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사상의 이해 - 2
2. 밀교의 발전과 전개
밀교는 크게 나눠서 이단계의 흐름으로 분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동북 아세아 즉 중국,한국, 일본에 전파된 밀교로서 [대일경],[금강정경]에 의한 밀교이고, 또 하나의 흐름은 중앙아시아로부터 북 아시아에 걸친 즉 동북인도,티베트,네팔,몽고,만주 등지에 전파된 금강정유가계의 밀교입니다.전자를 전기밀교라하고 후자를 후기밀교라고도 합니다. 또 학자에 따라서는 삼단계로 구분하여, 전술한 잡밀을 초기밀교,이 양부대경의 밀교를 중기밀교, 그리고 타락해버린 좌도밀교를 후기밀교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전기밀교와 후기밀교!
이 두 개의 흐름은 다같은 불교요 밀교이면서도 완잔히 이질적입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만끔이나 다릅니다. 때문에 이 두 흐름을 두 개로 분류하지 않으면 공평을 잃게 됩니다. 왜냐하면 한쪽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쪽은 후기밀교입니다. 이 밀교는 금강정유가 딴뜨라계로서 9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동북인도,티베트 몽고, 만주 등지에 퍼졌다가 사라진 추외한 좌도밀교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전기밀교는 7세기에 생겨난 대일경,금강정경을 쌍륜으로하여 엄격한 교상과 사상을 갖춘 정통밀교로서 칠세기이래 오늘날까지 중국, 한국, 일본에 뿌리 내려온 수승한 최상승의 교입니다. 다행히 후기밀교는 유교문화권인 중국, 한국, 일본에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근자에 우리나라에 이러한 후기밀교를 소개하는 책이 간행 되었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밀교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사회에 갑자기 밀교라는 흥미진진한 외설 좌도밀교 책이 나오고보니 일반대중의 밀교에 대한 인식이 말이 아니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신생 밀교종단의 곤혹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밀교는 우리 동양 삼국의 얘기가 아닙니다.
가. 인도. 티베트의 밀교
초기 석존의 원시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형이상학적 철학이라고 함이 옳을 정도로 종교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일불사상(一佛思想)으로서,지금처럼 여러 불보살도 없었고 삼계 이십오유(三界二十五有)나 극락세계도 없었습니다. 석존의 교설도 오직 율법에 속하는 것으로 [그래서는 안된다][이렇게 하여야만 도를 이룰수 있다] [고는 이런것이고 (사성제),인연법은 이런 것이다 (연기설)등등 마치 중국의 도학 사상이나 다른 바 없었고 석존 또한 성자요,선구자요,도학자요,철인이요,사상가였습니다. 대승불교 시대에 와서야 불교도 종교적 성격을 완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밀교도 대승불교와 더불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반야경,화엄경, 법화경 등 대승경전의 출현과 더불어 현세이익과 양재여락(攘災與樂)을 목적으로 하는 공작명왕경과 같은 잡부밀교경전들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명,용수, 용지,세친,무착등 대승불교의 대덕들을 거쳐 7세기에 이르러 대일경,금강정경이 나올때까지 인도의 밀교는 대승불교와 함께 융성하여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석존으로부터 시작된 불교가 거금 1200년간 원시불교,소승불교, 대승불교로 눈부신 발전을 보면서 인도전역은 물론이고 남방으로,북방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주시하면서 인도의 불교를 보아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즉 불교의 나라 인도에서 불교가 스스로 타락하고,그러므로써 스스로 쇠망의 길을 걷다가 자멸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인도불교 자멸의 원인은 내부적으로는 타락이고 외부적으로는 이슬람의 침입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 타락하여 버렸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불교가 힌두교의 한 갈래인 딴뜨라교와 야합하여 외설불교로 타락하여 버렸다는 뜻입니다. 7세기경 대일경,금강정경의 출현을 보게 된 인도에서는 뒷날의 중국과는 정반대로 대일경계는 별로 받아 들여지지 못하고 금강정경계만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대일경은 교상위주의 경이고 금강정경은 사상위주의 경인데 교상은 발전하지 못한 채 퇴장되고 사상만 이 각종의 의궤법과 비밀수법으로 성행되었다는 뜻입니다.이러한 밀교의 비밀수법은 그 성질상,그 당시 60여종의 딴뜨리즘이 성행하던 인도의 [힌두이즘]과 융합되어 버리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입니다. 원래 인도의 고대사회에는 수 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불교와 바라문교와 힌두교가 평행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와 바라문교는 학문적(철학적) 이었는데 대하여 힌두교는 미신적인데다 종교라기보다 일종의 저속한 "유행" 이었습니다. 욱일승천하던 불교의 일부가 이러한 저속한 미신과 야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이리하여 인도의 불교는 그 순수성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서구의 학자들이 밀교를 딴뜨라불교(Tanyric Buddhism)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바로 힌두교와 융합된 불교를 말합니다. 어쨌거나 금강정경이 나타나면서 인도의 밀교는 한때 활기를 띄었으나 서기 750년 이후에는 이슬람의 침입과 더불어 동쪽으로 쫒겨 났습니다. 인도의 불교는 서기 750년 이후에는 이미 인도 전역적인 것으로부터 동부지방의 국지적인 것으로 몰리고 말았습니다.
