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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0 - 서영남
아침에 반찬거리를 사고 오는 길에 경희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며칠 전에 라면 한 상자를 나눠드렸는데 참 고마워합니다. 할머니 집 아래에 사는 사촌 동생네에 반을 나눠줬답니다. 당신이 가지시기에도 많은 것이 아닌데도 도대체 어떤 마음이 라면 한 상자를 반으로 나눌게 할 수 있을까 놀랍습니다. 한 상자뿐인데도 나누세요? 물어보니 오히려 한 상자나 되는데 안 나누는 것이 이상하다고 합니다. 사촌 동생에게 아이들이라도 먹이라고 나눠주셨답니다.
4월 8일 목요일에는 느긋하게 쉬다가 충남 서천으로 혼자 출발했습니다. 따뜻한 날씨에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어느새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저녁에 충남 어메니티 복지마을에 갔습니다. 서천군에서 마을을 짓고 천주교 대전교구에 위탁 운영을 맡겼다고 합니다. 노인복지관, 장애인 복지관, 요양병원, 보호작업장 등등이 모여 있는 마을입니다.
거의 이십여 년 만에 비비나 수녀님을 만났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마을에서 강의를 마치고 청송으로 출발했습니다.
서천에서 청송까지는 참으로 먼 길입니다. 겨우 밤 열두 시 반에야 안동에 도착해서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4월 9일(금)에는 늦잠을 즐겼습니다.
청송 형제들이 인절미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안동 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혹시나 인절미를 제대로 만들어 파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인절미를 파는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커다란 떡덩어리를 가위로 잘라서 콩고물을 묻혀서 담아줍니다. 새쑥으로 만든 쑥떡도 조금 마련했습니다.
열여섯 몫으로 나눠서 상자에 담았습니다. 차가 있는 곳까지 끙끙대면서 들었더니 허리가 뻐근합니다. 그래도 흐뭇합니다. 우리 형제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좋습니다.
가랫재 휴게소에서 늦은 아침을 점심 겸 먹었습니다. 가랫재 휴게소에서는 뷔페식으로 식사를 하는데 일인당 요금이 6,000원입니다. 쌀밥과 잡곡 섞은 밥이 있고 반찬은 18종류 정도, 국은 3가지에 후식이 있습니다. 우리 손님들께도 이렇게 대접하면 좋겠는데 갑자기 변해버리면 손님들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겠다 싶습니다. 벌칙이 있습니다. 남기면 벌금을 내야합니다.
진보에 도착했습니다. 진보면이 온통 플래카드로 도배가 되어있습니다. 악명 높은 청송교도소에 사형장이 웬 말이냐! 법무부 앞마당에다 사형장을 지어라! 등등.
형제들이 좋아하는 도넛과 꽈배기 그리고 모나카도 좀 샀습니다. 사회복귀과에 선물할 커피믹스도 하나 샀습니다.
청송교도소를 들어가서 형제들을 교도관이 찾아가서 모셔올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꿀맛보다 달콤한 낮잠을 잤습니다.
형제들이 모임 장소로 들어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아는 얼굴들이 없습니다. 열다섯 명의 형제들 중에 꼴베 형제와 보니파시오 형제만 알아보겠습니다. 나머지 열세 명의 형제들은 새로운 얼굴입니다. 새로운 얼굴인데 모두들 앳된 얼굴들입니다. 겨우 스물 댓 살 정도입니다.
스물아홉인데 17년을 받아 징역을 사는 친구, 스물 셋인데 8년을 받아 징역을 사는 친구, 스물다섯인데 12년을 받은 친구, 군대 말년 휴가를 나왔다가 사고를 쳐서 무기수로 사는 친구, 벌써 별이 다섯 개라면서 소년수부터 징역을 살았다는 서른 된 친구...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서른 살에 징역을 시작해서 이제 쉰이 된 꼴베형제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십년 육개월을 선고받고 이제 20년을 살고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에 20년이 넘는 징역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죽고 싶을 만큼 싫었다고 합니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징벌방을 밥 먹듯 들어갔다가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싶어 징역을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을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보니파시오 형제도 자기소개를 합니다. 이제 마흔 살이라고 합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제 십이 년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징역사는 것을 잘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꼴베 형제와 보니파시오 형제는 작업장의 봉사원입니다. 반장이라고도 합니다. 누구 보다고 징역을 사는 형제들의 처지를 잘 압니다. 이번에 거의 새로운 형제들이 이감을 오고 전에 있던 친구들이 이감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매상담 팀에 새로운 형제들로 채워야 하는데 담당 교도관이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자매상담 팀에 사람을 넣었다고 합니다. 정말 징역살기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데도...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요즘은 징역이 빡 세어져서 전과 달리 교도소 외부에서 티셔츠와 속옷 그리고 운동화와 양말 등을 선물해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영치금으로만 필요한 옷과 양말 치약 등을 사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혹시 같이 있는 재소자가 형편이 어려운 재소자에게 옷을 나눠줬다거나 양말 등을 나눠주면 나눠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징벌을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절대로 서로 나누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재소자가 교도소에서 가질 수 있는 영치금의 한도는 200만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200만원이 아니라 2원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도소 밖에 아무런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면 참으로 고달픈 징역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꼴베 형제와 보니파시오 형제가 평소에 주변의 형제들을 잘 살펴보고 정말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지들을 찾아서 스물에서 서른 명 정도의 명단을 자매상담 올 때 저에게 전해주면 한 사람에게 만 원씩이라도 나눠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쉽게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영치금이 얼마나 있는지 컴퓨터로 쭉 뽑아보고 없는 사람들을 추려서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아파서 진료를 받으려고 돈을 모으고 있는 경우, 안경을 마련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쓰지 않고 몇 만원 모아둔 경우, 얼마 후면 출소를 해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모아둘 경우에는 몇 만 원이 있다고 불우한 재소자로 선택될 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영치금 잔액만으로 없는 형제들 돕고 그러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주변의 형제들을 잘 아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넣어주고 있습니다.
