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4월30일 사월 마지막 날입니다.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법화경 교재 176쪽 수기품 중에서 "가섭은 광명(光明)여래가 되리라" 라고 하는 그런 내용을 산문형식으로 된 것을 어제는 말씀드렸고 오늘은 이제 게송으로 거듭 설하는 부분부터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어제는 가섭존자가 등장했기 때문에 가섭존자와 관련되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씀드겠습니다
가섭존자는 선종의 초조로서 부처님의 법을 제일 맏이로서 이어받는 것으로 되어있고 아란존자도 역시 이제 부처님의 제자이지만 선종에서는 가섭존자의 법을 이어받는 것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선종에서 일찍이 자랑하고 있는 삼처전심 부처님이 세 곳 에서 마음을 전하였다 라고 하는 영산회상 거렴화,다자탑전 분반좌,사라쌍수 곽씨쌍부 이 이야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두타제일로서 가난한 집만 다니면서 걸식을 했다는 내용 들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게송으로 그분의 수기 받는 내용을 거듭 설하게 됩니다.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2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노라. 내가 부처님의 눈[佛眼]을 가지고 가섭의 장래를 살피니 미래세상 무수한 겁을 지나서 마땅히 성불하리라. 그가 오는 세상에서 삼백만 억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면서 부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으리라. 범행이 라고 하는 것은? 아주 청정한 행 이런입니다. 선행과 또 자기 몸을 잘 단속하는 그런 청정한 행을 범행이라고 하죠. 그래서복과 지혜가 구족(具足)하신 가장 높은 세존께 공양하고 공양, 선을 닦는 일, 보시를 하는 일, 이런 것들이 모두범행으로 들어가죠.
그래서 갖가지 최상의 지혜를 부지런히 닦아 익혀서 최후의 몸을 받고서 성불하리라. 늘 수기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여기서 내용인 즉은 가섭존자가 미래에 이러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 성불한다 라고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되어있지만 이것이 사실은 이미 그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그런 보증이 내용에는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당시 수기이야기를 처음으로 하면서 부터 그렇게 표현을 할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뭐 많은 세월을 지난 뒤에 그것도 아주 보살행을 많이 닦은 뒤에 그래서 비로서 성불할 것이다, 라고 하는 설화 같은 조심성 있는 그런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이 법화경 상불경 보살품에 가서 바로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런 수기를 내리는 일이라든지 뭐 500명을 또는 2천명을 한꺼번에 똑같은 이름으로 수기를 주는 일이라든지 뭐 그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본래성불이라고 하는 그런 취지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하는 형식은 그야말로 하나의 형식을 빌어서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보증하는 것이다. 꼭 이렇게 아셔야 됩니다. 여기서 잘못 이해하면 꼭 이러이러한 조건이 따라야만 비로소 부처가 된다 라고 이렇게 알고있게 되면은 그것은 크게 수기의 의미를 잘못 아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 국토는 청정하여 유리로써 땅이 되고 여러 가지 보배나무가 가로수로 열을 지었고 황금 줄을 길가에 늘이어 보는 이 마다 기뻐하리라. 항상 좋은 향기를 뿜으며 훌륭한 꽃을 흩기도 하여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으로 나라를 장엄할 것이니라. 그 나라의 땅은 반듯하여 둔덕이나 구렁이 없으리라. 여러 보살 대중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라. 그들의 마음은 부드럽고 화평하고 크나큰 신통을 얻었으며 여러 부처님들의 대승경전(大乘經典)을 받아 지니리라.