벵가-루, 오릿사 지방으로 쫒겨난 불교는 그곳을 거점으로 확보하였으나 사상과 실천면에서 외설밀교로 현저히 변모되어 딴뜨리즘과 기타 좌도밀교(창시자:인드라뿌-디)등의 영향을 받아 불교는 이미 순수성을 잃어 어느 것이 불교이고 어느 것이 딴뜨라교이고 어느 것이 힌두교인지도 식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770년경에 동인도를 새로이 지배하게 된 파-라 왕조의 호불정책에 힘입어 파-라왕조가 멸망한 12세기말경까지 명맥은 유지 되었으나 후기밀교로 손꼽히는 이 마지막 인도의 불교도 1199년 파-라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사실상 인도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편 인도의 밀교는 일찍이 8세기 중엽에 티베트로 옮아 그들의 토양에 맞게끔 자라서 라-마교라는 이름으로 대성했습니다. 747년 티베트왕의 초청으로 입국한 인도의 딴뜨라승인 파드마,산바바(padma-Sambhava:연화생)가라-마교(Lama)를 창립한 것이 티베트에 불교가 들어간 시초입니다. 꺼져가던 최후기의 인도불교의 불길이 티베트로 옮겨 붙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티베트 고유의 신앙인 봉교(Bon)를 불교와 결합시키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8세기경의 티베트는 국세도 강대하여져 중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나라 였습니다.그들은 여세를 몰아 불후의 대작인 티베트대장경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 대장경을 만들기 위하여 문자까지 완전히 새로이 만들었습니다. 인도에서 사라진 불교가 티베트로 들어와서는 티베트 사람의 불교로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1206년,성길사한 (징기스칸)이 몽고국(원)을 세운 이래 파죽지세로 천하의 태반을 석권하자 티베트도 몽고의 점령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징기스칸은 라-마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이리하여 라-마교는 네파-루, 서지나,돈황,몽고, 만주, 러시아의 카르마크 지방에 까지 번져 갔습니다. 2차대전후 티베트는 중공에 점령당했고 티베트의 통치자 다라이. 라마 (제14대) 는 인도에 망명중입니다.
나. 중국,한국, 일본의 밀교
중국의 밀교도 역시 인도밀교와 서역밀교가 그 토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나 서역처럼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밀교적유산은 없고 전래된 불교속에 밀교도 동승혼융 되어 있었다고 볼수밖에 없습니다. 도학과 선학사상 때문에 밀교적인,또는 불교적인 토양은 애당초 중국에는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따라서 중국불교는 역경사업으로부터 순수하게 자생된 불교입니다.또한 유교,도교권의 국가이므로 후기밀교나 딴뜨리즘,좌도밀교등은 근접도 하지 못했으며 한국,일본, 또한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전해 받았으므로 이 점은 추호도 다른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를 공부함에 있어서 우리는 원시불교,소승불교,대승불교의 순에 따랐으나 이러한 불교발전의 도정은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중국에 불교가 들어 온 것은 불멸후 수세기가 지나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승불교 시대를 지나서 대승불교 시대에 불교가 처음 들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즉 기원이후에, 경전과 인도의 고승들이 속속 중국으로 들어와서 역경사업을 벌림에 있어 소승경전부터 먼저 갖고 온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소승 대승의 순서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습니다. 경이 전래되는 대로 번역 되었던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대승경전부터 먼저 번역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학자마다 이견이 있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중국에는 2세기중엽에 처음으로 서역으로부터 불교승려들이 들어와서 역경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며 이때 이렇게 들어온 불교는 소승, 대승, 밀교의 구별없이 복잡한 양상을 띄었습니다. 역경사상으로 보아서 밀교 경전이라고 할만한 대승경전이 처음 번역된 것은 3세기전반에 오나라때 월지국의 승(僧) 지겸(223-254 滯中)의 화적다라니신주경(華積陀羅尼神呪經), 팔길상신주경(八吉詳神呪經), 마등가경(冕伽經) 등의 밀주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주버이 처음 소개되기도 했으나 일반에게 침투되지는 못했고,중국에서 밀주가 처음 시작된 것은 동진때의 백시리밀다라(서역인 307-335 체중) 가 대공작왕신주경을 번역하여 이것(주밀)?? 민중들 사이에 행하여 졌으니 그것이 처음인 듯 합니다.
그후 담무란(881이후 체중),축남제,담무식(421-433 체중) 담요 (북위시대) 밀주의 역경승들이 많은 잡부밀교경전(밀주경)을 번역 했습니다. 기원,일세기전후에 인도에서 성립되었다는 화엄경과 법화경이 중국에서 번역된 것은 화엄경은 5세기초의 불타바다라 (406-429 체중 북인도인) 역이고,법화경도 5세기경의 요진의 구마라십(401-413 체중) 역입니다. 중국의 체계화된 조직적인 밀교경전 즉 소위 말하는 정순밀교인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들어온 것은 8세기초입니다. 중인도의 선무외삼장 (637-735)이 팔십노구를 이끌고 내당 한 것이 716년 (개원사년)이고, 당현종의 환대를 받아 일행을 제자로 삼고 대일경을 번역하였습니다(724년).
그리고 금강정경의 초역인 금강정유가중 약출염송경을 번역한 것이 728년입니다. 이것이 금강계입니다. 이 양부의 대경을 밀교의 이대법문이라 합니다. 태장계는 이(理)(육체)의 세계,교상의 법문이며 금강계는 지(智) (정신) 의 세계, 사상의 법문으로 이 양계는 쌍륜의 법문으로 이지불이요 이이불이입니다.
일행은 선무외삼장의 구술을 필수하여 대일경소를 남기고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노스승을 남겨둔 채 타계하였으며, 불공은 15세에 금강지스승을 따라 내당하여 스승을 도와 약출 염송경을 번역해 내고 금강정의결의을 필수했으며, 스승을 사별하자 (733) 유지를 받들어 미진한 연구와 못다 갖고온 경전을 가지려 다시 인도를 다녀와서 진실섭대승현증대교왕경(3권)을 역하여 스승의 유업을 잇고, 금강정유가 18 회지귀를 지어 극강정경계의 총개재를 남겼으며,밀교계에 독보적거적을 남겼습니다. 양부대경이 처음 인도에서 성립되었을때는 완전히 별개의 경전이었습니다. 그것이 각각 선무외와 금강지에 의하여 정말 우연한 인연으로 중국의 장안에서 거의 동시에 역경. 유표되었기 때문에 마침내 혜과에 의하여 습합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참으로 법계의 행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혜과에 의하여 양부불이 (태금불이) 의 사상이 확립되어 최상승교로 한 종문의 법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혜과 (746-805)는 태장계의 서승인 선무외의 제자인 신라승 현초로부터 태창계부법을 받고 또 불공으로부터 금강계부법까지 받아 영실공히 태금양계의 대법을 받아 밀교를 크게 이르켰습니다. 이무렵 혜과의 전성시대에는 문하에 1,000여명의 유학승으로 혜일,오진 등이 있고 일본의 유학승으로는 공해가 있었습니다. 해일은 신라로 돌아와서 밀교를 펼쳤으나오진은 구법의 발걸음을 다시 천축으로 옮겨 (789년)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티베트에서 병사했다고 전합니다. 일본의 공해는 귀국하여 진언종을 개창 (811년)하였습니다.
