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 앵커리지
알래스카 앵커리지 미드타운을 한 눈에 모두 알아 볼 수 있을 항공 사진들을
위주로 포스팅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여행 할 지역을 한 눈에 찾아봐도 잘 나타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오늘 앵커리지 미드타운 전경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대한 도시 설명도 같이 곁들이고, 역사 이야기도
함께 합니다.
촬영 지점은 미드타운 중앙지점인 도서관이 있는 오리공원에서 촬영을 했으며
실시간 사진과 영상을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는 앵커리지 미드타운 중앙에 위치한 일명 오리공원이라는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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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인구중 약 40%가 거주하는 앵커리지에는 30만명이 거주하는 알래스카 최대의 도시이지만 인구밀도는 상당히 낮습니다.
저 멀리 쿡인렛 바다가 인접하고 있는 항구도시이기도 합니다.
앵커리지와 페어뱅스는 군사도시이기도 한데 육군과 공군부대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군인에게는 다양한 할인 혜택이 주어집니다.
알래스카에는 미사일 기지와 말도 많고 탈 많은 사드 기지가 함께 있는데 사드의
주요 목적은 미국의 본토를 방어하기 위함입니다.
앵커리지에는 국제공항이 있는데 항공의 허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비행기와 페덱스 화물기등 기름 주입을 위해 머무는 곳이기도 하며 , 한국의 대한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기도 여기서 급유를 하며 화물기 직항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앵커리지는 미국 city Award 를 네차례나 수상한 경력이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1912년 미국 영토가 되기전 1888년 지금 스워드 하이웨이 부근에서 많은 양의 금맥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알래스카 전역에서 발견되는 금맥은 엄청난데 그 이유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막대한 금과 보석들이 알래스카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Anchorage 라는 이름은 아주 우습게 탄생이 되었는데 미국 본토에서 알래스카에 화물을 보낼때 이 곳에 항구가 있어 그냥 항구라는 의미의 단어인 Anchorage 라고 화물에 써서 보내고는 했는데 자연히 그 이름으로 도시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이름을 변경하고자 했지만,주민 투표에 의해 그냥 앵커리지로 1920년
11월 23일 정식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1914년에는 항구가 재정비되고 막대한 자원을 실어 나르기 위한 철도가 생기면서 앵커리지는 텐트로 만들어진 도시로 규모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2차대전이 한창인 1930년대와 1950년대에는 군사 거점으로서 역활이 점차 커지면서 군대 규모가 점차 늘어가며 확장을 하여 지금의 군사기지가 건설이 되었습니다.
1940년대에 지금의 공군기지가 설립이 되었으며, 2차대전중 비행기를 제작하지 못하는 연합군 구 소련에게 미 본토에서 전투기를 제작해 이 곳 알래스카에 가져다
놓으면 , 구 소련 조종사들이 와서 다시 비행기를 가져가는 정거장 역활을 한 곳이 바로 알래스카입니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1968년 북극해인 프로드베이에서 엄청난 유전이 발견이 되어 발데즈까지 송유관을 통해 미 본토로 실어 나르는 획기적인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자 , 알래스카에서 돈을 벌기는 너무나 쉬운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말 이때는 알래스카 개들도 달러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풍요로운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골드러쉬와 함께 도래한 오일붐은 알래스카를 황금의 땅으로 불리울 정도로 누구에게나 기회의 땅으로 불리워졌습니다.
알래스카의 주도는 Juneau 인데 주도에 있는 주립 공무원 숫자보다 앵커리지에 있는 주립 공무원 숫자가 두배나 더 많습니다.
그만큼 인구가 밀집 되어 있는 주립 공무원 빌딩들이 앵커리지에 더 많기도 합니다.
주립 공무원이 늘어나고 인구가 집중되자 주도를 주노에서 앵커리지나 와실라 혹은, 그 이웃도시로 이전 하자는 운동들이 활발하게 펼쳐졌습니다.
알래스카의 주도를 와실라로 옮기고자 채권을 발행 하는등 주도 이전 캠페인이 활발해지자, 많은 이들이 와실라에땅 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캠페인이 실패하자 빛을 내어 땅을 사들인 많은 한인들은 결국, 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도 인증샷 한장 올립니다.
알래스카는 한국의 15배의 면적입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을 다 가보지 못하는 것처럼 알래스카에서 살면서 이웃 마을을 가 보는 이들은 불과 몇 명 안 될 정도로 광활한 도시입니다.
특히, 워낙 거리가 멀다 보니 비행기로만 가야 하는 곳들이 많은데 그 경비도 만만치 않아 자비를 들여 다른 마을을 간다는 게 결코, 쉽지 많은 않습니다.
그래서, 저 만큼이나 많은 원주민 마을을 가 본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건 자랑을 해도 될 것 같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