또 이런 수수하게 이야기로 이렇게 내려가고 또 그 나라는 뭐 아름답고 유리로 땅이 되고 이렇게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그런 그 조건들을 다 동원해서 이야기 하고 있지만 땅은 흙으로 되어야 옳지 유리로 땅이 되면 좀 곤란 하지요. 그러나 깨달음의 안목으로 세상을 보았을 때 그렇게 아름답게 비쳐 졌다는 그런 뜻으로도 해석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유의 해야 할 것은 여기에 이제 계시는 대중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그들은 모두 부처님의 대승경전을 받아 지닌다. 이 뜻이예요. 이게 이제 우리 마음에 새겨야 될 대목 중에 하나 입니다. 부처님의 많은 경전 중에서 그 짧은 인생에 아주 훌륭한 대승경전을 익히고 그것을 나의 사상으로 그래 받아들이고 그래야지 무슨 소승경전 같은 것 골치만 아프지 별 소득이 없는 그런 경전을 가지고 세월을 보낼 여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 부디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도록 하라. 언젠가도 말씀드렸고 이건 우리가 자주 말씀을 드리는데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의 연속이 예요.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부터 선택의 연속 입니다.
무엇을 할까?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이 일 부터 할까 저 일 부터 할까 오늘은 같은 시간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몇 사람있다 어느 사람을 만날 것인가? 또 같은 시간에 가야 할 곳이 여러 곳이 있다 또 해야 할이도 여러 가지가 있다 법회를 갈 것인가? 친구들 하고 놀러 갈것인가? 뭐 등등 우리는 하루 가운데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죠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은 우리가 많은 책을 접하는데 있었서 정말 진리릐 말씀 바람직한 가르침을 접하도록 하라 하는 그런 뜻이 담겨져 있어요. 여러 부처님들의 대승경전(大乘經典) 을 받아 지니리라. 이렇게 이제 표현하는데 속뜻이 깊습니다.
저의 스승님이신 탄허스님께서 신문을 잘 읽지 않으세요. 신문을 잘 않 읽고 무슨 사회 변동이 크게 날 때 저희들보고 그 오늘 뉴스 정치면 뉴스 무슨 사건이 터졌다면 그 사건에 대해서 들어서 알면 그 사건에 대해서 좀 읽어봐라. 그렇게 본인은 읽지 않습니다. 본인이 읽지 않고 무슨 사회적인 어떤 이슈가 있으면 그 문제에 대해서 들어 볼려고 읽어봐라 라고 그렇게 해요.
그것도 한달에 뭐 불과 한두 번이나 많아야 두세 번 있을 정도 밖에 안됩니다. "스님, 왜 신문을 안 읽으십니까? 세상에 신문 않읽는 사람이 어디 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따져어요 그랬더니 "신문에는 진리의 말씀이 없잖아 진리의 말씀이 없잔아 성인의 말씀이 없잔아" 이러시드라구요. 평생 성인의 말씀을 가까이 해오면서 그기에서 오는 어떤 희열 법희선열을 맛보면서 평생 사셨으니까 뭐 유교가 되었든 도교가 되었든 불교가 되었든 간에 정말 그 뛰어난 머리로 평생 공력을 기울여서 스스로 깨달음을 성취하고 어떤 높은 경지에 이르러간 그분들의 그 뛰어난 솜씨로 정리해서 표현해 놓은 그런 진리의 말씀 성인의 위대한 말씀에 이런데 맛을 들여 놓으니까 도대체 신문이라고 하는 것이 읽을가치가 없다는 거예요.
재미가 없단 거죠. 차라리 논어 맹자를 읽을 망정 그 신문 그것 읽고 그렇게 시간을 낭비을 할수 있느냐. 이런 뜻이 예요. 그런 말씀을 직접 하셨어요. 그 논어 맹자 노자 공자를 스님께서는 늘 외우시잖습니까? 항상 외우는 일인데 그 또 왜 보십니까" 그러면은 "성인의 말씀은 천 번 만 번을 볼 때 마다 즐겁고 희열이 있다," 그래서 보는 것이다 그거기에 맛을 못 들이면은 이해를 아마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기도 합니다
참 그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 같기도 하지만은 아마 그것은 제자들에게 어떤 하나의 삶의 지표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편이 아니였을까. 이런 생각도 이제 들기도 합니다. 신문에는 성인의 말씀이 없다. 진리의 가르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신문을 안본다 그런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들도 듣기 어려운거죠. 저는 직접 면전에서 들었기 대문에 이런 기회에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니라"그 대중들은 대승경전을 좋아하는 그런 대중들일 것이다 이런 표현입니다.
