 신 저하?”
“신의 말은 앞뒤가 안 맞아. 우리를 꾀어내기 위한 작전이라면 본명을 쓰지 않지.”
카인까지 고개를 젓자, 신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을 얼굴 한 가득 지었다.
“어떻게 할 거야? 난 갈 거야. 왕녀니까, 왕궁의 축제에 빠질 수 없지! 다이아도 그렇지?”
혹시나 몰라서 동생을 끌어들이는 라이아다. 동생이 바다에 빠질 위기에 처하자, 기사처럼 나선 카인이다. 쌍둥이 동생이 간다고 하면 그도 간다고 하리라.
작은 꼼수가 섞인 라이아의 물귀신 작전이다.
“응! 여태껏 왕국의 축제는, 한 번도 못 가봤어. 고향인 에페루스에서도.”
“축제를 한 번도 안 했어?”
“언니가 없어져서 나라 전체가 어두운데 축제를 어떻게 해. 추수감사축제조차도 안 했어. 모르지, 올해는 할지.”
“그랬구나. 괜히 미안하네.”
“안 그래도 돼, 언니. 이젠 괜찮아.”
동생의 밝은 미소에 라이아도 그제야 웃었다.
옆에서 자매의 미소를 보던 카인도 결단을 내린다.
“그럼 가기로 하자. 하지만 오늘이 12일이니까 서둘러야 하는데-.”
일행 모두의 시선이 신에게로 쏠렸다. 지금은 신의 콧김을 받아 날아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 벌써 두 번의 변신을 해버린 신이다. 아침을 갈비 ㅡ삼겹살이 간장으로 몸을 씻은ㅡ로 먹었다고 해도 조금은 무리가 따른다.
신은 고개를 얼른 저었다. 카인은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알았어요. 그럼 어쩌지?”
“뭐가 오는데요, 카인 형?”
오스카의 말에 모두는 배의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홍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그려진 돛대와 깃발. 어디서 보던 것들이다.
일곱 남녀가 동시에 입을 연다.
“레이더 귀하?”
스플린터 해적단이 아쿠아리버 호 앞에 섰다. 칼리프가 얼른 닻을 내려서 배끼리 박는 것만은 막았다.
레이더는 공중비행을 이용해서 아쿠아리버 호로 내려왔다.
“오, 카인! 몸은 좀 괜찮니?”
“네, 멀쩡해요. 아, 귀하. 포르트까지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포르트의 왕국인 피라델피아에서 축제를 한다는데, 신 저하는 피곤해서 변신을 못 하겠대요.”
“오~ 초대장을 받았구나?”
“예.”
일행의 대답을 들은 레이더는 자기 배를 향해 돌아서서, 손짓을 했다. 선미로 건너와 있던 덴헤이가 밧줄을 던졌다. 내려온 밧줄을 받은 레이더는 그것을 레몬의 선수상 아래에 잘 묶었다.
그것을 본 치프가 막 물으려고 하는데 레이더가 선수를 친다.
“그러고 보니 레몬이 안 보인다?”
“편지랑 사진이랑 배달하러 갔어요. 하류의 에페루스로 가서, 꽤 걸려요.”
“그렇구나.”
“근데 귀하, 뭐하는 거예요?”
“보다시피 앞에서 끌려고 그러지! 여기서 포르트까지, 우리 배로 4시간이면 가거든. 안 올라갈래?”
“그냥 여기 있을래요.”
그건 칼리프만의 생각이다. 다른 일행은 모조리 레이더의 배에 올라가 있다.
“이건 배신이야!”
어딜 봐서?
씩씩대던 칼리프는 올라가기 전에 닻을 먼저 끌어올렸다. 출항하는데 내려두면 움직이지 않을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레이더의 배가 움직였다. 순풍에 돛이 5개라서 엄청난 속도지만, 정작 카인 일행의 표정은 별로다.
“너희 왜 그래? 세 분의 마마, 무슨 문제라도?”
“느리다. 물론 우리 배보다는 100배 빠르지만.”
“신의 콧김보다도 못 하잖아, 레이더.”
신과 라이아의 퉁명스러운 어조는 레이더의 표정을 이상하게 바꿔 놨다.
“그냥 그러네요.”
“…….”
바람에 휘날리는 금발머리를 간신히 묶은 다이아의 짧은 말은, 레이더에게는 결정타로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