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과 대권을 향한 열린우리당 중앙당의 기류가 복잡하게 얽히는 것 못지않게 지방의 열린우리당도 요즘 다시 부산해졌다. 내년 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충북에선 시·군별 당원협의회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장 선임이 29일 음성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현행 국회의원 지역구가 아닌 기초자치단체 권역으로 구성되는 당원협의회는 전당대회는 물론 향후 지방선거와 총선, 그리고 대선의 공직후보 결정에 결정적 ‘키’를 쥔다는 점에서 당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야말로 막강하다. 이미 당권을 노리는 몇몇 인사들이 여론조성차 지역을 다녀 갔고, 도내 현역의원들도 당원협의회의 추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군별로 선출된 준비위원장은 내년 3월 전당대회 이전까지 당원협의회 구성을 마쳐야 한다. 당원협의회는 6개월 이상 당비를 내는 기간당원(진성당원)으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정치권이 지난 17대 총선을 계기로 입이 닳도록 외쳐왔던 참여정치의 실체적인 ‘현실 접목’이 되는 것이다.
지난 26일 있었던 청주시 준비위원장 선출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당초 당내 분위기는 청주시 고위직을 지낸 방효무씨(64·전 청주시흥덕구청장)를 추대형식으로 선출하는 쪽으로 모아졌는데 일종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투표에 참여한 일부 당원들이 경선을 주장해 난상토론이 벌여졌고, 투표는 오후 늦게야 방효무씨와 손현준씨(충북대의대 교수)의 경선으로 치러져 66표 대 35표로 방효무씨가 선출됐다. 손교수(42)는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역시 친노계열인 국민의힘 충북대표를 맡고 있다.
준비 안했어도 선전한 이유?
경선이 끝난 후 손교수가 얻은 35표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물론 정당생활을 오래한 구 당직자들은 35표에 대해 깜짝 놀랐다. 자신들의 시각에서 보면 예상 외의 득표였기 때문이다. 손교수는 별다른 준비없이 경선에 참여했다. 사전 연락을 충분히 받지못한 상태에서 부랴부랴 참석한 노사모와 국민의힘 회원들의 강한 천거에 의해 경선에 나선 것이다.
한 노사모 관계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자체 후보를 냈지만 처음부터 확실한 당선을 목표로 덤벼든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누가 준비위원장이 되든 상관없다. 다만 그 절차에 대해 견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과거처럼 몇몇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자신들의 ‘원안’대로 회의를 몰고 가려고 했다.
청주권 국회의원들이 이미 방효무씨를 준비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정당 행사에서의 짜고치는 고스톱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여전히 그런 관행과 구습을 답습하는 것같아 제동을 건 것이다. 그래서 급하게 자체 후보를 냈고 예상 외로 선전했다. 꼭 노사모나 국민의힘 등 정치적 신념을 같이 하는 당원 뿐만 아니라 일반 당원들의 지지가 많은 것에 나도 몰랐다. 미리 충분하게 준비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도 가능했다고 본다. 행사가 평일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쪽에선 어차피 참여율이 저조할 수 밖에 없었다.”
조용화씨(61·전 충주시시민생활지원국장)를 준비위원장에 선출한 충주 행사에서도 노사모측에서 후보를 내려고 했다가 향후 준비위원회 구성시 위원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약속받는 선에서 본인이 자진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원군에선 현역인 변재일의원(57)이 직접 준비위원장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때문에 향후 당원협의회 구성시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당 관계자는 “본인의 의지가 강해 준비위원장을 직접 맡은 것으로 안다. 이처럼 현역의원이 준비위원장이나 협의회장을 맡을 경우 조직운영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공직후보 선출이나 경선시 입장을 달리하는 측에게 역공의 빌미를 안길 수 있다. 비록 당원들의 합의에 의한 것이어도 앞으로 원칙을 준용한 운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당원지지 얻지못하면 정치도 “끝"
실제로 손교수가 얻은 35표는 그동안의 당 조직문화에 익숙한 당직자나 구 당원들에게 ‘경종’을 안겼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계기로 줄곧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제기됐던 참여정치의 기미가 분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앞으로는 당원들의 자발적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치적 입신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개미군단으로 통칭되는 노사모와 국민의힘 회원들 중에 청주권에서 OFF-LINE 활동을 하는 숫자는 불과 15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는 당사자들도 인정한다. 나머지는 이른바 사이버상에서 정치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특정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결국 손교수가 얻은 35표는 노사모나 국민의힘 소속 회원 뿐만아니라 일반 당원들의 지지도 많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탈표(?)를 손교수 득표의 절반 이상으로 분석하는 의견들도 많다. 당연히 기득권에 안주하던 구 당직자나 당원들은 이러한 현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향후 여파를 여러 각도로 점쳐볼 수 밖에 없었던 것. 확실한 것은 당원들의 인식변화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과거 당의 지방조직은 그저 몇 사람이 움직이는대로 갔다.
그러나 이번 청주시 당원협의회 준비위원장 선거처럼 지금은 확실하게 달라지고 있다. 정치를 오래 한 나같은 사람들도 이를 실감한다. 물론 중앙 정치권의 영향이 크겠지만 어쨌든 이는 한국 정치가 추구할 대세임엔 틀림없다. 이런 참여형 정치가 지난 17대 총선에서도 일부 시험됐지만 앞으로는 더 두드러질 것이다. 당원이 정당의 주인이 되고 이런 당원을 무시할 경우 정치도 어렵다는 걸 조만간 절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