모든 성문대중으로서 새어 흐름이 없는 최후의 몸을 얻은 법왕(法王)의 아들도 또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새어 흐림이 없다`는 것은 번뇌가 없다고 하는 거죠. 그리고 최후의 몸을 얻고 법왕의 아들을 그 바로 다음 생애는 성불한다 하는 그런 뜻에서 법왕의 아들 법왕자라고 그래요. 법왕의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수준에 오른 사람도 상당히 많다 하는 것입니다.
천안(天眼)을 가지고도 다 셀 수 없으리라.그 부처님의 수명은 십이 소겁이 될 것이요 정법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도 이십 소겁이며,상법도 이십 소겁 동안 세상에 머물 것이니라. 광명 세존의 그 일이 이와 같으리라."어제 정법 상법 이야기가 나왔을 때 들려드린 말씀 기억나시지요? 금강경에서는 제 오 오백년을 이야기한다.
첫째는 해탈견고시대요 둘 째는 선정견고요 다문견고요 탑사견고요 투쟁견고다. 이것은 연차적으로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든지 오늘날 이 시대에 살면서도 그 불자가 무엇에 관심이 있나에 따라서 이 각각의 오백년이 그 사람의 삶이 되는 것이다. 절에 와서 뭐 남 잘잘못만 눈여겨 보고 그것만 시시비비 한다면 그 사람은 계속 투쟁견고 시대 사람이고 이렇게 경전공부나 강의나 이런 것을 좋아 하는 사람들은 늘 다문견고 시대에 사는 사람이다.
그 다음에 불교를 이해 하는데 무슨 불상이나 세우고 절이나 세우고 법당이나 세우고 또 그런 것 세운다고 크게 세우고 이렇게 하는 것을 일삼고 또 신도 들도 이제 가시적인 그런 불사만 아무 어떤 환희를 느끼고 또 큰 스님의 어떤 수준도 그 스님이 얼마만한 절을 세웠느냐 또 절을 몇개나 가졌느냐 또 신도들은 그 스님을 몇 명이나 따르느냐 이런 양적인 것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 그런거죠. 그런 이들은 늘 이제 절 크기 신도들이 모이는 숫자 이런 것 가지고 늘 불교의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이제 탑사견고 시대에 사는 사람이다.
정말 한 생각이 오롯하게 화두일념으로 선정에 들어가는 그런 정도의 수준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이 사람은 선정견고 시대 사람이다. 한 생각 툭 터졌어 해탈의 경지에 오른사람은 그 사람은 늘 해탈견고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건 연차적으로 부처님 열반 하신지 제일 오백년 천년 천오백년 이천년이 천오백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틀린 말이 라는 거죠.
대게 그런식으러 해석을 하는데 그렇게 해석하면 곤란한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어제 말씀 드렸지만은 중요한 이야기기에 또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그 불교적 신행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그런 하나의 거울 역할도 하기에 중언부언 이렇게 자세히 말씀 드리게 되었습니다....광명 세존의 그 일이 이와 같으리라" 이래서 가섭존자의 수기내용은 끝나고 목건련 수보리 마하가전련 이 세사람이 수기를 청하는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3. 목건련, 수보리, 마하가전련이 수기를 청하다.
3 이 때 대목건련과 수보리와 마하가전연이 모두 송구스러워하면서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의 존안(尊顔)을 우러러 뵈옵고 눈을 깜박이지 아니하며 소리를 함께 하여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잘아시죠 목건련 사리불과 함께 부처님께 출가하신 아주 뛰어난 제자 부처님의 오른팔 왼팔과 같은 그런 그 역할을 한 제자 입니다. 또 신통제일목건련이시고, 또 수보리는 금강경의 부처님과 대화의 상대 금강경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죠.
