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산,천복굴단지,광천시장,해미읍성을 다녀와서!
매일 쓰는 일기장속에는 그 일기를 쓰는 사람의 하루 일과에 대한
성찰하는 마음이 들어있고 나름데로의 해안(慧眼)으로 바라본 시대상
(時代相)이 들어있듯이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의 꽁트(conte)에 준하는 글속에도
솔직한 고백같은 진솔(眞率)함이 배어있을텐데 그 글을 읽는 사람의
즉, 편지 따위에서, 다른 사람이 살펴서 이해함을 높여 이르는 혜량
(惠諒)하는 마음의 형태는 천태만상입니다. 예를 들면 백사람을 횡열로
열사람씩 앉혀놓고 어떤 사안의 문제를 맨 앞줄 왼쪽 사람이 오른쪽
사람에게 전달을 해서 맨 뒤쪽 열 번째 줄 왼쪽 끝 사람에게 물어
보면 기상천외(奇想天外)의 엉뚱한 답이 나옵니다.이와 같이 아무리
작은 표현일지라도 나쁜 감정으로 의도된 표현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면 글을 쓰는이에게 큰 오류를 안겨주게 됩니다...
2017년2월11일 금요걷기코스로 정한 충청님도
팔봉산,천복굴단지,광천시장,해미읍성을 가는 날이라서
새벽 05:40에 기상하여 여장(旅裝)을 준비하여 06:35에
집에서 출발 집결지인 종로3가 옛 세운상가 앞에 도착하니
출발시간이 다된 열시 신세계관광버스에 승차하여 팔봉산
들머리에 도착하고 승용차가 포함된 45인승으로 온 용띠방
회원들이 차에서 내리니 오늘 걷기에 참여한 회원수가 98명 팔봉산
자락길을 30분 정도 걷다가 원점 회귀하여 버스로 보령 천복굴단지로
이동 중식을 겸한 뒷풀이를 끝내고 광천시장과 해미읍성을 들러
걷기 일정을 마치고 귀경하여 집에돌아오니 밤 20:45분이었습니다..
충남 보령,홍성,서산
1산, 2시장,1읍성을 다녀와서!
서산 팔봉산
팔봉산(361.5m)은 산의 형세가 병풍처럼 펼쳐져있고 9개 마을을
품에 안은 듯 정기있게 솟아 있으며, 산의 명칭은 여덟 개의 산봉우리가
줄지어 있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8봉중 가장 높은 곳은 3봉으로
높이가 362m이다. 산세가 수려하며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산세가 절경
이며 휴식 및 3시간 정도의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워낙 홍천
팔봉산이 유명해서 이 팔봉산은 앞에 "서산"임을 분명히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곳은 봉이 9개인데 제일 작은 봉을
제외하고 팔봉산이라 하였고, 매년 12월 말이면 그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넣지 않았다고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팔봉산은 팔봉면 금학리와 어송리, 양길리에 걸쳐 있다. 팔봉산이
있는 팔봉면 역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팔봉산의 여덟 봉우리를
따서 지었다고 하니 팔봉산의 유명세는 듬직할 정도다. 조선 광해군
때 편찬된 서산의 읍지인 《호산록》에 "서산 서쪽 바닷가에 있는
산으로 정상의 여덟 봉우리가 마치 바둑돌처럼 줄지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팔봉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한다. 원래 팔봉산은
봉우리가 9개인데 제일 작은 봉우리를 빼고 팔봉산이라 불렀다. 그래서
매년 연말이 되면 작은 봉우리가 자신을 끼워주지 않았다며 운다고 한다.
팔봉산 산행은 양길리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제1봉을 지나 8봉을
끝으로 어송리로 내려오게 되는데 모든 봉우리를 다 거칠 필요는 없다.
양길리에서부터 정상인 3봉까지가 가장 멋지고 풍광이 뛰어나다. 정상
에서 8봉까지는 능선을 따라가는 다소 밋밋한 길이다. 3봉 정상까지
올랐다가 운암사지 방면 숲길로 내려오는 코스가 추천할 만하다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보령 천북굴시장
천북굴은 보령8미중 하나로 충남 보령 천북 장은리에 자리한
굴단지 이다. 천북굴단지에 들어서면 굴구이 집들이 바다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지방이 적고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만점,
맛만점인 굴은 8월까지의 산란기를 끝내고 가을에 살이 차기
시작해 겨울이 되면 최적의 상태가 된다. 그래서 11월에서 2월
까지 잡히는 것을 최상품으로 치며 매년 12월중에 '천북
굴 축제'를 연다. 천북굴구이와 굴회, 굴밥 등 굴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 볼 수 있으며,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등
이벤트가 마련된다.
광천토굴새우젓시장
* 토굴에서 숙성시킨 최고의 새우젓, 광천토굴새우젓단지 *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로 응암포 일원은 광천토굴새우젓단지다.
광천의 새우젓은 그 역사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천로와
나란한 새우젓 가게들은 그 후손이다. 새우젓 숙성 방법도 세월을
거듭하며 한층 발전했다. 새우젓은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숙성시키
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광천에서는 토굴을 이용한다. 일제
강점기 마을 뒷산에 뚫은 광산이 남아 굴에서 새우젓을 숙성시키자
감칠맛이 살아났다. 현재 새로 뚫은 토굴까지 40여 개의 크고 작은
토굴이 존재한다. 구매자가 토굴을 직접 방문해 새우젓을 살 수
있으니 자연스레 새우젓 토굴체험이 이뤄진다. 전국 새우젓 생산
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매년 10월에는
광천토굴새우젓·재래맛김 대축제가 열린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서산 해미읍성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루를 시작으로 동헌과 객사를 두루 살펴보고 성벽을
따라 서문을 거쳐 다시 진남루로 돌아오는 동선으로 한 바퀴 돌아보기 좋다.
읍성이란 지방 군현의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나 행정적인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고려 말,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해안지방에 왜구가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자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축성한
것이다.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이곳으로 옮기고 성을 쌓기
시작해 성종 22년(1491)에 성벽이 완성되었다.
해미읍성은 둘레 1,800m, 성벽 높이 5m로 평지에 축조하였는데
남쪽의 진남루를 비롯하여 동쪽과 서쪽에 대문이 있고 성 안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다. 폐성이 되면서 그 자리에 민가들과 학교가
들어차 있었는데 1973년 복원을 시작하면서 민가와 학교는 철거
하고 현재는 복원한 동헌과 객사 같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예전
해미읍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볼 수
없다. 현재 성벽 아래에는 군데군데 담쟁이를 심어 철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고풍스러운 성벽과
어울린 모습이 그림처럼 곱다.
선조 12년(1579)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군관으로 잠깐
근무했다고 하며 고종 3년(1866) 병인양요에 이은 천주교 박해
때에는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처형당하기도 했다.
순천의 낙안읍성,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해미읍성은 사적 제116
출처:(대한민국 여행사전,터치아트)
♣서산 아가씨/이진(1973)♣
-김용우 작곡-
꽃같이 피어나는 서산 아가씨
굴을 따는 아가씨들 콧노래도 흥겨웁구나
연락선 고동소리 은은하게 들려오면
서울가신 우리님이 오시는가
아아 애가타는 서산 아가씨
◆
꽃같이 피어나는 서산 아가씨
굴을 따는 아가씨들 콧노래도 흥겨웁구나
지평선 육지찾아 떠나가는 연락선에
꽃소식 님소식을 보내놓고
아아 기다리는 서산 아가씨
2017-02-1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