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택스사에서는 10.10일까지 이벤트 행사를 하고있군요
오래된 고어택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중에
고어택스에 사연이 있는 사람은 응모하셔도 됩니다.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 http://www.gore-tex.co.kr/event/event100820/index.jsp
하기는 내가 이벤트에 신청한 내용입니다.
고어텍스 자켓 !
지금도 최고의 이름값을 하지만 이십년 전 이전에도 산꾼들이 선호의 대상이었다.
이제부터 고어텍스를 구입하고 지금까지 애지중지 사용한 사용기를 쓰련다.
1986년 7월중순 여름휴가때 산우들(5명)과 함께 지리산으로 향했다.
나는 이미 지리산을 한차례 종주한 경험이 있던 관계로 가이드겸 산행동반자였다.
하늘이 펑크가 났는지 이틀째 폭우가 쏟아져 도로가 많이 유실되었단다.
위도상으로 38선 이북 연천땅에서 지리산 중산리까지 가는 길은 험란했다.
기차 -트럭-도보-택시-버스를 번갈아 타고 아침녁에 중산리에 도착했다.
여전히 장대비가 내린다.
나는 반바지에 반팔차림으로 가득한 배낭을 메고 등산을 시작했다.
이때가 이십때 중반이니 젊음이 좋기는 좋았던가 보다.
천황봉-제석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 근처까지 왔다.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손가락 하나 까딲 움직일 힘이없다.
혈기만 믿고 종일 여름비를 맞은것이 원인이었다.
말로만 듣던 그 무서운 저체온증이(하이포서미아) 이런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동료들이 부랴부랴 텐트를 치는 가운데도 온몸을 덜덜 떨리며 오한이 엄습해온다.
산우들이 석유버너 두대를 밤새도록 펌프질 하며 날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다.
몸 상태가 안 않아 백무동쪽으로 하산을 했다.
하산할 때 기침하면 가래와 함께 피가 한 뭉큼씩 섞여 나왔다.
결국 폐렴의 합병증으로 나로 인해 산우들도 종주를 접어야 했고 내 몸은 회복하기 힘들게 병이났다.
몸을 추스리며 조선일보 자매지인 "월간 山"지에서 고어덱스를 접하게 됬다.
인체의 섬유조직과 거의 유사하다는 고어덱스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고어택스 필림은 인공심장판막으로 사용된다고 들었다)
일년동안 용돈을 모으고 드디어 1987년 가을 서울에 영원무역(주) 장충동 본사가 있다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가 16만원에 옷을 구입했다.
(우리나라에서 고어텍스 옷감으로 등산복(1986년)을 최초로 만든곳이 영원무역이다.)
이런 연유에서일까?
그 후에 폐렴으로 피를 각혈하며 한 많았던 지리산을
고어자켓과 함께하며 룰~룰랄라 노래하며 설악,오대, 태백,.을 종주했다.
자건거를 타거나 험한 바위에서나, 악천후에서나 늘 나와 함께 동반자 역할을 했다.
비, 함박눈이 펄떡 내리칠때도, 칼바람의 광풍이 쓸고갈 때도
고어텍스자켓과 함께하면 자연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후에도 고어택스(모자,자켓,오바트라우져 스패츠,등산화, 동계장갑 등..)를 구입하여 용도에 따라
사용하고 있지만 이 자켓은 이런 이유만큼 내게는 각별하다
나의 GORE-TEX jacket
나이든 노신사 같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을 함께하여 원색은 바래어 졌어도
그만큼 세월의 깊이가 톡-톡 묻어나는 나의 애장품이다.
첫댓글고오텍스에 요런 사연이 팔부능선님의 리얼한 사연읽고" 히 간다요 "
저도 초창기때 고어텍스 구입해서 입어본것이 10번도 안된답니다.
이쁘게 단도리해서 가지고 가도 극한 상황이 아니면 꺼내지 않았으니 얼마나 아까우면.
지금도 쌩쌩합니다. 단 지금 입으려고 하면 너무 무거워요. 기능에 발전..
금일(9.14일)1차에서 당선되어 고어에서 옷 가져간다는 통지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