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7〕 _평화의전당 박동진 사무처장】 「Ⅶ. 나카이 신부 순례이야기」
비봉에 있는 초등학교에 국제교류수업 제안을 위해 간 적이 있었다. 국제교류수업의 대상학교는 시즈오카의 세이코[聖光]재단학교였고, 그리스도교육형제회[The Brothers Of Christian Instruction/Frères De l'Instruction Chrétienne de Ploërmel]의 라므네[Jean-Marie Robert de La Mennais]의 정신에 따라 설립된 학교이다.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하는 까닭 중 하나는 라므네신부의 동생인 라므네[Félicité Robert De La Mennais]신부와의 연계고리 때문이다. 라므네신부는 쇄신[일일신우일신, AGGiornaMento]의 표본과도 같다. 프랑스혁명의 가치이념인 자유/평등/박애 등이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듯, 한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앞서 나가는 선구자[Avant-Garde]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자유에 있어서도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구체적인 자유들을 표방한 것이 그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랑스 내에서는 보수진영이건 진보진영이건 서로 내세우는 바는 달라도, 자신들의 정신의 뿌리는 라므네신부에게 있다고 말한다. 문규현신부나 나카이신부가 비슷하다. 시대의 가난을 끌어안되 과거의 향수에 연연하지 않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통일에서 환경으로 시대의 흐름에 있어서 무엇 하나 놓치지는 않되 패러다임의 전환에 있어서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철새[?] 사실 철새라는 말 자체도 정치인들 때문에 더럽혀진 개념이 됐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세대의 발걸음을 건네기에 주목한다. 그래서 나카이신부도 인연이 있는 시즈오카에서 순례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시즈오카는 오타줄리아의 사연, 평화사절단의 사연 등도 간직하고 있는 까닭이다. 전쟁으로서의 상처, 선진문물들의 교류 등이 담긴 시즈오카에서 현재 가난의 끝자락인 생태영성을 펼치는 나카이신부를 만난 것도 어쩌면 시대의 가르침을 읽으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시즈오카에서의 생태영성피정지도를 마친 나카이준신부는 오타줄리아의 마지막 유배지인 고즈시마로 향하는 답사에 합류하면서, 자신이 일본어로 번역한 '생태적 회심을 위한 영성적 여정[Parcours Spirituel Pour Une Conversion Écologique]'을 소개하면서 한국어로의 번역도 추천했다. 가는 배편에서 세 번 읽으면서 여러 대목들이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떼이야르드샤르댕이 사막에서 만난 누군가가 온통 무수한 별들과 모래만 남았을 뿐인 곳에서 '아버지' '아버지' 하며 원초적 고백을 했다는 얘기도 그러했다. 벌새 얘기는 깊은 울림을 주며 계속 여운을 남긴다. 큰불 앞에 작디작은 벌새가 작디작은 부리로 물을 머금어 나르니 아르마딜로가 무슨 소용이냐고 하자 '나는 내 역할을 할 따름이다.'고 했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책 속의 감동은 나에게 생태적 회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고즈시마로의 여정은 나와 나카이준신부에게 영성적 깊이로 빨려들게 했다. 천상산[天上山] 정상에 서면 하늘과 맞닿은 사방의 바다가 보일 정도의 유배지인 고즈시마에서 구름 사이에서조차도 쏟아져내리는 무수한 별들은 '어머니' '어머니' 하며 근원적 갈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거기에 희미한 파편처럼 전해오는 오타줄리아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곱씹는 기억 안에는 의사이자 약사로서 마을사람들을 돌보고 살피며 치유한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얘기들도 있다.
지금도 어느 동굴 어느 길섶 안에서 '나는 하느님 앞에[안에] 내 역할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그가 사는 한때 분뇨와 화장터 등의 똥굴마을을 보면서 순례여정에 여기를 반드시 넣으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진 고즈시마의 속내는 나카이준신부의 마음도 이끈다.
사회사목과 이주사목과 난민사목과 생태사목을 하느라 너무 바쁜 일상이지만, 시간을 쪼개고 쪼개는 한이 있어도 오타줄리아의 순례여정을 기꺼이 돕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