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토지 답사를 하던 중에 비암사라는 절을 찾아갔습니다!!!!
세종시토지 답사를 하던 중에 비암사라는
절을 찾아갔습니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2013년 10월 10일
세종시토지 답사를 하던 중에
세종 8경에 속하는 비암사라는
절이 있어 휴식도 할 겸
찾아 갔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천년고찰이라고 합니다.
800년 느티나무 옆 계단을 오르면 주지스님이
좋아하신다는 글귀를 만납니다.
"아니오신 듯 다녀가소서"
비단 주지스님께서만 이 글귀를 좋아하시겠나요?
저도 좋아하고
이곳을 다녀가신 많은 분들이 이 글귀에 감동을 받고 갑니다.
이뜻은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온듯 아니온듯 표 없이 다녀가라는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모두가 잘났다고 사는 세상
이 지구별에 다녀간 표시를 내려고 여러 모로 애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이곳에 오면 극락전의 건축물이 볼만합니다.
하나 하나 뜯어보면 아니 고운곳이 없지요.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연기지』(1966)와 『연기군지』(1976)에는 비암사 창건과 관련하여 비암사가 한(漢) 선제(宣帝) 오봉(五鳳) 원년(B.C 57년, 신라혁거세 1년)에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김재붕선생께서는 삼국초기를 잘못해석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즉 663년대 통일신라 초기를 고구려,백제,신라 초기의 한선제 오봉원년으로 잘못해석했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또 고려개국시 활동했던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는 비암사가 오래된 사찰, 규모가 큰 중요사찰임을 지칭하는 뜻일 것이다.
비암사는 창건연대가 분명치 않을뿐더러 사찰의 이름 또한 원명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비암사에서 출토된 석불비상의 명문에 ‘계유년(癸酉年)과 혜명법사(惠明法師)’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계유년(673년)에는 절이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고, 혜명법사 또한 비암사와 무관한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석불비상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왕과 대신, 그리고 칠세부모의 영혼을 빌어주기 위하여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어 시납하였는데 그 시기가 673년 4월 15일인 것이다.
660년 비록 의자왕은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하였지만, 백제유민들은 항복을 하지 않고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기록으로는 백제의 200여 개 성에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비암사 주변의 금이성,이성,고산산성 또한 이 때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663년 9월 부흥운동이 내분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자 이를 이용,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는 멸망하고 만다.
비암사가 자리한 운주산이 한 때는 비암산으로 불린 적도 있었고, 운주산의 운주산성이 백제 유민들이 광복 운동을 일으켰던 주류산성으로 보인다는 학설이 학계에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에서 불타버린 종묘를 673년 4월 15일 백제 유민들에 의하여 비암사로 옮겼다는 곧 백제의 마지막 종묘사찰이라고 하기도 한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당시 비암사 주변에는 전씨들이 살면서 멸망한 나라의 한을 달래기 위하여 나·당연합군에게 백제왕과 대신에 대한 제를 올리도록 허락을 얻어 석불비상을 제작하기 시작 673년에 완성을 보아 4월 15일 제를 올린 것이다. 현재 양력 4월 15일에 괘불을 걸고 백제대제를 거행하는데, 이 행사는 약 1,300년간 계속된 것이라 한다.
이곳 출신 전씨(全氏)가 주동이 되었기에 명문 첫머리에 기록이 되었고, 비암사가 있는 곳을 전의·전동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전씨들의 영향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세종시토지답사 중 세종 8경이라 하는 비암사라는 절에 들러서 마음을 씻고 왔습니다!
도선국사 창건설은 우리나라 유명사찰에 따라다니는 단순 기록이 아니라 『만산도(萬山圖)』(1982년,김영소)에 ‘용담촌(龍潭村)의 후룡(後龍)에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의 명당이 있다. 이곳이 바로 비석암사(碑石岩寺)의 법당뒤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풍수지리에 능통한 도선국사가 머무를 만한 곳이다. 비암사의 삼층석탑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그 위치 또한 혈자리라 하니 그 연관성이 있다 할 것이며 그러기에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것을 창건했다고 표현한 것일 것이다.
출처: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 연구자료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조치원 사는데 그런 곳이 있는 것도 몰랐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조치원에 사무소 개소 하시는것 같은데 사업번창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