중국불교에 있어 당나라 시대는 전성기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현종이후는 밀교시대였으며 특히 궁중불교는 완전히 밀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맞춰 내당한 선무외와 금강지가 현종의 환대아래 밀교의 역경청을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불교는 드디어 당나라 무종 (회창연간) 의 폐불사건 (842-845)을 당하여 극심한 타격을 받고 침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폐사 약 4,600개, 환속승 265,000명이라 했으니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원인은 대체로 불교의 지나친 유성으로 국가재정이나 황실재정까지가 사원에 예속되는 등의 폐해에 기인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중국의 불교는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을 걸으며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 뒤 요 (거란), 송대에 이르러 한동안 다시 부흥의 기운이 있었으나 옛날을 되찾지는 못했고, 명청 이후의 불교도 유교에 밀린 채 이렇다 할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우리나라의 밀교는 별항으로 상술키로 하고 일본의 밀교를 먼저 간략하게 훑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본의 밀교는 동밀이라고 일컬어지는 진언종과 태밀이라고 일컫는 천태밀교종이 있습니다. 진언종은 공해가 당나라 혜과로부터 양부의 법을 받아와서 개창한 종파인데 (811), 이것이 일본 밀교종의 시작이었습니다. 현재 고야산을 본거로 삼고 있습니다. 또 천태 밀교종은 전교대사가 역시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와 진언종에 잇달아서 개창한 밀교종파인데 비예산을 본산으로 합니다. 이 두 개의 밀교종파야 말로 오늘날 세계속에서 독보적으로 발전해온 밀교종파로서 모든 면에서 범세계적 모범이 되는 종단이라 하겠습니다. 이 두 종파의 교리상의 근본적 차이는 여러 가지를 들수 있겠으나 참고적으로 그 중 몇가지 주된것만을 골라서 비교해 보면
1. 진언종이 대석별체설 즉 석가여래는 대일여래의 분화신이라고 하는데 대하여, 천태종은 대석동체설 즉 대일여래가 곧 석가여래라고 하며 2. 진언종은 육대체대설, 천태종은 아자체대설을 취하고 3. 진언종의 소의경전은 양부대경이나 천태종은 이에 소실지경을 더하여 삼부대경을 취합니다.(삼부상승)
근래 교세를 보면 사원수 (동밀 16,059사, 태밀 4,193사) 신도수 (동밀,869,862명 태밀 696,926명)입니다. (76년판 종교총감) 거금 1200년간 별로이 큰 법난에 조우한 일 없이 자라온 일본의 밀교는 오늘날 밀교의 세계사적 본거요 요람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오늘날 불교의 현황을 개관컨데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가 인도에서는 사라지고 (신도수 전국민의 약 1%) 스리랑카,태국, 버-마 등 남쪽에는 소승불교가 성행되고 있는데 이 불교권을 팔리어 경전의 불교권이라 할 수 있겠고 티베트,네팔, 몽고, 만주 등의 티베트어 경전의 불교권(밀교) 이고,동북 아시아,중국,한국, 일본을 한역 경전권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지역은 현밀공존의 불교권입니다. 그런데 현하 불교계를 보면 전기 팔리어 경전권은 소강상태이긴 하나 불교가 온전하고 있지마는 티베트어경전권은 거의 공산화 되어 소멸상태가 아닌가 사료되며, 한역 경전권도 자유중국과 한국, 일본은 현밀이 공존하여 성행 발전되고 있으나 중국대륙의 불교는 약간의 명백과 사찰등 문화재만 보존되고 있다고 들립니다.
다. 한국의 밀교
우리나라의 밀교는 통불교속에서 자라왔으며 일찍이 신라때에는 밀교종파가지 생겼으나 조선조에와서 현교종파와 강제 통폐합 되었을뿐 아니라 경궤마저도 송두리채 불살라 지는 등 실로 불교속의 고아로 자라 왔습니다. 따라서 밀교사를 연구함에 있어서도 통불교와 일환으로 그 자취를 추적하는 길밖에 없으며 직접적인 자료는 다라니경 이외는 거의 없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에는 소수림왕 2년 (372년), 백제에는 침류왕1년 (389년),그리고 신라에는 법흥왕 15년 (528년) 이라고 합니다. 이런 기록보다 실제로는 그 이전에 이미 불교가 들어와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전성기는 역시 통일신라 때라고 하겠습니다.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공인을 받은 신라의 불교는 친당정책에 힘입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와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전국민의 80-90%가 수계 봉불했으며 문자 그대로 " 한집건너 절" 이었습니다. 이렇게 극성해지자 마침내는 도리어 [매너리즘] 에 빠져 8세기경부터는 다소 침체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 중국으로부터 선이 들어와서 불교계는 다시 활력을 되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오교구산의 찬란한 신라불교의 정화를 이루었습니다. 이 틈바귀 속에 선에 이어 양부대경의 밀교 (순밀)가 들어 왔습니다. 물론 잡부밀교야 삼국시대부터 들어와 민간신앙으로 통불교속에 묻혀 있었지만 양부대경중 순부밀교가 이때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한가지 특기할 사실은 인도나 중국에 있어서는 밀교가 하나의 종파를 형성하여 종명이 뚜렷한 것이 없으나 신라에서는 신인종, 총지종등 종명이 뚜렷한 사실만 보아도 밀교가 얼마나 흥왕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밀교가 종파로서 독립된 예는 불교사 속에서도 한국과 일본밖에 없습니다.
