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이후로 시작된 이번 문명시기에 노자 예수 붓다 등이 동서양에 내려와 진리를 전했는데, 神이 하늘에 머물면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왜 인간세상에 태어나서 활동하는 가에 대한 질문에 인도의 성자 마하르쉬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명을 받은 존자(尊者)들이 자기 헌신자들과 함께 지상에 강림합니다. 그 존재들은 무상공덕(사심없이 지은 공덕행위)을 지은 사람들에게 은총을 주기 위해 化身이 됩니다. 그들은 또한 죄인을 벌하기 위해서도 옵니다. 그들이 지니고 오는 사명을 완수하고 나면 그들은 예전의 지위로 돌아갑니다. "
법륜대법 李洪志 사부님은 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말씀하셨으니 진리를 탐구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인류의 타락과 각자(覺者)의 출현
인류의 타락은 예수가 말한 하와(夏娃) 그때부터 시작한 것만이 아니다. 이 지구는 문명과 원시(原始)의 시대가 한 차례뿐만이 아니었고, 사전(史前)의 문명 그것 역시 훼멸되었다.
때때로 지구는 철저히 훼멸되거나 혹은 새롭게 바뀌어 완전히 새로운 지구로 만들어졌다. 인류는 겁난(劫難)을 말하지 않는가? 사실 종교에서 하는 말이다. 매번 어느 시기에 이르면 한 차례 큰 겁난이 일어나고, 매번 어느 시기에 이르면 한 차례 작은 겁난이 일어난다.
작은 겁난에서는 어느 일정 지역의 인류가 훼멸되는데, 어느 일정 지역이 몹시 나쁘게 변하면 바로 그것을 없애버린다. 지진이 일어나거나, 대륙판이 가라앉거나, 모래폭풍으로 덮어버리거나, 혹은 무슨 전염병이 돌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인데, 작은 겁난은 국지적이다.
큰 겁난, 그것은 거의 전 인류적인 겁난이다. 이런 큰 겁난은 오래고 먼 연대를 거쳐서야 비로소 한 차례 일어난다. 이 지구의 운행과 물질의 운동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도 법칙이 있다.
운행과정 중에 일어나는 큰 겁난은 인류가 완전히 훼멸 상태에 처함을 말한다. 하지만 소수 사람이 살아남아 일부 사전문화를 계승하여, 마치 석기(石器)시대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노동도구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다음 한 세대에는 더욱 나빠지며 많은 것들이 모두 실전된다.
다시 원시상태에서 번성해나가 문명과 과학기술이 나타난다. 인류의 부패에 따라 또 겁난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성(成)·주(住)·괴(壞)의 주기적 변화가 시기를 달리하여 일어난다.
다시 말해 인류는 예외 없이 패괴(敗壞)되게 마련인데, 매 시기 문명이 나타날 때마다, 늘 천신(天神)은 일부 대각자를 속인사회에 파견하여 사람을 제도한다. 목적은 바로 지구에서 사람의 사상과 물질의 패괴가 비례하지 않게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이 우주 중에서 지구를 구성하는 일체 물질은 모두 일종의 특성이 존재한다. 이런 특성이 있어야만 비로소 원시적이고 무형적인 것을 유형적인 물질, 생명이 있는 물질로 이뤄낼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이 아직 패괴되기 전에 만약 인류의 사상이 패괴된다면, 이것은 허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매번 인류의 문명이 출현하고 인류의 문화가 출현할 때면 대각자가 나타나는데 각기의 사전시기마다 대각자가 나타났다.
이번 차례 문명에 예수, 석가모니, 노자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과 같다. 매 시기 문명이 출현한 지역은 각기 다른 각자가 책임을 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지를 가르쳐, 도(道)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원만케 하고, 속인에게는 德을 중히 여기게 하여, 인류의 도덕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게 하고 사람의 사상이 쉽게 패괴되지 않도록 한다.
궁극적으로 전반 우주물질이 모두 패괴될 때 그때는 더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오래고 긴 과정이다.
이 시기에 이런 각자가 하는 일은 인류가 패괴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수련하여 도(道)를 얻을 수 있게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윈이 말한 것처럼 원숭이에서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류 스스로 자신을 짓밟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우주의 각개 공간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왔다. 그가 그 한 층 우주 법(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을 때 그는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우리가 말한 것처럼 속인의 마음(凡心)이 중(重)할수록 더욱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줄곧 속인 이런 상태까지 떨어져 왔다.
고급 생명이 볼 때 사람의 생명은 당신에게 지구에서 사람이 되라는 것만이 아니며 당신으로 하여금 지구에서, 미혹된 이런 환경 중에서 하루빨리 깨닫고 되돌아가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참뜻으로 당신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
되돌아가지 못하면 업이 커져서 훼멸될 때까지 계속 윤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구에는 곧 여러 차례의 겁난이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구는 바로 우주의 쓰레기장이다. 끝없이 방대한 우주에는 무수한 성계(星系)와 무수한 별(星球)이 있으며 별마다 모두 생명체가 있다.
