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
허 병철
요즈음 처럼 자꾸만 높아지는 하늘을 보고
또 그 하늘에 그림을 그리면서 사라져가는
흰 구름을 보면 약 60년 전에 있었던 가을 운돟회
생각이 가끔 생각이 나서 운전을 하면서도
웃음이 나오곤 한다
나는 평생에 학교엘 다니면서 가을 운동회는 딱 한번 만 했었다
어릴 때 고향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
다음해 다시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고
2학기 때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소사 신앙촌에 들어와서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다가 다음해에 3학년
2학기 때 3학년 2반으로 전학을 했었다.
1학년 1학기를 두 번 다녔고 2학년은 다니질 못했으며 3학년 1학기도
다니질 못했다.
당시만 해도 구구단이 3학년 1학기 있어서 구구단을 외우질 못하면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구구단을 외우곤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누나와 형 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먼저 소사 신앙촌에
와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4학년 때 그러니까 괴안 국만학교에서 시온 국민학교로
이름이 바뀌고 선생님들도 전부 전도관 믿는 선생님들로 바뀌고
나는 4학년 1반이 되었었는데 우리 반 선생님은 처음에는 김 진실 선생님이
었지만 자꾸만 바뀌어 나중엔 조 교환 선생님이 담임이 되셨다
그리고 1아파트에서 2구 D동으로 이사를 했었고
경주에 계시던 어머님과 동생이 올라와서
오랜만에 온 식구가 같이 모여 살게 되었던 그 해
가을이었었다.
가을 운동회 준비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었었다.
오전반은 도시락을 싸와서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한시부터 운동회 연습을 시작하곤 했다.
고학년은 오전 수업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엔 운동회 연습을 했다.
마침 동생과 나는 같은 오전반이라서 점심을 먹고
운동회 연습을 하고 같이 집으로 가곤 했었다.
우리 학교는 학교 건물이 있으면 운동장 사이에 길이 있고
운동장으로 가면 계단을 수십 계단 걸어가야 운동장에 도착했다.
그 운동장은 중 고등학교 학생들과 같이 사용하는 운동장이었다.
그 운동장에서 여름 밤에 가끔 스크린을 설치를 해서 영화도 보여주곤
했었지.
그러니까 학교 건물하고 운동장하고는 경사지가 약 20도 정도는 되는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그 경사지에는 코스모스 꽃도 있고 그리고 그때 그 곳에 돼지감자를 많이 심어서
계단 외에는 숲으로 이루어 진 그런 곳이다
게다가 해바라기는 왜 그렇게 키가 큰지...
마침 우리는 오후반이라 운동회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책가방과
도시락을 감추어 놓고 운동 연습을 했었다
나는 운동회 연습을 마치고 책가방을 찾아서 점심을 먹고
교실로 들어 갔는데 동생이 울면서 우리 반에 찾아왔다.
왜 그런가 물어 보았더니 책가방을 어디에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과 같이 형네 반에 가서 형에게 말을 하고
셋이서 동생이 가방을 두었다는 근처를 찾기 시작했다.
세 명이 한 줄로 서서 풀숲을 헤치며 찾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소리를 질렀다.
책가방을 찾은 것이었다.
우리는 모여서 책가방을 열어 보니까 하얀 색의 도시락이 보자기에
싸여서 있었고 동생이 도시락 두껑을 여니까 형제의 밥이 다 같았지만
시커먼 보리밥에 반찬 통에는 고구마 줄기를 삶아서 된장에 무친 반찬과
고추장뿐이었지만 동생을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곧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운동회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있는 운동은 역시 마지막에 하는
청백전 전 학년이 참가하는 릴레이 경기였다.
우리 형제는 이상하게도 다 청군이었다.
5학년 선수들 까지 지고 있다가 6학년 청군 대표인 그리고 우리 동창인
덕호 형인 승호 형은 항상 경기를 뒤집었었다.
그리고는 청군이 승리를 하곤 했었다.
5학년이 되고 운동회 날을 하루 앞두고
우리는 덕소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4학년 이후로 다시는 운동회를 하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