5-600년대에 신라의 당나라 유학승 (밀교)으로는 일본,명랑, 혜통, 혜일, 혜초, 명효, 문원, 무루, 현초, 의림,오진, 불가사의, 균양등의 이름이 밀교사에 올라 있습니다마는 상세한 전기는 전해지지 않습니다.그러나 신라의 밀교가 참으로 융성했음은 여러 문헌이나 사적이 거증하고 있습니다. 해동고승전이나 삼국유사등 기록에 의하면 일찍이 밀본화상이 유명하였고 뒤이어 명랑과 혜통이 밀교종을 세웠습니다. 밀본은 주술로써 선덕여왕과 재상 (김양도) 의 병을 낫게 하는등 밀교승으로서의 초능력을 발휘하므로써 명성을 떨쳤습니다. 뒤이어 명랑법사는 선덕여왕년(632년)에 입당하여 수학귀국후에 금강사를 창건하고 신인종을 세웠습니다. 그는 불설관정복마봉인대신주경에 의한 신인의 비법 즉 문두루비법을 전래하였으며, 문무완 9년에는 경주 남산 남쪽 신유림에 밀단을 쌓고 동. 서. 남. 북 및 중안에 오방신을 봉안하여 유가승 12인을 거느리고 문두루비법을 행하여 당나라 50만대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자리에 사천왕사를 세워 비법을 오래도록 전하게 하였습니다. 신인이란 곧 문두루비법을 말하며 신인종의 종명도 그래서 생긴 것입니다. 신인종계통을 계승한 고승으로는 안혜,랑융, 광학, 대연등이 있으며, 고려태조 왕건의 건국에 즈음하여서도 해적의 내침을 이 전승의 비법으로 물리쳤으며,개성에 현성사를 지어 근본도량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분들의 전기는 미상입니다. 또 혜통은 문무왕때 총지종을 세웠습니다. 그도 역시 당나라에 가서 비법을 받아 왔습니다. 주술과 양재 치병에 능하였고 신통력이 절묘하여 당나라에서는 물론이고 귀국후에도 많은 이적을 남겼으며 효소왕의 국사가 되었습니다. 혜초는 19세에 입당하여 금강지를 사사하였으며 그의 권유로 나란다대학에 유학코저 인도에 갔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귀당하여 그 유명한 왕오천축국전을 남기고는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오대산에서 입적하였다고 전 합니다.혜일은 오진과 함께 혜과를 사사하여 삼부대경(대일경,금강정경, 소실지경)의 정순밀교법과 재존유가 30본을 전수받아 귀국하여 눈부신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진은 구법차 천축을 헤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현초는 선무외로부터 전수받은 태장법을 혜과에게 전했습니다.
그외에도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많은 밀교승들이 당나라를 내왕하여 밀법을 폈습니다마는 상세한 전기가 전해지지 않아서 유감일 뿐입니다. 고려의 불교는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왕건이 불교를 국교로 삼고 훈요십조를 제정하여 후세에 불교입국을 선언한 것이라든지,거란의 내침을 불교의 힘으로써 물리치기 위하여 16년간의 긴세월에 걸쳐 판목팔만여래의 고려대장경 (팔만대장경)을 완성한 것등 몇가지 사례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호국불교의 극치였습니다. 더욱이 고려의 불교는 주로 밀교였습니다.각종의 소재 도량과 법회등은 모두 밀교의식으로 거행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궁중의 각종의식도 모두 밀교의식으로 행하여 졌습니다. 그러나 만사는 극성하면 다음은 그로 인하여 또 쇠망합니다.
고려말엽에 이르러 그 극성하던 불교도 자체모순이 노정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찬란하던 당나라의 불교도 말기 회창년간 무종의 폐불사건(843-845)으로 시들어 버렸듯이,신라, 고려를 통한 1000년의 불교도 마침내 사양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조선은 불교를 버리고 유교를 택하였습니다.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에 밀려난 불교는 그로부터 500년간의 기나긴 법난의 늪에 빠져 들고 맙니다. 태조 7년에 태조는 전국에 88개사만 남겨두고 모든 사원을 폐지하고 재산을 몰수해 버렸습니다. 또 태종은 12개의 종파를 7개로 통폐합했고, 세종은 이를 다시 선종과 교종 2개로 통합하고 각 18개사만 존손시켰습니다. 밀교종인 신인종은 중도종 (삼론법성종)에 합쳐져 율종인 남산종과 합쳐서 총남종으로 되었다가 선종에 병합시켜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신라의 명랑법사와 혜통대사가 세웠던 2개의 밀교종파는 교종과 선종에 흡수되어 그 이름마저 소멸되고 말았습니다.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는 선교 양종까지도 조계종하나로 묶어서 산중으로 쫒아 버렸습니다. 양가집 자녀들의 승직취득을 금했습니다. 고승 대덕은 사라져 갔습니다.무식한 천민들이 승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태종 17년 (1417년)에는 밀교의 경서를 모두 몰수하여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 번성하던 밀교의 경궤가 모두 없어지니 체계화된 밀법을 행할 수 없고, 오직 진언과 의궤법만이 민간속에서 구전으로 행하여 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밀교는 다시금 잡부밀교시대로 되돌아가서 통불교속으로 잠입해 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밀교는 또 다시 독립성을 잃고 현교인 교종,선종과 회통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밀교가 현교속에 흡수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오늘날의 현교는 현밀이 함께 섞여 있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날의 현교속의 의식은 모두 밀교의식인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 이것은 인류의 특권입니다. 이를 말살하는 자는 그것이 개인이거나 국가이거나 반드시 멸망합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불교사에 있어서도 가까운 예로서 당나라가 회창폐불후 이내 망해 버렸으며,신라1000년의 영광도 그 여파로 따라서 망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불교국 고려는 송, 거란, 몽고의 끊임 없는 침략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맨주먹 불심으로 팔만대장경을 만들면서 이겨 냈습니다.