해공제일 수보리 공의 이치를 가장 잘 이해한 그런 수보리다. 그리고 가전연은 논의 제일 가전연 그렇게 하는데 세지 변충이 뛰어났던 모양입니다. 잘 따지고 논리적이고 그 논리가 아주 치밀하고 그런 어떤 재능이 있었든 모양이예요.
우리 염화실 법우님 글을 가만히 살펴봐도 어떤 이들은 아주 논리적인 글이 있는가 하면은 어떤 이들은 전체적으로 이렇게 뭉덩거려서 크게 이해 하는 그런 소질을 가진 이들도 있고 여러 가지 듯이 부처님의 제자중에서도 불교에 대해서 또는 인생에 대해서 이해 하는 재능 들이 이렇게 각각 다릅니다.
어떤 법우님이 뭐 염화실의 십대제자라고 해가지고 재미로 설명한 그런 글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불교안에 있어서 나는 어떤 재능이 있는가? 사겨을 잘하는가? 아니면 경전 이해를 잘하는가? 기도를 잘하는가? 참선을 잘하는가? 기도 제일 누구누구 무슨 말씀을 잘하는가 하면 설법제일 누구누구 사경제일 누구누구 이런 몇칭을 붙일수 있을 거예요.
스스로 한번쯤 이 부처님 집안에 식구가 된 이상 그런 것 들도 한번쯤 욕심 내 볼만 합니다. 이게 뭐 십대제자들만의 이리 아니예요. 스스로 한번 그런 생각을 나는 신도 지만은 이 불교안에서 이분야에 대해서는 내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못한다 이런 욕심 최소한도 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아주 깊어 질수도 있고 자기 공부가 아주 크게 될수가 있습니다. 이런 세분이 함께 소리 내어서 게송으로 말하는데.
"위대하시고 훌륭하시고 용맹하신 석가 세존(釋迦世尊)법왕께서 저희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말씀을 일러주십시오. 만약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수기를 주신다면 마치 감로수(甘露水)를 뿌려 열을 식히고 서늘하게 하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흉년이 든 나라에서 온 사람이 홀연히 임금이 주는 음식을 받고도 송구스럽고 의심스러워서 감히 먹지 못하다가 임금의 먹으라는 명령을 받고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저희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늘 소승(小乘)의 과오(過誤)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위없는 부처님의 최상의 지혜를 얻을는지 몰랐습니다. 비록 저희들도 성불(成佛)하리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마음에는 오히려 염려되고 송구스러워 감히 임금님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그 솔직한 마음을 이 세분이 대신 그 피력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모두들 우리가 성불한다,불성이 있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실은 알고 보면 우리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야 그러니 부처로써 살면된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속으로 그것을 흡족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사실 별로 없죠. 그런데 또 알고 보면은 사람외 부처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 해봐도 사람외에 달리 부처가 없어요.
부처 행동만 하면 그 원래 부처인 뭐 속에 있는 부처라고 칩시다. 사실 안 밖이 다 부처인데 속에 있는 부처가 밖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걸 이제 저는 "일행일불사상 이다. 그런 말씀을 해요. 그러니까 사람 내용은 본래로 부처님인데 행동이 부처행동을 한 번할 때 한번 부처님이다. 그것도 방편설 입니다. 방편설이지만은 그렇게 설명하는데 그것도 일리 있는 이야기예요.
예를들어서 5분을 절름발이 연극을 하는데 연기를 자기가 했다고 합시다. 그럼 5분간 그 사람은 절름발이예요. 또 5분간 맹인 흉내를 냈다면 그 사람은 5분간 맹인 입니다. 달리 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5분간의 인생은 이미 지나 갔으니까요.
우리가 5분간 부처님의 흉내를 냈다면 5분간 그 사람은 완전한 부처님 입니다. 5분간은 틀림없는 부처님이예요. 그렇듯이 한가지 행위가 부처님일때 부처님의 행동일때 그사람 이 한가지 행동하는 그 순간은 아주 안밖으로 다 부처님이다 하는 그런 일행일불 사상도 내가 일찍히 주창한 바입니다.
