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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2🍚(눅2 8 14 한밤중의 목자가 전하여 준,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97TxZOmdPJA?si=C4bBtQCV73yJ2xRb
말씀: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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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영광 나라 천사들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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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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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오신 시기는 4년의 오차가 나기도 하고 수리아의 당시 총독이 재임하던 시기는 6년 오차가 난다고도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성경이 아니고 사람이 옮기다 보니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으며 세상의 역사 책도 오류가 있어 성경은 바로 이야기 하나 그 역사책에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헬라어 성경을 각나라의 번역으로 옮기는 것도 공식적으로 5%정도의 오차가 있다고 합니다. 이를 잡는 것이 신학생 출신들이 잡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없이 성경을 마구 해석하는 것은 직무유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임무에 충실한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양을 치는 다윗도 그러하고 소를 모는 엘리사에게도 그리하였습니다. 저가 새벽 1시 쯤 새벽 버스킹을 하는 날 전일도 일한 날이없고 다음 아침에도 일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일들을 다 감내하며 새벽 버스킹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양치는 목자들은 새벽 주님을 경배하고 돌아가서 다시 자신들의 양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역은 아닙니다. 저는 당 시간과 당일 일하는 날들도 기대와 감사와 동료간에 감사와 함께 영상을 보내며 찬양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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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눈까지 내리어 정말 어떤 영상 제작자도 만들지 못하는 영상이 되었고 보시는 분은 영적으로 감지한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뒷 배경은 예수님 마굿간의 볏짚과 같이 뒤에는 갈대밭이 있었고 저 멀리 3개의 강한 전등 빛은 마치 성부, 성자, 성령을 상징하며 저 멀리 거대한 전망대의 두 개의 빛은 삼위일체 공동체 주님께서 저를 보시며 저의 찬양을 받는 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떨어지는 눈들은 마치 은하수와같이 축복을 한결같이 내리신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신기하게 두 마리의 고양이도 저의 버스킹 장소를 처움 지나다니며 제가 찾던 저의 찬양 장소를 지정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만물이 다같이 우리 주님을 찬양하는 감동이었습니다. 이 공원이 규모가 있어 새벽에 순찰하시던 분도 계시던거 같던데 저에게 헤꼬지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춥고 잠을 많이 못 잤을 지라도 당일과 지금 설교 준비하는 몇일이 지난 지금 아무런 건강의 해도 있지 않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평생의 좋은 추억이요 세상 어느 누구도 이런 종은 배경은 잡지 못한 독보적 일이라 여겨집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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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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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비추는 빛은 그 영광을 상상할 수 없는 만큼 밝습니다. 제가 철야 후 집에 와서 성령 체험 때 본 빛은 너무 놀라서 제발 떠나기를 바랄정도로 밝은 빛이었습니다. 체험해본 사람이 그 영광을 알 것입니다. 불쾌한 빛이 아닌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강한 영광의 빛인 것입니다. 주의 사자의 빛이 아닌 주의 영광이라 씌여진 것은 이는 피조물의 자체 발광이 아닌 하나님께서 천사들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주신 주인공 창조주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기적의 영광 앞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저를 떠나소서 한 것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하는 현상과 같습니다. 부끄러운 우리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감당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는 우리 힘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스테벤보리의 천국지옥 간증을 보면 지옥의 있는 사람이 천국에 데려오려 해도 그들은 왔다가 미칠 정도의 괴로움에 다시 지옥의 냄새 지독한 곳으로 오기를 원해 다시 내려온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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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자기가 부끄러운 하나님의 거룩함의 빛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빛을 감당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 우리는 깨끗하니 그 빛을 받아도 된다는 당당함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법으로 그 기회는 이 땅 밖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이 죄사함을 받지 못하는 영원히 더러운 지옥의 망자는 영원히 하늘 천국의 영광을 감당하지 못하고 억지로 천국으로 데려와도 그 영광이 타는 듯한 부끄러움으로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더러운 지옥으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지 못해 죄를 영혼육에 품은 망자는 그 영혼육과 완전히 거룩한 세상을 감당하지 못함과 같지요 이 진리를 들으면 빨리 내가 하나님을 믿어 영생천국을 얻어야 한다는 영적 도전을 받지 않나요 이 복음! 기쁜 소식을 받지도 못하고 외면하고 경멸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망자인 것입니다. 오~ 저의 지인과 여러분의 모든 지인이 하나님의 복음을 외면하지 말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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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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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하지 마라 복음의 소식을 전하니까 라는 멘트는 복음 전하는 자, 버스킹 찬양을 하는 자, 명함 전도지를 돌리는 저에게는 참 와 닿는 이야기 이며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돌아 다니이도 자기 교회 주보도 돌리기도 안하는 교역자가 부지기수입니다. 일반 성도를 제외한 교사들도 이런 일 하나 저와 동참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있던 모태교회 한빛교회에 경찰소앞 전도 교회 앞 버스킹이나 잠깐 있었을 뿐입니다.