기나긴 법란의 늪은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밀교도 재차 독립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자유대한의 품속에서 새로운 정통밀교로 탄생한 것입니다.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상량도 올렸습니다. 황무지에서 어려운 성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대일여래의 무언의 설법(진리)을 들어오지의 반야를 증득하는 생활불교,현대불교로 탈바꿈하여 여기 총지밀교가 새로운 교리와 사상을 갖추고 새롭게 탄생한 것입니다. 이제 피안의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잿더미 속을 헤매던 형제자매들이 피안의 등불을 보고 [밀교만세]를 외치며 모여 들고 있습니다. 망망한 대해, 무진법해를 바라보면서---!
밀교경전
대비로자나 성불신변가지경(大毘盧遮那成佛神變加持經)
-경의 제목과 경전성립
약칭해서 대일경(大日經)이라고 한다. 금강정경과 함께 진언밀교의 2대 경전으로 태장계의 교리근저를 이루고 있는 경이다. 경의 제목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이 가지는 뜻은 '끝도 없는 최상승으로써 법계를 두루 비추어 불멸·견고·청정·무시무종한 부처님께서 능히 알며 능히 작용하여 여래자증의 경계를 입아아입케 하는 말씀' 이란 뜻이다. 다시말해서 '중생을 불(佛)의 경지에 다다르게 하는 경'이란 뜻이다. 이 경의 산스크리트본은 현존하지 않지만 9세기 초에 번역된 티베트역과 8세기 초의 한역(漢譯)이 각각 한 종류씩 남아 있을 뿐이다. 본 경에 대한 주석서(註釋書)로는 8세기 경 인도의 학승 붓다구히야가 저작한 주석서가 티베트어로 번역되어 전해지고 있고, 중국에서는 선무외 삼장이 구술(口述)하고 일행(一行) 선사(禪師)가 받아 적은『대일경소(大日經疏』가 현존하고 있다.
대일경은 인도밀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잇는 경전이다. 사상적(事相的)인 면과 실천적(實踐的)인 면에서 6세기 까지 인도의 전반기 밀교를 총괄했던 경전이었다. 전반기 밀교경전에서 다라니를 독송, 각종 밀교의례를 집행하는 목적은 주로 제재초복을 위한 현세이익이었으나, 중기밀교를 대표하는 대일경에서는 경전명이 말해주는 것과 같이 경전의 교의와 실천의 목적을 성불에 두고 있다. 본 경은 일반적으로 기원 후 7세기 중엽에 성립되었다고 보고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본 경의 각 품들이 보이는 내용들을 보았을 때, 처음부터 통일된 구상아래 한꺼번에 편찬된 경전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실천수행법이나 만다라에 관한 내용들이 각 품마다 서로 다른 경우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대일경은『다라니집경』『소바호동자경』『소실지경』『저리삼매야경』『금강최쇄다라니』『상선정품』등의 선구경전에서 영향을 받아 각 품들이 각기 만들어지고, 나중에 하나의 단일경전을 이루었다.
-경의 구성과 사상내용
이 경은 전 7권 36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31품은 1권에서 6권까지의 품이며, 나머지 5품은 마지막 7권의 품이다. 전 6권은 중국 장안(長安)의 화엄사에 소장되어 있던 산스크리트본(本) 중에서 선무외(善無畏) 삼장이 찾아 내어 번역한 것이며, 제7권은 선무외 삼장이 북인도에서 가져온 것으로서 전 6권의 내용 중 수행차제법(修行次第法)을 별도로 기술한 것이다. 본 경의 근본사상은 정보리심(淨菩提心)을 설하고 있는데, '보리심(菩提心)을 인(因)으로 하고, 대비(大悲)를 근본(根本)으로 하며, 방편(方便)을 구경(究竟)으로 한다'는 삼구(三句)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즉 보리심은 본래 본성(本性)이 청정한 것이나 160의 망심(妄心)에 덮여 있으므로 출세간(出世間)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이 망심을 없앨 것을 설하고 있고, 진언행관법에 있어서 제법실상관 아자 본불생 불가득(諸法實相觀 阿字 本不生 不可得)의 이치를 설하고 있으며, 허공으로써 보리심의 상(相)을 삼아, 그 심실상(心實相)을 알아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금강정경(金剛頂經)
-경의 제목과 경전성립
『금강정경(金剛頂經)』은『대일경』과 더불어 밀교의 최고(最高) 경전으로 숭앙되고 있는 경전이다. '금강'(金剛)이라는 말은 견고한 것에 비유하여 불가사의하고 비밀스러운 진리는 괴멸되지 않는 것이라는 뜻과, 여래의 지혜는 능히 중생의 번뇌를 없애고 지극한 진리를 증득케 하는 작용이 있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정'(頂)은 가장 수승하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데, 즉 금강교(金剛敎)는 여러 대승법 가운데 가장 수승하여 이에 앞서는 것이 없다는 뜻을 가리킨다. 『금강정경』은『대일경』이나 다른 일반경전과는 달리 하나의 단일경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18회에 걸쳐서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설했던 10만송 경전의 집성을 일컬어서 이름붙여진 것이다. 즉『금강정경』이라는 이름의 경전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18회에 걸쳐 10만송을 설한 경전군(經典群)을 통칭하여『금강정경』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18회 강설의 10만송『금강정경』의 근거는 바로『금강정경유가십팔회지귀(金剛頂經瑜伽十八會指歸)』이다. 이것은 불공(不空) 삼장에 의해서 번역된 것으로『금강정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현재 십팔회에 이르는『금강정경』의 완본은 현존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한 회(會), 한 회(會)가 정리되고 있을 뿐이다. 이 18회 10만송의 방대한 경전은 현금에 모두 전해지지 않고, 중국에서 번역되어 유포된 것으로 불공(不空)역의『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대교왕경(金剛頂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大敎王經)』3권, 시호(施護) 역인『불설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삼매대교왕경(佛說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三昧大敎王經)』30권,『불설일체여래금강삼업최상비밀대교왕경(佛說一切如來金剛三業最上秘密大敎王經)』7권, 금강지(金剛智)역의『금강정유가중략출염송경(金剛頂瑜伽中略出念誦經)』4권 등이 전해지고 있다.
