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생가
장마를 밀어낸 향기
나는 며칠동안 계속되는 비 소식에 코가 석자는 빠져있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인터넷에서 날씨를 검색하니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나는 '이때다'싶어 일찍부터 외출 준비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카메라용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었다. 전날 대천의 한 행사에 다녀오면서 충전되었던 것이 다 소진되고 소멸의 빨간 불을 보았기에 나는 충전기에 배터리를 집어넣었다. 붉은 빛이 신호가 되었고 휴대전화 배터리도 충전을 시키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훨씬 넘게 지나는 동안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간단한 샤워를 하고, TV를 시청하면서 군인들이 노인들을 찾아가 효도를 하는 감동의 시간을 가지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작은 손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아직까지 아내는 잠자리에 있어 살금살금 빠져 나와서 아파트 광장을 걸었다. 하늘은 회색구름이 가득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원 시인(詩人)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 것은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오랜만에 시외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도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고 청양에 도착했는데 버스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시장구경을 했으나 장날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들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칠순이 넘은 듯한 할머니께서 옥수수를 팔고 계셨고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생각나서 옥수수를 한 봉지 샀다.
버스에 올라 삼 십 분이 넘게 달리자 부여 시외버스 터미널에 닿았다. 부여에 몇 번 와 본적이 있었기에 감을 믿고 출발했다. 버스터미널에서 1킬로미터이니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앞으로 향했다. 잠시 발걸음을 떼어놓고 갔을 때 신동엽 생가를 알리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게 웬 횡재인가?'라고 생각하면 큰 도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백 미터쯤 들어가자 신동엽 생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껍데기는 가라」로 잘 신동엽(申東曄)의 생가를 언젠가는 가 보리라 생각했는데 생각하지도 않은 곳에서 만나니 참 기분이 좋았다. 1967년 신구문화사 간행 《현대한국문학전집》 제18권 《 52인 시집》에 〈껍데기는 가라〉를 비롯, 7편의 시를 실었고 같은해에 장편 서사시 〈금강 錦江〉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문단적 위치가 일약 부상하였다.〈금강〉은 동학란을 소재로 한 ‘이야기시’로서 그의 시 세계를 대변하여주는 작품이하고 하는데 그의 대표작인「껍데기는 가라」는 다음과 같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문학기행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문인들의 살던 옛집이 잘 정돈이 되지 않았거나 폐허로 남아있는 것이 많이 있는데 신동엽의 집은 그래도 보존상태가 괜찮아 보였지만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그 곳을 나와 신동엽시인을 다시 생각하면서 궁남지로 향했다. 궁남지 주차장에 도착하자
제3회 부여 서동 연꽃축제가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 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서동공원(궁남지) 일원에서 개최된다는 현수막을 만날 수 있었다. 부여군에서 서동탄생설화가 있는 서동공원을 사랑의 테마공원으로 개발하여 축제를 열고 있었다. 주자장에서 시선을 던지자 순간적으로 큰 놀라움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궁남지 근처의 연꽃 재배지 에서 수천 수만 송이의 연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으면서 한 쪽 길로 다가갔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연꽃과 연잎이었는데 잿빛 하늘까지 밝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미 미리 자리를 잡은 사진작가들은 사진을 찍기에 바빴고 나와 같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들도 좋은 자리를 찾아서 연신 샤터를 누리기에 바빴다. 붉은 색 연꽃과 하얀 색 연꽃이 자신의 영역에서 피어있었고 꽃이 진 곳에서는 벌써부터 씨앗을 품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꽃대를 올리는 것부터,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연꽃, 그리고 활짝 피어난 모습의 연꽃 그리고 다 피어난 후 씨앗을 머금은 모습까지 다양하게 다가왔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 연꽃을 감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카메라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휴
대전화에 아름다운 연꽃을 담기에 바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었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망원렌즈까지 동원해서 수동카메라로 찍는 사진작가, 나 같이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는 듯한 사람들의 어설픈 동작, 카메라로 부족해서 캠코더로 연꽃의 모습을 담아 가는 사람들, 미처 카메라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일회용 카메라로 궁남지를 담는 사람들, 일반 사진기와 디지털 사진기로 번갈아 가면서 연꽃을 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갑자기 괜찮은 카메라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사 사진을 찍거나 먼 곳에 있는 피사체를 당겨서 찍을 때 2% 부족함을 느끼며 그 때마다 아쉬움을 가지곤 했다.