그러나 그 일행일불 사상은 참 그럴듯하죠. 상당히 그렇듯 하고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왜냐 내용은 부처님인데 행동이 그렇지 못 하다 그럼 행동을 1분 동안 한 가지만 부처의 행동을 하자. 그러면은 그 1분 동안 부처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이제 예를 들어 그것이 시간이 길어지고 잦아지고 이러면은 하루에 예를들어 한 시간 부처이든 것이 어느날 두 시간 또 자꾸 부처 행동을 늘려가면 세 시간 부처이고 네 시간 부처이고 다섯 시간 부처이고 이렇게 하루 종일 부처가 도니다고 하는 거죠.
이런 사상이 일행일불 사상 입니다. 하나의 행동이 부처일때 그 사람의 그 순간은 부처님 이다 하는 그런 뜻인데. 사실은 차원이 낮은 사상이지만 또 상당히 의미 있는 사상이기도 해요. 그런데 내가 말하는 사람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인불사상은 인불사상 앞서 이야기 한 것을 이렇게 이야기 하면 어떻겠습니까? 부처님 같은 훌륭한 행동을 했을 때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것이 일생일불 사상이라면 부처님이 24시간 그러면 훌륭한 행동만 하시느냐?
부처님이 화장실도 가시고 피곤해서 쉬시기도 하고 잠도 주무시고 음식도 자시고 또 몸이 아프면 아야 아야 앓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이예요. 아야아야 앓아도 부처님이고 화장실에 가셔도 그대로 부처님이고 무슨 화장실에 간게 부처의 행동이라고 할수 있습니까. 앞서 말한 일행일불 사상과인불사상과 차이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화장실에 가면 간대로 부처님 아닙니까. 그럼 그대로 부처님이란 뜻이예요. 사람 그대로 가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불사상 사람이 부처님 이다 하는 것이 이게 완전무결한 그런 불교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최 첨단 불교 사상이다 이렇게 제가 감히 말씀드리는데. 그래서 화장실에 가셨든 누워 주무시든 음식을 자시든 아파서 뭐 무슨 요양을 하시든간 그런대로 부처님이예요.
그렇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 무슨 좋은일 할때만 부처님이다 이러면 좀 그럴듯 하지만 상단히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 차원을 잘 이해 해주시고 그러나 일행일불 사상도 대단한 사상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불사상은 더욱 발전된 사상이다 완전한 사상이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외에 무슨 조건 무슨 조건 달아 가직서 삼아승지의 세월이 흘러야 되고 뭐 뭘 어떻게 해야 되고 하는 그런 조건이 붙은 그런 성불은 방편이고 저급한 사상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본래로 부처인데 성불 성불하리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은 송구스럽다 그럼 내 이야기는 더 송구스럽죠 그렇게 치면은 나중에 성불한다는 말이 송구스럽다면 일행일불사상도 송구스러운 것이고 인불사상은 더욱 더 송구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법화경을 설하든 때는 2000년 전입니다. 그 때 사람들의 인지와 오늘날 사람들의 인지 오늘날 삶들이 어떤 경험과 지식과 그 모든 이치를 이해하는 능력 이것을 비추어 본다면은 법화경에서 이런 이야기는 크게 이해하기 어려운것도 아니고 사실은 겁낼 일도 송구스러울 일도 전혀 아니라는 거죠.