『금강정경』은 단일경전이 아니므로, 한 시기에 성립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단계적으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고 있는 경전으로는 산스크리트본·티베트역본과 위에서 열거한 한역본을 들 수 있다. 특히 한역본 가운데 시호(施護) 역을 가장 완성된 형태의『금강정경』으로 보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진실섭경(眞實攝經)』·『초회금강정경(初會金剛頂經)』이라고도 한다. 시호(施護)는 980년에 중국에 와서 1015년에『진실섭경』30권을 번역하였는데, 티베트역도 거의 같은 시대이므로, 그 원전(原典)은 늦어도 10세기 중엽경에는 완성되었다고 본다.
『진실섭경』의 티베트역으로 붓다구히야의『탄트라르타바타라』, 샤카미트라의『코사라란카라』, 아난다가르바의『탄트라타트바로카카리』가 있는데, 이들은 유가부밀교의 3대학장으로 칭해지며, 모두 8세기에 활약했던 인물들이다. 따라서 티베트역은 8세기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보여진다. 불공(不空)은 742년에 다시 인도에 가서 746년에 중국 장안으로 되돌아왔으므로, 불공역본의 원전은 8세기 전반기에는 나와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금강지(金剛智)는 719년에 장안에 들어 온 것으로 보아, 그 원전은 7세기 말이나 8세기 초에는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향(呂向)의『금강지삼장행기(金剛智三藏行記)』에 의하면, 금강지 삼장이 31세 때에(701년) 남인도로 가서 용수(龍樹)의 제자로서 700세의 장수를 누린 용지(龍智)를 만나, 7년 동안 그에게서『금강정유가경(金剛頂瑜伽經)』을 배웠다고 한다. 이『금강정유가경(金剛頂瑜伽經)』은 금강지 역의 저본이 된『약출염송경』으로 보인다. 즉, 금강지가 번역한『진실섭경』은 7세기 말경에는 늦어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진실섭경』의 원초형태는 7세기 말경에 성립되었고, 8세기 말경에 단계적인 완성형태를 이루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경의 구성과 사상내용
이들『금강정경』은 어느 것이고 유가행(瑜伽行) 유식(唯識)계의 경론의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이 금강계 경전들은『대일경』이 지니고 있는 반야공(般若空)의 중관(中觀)철학을 다시 구현하는 유식 유가행(唯識 瑜伽行)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반야(般若)·공(空)의 철학을 실천적으로 지양한 단계가 유가밀교의 경전이며, 유식유가행의 철학을 실천적으로 지양하려고 한 것이 금강밀교(金剛密敎)이다. 상기의 경전들의 내용을 살펴보자.
<<불설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삼매대교왕경>>
이 경전을 흔히 '30권본『초회금강정경』이라 한다. 이 경은 크게 나누어 의궤분과 교리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의궤분은 금강계만다라의 세계를 체득하기 위한 관상법(觀想法)과 실수법(實修法)을 나타낸 것으로 이 경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의궤분은 다시「금강계품」「항삼세품」「편조복품」「일체의성취품」의 4품으로 나누어진다. 「금강계품」에서는 금강계대만다라의 구성을 개괄하고 있다. 오상성신관과 37존 유가관상법, 사종인(四種印)의 실천법 등의 만다라 수법(修法)이 설해져 있다.
항삼세품」에서는 근본번뇌와 수번뇌(隨煩惱)의 활동을 항복시켜 금강계의 세계를 증득케 하는 법을 설하고 있다.「편조복품」에서는 일체본성인 청정을 체득하기 위해서, 또한 일체번뇌를 조복, 인간생활의 근본번뇌를 위대한 종교적 생명으로 고양시켜가는 것을 다양하게 설하고 있다.「일체의성취품」에서는 대생명의 소생은 당연히 인간 본성을 시현시켜 가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대교왕경>>
이 경은 불공 삼장이 번역한 것으로『초회금강정경』의 4품 중에서 그 일부인「금강계품」에 해당한다. 이 경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에 대한 귀명과 37지신(智身)의 덕을 찬탄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교법전수(敎法傳受)의 전교관정(傳敎灌頂)을 설하고 있고, 만다라 건립을 위한 제작법(諸作法), 만다라 입단작법(入壇作法), 제불보살의 존명과 진언을 설하고 있다. 본 경의 요점은 만다라를 통하여 불(佛)의 위신력인 우주의 활동을 연역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금강정유가중략출염송경>>
이 경전은 금강지의 번역으로『금강정경』의 수법차제(修法次第)를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본 경은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경은『금강정경』의 설회(說會)인 18회 중 제1회에서 설한 부분을 약섭(略攝)해서 역출(譯出)한 것이다. 본 경의 내용은 입단관정(入壇灌頂), 도량관(道場觀), 37존출생,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 작만다라법(作曼茶羅法), 공양법(供養法), 호마작법(護摩作法) 등을 들 수 있다.
<<불설일체여래금강삼업최상비밀대교왕경>>
이 경은 시호(施護)에 의해서 번역된 것으로『금강정경』18회 중 제15회에 해당한다. 본 경은 제7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불보살의 진언과 각종 만다라를 설하고 있다.
불설 대승장엄 보왕경(佛說大乘莊嚴寶王經)
-경의 성립
중인도의 야란타라국 밀림사 삼장사문 천식재(天息災)가 송나라 태종 5년(980년)에 오전나국 삼장 시호(施護)와 함께 송나라에 와서 임금의 부름을 받고 자의(紫衣)를 하사받고, 본 경을 역경하게 되었다.
-경의 구성과 내용
본 경은 4권으로 되어 있으며 밀교의 관음법(觀音法)을 설하고 있는데, 부처님이 사위국급고독원에 계실 때 제개장보살의 청(請)에 의하여 설하신 것이다.
