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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季煥과 세상걷기(海外) 스크랩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폼페이
5/공석환 추천 0 조회 34 09.09.16 01:5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폼페이 중앙광장에 있는 아폴론 신의 조상

 

 

이번 유럽여행에서 가장 관심이 많은 곳중의 하나가 폼페이이다.  폼페이는 기원적 10세기에 시작되어 육로와 해상무역의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로마의 위성도시로 귀족들의 휴양지로 사용되어 번성하였을 때 인구가 2-5만(휴양지라 유동인구가 많아 일정치 않았다고 한다)이었다. 그러나  서기 79년에 부근 베스비우스 화산이 큰 폭발을 일으킨 결과로 화산재에 매몰되었다.

 

폼페이 발굴은 16세기에 우연히 수로공사중에 유적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1748년부터 본격적인 발굴로 광장, 원형극장,유적지등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3분의 2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번 방문에서 아직도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폼페이의 비극은 후세인들에게는 축복이다 라고 괴테가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약 2000년전의 도시가 화산재의 매몰에 의해 원형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과거를 타임머신을 타고 보러 가는 느낌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입구에서 본 폼페이 시의 모습이다. 기대를 가지게 한다.

 

 

 

지금은 폼페이가 상당히 육지로 들어가 있었지만 화산 매몰 당시에는 바다에 접한 항구도시였다고 한다.위에 보이는 경사로가 당시 바다 부두에서 시로 연결하는 도로였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 본 도로에서 다시 위를 향하여 찍은 사진이다. 시내 중심부 신전의 기둥이 보인다.

 

 

 

 

폼페이의 길은 옆에 사람이 걷는 길과 가운데 마차가 다니는 길이 분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보면 인도와 차도가 분리된 것이다.

 

 

 

드디어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시의 중심으로 신전, 관공서 등이 위치한 곳이다.

 

 

 

화산재의 무게에 의해 제우스 신전의 천장은 다 무너지고 기둥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당당한 기둥에서 옛 신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중앙광장에서 다른 방향으로 본 모습이다. 위 기둥만이 남아 있는 곳이 장터라고 한다. 예전 이 광장에서 무슨 일을 하였을가는 상상만 해 본다.

 

 

 

폼페이에 오기전에 화산 폭발시 남아 있다가 희생된 사람들(약 2000명 정도로 추산한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은 나폴리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폼페이에도 박물관을 세위 출토된 유적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탈리아가 하는 것이 느려 박물관의 건립이 계속 미루어 지고 있다고 그런다.

 

우리나라 같으면 관광객의 유치를 위해 계획한 후 1년내라도 건설할 텐데, 그런데 출토된 물건을 임시로 보관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관리가 엉성하였다. 그 선반 중간에 당시 희생된 사람의 모습이 일부 보인다.

 

그런데 위 모습이 실제 사체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화산재 구멍안에 남아 있는 구멍에 석고를 부어 당시 모습을 복제한 것이라는 것이다. 즉 화산재 안에 사체는 이미 다 부식되어 없는 것이다. 

 

 

 

이쪽에는 신전의 기둥의 일부가 보인다. 그 화려한 장식문양이 눈에 띈다. 제대로 전시하면 엄청 멋있어 보일 것이다.

 

 

 

광장을 지나 다른 길을 내려가다 보니 마실 수 있는 물 수도꼭지가 보인다. 폼페이 당시에 사용된 샘물을 아직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물을 계속 흘려 내 보냈는데 지금은 물을 아끼기 위해 수도꼭지를 끼웠다고 한다.  부조에 새겨진 눈이 나를 쳐다 보는 느낌이다.

 

 

 

.다른 식수전에서 관광객이 입을 막고 있는 모습이다. 물이 계속 나와야 시원할텐데 부조의 모습이 답답함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물을 수도관으로 연결하였다. 위 사진에 나타난 관이 상수도관이다.

 

 

 

 

위 모습을 보고 짐작할 수 있듯이 빨래터이다.