연꽃을 찍은 후 나는 수련이 재배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사실 수련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노란색, 분홍색, 흰색 그리고 자주색의 꽃을 카메라에 담아놓았다. 아쉬운 것은 물양귀비를 만나길 원했는데 한 두 송이 발견했으나 카메라에 담는데는 실패했다. 잠시 후 나는 부레옥잠을 만났다. 흔하기는 했지만 보라색 꽃을 볼 수 있고 물가에서 촬영을 할 수 있어 근접촬영이 가능해서 큰 다행이었다.
부레옥잠까지 본 후 밖으로 나왔는데 그 곳에서 나리꽃, 원추리, 비비추, 도라지꽃과 이름 모르는 꽃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부여군에서 관람객을 위해서 배려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연을 심은 면적을 점점 더 늘리고 있었는데 관광부여의 초상이 되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서 궁남지로 접어들었다. 그 때 한 두 방울의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걱정이 되었으나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아서 대행이었다.
현존하는 우리 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의 인공조원(造苑)인 궁남지는 사비도성에 위치한 것으로서 무왕 35년(634)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별궁내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우물과 몇 개의 초석이 남아 있고, 연못 안에는 정자와 목조다리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여군은 드라마 '서동요' 촬영지를 유치했다고 한다. '불멸의 이순신'의 촬영지인 부안군이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지방 자치단체에서의 세트장 유치는 관광과 연계하여 수익까지 고려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우리들은 작은 비닐 하우스에서 전시되어있는 수련을 만났다. 그 곳의 수련은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왔다. 카메라를 사용해서 더욱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물양귀비까지 만나는 행운을 얻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 곳을 빠져 나왔을 때 우리들은 배가 고파오는 것을 느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는 한 냉면집을 찾았다. '연꽃냉면'이라는 명칭이 우리들을 불러들였는데 주인은 연근을 갈아서 메밀과 반죽해서 사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연근 한 조각도 냉면 사리 위에 올라가 앉아 있었다. 시원한 냉면을 먹은 우리들은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비가 내렸지만 우리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부여에 몇 번 왔지만 박물관은 처음이었다. 대개 부여에 오면 일반적으로 부소산성과 낙화암과 고란사 그리고 구드레공원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박물관에서 백제문화 및 유물을 만날 수 있었으나 박물관에 갈 때마다 역사에 대해서 문외한(門外漢)인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 곳을 지나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에 우리들은 정림사지에 닿았다. 마침 문화해설사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어 나도 귀동냥을 통해서 몇 가지 주워들었다. 정림사지에는 백제시대의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과 고려시대의 석불좌상이 남아 있어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법통이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라고 한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곳을 나와서 우리들은 줄곧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빗방울의 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끼며 터미널에서 한참을 기다려 버스에 오르며 다음에 부여에 올 때의 다른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궁남지에서 만난 연꽃의 은은한 웃음과 향기, 정림사지와 박물관에서 만났던 조상들의 은근한 문화에서 흘러나오는 역사의 향기는 나로 하여금 장마를 밀어내게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20050711
첫댓글 즐거운 여행이었을 꺼란 생각이 드네여.. 좋은글따라 잠시 쉬어갑니다.
맞아요. 문학기행겸 연꽃과의 대화 겸 역사의 향기를 얻어오기도 했지요
박물관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울엄마 사시는 친정인데.... 저도 내일 엄마한테 갑니다. 택시타면 궁남지 쪽으로 가지요. 덤으로 연꽃도 보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꼭 들려보세요. 아마 내일쯤 피크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 ! 그는 누구의 넋이 피었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