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숙 샘 경수중학교에서 부탁한 글 여기도 올립니다. 이렇게 쓰는 게 맞을런가 모르겠네요.
마법을 꿈꾸는 책읽어주기
안산동화읽는어른모임 조행순
“싱글 싱글 싱글 싱글 벙글 벙글 벙글 벙글 옆 사람과 인사해요.
싱글 싱글 싱글 싱글 벙글 벙글 벙글 벙글 우리 모두 인사해요.”
매 주 금요일 아침, 푸른반 창 틈새로 흥에 겨운 노랫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 노래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노래에 맞춰 손을 흔들며 우리와 눈을 맞춘다. 호기심 가득한 눈, 반가움이 가득 담긴 눈, 장난기 어린 눈,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눈을 보며 왠지 가슴이 울렁거리는 걸 느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며칠을 고민하며 고른 책을 ‘아이들이 좋아해 줄까’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여전히 밝고 즐거운 표정이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성주도 이름을 불러주고 잘 지냈냐고 물으면 잠시나마 미소를 지어 보인다. 언제나 제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기범이다.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쁘다. 늘 진지하고 듬직한 순형이. 뒷자리에 든든하게 앉아 편안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장난꾸러기 청개구리 동혁이. 하지만 늘 속마음을 들키고 만다. 칭찬 한마디에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아이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이 터져버리는 현주, 그리고 푸른반의 마스코트 수진이,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제일 열심히 듣는 효진이. 책을 가까이에서 보여줄 수 없어 늘 안타깝다. 그리고 게임과 괴물을 좋아하는 요한이, 늘 병원에 다녀오느라 마지막에 잠깐 만나는 정도. 모두 예쁘고 사랑스런 아이들이다.
“얘들아, 오늘 선생님이 우리 친구들에게 제일 먼저 들려줄 이야기는 보름달 음악대라는 이야기예요.”
책을 펼쳐 그림을 보여준다. 괴물들이 나오자 관심을 보인다.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소리에 강약을 주어 관심을 끌어야 한다. 달부인의 목소리는 좀 더 힘을 주어 읽어준다. 어느새 흥겨운 보름달 음악대의 연주도 끝이 나고 안나가 잠자리로 돌아온다. 아이들도 안나를 따라 잠들고 싶은 표정이다. 어젯밤 아이들의 꿈속에선 어떤 모험이 펼쳐졌을까?
오늘 처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러 오신 최현정 선생님은 단번에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셨나 보다. “주먹 가위 보, 주먹 가위 보, 무얼 만들까, 무얼 만들까?…….” 흥겨운 노래로 흐트러진 아이들의 눈빛을 모은다. 역시 푸른반 친구들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 듣는 것보다 자기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이런 활동을 좋아한다. 제일 신난 건 기범이와 동혁이다. 아이들이 제 각기 자신만의 ‘주먹 가위 보’를 만들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던 무언가를 표현해 낼 수 있어서일까? 한결 표정이 밝아진다.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하거나 유추해서 이해해야 하는 책보다 되도록 운율과 반복을 느낄 수 있는 책을 골라 읽어준다. 때론 장애 정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어디에 기준을 두고 책을 읽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이해하기 어려워 재미없어 하는 경우도 있고, 너무 수준을 낮춰 지루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반복이 많고 단순한 책을 읽어주더라도 이야기로 풀어 모든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책읽기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사숙고 끝에 오늘 가져 간 또 다른 책은 숨겨진 알파벳을 찾는 책이다. 아이들이 완벽하게 알파벳을 다 알진 못해도 하나라도 아는 글자를 찾아냈을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골랐다. 예상대로 알파벳 순서를 모두 다 아는 친구는 없었지만 자기가 아는 글자를 열심히 찾아 주었다. 이정도면 성공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천천히 그렇게 아이들 마음을 읽어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오늘처럼 아이들이 답을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현정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은 사랑스런 아기 곰 이야기다. 이야기를 다 읽어 주시고 포근한 아기 곰의 털을 아이들 모두 만져보게 해주었다. 그 따뜻함이 전해졌을까?
그리곤 아이들에게 수수께끼를 풀어보라고 하신다. 바로 선생님의 전화번호 맞추기. 열한 개의 숫자를 하나하나 맞힐 때 마다 탄성과 함성이 터져 나온다. 오늘 처음 만난 선생님이지만 놀이를 하다 보니 금세 친해진 것 같다.
아쉽지만 이제 마칠 시간이다.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싱글 싱글 싱글 싱글 벙글 벙글 벙글 벙글 책읽기는 재미있어요 …….”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얘들아, 안녕 다음에 또 만나.” 인사를 마치고 나오며 생각해 보니 어느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지도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러 온 날, 같이 온 심혜숙 선생님과 교문 앞에서 즉흥적으로 지어 부른 이 노래가 그동안 아이들과 우리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그 날 심혜숙 선생님이《똑 같은 건 싫어!》를 읽어주며 아이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 중 어느 동물처럼 되고 싶냐”고 했을 때 효진이는 캥거루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늘 휠체어에 앉아 지내야 하는 효진이의 마음이 읽혀져 갑자기 울컥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바랐다. 책이 마법처럼 내 삶을 지켜주고 위로해 주었듯이 이 아이들에게도 그럴 수 있었으면 하고. 지난 일 년 동안 아이들에게 우리의 책읽어주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 봐야지. “얘들아, 그때까지 잘 지내야 해. 너희들 때문에 정말 행복한 일 년이었어. 고마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경수중책읽어주기.hwp
첫댓글 아이들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웃음이 나네요. 아이들 특징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하셨어요. 정말 그래요. ㅎ
갈때 마다 아이들 한명 한명 다 마음으로 느끼고 오게 되는 것 같아요. 벌써 일년이 다되었군요. 우리들의 책읽어주기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정말 저도 궁금하네요~~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도~
인연이라는 거..시작 하기는 어려워도.. 일단 연결되면 끊이지 않고 나의 삶을 이끌어주는 값진 끈이 되는가 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정말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차오릅니다. 사랑합니다.~^^
벌써 한해를 정리해야 할 때인가요? 아이들 한명 한명의 모습이 스쳐가며 아이들 에게서 일년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아이들 덕분에 행복했던 순간순간에 감사한 맘 가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