만일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시면 비로소 기쁘고 편안하고 즐거울 것입니다. 위대하시고 훌륭하시고 용맹하신 세존께서 세간의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시니 원컨대 저희들에게 수기를 주신다면 배가 고픈 사람에게 왕의 음식을 먹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가 말씀드린 인불사상이나 일행일불 사상은 아주 발전된 사상이고 여기에 법화경에 쓰여진 데로 그대로 액면 그대로 우리가 이해하기로 한다면 뭐 이것도 아주 대단한것이고 아주 황송하것이고 그야말로 거지에게 왕의 음식을 차려주고 그 왕이 직접 그 음식을 먹게 했다라고 했을 때 그 영광 그 위대함 그 감동 그 감격이 오죽 하겠 습니까? 우리가 또 그렇게 이해 해도 좋죠. 사실은 그게 법화경을 순수하게 이해 하는 것이다 뭐 깊이 까지는 이해를 못 했다 하드라도 순수하게 소박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보리는 명상(名相)여래가 되리라. 드디어 수기를 내리죠
4. 수보리는 명상(名相)여래가 되리라
4 이 때 세존께서 여러 큰 제자들의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 습니다. "여기 이 수보리는 오는 세상에서 삼백만 억 나유타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 공경하며 존중 찬탄하리라. 내가 늘 이야기하는 예를 들어서 부처님이나 아니면 스승님이나 그런 분들께 위할 수 있는 4가지 조건 공양해야 되고 공경해야되고 존중하고 찬탄찬 해야 된다. 공양.공경.존중.찬탄 이것이 갖춰져야 됩니다.
아 그분 참 존경한다고 아주 정말 그분 존경하는 분이야 어디서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 할때 그렇게 하지요. 그분을 존경만 하고 공양, 공경, 찬탄이 빠지면 불구가 됩니다. 물론 뭐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지만은 경전에 의하면 구체적으로는 공양.공경.존중.찬탄 갖춰져야 된다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항상 범행을 닦아서 보살의 도를 구족하고 최후의 몸으로 성불하리라. 이름은 명상(名相)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니라. 겁의 이름은 유보(有寶)요, 세계의 이름은 보생(寶生)이라하리라.
그 국토는 반듯하여 파리(頗梨)로 땅이 되고 보배 나무로 장엄하였으며 둔덕과 구렁과 모래와 자갈과 가시덤불과 똥 오줌 따위가 없느니라. 보배 꽃이 땅을 덮어 곳곳이 모두 청정하며, 그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보배로 된 누대와 훌륭한 누각에 거처하느니라. 성문 제자가 한량없고 그지 없어서 산수와 비유로 알 수 없느니라. 여러 보살 대중들도 무수한 천만 억 나유타이니라.
부처님의 수명은 십이 소겁이요, 정법(正法)은 이십 소겁이요, 상법(像法)도 이십 소겁 동안 세상에 머물 것이니라. 그 부처님은 항상 허공에 거처하면서 대중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한량없는 보살과 성문들을 제도하리라."
이게 이제 수보리가 명상 여래가 되었을 때 이야긴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수보리는 참 감동을 하시겠지요? 그런데 여기 보면 그 국토는 반듯하여 파리(頗梨)로 땅이 되고 보배 나무로 장엄하였으며 둔덕과 구렁과 모래와 자갈과 가시덤불과...뭐 이런게 없느니라. 고 했는데 법화경을 설한 무대가 된 라즈기리 말하자면 영축산이 있는 그 지역은 참 척박합니다.
모래많고 자갈많고 가시덤불이 많아서 뭐 도대체 우리나라 국토하고 비교를 해보면 도대체 여기에 곡식이 나겠나 할 정도로 그렇게 가시덤불이 많고 척박한 도대체 뭐 경작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곳입니다. 물론 간지스강 유역에는 참 비옥하죠 땅이 그렇게 비옥하고 곡식이 잘됩니다 그러나 법화경을 설한 무대 라즈기리 영축산 주변의 땅 들은 참 척박 합니다.
그것을 생각 할때 여기에 "보배 나무로 장엄하였으며 둔덕과 구렁과 모래와 자갈과 가시덤불과 똥 오줌 없느니라". 둔덕 많고 구러이 많고 모래많고 자갈많고 가시덤불이 많은 그런 법화경을 설한 무대인 지역 들판이 눈에 선해서 그렇게 이런 말씀도 곁들려 드려 봅니다.
