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번에 연산군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거기서 이런말을 하더군요. 연산군은 명군이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반박해 나가더군요. 연산군이 명군이라는 이유 몇가지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1.연산군은 사냥을 즐기느라 정사를 돌보지 안았다. =사냥은 연산군의 취미였을뿐 정사를 돌보는데 지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당시 여진족의 발호가 심해 연산군이 직접 군대를 움직여 여진족을 토벌하려고 했다고 합니다.(당시 사냥은 군사훈련중 한가지 였습니다.)또한 성군으로 칭송받는 성종또한 사냥을 즐겨하곤 했다는군요. 단지 연산군처럼 드러내놓고 하지는 못했다곤는 합니다만... 2.연산군은 술과 여자를 좋아했다. =이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말입니다. 연산군은 조선왕조500년이나 그런종류의 책에 나온것처럼 술에 미쳤거나. 여자에 절어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지 연산군이 풍류를 즐기는 스타일이었다고 하내요. 그리고 술은 함부로 먹지 않고 꼭 필요할때만 마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도 단지 얼짱 몸짱이 아니라 시를 잘짓고 또 마음이고은 여자를 좋아 했다고 하네요. 또 성종도 연산군과 비교한다면은 비슷하거나 더하면 더했지 덜할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성군으로 칭송받고 연산군은 역시 폭군이군요. 3.성균관 사건. =이는 정말 누구라도 어쩔수 없이 이렇게 해야 했을것입니다. 당시 성균관은 사림들의 후계자들에 모임이라고 할수 있음니다. 매일 왕이 하는 짓에 반대하고 씨부렁 거리고 그런다면은 정말 열받겠죠. 그리고 연산군이 성균관에서 기생들과 술을 먹었다는데;;; 정말 어이 없는 주장같군요. 4.2번의 사화. =연산군은 왕권중심주의자였습니다. 아버지 성종은 사림과 훈구를 적절히 대치시켜 조화를 이루어 냈지만 연산군은 지지기반이 너무 약하여기 때문에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라는 한가지 명분과 또 사림을 없앨 두번째 명분을 가지고 사림을 싹쓸어 버립니다.(이 두가지 사건의 중심원인은 역시 사림이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하겠죠? 왜 한명회등 훈구파 몇을 처치 했냐고. 이에 대한 답은 한명회는 그당시 연산군의어머니가 쫓겨나고 사약을 받을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관참시 됩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한명회는 아마 희생량이 엇다고 봅니다. 당시 훈구파는 관학파의 후계자들로 역시 크게 말하자면은 중앙집권체제 특히 왕으로 권력집중을 기본적 사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림파는 지방분권이죠. 그러니까 신하들 중심으로도 불수 있겠죠. 앞에서도 말햇듯이 연산군의 사상에 걸림돌이 되며 왕권을 강화하는데 정말 방해가 심하겠죠. 그래서 사림파들을 싹쓸어 버리면서 왕권강화를 시도했고 잠시 성공했으나 역시 중종반정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말죠. 5.과거시험을 글짓기에서 시로 바꾸다. =이건 정말 잘한일이라고 합니다. 모든분들도 알다시피 글을 짓는것보다 시처럼 한글자한글자에 뜻을 압축시켜서 글을 쓰는게 더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성리학의 본나라인 송나라에서 시가 과거시험 시험문제였다고 합니다. 연산군 실록에 시로 바꾼게 나쁜식으로 나온 이유는 바로 당시 사림파들이 성리학에 너무 찌들어서 다른 학문들을 볼수가 없었다고 하네요....(모든건 멈출때 정말 폐퇴된다...) 6.연산군때는 인재등용이 평등했다. =연산군시절 인재등용이 정말 평등해서 호남계나 평안도계(?이건 잘...)사람들이 정계에 만은 진출을 했다고하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종반정의 핵심은 훈구파가 아니라 사림이었습니다. 잘 모르고 계신분들도 있어서 이말을 덫붙입니다. 사림파가 가장 많이 다쳤으며. 중종집권후 권력을 장악한것도 사림이며 중종집권후 가장 유명한 인물 조광조도 사림입니다.
정말 연산군 폭군이라고 하는분들 나빠요!! |
첫댓글 연산군이 패배자였고 또 양대 정치세력인 훈구파와 사림파 모두를 배척했기 때문에 유난히 가혹한 기록이 남은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사림파들의 세상이 되면서 연산군에 대한 평가가 더욱 나빠졌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요. 역사란 이래서 고민이 많은 학문인 모양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 가슴아프게도.
나도 윗분들에 찬성 도장 꽝꽝.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 입니다. 부여, 고구려, 백제, 발해등등 그 모든 자료가 승리한 자에 의해서 사멸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 되죠.
역사는 승리한 자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같습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은 폐위를 당하게 되며 또한 얼마뒤에 살해당하게 됩니다. 연산군의 내용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상황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산군은 왕권중심주의자였으며, 거기에 대항하는 신권중심주의자들에 의해서 폐위당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역사란 남아있는자들의 것입니다. 그 살아남은 자들에게서 쓰여지는 역사란 그 인물과 자기들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것입니다. 모든역사서가 그러한거겠죠 어자피 역사서 자체도 쓰는사람의 주관적측면이 강하기 때문이겠죠.. 실록이라고해서 예외가 될수는 없습니다..
결론??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고 승자가 되어야 한다?? ㅍㅍㅍ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ㅋㅋㅋ 전에 도 그런글이 올란온적있었는데..연산군이 명군이다?ㅋㅋㅋ 자기 숙모뻘 돼는 월산대군의 처와 통정까지 하는 왕도 명군축에 드는가요? 정신좀 차리고 글을 쓰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