제1권의 내용 : 제개장보살이 여러 천신녀의 무리들과 함께 불전(佛前)에 있을 때 대아비 지옥으로부터 여러 가지 상서로운 상이 나타나서 기타림원을 장엄케 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이 상서로운 상은 관자재보살이 지옥을 화도하므로 연유한 것이라고 하시며, 관자재의 지옥구제의 상과 염마왕이 관자재를 찬탄함을 설하시고, 다음에 과거 비바시불의 세상에 장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름이 묘향구라고 할 때에 비바시불로부터 들었던 관자재의 위신력의 상을 설하셨다. 또 시기불로부터 들으신 관자재보살의 말할수 없는 복덕과 이십신(二十身)으로 화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상과 관자재가 과거세에 이미 대승장엄보왕경을 설한 소이와 이 경의 공덕을 설하시고, 만약 이 경을 듣고 독송하면 오무간을 소멸하고 명을 마칠때에 십이여래가 와서 영접하여 반드시 극락에 왕생한다고 설하신 것이 제1권의 줄거리이다.
제2권의 내용 : 부처님이 비사부여래의 세상에 인욕선인이 되었을 때 그 여래로부터 관자재가 이 경을 설했다는 것을 들었고 또 관자재는 부처님을 위하여 보시의 공덕과 지옥의 고상(苦相)을 설하였다. 때에 관자재는 기타림에 오려고 도중에 천궁에 이르러 묘엄이천자를 제도하고 다음은 사자국에 가서 나찰녀를 제도하고 바라내대성에 들어가서 충류(蟲類)를 화도(化度)한 다음 마가타국에서 기근(飢饉)의 고통을 구제하고 나서 기타림의 비사부여래의 앞에 이르러 화도한 일을 아뢰었다는 등 부처님이 과거세의 일을 말씀하실 때 허공장보살이 불전에 나아가 관자재의 위신력이 광대함을 찬탄하고 부처님은 이 보살을 위하여 육바라밀을 설하셨다.
제3권의 내용 : 부처님이 제개장을 위하여 관자재의 구족한 67삼마지와 화현하여 사자국의 오백 상주(商主)를 나찰녀의 재난으로부터 구제한 일과 구족한 공덕 및 이 경의 공덕을 설하였다. 즉 관자재의 덕은 광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라 이 보살은 무자성(無自性)인 연고로 본 이도 없고 들은 이도 없다. 보현보살이라도 그 변화하는 바를 사의(思議)치 못한다. 그러나 그 덕은 일체 유정으로 하여금 극락세계에 왕생케하여 무량수여래를 예배하고 법을 듣게 한다. 또 관자재가 사바세계를 화도할 때는 무시로 와서 일체유정을 위해서 부모가 되어 무외(無畏)를 베풀고 열어서 인도한다. 또 그에게는 육자대명(六字大明)이 있어서 이 진언을 칭념(稱念)하면 원적지(圓寂地)를 증한다고 설하였다. 이 육자대명의 공덕은 광대하여서 사량할 수 없는 것이니 이 진언은 얻는 곳을 모르더라도 이것을 지송하기만하면 무수한 여래와 보살과 삼십이천 등이 모이고 사대천왕과 모든 용왕과 약차 허공신 등이 지송하는 사람을 호위하며 이 사람은 다함없는 변재와 청정지혜와 대자비를 얻고 육도(六度)를 구족하나니 만약 이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기식(氣息)이 닿는 자에게는 그 사람이 보살의 위를 얻고 혹은 손이 닿거나 혹은 이 사람을 보는 사람은 보살의 위(位)에 이른다고 설하였다.
제4권의 내용 : 부처님이 제개장을 위하여 육자진언을 얻는 인연을 설하였다. 즉 부처님이 과거세에 보상여래(寶上如來) 곳에 이르러 육자대명을 걸구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다음에 연화상(蓮華上) 여래에게 구하였으나 이 여래는 육자진언의 공덕이 무량함을 밝히고 관자재보살만이 이 대명(大明)에 주하심을 설하고 이에 여래는 무량수불(無量壽佛)에게 이 진언을 구하자 무량수불은 또 관자재에게 이 진언을 설하기를 구하였다. 때에 관자재는 '아직 만다라를 보지 못한 자에게는 이 진언을 설하여 줄 수 없다'하고 먼저 만다라를 설하여 이르되 '오주사방(五 四方)의 단(壇) 중앙에 다섯 가지 빛깔의 보말(寶 )로써 무량수불을 그리고 그 오른쪽에 지대마니보보살, 왼쪽에는 육자대명(죽, 관자재)을 그리는 것이다. 이 존(尊)은 사비(四臂)로서 왼손에는 연화를 가지고 연꽃 위에는 마니보를 얹고 오른 손에는 수주(數珠)를 가졌으며, 밑에 두 손은 일체왕인(一切王印)을 결하고 육자대명의 ?上틔×〈? 천인(天人)을 그리되 그 오른손에 향로, 왼손에는 발우를 들었으며, 만다라의 네 귀에는 사천대왕이 있고 밖의 네귀에는 사현병(四賢甁)을 안치한다'고 관자재보살이 이와같이 만다라를 말씀하시고 나서 '옴마니반메훔'의 육자대명 다라니를 설하시니 연화상여래는 관자재를 찬탄하고 모든 보물로써 공양했다. 관자재는 공야물을 받아서 무량수불에게 드리고 무량수불은 이것을 또 연화상여래에게 드리니 이에 연화상여래는 육자대명을 수지(受持)하고 본토(本土)인 연화상세계로 돌아 가셨다. 그때에 칠십칠구지(七十七俱 )의 여래가 모두 모여서 칠구지불모준제다라니를 설하자 관자재보살의 몸의 모공(毛孔)으로부터 여러 가지 기적적인 상서로운 상(相)이 나타났다. 이는 준제진언과 육자진언의 공덕이 상승적으로 나타남을 알 수가 있다. 끝으로 부처님이 아난에게 승(僧)을 경만하거나 부처님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에 대한 업인과(業因果)의 상을 말씀하였다.
