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답사 : (의성) 탑리역-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2)
1. ‘산성’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탑리역의 역사는 이곳이 특별한 역사문화적 현장임을 알려주는 표시인 듯했다. 탑리역에서는 양 방향으로 가게 되면 우리 문화의 소중한 유산을 만날 수 있다. 먼저 왼쪽으로 이동했다. 약 10분 정도 금성면 탑리의 중심 지역을 이동하면 국보 77호 ‘탑리5층석탑’의 굳건한 모습과 조우한다. 1000년이 넘는 시간의 풍상 속에서 탑의 표면은 검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탑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석재들은 여전히 단단하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탑은 석탑 이전에 만들어졌던 전탑과 목탑의 건축유형의 흔적을 갖고 있는 석탑으로 다양한 형식을 하나의 탑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수직으로 치솟는 탑의 상승미와 상승을 뒷받침해주는 탑신의 단단함은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모습 속에서 여유로운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최고의 탑은 부분에서 발견되는 정연하고 질서잡힌 모습이 전체적인 조화와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이상적인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2. 역의 반대 방향으로는 약 20-30분 정도의 거리에 ‘조문국 사적지’를 만나볼 수 있다. ‘조문국’, 조금은 낯설은 이 말은 의성에 대한 오래된 명칭이다. ‘조문국’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185년에 신라에서 군사를 보내 조문국을 함락시켰다는 기록뿐이다. 신라가 고대왕국의 체계를 갖추기 전에는 많은 부족국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을 통치하는 시대였다. 바로 ‘의성’지역을 다스리던 부족국가가 ‘조문국’이었던 것이다. 학자들의 견해로는 185년에 신라에 복속된 기록보다는 후대인 3-4세기 신라의 영향권에 들었을 거라고 본다. 그 후에도 신라는 그 지역의 유력자들에 의한 간접통치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조문국은 5-6세기까지 독자적인 문화와 정치체계를 유지했을 거라고 추정된다. 금성면(탑리, 대리리 등)등에서 발견되는 고분들은 중대형의 크기를 가졌고 상당히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다. 가야 지역 고분들 못지않은 크기와 넓이를 갖고 있던 강력한 지배자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3. 특히 금성면 대리리의 고분에서는 특별한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다. 대리리 2호분는 두 개의 무덤이 이중으로 축조된 형태로 건축되었는데, 그 곳에서 순장이 흔적과 함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대리리 고분은 약 5-6세기에 만들어진 무덤들인데 그 시대까지 ‘순장’ 풍습이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대리리 2호분은 현재 고분군 건물로 바뀌어서 과거 슬픈 순장을 흔적을 담은 무덤의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가까운 탑리 고분군에서는 ‘금동관’이 발견되었다. ‘금동관’을 사용했다는 것은 독자적인 지배체계가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금동관의 형상은 현재 금성면사무소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4. 이렇듯 의성은 오래전에 ‘조문국’이라는 독자적인 왕국이었던 것이다. 고분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순장의 흔적이나 금동관 이외에도 수많은 토기들이 포함되는데 토기의 형태가 다른 지역과 이질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발전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독자성은 조문국의 무덤 형식이 대부분 변형된 ‘적석목곽분’이라는 점에서도 좀 더 분명해진다. 조문국 대리리 고분군에서 조금 이동하면 조문국의 역사와 유물들을 종합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조문국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 조선시대 허목이 ‘조문국’을 그리면서 지은 시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고대 왕국에 대한 기억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5. 의성의 ‘조문국 사적지’에는 과거에 행해졌던 야만스런 순장의 풍습이 남아있고, 그러한 풍습을 강요할 수 있었던 권력의 실체가 잔존하고 있다. 신라에 복속되었음에도 오랫동안 지배할 수 있었던 역사적 시간이 남아있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 남아있는 것이다. 고대의 역사와 지배관계 그리고 그 시대의 풍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안내는 부실한 느낌을 주었다. 고분 사적지도 잘 정돈되어 있었고, <조문국박물관>도 상당한 비용을 들여 현대식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 곳을 찾는 안내가 많지 않은 느낌이었다. 특히 <탑리역>에서 이곳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다. 답사를 마친 후 안내원에게 전달한 것처럼, 역 앞에 양 쪽으로 갈 수 있는 문화재에 대한 정보(명칭, 방향, 거리 등)가 상세하게 만들어져 있다면, 탑리역의 위상은 좀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훌륭한 문화적 자원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조문국 사적지 안내가 부실한 것처럼, 탑리5층석탑으로 가는 안내 또한 부재하였던 것이다.
6.의성의 <탑리역>은 우리의 소중한 역사문화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역이다. 지난 번 차를 이용해서 스쳐 지나갈 때 발견하지 못했던 보물같은 과거의 역사가 숨겨져 있는 곳이었다. 언제든 기차를 타고 다시 찾고 싶은 ‘가고싶은 역’ 중에 하나로 선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을 알게 되었다. 현재 옆쪽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철로가 완성되면 <탑리역>은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었던 것이다. 역무원에게 문의한 결과, 새 철로가 만들어지면 <탑리역>과 <화본역>은 사라지고 새롭게 <군위역>이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오래만에 발견한 멋진 역이 사라지는 것이다. ‘잊혀진 왕국’의 발견은 ‘잊혀질 역’과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역 앞 카페 여주인에게 역의 사라짐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자 대수롭지 않게 버스를 타고 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역에서 내려 걸어서 특별한 장소로 가는 즐거움을 모른다. 그저 장소에 도착하면 그것으로 역의 역할을 끝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역들이 그렇게 바뀌고 있다. 빨리 내가 원하는 장소에 이동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사이에서 만나는 철도의 낭만적인 기억과 흔적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무관심 속에서 철도와 역의 오래된 기억은 잊혀지고 있는 것이다. 역에서 이어져 만나게 되는 특별한 느낌의 장소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장소의 소멸은 사라져가는 ‘철도’의 현재적 모습이었다.
첫댓글 - 소멸, 기억, 흔적......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