이것을 게송으로 거듭 설하죠. 늘 산문으로 하고 다시 반복해서 미진한 것은 더 보충해서 설명하고 우리 마음에 더욱더 깊이 새기기 위해서 이렇게 게송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5.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5 이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비구들이여, 이제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의 말을 들어라. 나의 큰 제자인 수보리는 오는 세상에 성불하여 이름을 명상여래라 하리라. 이런 우리가 아 제자들에게 수기를 주는 이런 이야기는 재밌죠. 뭐 잘알아도 세번 네번 열번 스무번 읽어도 환희심이 나고 재미가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마땅히 무수한 만 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부처님의 행하심을 따라 큰 도를 점점 구족하여 최후의 몸이 될 때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추면 그 몸매가 단정하고 아름답기가 마치 보배 산과 같으리라.
그 부처님의 국토는 깨끗하게 장엄함이 제일이라. 중생들이 보는 이마다 모두가 사랑하고 좋아하리라. 부처님은 그 가운데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리라. 그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수많은 여러 보살들이 있어서 모두 근성이 총명하여 불퇴전의 법륜을 굴리리라. 그 나라에는 언제나 보살들로 장엄하였느니라. 여러 성문 대중들도 이루 다 셀 수 없는데 모두 세 가지 밝음과 여섯 가지 신통을 갖추었고, 여덟 가지 해탈에 머물러 큰 위엄과 공덕이 있으리라.
그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법문은 한량없는 신통과 변화를 나타내시는 일이 불가사의하리라. 여러 천신들과 사람들의 수효도 항하 강의 모래와 같으리니, 다 함께 합장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리라. 그 부처님의 수명이 십이 소겁이며 정법이 세상에 머물기는 이십 소겁이 될것이고 상법도 그와 같이 이십 소겁이 되리라."
이렇게 해서 수보리에게 수기를 주는 내용. 수보리에게 수기를 주는 내용이 산문과 게송이 다 끝났는데 목건련, 수보리, 가전연 세분이 부처님께 수기를 청하는 그런 마음이 그 마음을 우리가 가만히 헤아려 보면 참 재미있어요.
앞에서 같이 나와서 가섭존자가 먼저 수기를 받았죠. 그보다 사리불이 수기를 받았습니다. 그랬을 때 동료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사리불은 벌써 앞에 수기를 주었고 가섭존자도 벌써 줘 버렸고 그런데 수보리나 목건련이나 가전연 세분이 남았는데 자기들 수기에 대한 그런 이야기가 없을 때, 정말 보통 우리들같은 그런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참 그런 점들이 어떻게 보면은 권위만 있는 대승경전이 아니라 아주 지극히 인간적인 어떤 심리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런 생각 듭니다.
오늘 법화경공부는 "수보리가 명상여래가 되리라,"라고 하는 이 대목까지 하고 마치 겠습니다. 오늘 수기에 대한 이야기는 법화경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고 열반을 앞둔 부처님이 최후 유언처럼 정말 가장 중요한 꼭 하고 눈을 감아야 할 그런 이야기 들을 하는 것으로 이 법화경이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래서 법화경이 그런 내용이예요. 언제 설해졌든지 간에 법화경은 그시기에 다가 초점을 맞추고 또 그기에 어떤 의미를 싣고 열반을 하시면서 열반을 앞두고 최후로 가장 중요한 그런 말씀 모든 것을 이야기 했던 것을 총정리 하고 종합하는 그런 입장에서 설해진 것이 법화경이다. 그렇게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정말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꼭 하고 눈을 감아야 할 그런 내용들을 주로 다루고있다 그런데 수기가 여러 번 그렇게 반복 되서 이야기가 되고 있다 라고 합니다. 그럼 수기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걸 이제 우리는 마음깊이 새기고 잘 이해해야 할 그런 우리들의 과제다 이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은 일요일이라서 방송이 없습니다. 내일은 휴강입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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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일행일불사상.... 나무묘법연화경
부처님의 많은 경전 중에서 그 짧은 인생에 아주 훌륭한 대승경전을 익히고 그것을 나의 사상으로 그래 받아들이고 그래야지 무슨 소승경전 같은 것 골치만 아프지 별 소득이 없는 그런 경전을 가지고 세월을 보낼 여가가 없다는 것입니다...나무묘법연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