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아버지를 갖게 된다. 또한 누구나 언젠가는 살면서 아버지와 이별하게 된다. 내 나이 56년간 함께한 아버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척 힘들고 슬픈 일이다. 아버지와 나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자지간이지만 우리의 대화는 철학, 종교, 정치, 여행, 영화, 시사, 그리고 일상적인 것들을 포함하는 소위 인생사전 같은 대화였다.
아버님의 마지막 50번째의 책이 곧 출간될 예정인데 우리는 그 책의 제목을 '인생사전'이라 정했다. 이당이 쓴 50권의 책의 서문은 아버지 스스로가 쓰셨는데 마지막 2권은 다른 사람들이 썼다. 49번째 책 '철학의 즐거움'은 아버지가 아프셔서 아들인 필자가 썼다. 나는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글을 흉내낼 정도로 아버지를 잘 알고 닮아 있었다. 사후에 출간하는 50권의 책 '인생사전'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지인인 손봉호교수 이동원목사 그리고 평생 벗이었던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쓰게 되었다.
양구에 가면 한국 철학의 두 아이콘 안병욱/김형석을 기념하는 철학의 집이 있다. 먼저 떠난 안병욱의 돌판 묘에는 그의 글씨체인 이당체(물흐르듯한 자유로움의 본인이 명명한 글씨체) 여섯 글자가 돌판에 새겨져 있다. 청정심 청무성(淸淨心, 聽無聲).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맑아야 하며, 그러면 무성(소리없음)을 들을 수 있어. 진리의 소리는 원래 소리가 안 나거든. 자유/사랑/진리/신의 말씀 등은 원래 소리가 없어" 아버지의 돌판 묘를 볼 때 마다 그가 나에게 들려준 아버지의 음성이 기억난다. 아버지는 많은 지인들이 있었다. 가장 절친인 김형석교수도 언젠가는 아버지의 옆에 영원히 같이 계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두 철학자 두 절친이 양구땅 철학의 집에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슬픔에 큰 위로가 된다.
유독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당 안병욱은 여러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과 경험을 아버지로부터 듣는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춘원 이광수를 중학교 때 만나고 도산을 소개받아 도산사람이 된 이야기. 일본유학시절 벗 윤동주, 사상계 주간을 맡으며 함석헌, 장준하, 오랜 친구 선우 휘, 양호민, 현승종, 윤덕선, 그리고 절친 김형석과의 세계여행, 서울고 경기고 제자들인 백남준, 이수성 등, 그리고 나중에 벗처럼 지낸 정주영, 흥사단 단우들, 우리 집에 찾아오는 독자와 제자들,,, 장례식장과 영결식 그리고 하관예배 때 찾아오신 무수한 사람들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성실했던 아버지의 삶을 증언하고 있었다.
양구에 가면 이당 안병욱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을 것이다. 철학의 집에는 안병욱의 어록과 붓글씨 그리고 책과 업적들이 청무성(聽無聲)의 역할을 하고 있다. 77세 아버님의 희수 생신 때 평상시 안 우시던 아버지는 우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의 소원은 통일이 되어서 고향땅 평안남도 용강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어머님의 무덤에서 목 놓아 울고 싶은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소원은 안 이루어 지셨지만 댜행인 것은 북녘 고향땅과 아주 가까운 휴전선 근처 강원도 양구에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다는 사실이다.
노 철학자 아버지에게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나는 '아버지, 철학이 도대체 뭐예요?' 라고 순진한 질문을 하였는데 그때 이당은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라고 무거운 철학적 대답을 하였다. 나는 그것이 그 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면서야 그 심오한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죽어야 되는 인간의 삶속에서 철학은 바로 죽음의 연습이다' 이것이 아들에게 가르친 마지막 아버지의 인생철학 청무성강의였다.
양구에 가면 안병욱이 있다. 아버지의 청무성이 있다. 아버님 편히 계시옵서서 고향이 가까운 양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