요즘은 교도소에서 음식에 대해 조금 관대해 졌습니다. 그래서 맛있는 인절미는 형제들이 먹지 않고 방에 가서 동료들과 나눠먹으려고 가방에 넣어두었습니다. 형제들이 나눠먹을 마음에 겨우 도넛 한 두 개로 입맛만 달랬습니다. 그리고 조금 일찍 마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교도관들이 조금 부드럽게 형제들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주모경을 바치면서 모임을 끝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형제들과 나눠먹을 욕심에 교도관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질서를 잘 지켜줍니다.
모임에 나온 형제들 열다섯 명과 정말 딱한 처지에 놓인 법자(법무부 자식이라는 말인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법무부에서 정한 것으로만 생활하는 재소자를 일컫는 말)들 중에 번호를 기억하는 일곱 명의 명단을 받아서 민원실에 가서 만원씩 넣어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청송교도소 옆에 있는 청송 직업훈련교도소 민원실에 갔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브이아이피 손님이 며칠 전에 부탁을 했습니다. 아들이 청송에 있는데 자기 처지에 찾아갈 길이 없답니다. 청송 가는 길에 아이를 만나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저께 찾아와서 아들이 어색해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면회는 하지 않고 먹을 것과 영치금을 조금 넣어주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고맙다고 합니다. 우리 손님 아들에게 영치금과 먹을 것을 조금 넣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차를 몰고 청송 3교도소 내정문으로 갔습니다. 본래 오늘 오전에 3교도소 형제들과 자매상담을 해야 하는데 교도소 측의 일 때문에 모임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행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당 교도관에게 모임을 못 가지면 형제들에게 가장 필요한 영치금이라도 넣어드릴 수 있도록 명단을 내정문에 맡겨놓으면 찾아서 영치금을 넣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내정문에서 영치금을 찾아 민원실에 가서 열다섯 명의 영치금을 만원씩 넣어드렸습니다.
이제 인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양지에서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합니다. 집에 도착하니 밤 여덟 시 사십 분입니다. 우리 민들레가 문을 열어달라고 낑낑대었나봅니다. 모니카가 민들레를 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올 때 만났습니다. 베로니카께서는 수고했다면서 처음처럼 한 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4월 10일(토)
아침에 석원씨에게 국솥에 물을 반쯤 넣고 끓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찜통과 필요한 그릇을 마련하러 그릇가게를 들렀다가 왔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도착하니 고마운 분들이 보내주신 물품들이 가득 있습니다.
서울 권사님들께서 짜장과 건새우 볶음, 도라지나물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최경태님께서 전기장판과 우산 그리고 속옷들과 후원금을 선물해주셨습니다. 그린식품에서 다시마를 보내주시고, 십자약국에서 간장 1상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고마운 분께서 봉하쌀 5킬로 두 상자를 보내주시고, 김혜영님께서 자반고등어 한 상자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은경님께서 김가루 한 상자(아주 큰 상자)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전희실님께서 무짠지와 장아찌 새우젓과 두유 등등을 선물해주셨습니다. 화수성심의원에서 달걀 10판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쌀농부에서 쌀과 달걀을 보내주셨습니다. 대전에서 고마운 분께서 살아있는 미꾸라지 세 상자를 보내주셔서 추어탕을 맛있게 끓여서 지금 손님들께 대접하고 있습니다. 나주미 20킬로 네 포대를 고마운 분이 보내주셨고요. 김찬숙님께서 달걀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노을쌀 여섯 포대를 고마운 분이 선물해주셨습니다. 라이스 그린에서 쌀을 한 포 보내주셨습니다. 고마운 분이 옷을 세 상자 보내주셨습니다. 조혜경님께서 위생장갑과 비닐 팩을 선물해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형제님께서 생선을 아주 많이 선물해주셨습니다. 동의난달에서 쌀을 선물해주셨습니다. 또 시골아낙께서 흑찹쌀을 한 포 선물해주셨습니다. 또 2656(차번호)님께서 쌀을 세 포 선물해주셨습니다. 또 고마운 분께서 찹쌀떡을 500개 선물해주셨습니다.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 아이들과 민들레국수집 손님들 그리고 동네 이웃들께 찹쌀떡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봉사하러 오신 분도 참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4월 13일 오전 8시 25분부터 9시 30분까지 KBS1 TV “아침마당”의 화요 초대석에 저와 모니카가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4월 26일 오후 2시에 “민들레국수집과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이 샘터사에서 주관하는 2010년 샘물상을 받기로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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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민들레 국수집'이 더 많은 가난한 분들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고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큰 나무가 되었으면 합니다. 민들레 수사님 화이팅!! 행복한 5월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