 

 

 

버려지는 물도 깨끗하게 처리하기 위한 하수시설이 되어 있다. 위 보이는 것이 하수시설에 연결된 하수구멍이다. 2000년전에 상하수도가 다 갖추어진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것이 대단하다.

 

폼페이를 오기전에 나폴리 외곽을 지나는데 지금 쓰레기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의 이탈리아 남부가 2000년전 로마 시대의 도시만도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폼페이는 향락의 도시라고 한다. 당시 로마 상류층이 놀러 와서 지낸 유곽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이들도 동반하여 온 가족여행이라 유곽 구경은 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바닥에도 남아 있는 자취가 있었다. 길 바닥에 남겨진 버섯 모양이 남근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남근 방향으로 가면 유곽이라고 한다.

 

 

 

 

 

 

 이 부뚜막처럼 보이는 곳이 당시 바였다고 한다. 즉석으로 요리를 하면서 술을 팔았나 보다. 

 

 

 

주위의 집들을 들여다 보니 당시 채색된 벽화가 보인다. 보존을 위하여 아크릴 판을 붙여 놓았다.

 

 

다른 집의 벽에 화려한 채색과 문양이 보인다. 

 

 

 

 

 위 사진에서 보이듯이 폼페이는 아직도 발굴 정리 작업중이다.

 

 

 

 

과거 로마 여신을 모신 신전도 보인다.

 

 

 

그런데 신전에 모셨던 신상들은 아직도 한쪽에 임시로 보관하고 제자리를 찾아 정리를 하지 못하였다.

 

 

위 문으로 폼페이를 빠져 나왔다. 저 문의 이름이 아테네문이라고 한 것 같다.

 

 

 

 

위 문을 빠져나오고 나서 묘지를 보았다. 위와 같이 아치형으로 만든 묘지는 권력이 있는 사람의 묘지라고 한다.

 

 

 

 

 

폼페이를 구경하고 부근에서 해물 스파게티로 점심을 하였다. 식사 도중 한 사람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물론 팁을 기대하는 것으로 공짜는 없다.

 

 

 

 

폼페이역에 도달하였다. '폼페이 스카비' 라는 푯말이 붙어 있어다. 기차의 외면은 말이 아니었는데 내부는 비교적 깨끗하였다. 이제 위  완행열차를 타고 20분을 가면 소렌토가 나온다.

 

폼페이는 저주받은 도시라고도 한다. 평화롭고 풍요하게 살다가 화산 폭발로 일시에 매몰되어 사라진 도시이다. 그러나 그러한 저주는 후세들에게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있는 기회를 주었다.

 

실제 보고난 느낌은 로마시대의 생활수준이 대단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이탈리아 남부의 생활 수준보다 더 높았던 것 같다. 시간이 단순히 지난다고 문화 수준이 높아 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노력과 혁신이 있어야만 더 나아지는 것이다. 폼페이를 직접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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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9.16 01:55

    첫댓글 폼페이를 보면서 2000년전에 그렇게 문명스러운 도시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과 동행하여 그런지 가이드가 유곽을 안내하지 않았는데 찾아 본 사진에 의하면 대단하더라. 친구들이 나중에 가면 꼭 유곽도 들려 보아라. 다만 지금 그 곳에 아가씨는 없으니 기대하지 말아라.

  • 09.09.16 14:32

    석환이는 예나 지금....여전히 아가씨를 밝히는구나.ㅎㅎㅎㅎ 아가씨가 없으면 어떠리! 데리고 가면 되지롱^L~

  • 09.09.18 13:20

    2000년전 도시가 화산폭팔 덕분으로 온존히 보전되었구나. 당시의 비극이 현세에 축복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라 할까? 스페인도 그렇고 이태리도 국민성이 조급함이 없다. 그런면에서 실체를 보다 더 잘 보전할수 있는 장점도 있지. 우리같으면 무리해서 발굴.관광사업 벌리려다 헐리우드 세트로 전락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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