사람은 다른 공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생명의 존재를 볼 수 없다. 그 생명체는 동일한 별(星球)의 다른 공간에 있으며 우리 이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속인은 그를 볼 수 없다.
인류는 이 공간의 화성(火星)이 아주 뜨겁다고 말하지만, 그 공간을 돌파하기만 하면 그쪽은 도리어 찬 것이다. 많은 사람이 특이공능으로 태양을 보는데, 보면 볼수록 뜨겁지 않고 더 보면 검은 것이며, 또 더 보면 서늘한 세계이다.
그 생명체가 이 물질공간에서는 이렇게 반영되지만 다른 물질공간에서는 다른 모양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처에 다 생명이 존재하며 사람이 존재한다.
그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조금씩 아래로 떨어지는데 마치 학교를 다니면서 낙제하는 것과 같이 곧 속인 중으로 떨어져 내려온다.
우주 중에서 좋지 못한 사람은 아래로 떨어지는데 우주의 가장 중심인 ― 지구로 떨어져 내려오게 된다.
사람은 속인사회 중에서 윤회하는데 윤회는 꼭 사람으로 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많고도 많은 물질, 많고도 많은 식물, 많고도 많은 동물 심지어 미생물로까지 전생(轉生)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윤회 중에서 모두 자신이 한 모든 좋지 못한 일 ― 업력(業力)이 따라다니게 된다.
생명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德과 업력으로서 영원히 몸에 지니게 된다. 만일 업력이 커서 나무로 전생되면 나무에도 업력이 있게 된다. 동물로 전생되면 동물도 업력이 있게 된다. 지구상의 벽돌, 흙, 돌, 동물, 식물은 모두 업력이 있다.
현재의 말겁시기 사람에게는 먹는 약이나 주사약이 이전과 같은 효과가 없는데,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지은 업이 너무나 많고, 강대하여 원래의 약 효과가 하나도 없고, 그 병을 전혀 없애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센 약을 대량으로 쓰게 되면 사람은 중독된다. 지금 많은 병은 아예 치료하지도 못한다. 지구 전반이 다 이러한데 사실 모든 것이 아주 심하게 패괴되었다.
예수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죄를 감당할 수 있었고, 석가모니부처는 사람을 제도하느라 49년간 온갖 고생을 겪었다. 그들은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럼 무엇 때문에 그들은 사람을 모두 위로 데려가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 한 층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아서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층이든지 어느 한 층의 표준이 있다. 당신이 대학생이 될 자격이 없는데 당신이 대학에 다닐 수 있겠는가? 당신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고 신체가 너무 무거워 올라가지 못한다.
당신의 도덕표준이 어느 위치에 있다면 당신은 바로 그 위치에 있게 된다. 유일한 방법은, 마치 학교에 다니는 것과도 같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올라가고, 남아 있는 것은 갈수록 더 패괴하니 그들은 곧 그를 훼멸(銷毁)해 버리는 것이다. 쓰레기가 이미 썩었는지라, 우주를 오염시킬 수 없기에 훼멸할 수밖에 없다.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는 그것은 부처가 한 말이다. 다시 말해 여래 그 층차 중에서는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주장하지만, 여래를 배로 초과한 그처럼 큰 부처는 속인 중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
더 상관하면 한마디 말에도 속인 중에서는 곧 변화가 생기므로, 더 관여할 수 없다. 그의 역량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더 크다면 지구는 부처의 발가락 하나도 놓을 수 없고, 또 더 크다면 지구는 부처의 솜털 하나도 놓을 수 없다.
부처의 말은 곧 법(法)이다. 말하면 곧 변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구의 일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단지 여래가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보살이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할 따름이다.
여래불(如來佛)은 사람을 속인이라고 하지만, 더욱 높은 신(神)이 아주 높은 층차에 도달하여 되돌아보면 여래 역시 속인이다. 그렇게 높은 신(神)이 사람을 보면 미생물보다도 못하다. 척 보니 이처럼 썩은 곳이니 없애버리자! 훼멸해 버리자!! 지구는 바로 이러한 곳이다.
사람에 대하여 불쌍하다고 말하는 그것은 사람에 가장 근접한 이 한 층의 부처가 말한 것이다. 예수 역시 여래 이 층차이며 노자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 높으면 사람 중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 사람이 그를 불러도 듣지 못한다. 사람이 그의 이름을 불러도 다 그를 욕하는 것으로 되는데 마치 대변 속에서 나오는 소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다.
(출처 ㅡ 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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