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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가야역사를 찾아서-고령 글/사진: 이종원
잃어 버린 가야역사 한반도 이남에 진(辰)이라는 세력이 있었다. 기원전 2세기경 고조선이 망한 뒤 유민들이 남하하면서 이 지역 토착세력과 함께 새로운 연맹체가 결성되었는데 그것이 마한, 진한, 변한이었다. 마한은 백제국으로 통합되었고, 대구 경주지방에서 발전한 진한은 신라 성립의 기틀이 된 사로국으로 성장하였고, 김해, 마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변한은 가야연맹체로 발전하였다. 4세기경까지 신라와 대등한 세력을 자랑했던 가야는 하루아침에 멸망해 버렸다. 역사는 패배자에게는 매몰찼다. <삼국사기>에서는 아예 가야사는 빼 버리고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가야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것을 두어 한반도 남단을 식미지배했다고 왜곡하기에 이른다. 일본이 황당한 페인트로 덧칠한 이유는 바로 가야역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야가 어떤 나라이며 왜 멸망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오로지 쓸쓸히 남아있는 고분만이 당시 화려했던 가야역사를 항변하고 있었다. 그 고분의 껍데기를 벗길수록 1500년동안 간직했던 고대문화의 장막이 서서히 걷어지고 있었다. 흙의 질감이 고스란히 담겨진 굽다리접시, 풀잎모양의 금관, 둔탁한 철기무기들에는 가야의 부드러운 곡선미와 풍만함이 가득차 있었다.
지산동고분 고분은 신라나 백제 고구려와는 양식이나 그 위치가 확연히 다르다. 금관이 신라와 다르듯, 토기가 백제와는 다르듯 가야는 영호남과 북방 맹주들 틈바구니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고분은 주변에 산수를 두르고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라 수 백기가 도열병처럼 서 있었다. 경작지가 부족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후손을 생각하는 마음씀씀이가 엄마 젖가슴처럼 포근하기 그지없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가 함께 공존하는 곳. 바로 지산동 고분군이다. 주적주적 비가 내린다. 희뿌연 운무까지 슬며시 무덤을 덮고 있다. 잊혀질 것 같고 지워질것 같은 가야의 발자국이 숨죽이며 1500년을 걸어왔다. 가야의 고분은 산성을 배후에 두고 정면에 도시와 평야, 강이 한 눈에 내다보이는 능선의 정상부에 봉토를 쌓아 올린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형봉분은 지름이 20m나 되고 소형분들은 대형분 주변에 흩어져 있다. 부드러운 산자락 위에 밥그릇을 엎어 놓은 200여 고분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에 동화되고 있었다.
3개의 돌방과 32개의 작은 돌넛널이 발견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44호 고분이다. 최소한 33인 이상을 순장시키고 있었다.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공존하는 곳. 고분을 거닐다보면 물욕이 한낱 깃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가야 왕릉전시관 국내 최초로 순장무덤으로 확인된 지산동 44호분 내부를 원래 모습대로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다.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식, 주인공과 순장자의 매장모습, 부장품의 종류와 성격까지 직접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무덤 주인의 돌방이다. 각종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32개의 작은 돌덧널이 주인의 무덤 주위를 감싸고있다. 32개의 돌덧널 가운데 22개에서 24명분의 사람뼈가 나와 모두 순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가야 박물관 2005년 4월에 개관한 대가야 박물관은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연간 1-2회의 기획전을 개최할 수 있는 기획전시실과 어린이체험학습실, 야외전시장도 갖추고 있다.
가야의 토기는 직선적인 신라토기와 달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미가 자랑이다.
신라의 토기는 굽의 홈이 교차되어 있는 반면 가야토기는 홈이 일직선으로 내려온다.
보주형의 장식 3개가 보이며 관테의 길이로 보아 아이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야의 철은 일찍이 국제적으로 명성이 나 있어 중국이나 왜에 수출을 할 정도다. 가야의 철갑투구와 갑옷이다. 이 갑옷은 일본의 고분에도 출토되어 가야의 철기문화 수출을 말해주고 있다.
어린이 체험학습실에서 탁본 뜨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고분으로 향하고 있는 아이들
양전동암각화(보물 605호) 이 암각화는 1971년 발견되었으며 높이 3m, 너비 6m의 산비탈에 위치하며 동심원과 십자무늬, 가면의 탈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동심원은 해와 달을 상징하고, 십자형은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17점의 가면형은 사람의 얼굴 형태를 띄고 있다. 농경의식때 고대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에 귀한 자료다. 탁본에 의해 훼손되어 형태를 파악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고령에는 양전동 뿐아니라 안화리등 다양한 암각화가 분포되어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드문 암각화의 고장이다.
도토리를 줍고 있는 마을 할머니가 모델을 섰다. 이 할머니의 수 백대 조상이 바로 이 암각화의 주인이다.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가야금의 고장-고령 왜 신라금이라고 하지 않고 가야금이라고 했을까? 바로 대가야 출신의 우륵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3개 악성인 우륵은 대가야의 가실왕의 명을 받아 우리나라 전통악기를 대표하는 가야금을 제작하게 된다. 가야금곡 12곡을 작곡했는데 그 곡의 이름만 전해진다.
대가야문화학교 우륵의 피를 이어받은 가야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그 맥을 이은 사람들이 대가야문화학교를 이끌고 있다. 이 곳에서는 가야금을 배울 수 있는 체험코스가 있다. 30분만 연습하면 아리랑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흥미를 끈다. 이 밖에 창,칼을 이용하여 팔만대장경의 의미를 생각하는 판각체험도 있고, 고인쇄 체험을 통해 인쇄의 과학을 알 게 해준다. 한지공예체험, 도예체험, 황토체험 코스도 있다. 대가야 문화학교 054-954-0080
가야금은 재질은 오동나무이며, 명주실 12줄을 만들어 오른손으로 음을 뜯고 왼손으로 바깥쪽을 움직여 소리를 조절한다. 가야금의 윗판은 하늘을 , 평평한 아랫쪽은 땅을 상징하며, 그 속이 빈 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뜻한다. 12현은 일년이 열두달을 의미한다.
가야금을 배울 수 있는 체험코스가 있다.
다도체험도 가능하다.
대통대맛 샤브샤브집이다. 각종 해산물과 한우를 버섯국물에 데쳐서 먹는다. 그 국물로 칼국수를 끓여먹고 공기밥이 아니라 대나무통에 찐 밥이 나온다. 메뉴: 죽력백숙,샤브샤브, 한방수육, 생삼겹살, 대나무오곡밥, 콩나물해장국밥 고령 기아자동차 옆 054)956-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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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이곳도 갈 예정이신가요?? 百眼而不如一行이라..ㅎㅎ^^*
항상 멋진 곳을 가보고 체험하게 해주시는 대장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갈곳은 많고 시간은 없고....그래도 틈나는대로 돌아다녀야겠죠..
감사합니다.. 가까운데 이런곳이 있는줄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