불설 대승 이취 육바라밀다경(佛說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
-경의 제목
이 경은『육바라밀경(六波羅蜜)』또는『이취육도경(理趣六度經)』이라고도 하며,『대반야경』의 제10회에 해당한다. 8세기 말경에 인도출신의 학승 반야(般若)가 번역하였다고 한다. 이 경의 이름은 대승의 여섯 가지 불도(佛道)의 이치를 묶은 경이라는 뜻이다. 이 경에서는 보살이 닦아야 할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등의 여섯 가지 바라밀을 교설하고 있다.
-경의 구성과 내용
이 경은 10권 10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자씨보살이 중심이 되어 부처님께 질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경명에 나타난 것과 같이 불멸 후 400∼500년 경에 일어난 대승사상에 입각하여 육바라밀을 설한 것이다. 제1품에서 제4품까지는 일반적인 서술로서 대승 반야에 대해서 말한 뒤, 제6품에서 제10품까지는 육바라밀 각각에 대해서 한 품씩 나누어서 세세하게 분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제1권 제1「귀의삼보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먼저 설법의 배경과 동기를 설하고 있다. 부처님이 왕사성의 죽림정사에 머물 때, 자씨보살이 부처님에게 설법을 청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여러 비구들에게 불보(佛寶)와 법보(法寶), 승보(僧寶) 등 3보에 귀의해야 한다는 말로 대설법의 문을 열고 있다. 여기서 불보는 불신(佛身)과 불덕(佛德)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법보와 승보는 각각 세 가지로 분석하여, 그 각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3보야말로 중생들이 번뇌의 고통을 떨치고 안락을 얻게 되는 길잡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이 품에서는 중생들이 부처와 교리와 승단을 믿고 따르도록 설하고 있다.
제2권 제2「다라니호지국계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여러 보살마하살과 사천왕 및 여러 천신들에게 육바라밀다를 설명하고 다라니를 호지(護持)하고 서원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또한 육바라밀의 다라니를 호지하는 공덕에 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육바라밀은 모든 부처를 낳은 어머니이며 모든 부처가 의지하는 보배라고 하였다.
제2권 제3「발보리심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아직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마음을 내게 하는 다섯 가지의 뛰어난 마음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즉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는 자비심과 깨달음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마음 등이 그것이다. 이미 발심한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뛰어난 마음으로 대승의 보살 수행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품에서는 보살이 중생들을 구제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굳은 마음을 끝까지 가져야 한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제3권 제4「불퇴전품」의 내용 : 이 품에서도 부처님은 자씨보살의 질문에 대해서 답하는 형식으로 설하고 있다. 이 품에서는 제3품에서 말한 내용에 대해서 보다 더 상세하고 광범위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보살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자비심을 가지고 용맹 정진하되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는 확고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보살이 외도의 편에 떨어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제4권 제5「보시바라밀다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진정한 보시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보시에는 재물보시와 법보시, 두 가지가 있지만 법보시가 훨씬 뛰어난 것이라 한다. 또한 소시(小施), 대시(大施), 제일의시(第一義施)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참되고 원만한 보시가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제5권 제6「정계바라밀다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흔히 지계 바라밀다라고 하는 수행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정계바라밀다를 수행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간탐(?貪), 진에(瞋喪), 염욕(染欲) 등이다. 이 3대 장애를 멀리 떠나고 열 가지 정계바라밀다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10종 정계란 몸에 대한 세 가지 정계와 말에 대한 세 가지 정계, 뜻에 대한 세 가지 정계를 말한다. 살생과 도둑질, 음행 헛된 말,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 열 가지를 범하지 않고 10선(善)을 이룬다면, 또한 그 각각의 선행에 대한 과보를 네 가지씩 얻을 것이라 한다. 그 밖에 보살이 지켜야 할 금계(禁戒)로서 65가지를 제시한다. 이 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계율을 지키도록 하므로써 신성한 불교를 보호할 것을 설하고 있다.
제6권 제7「안인바라밀다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흔히 인욕 바라밀다라고 하는 수행법을 말한다.안인바라밀다에는 32가지가 있다. 즉 무탐(無貪), 불해(不害), 무진(無瞋), 무한(無恨) 등 어떠한 곤경과 고통마저도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 곧 보살의 인욕이라 하면서, 그 까닭은 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 밖에도 12처인(處忍), 8정인(正忍), 8사인(邪忍) 등을 설명한 뒤, 구경인(究竟忍)을 얻어서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있다.
제7권 제8「정진바라밀다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신(身)·구(口)·의(意) 삼업 중에서 의업이 가장 뛰어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의업(意業)은 정진과 퇴전,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정진바라밀다를 수행하므로써 얻을 수 있는 과보로서 10종 승사(勝事)를 열거하고 있다. 육바라밀다 중 정진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바라밀다는 모두 정진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제8권∼제9권 제9「정려바라밀다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정려(靜慮), 즉 선정(禪定) 수행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16가지의 정려를 설한 뒤에 성문·연각의 정려와 달리 보살의 명상은 오직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고 말한다. 또한 정려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다섯 가지 번뇌에 대해서 설명하고, 4무량심(無量心)을 비롯하여 월등 삼매의 뜻을 설하고 있다. 즉 정려바라밀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을 통하여 수천 수만의 보살들이 갖가지 지혜로운 삼매를 얻은 내용에 대하여 자세히 열거하고 있다.
제9권∼제10권 제10「반야바라밀다품」의 내용 : 이 품에서는 앞서 말한 다섯 가지의 바라밀다를 닦기 위한 근본이 되는 것이 반야바라밀임을 설명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들은 바로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고 하며, 반야바라밀다를 닦지 않고서 깨달음이나 해탈을 성취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밖에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되는 열 가지 및 7무진(無盡), 8선교법(善巧法) 등을 설하고 있다. 이와같이 본 경은 대승 반야사상을 육바라밀다의 수행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밀교적 수행법도 함께 서술되어 있어 밀교부경전으로 분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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