청년회장 때 딱 한번 교육관 버스킹하는 것도 이리저리 핑계대며 버스킹 않는 청년 데리고 억지로 하다 남녀 청년들에게 욕을 먹어대며 전도사님도 끌어내리려 하고 겨우하고 하고 나니 감사하다는 형님 청년 한번의 칭찬이 있었을 뿐입니다. 다 알아서 조용히 전도하니 전도하지 말라는게 우리 죄성을 가진 자들의 심령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도 안하고 주님 전하기를 부끄러워하는 교회는 점점 힘을 잃고 그 성도 수가 상실 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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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복음 전하는 데는 오늘 천사들과 같이 영광의 빛의 카리스마입니다. 주님은 병 고치는 카리스마 겸손등의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알박기하고 무당 귀신 소리로 기도나 하는 더러운 죄성 속에는 이런 카리스마가 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거룩함의 옷을 입은 카리스마가 필요합니다. 이런 강한 영향력 속에 복음 전파는 더욱 손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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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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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사실상 아기를 밴 상태에서 그 먼 베들레헴까지는 와서는 안되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14년에 한번 자신이 태어난 곳에 호적을 내라는 로마왕에 의해 먼 곳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요셉과 마리아가 자신의 고향이 다윗의 후손이며 족보상 그의 후손인 것을 명확히 하는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요셉과 마리아가 다윗의 후손임을 명확히 하여 믿음의 후손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열정으로 섬기는 믿음의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즉, 예수님의 믿음의 조상의 가문의 후손이며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다윗의 후손인 것입니다. 이 분께서 이스라엘의 후손으로 혈통을 잘 지킨 베들레헴에서 그 족보를 잘 유지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며 만약 계속 혈통 보존이 어려운 이방인의 침략이 잦은 갈릴리에 계셨더면 이방인의 이상한 침략자의 후손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후손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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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러하신 주님께서 이들의 맏형으로 이들의 왕으로 오셨다는 놀라운 일입니다. 거기다가 인간의 죄성으로 태어나지 않고 말씀이 육신되어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무런 죄가 없는 하나님이란 것은 놀라운 복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의 교회의 기초가 되어 이스라엘의 왕 뿐만이 아니고 교회의 머리, 교회의 왕이 되셔 교회를 거룩함으로 이끄는 가족의 맏형 나라의 왕이 되셨다는 것은 더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계12:1)
교회의 머리를 낳은 해를 옷 입은 여인은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열 두별의 관을 쓴 것은 이스라엘과의 연관성이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꾸준힌 믿음의 사람이며 다윗의 열정과 같이 주님을 온맘 다해 섬기며 이 교회로서 태어난 교회의 맏형,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같이 온 교회, 가족, 지인, 직장에서 그들을 평강으로 믿음으로 이끄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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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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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말하면 밤새 야근하는 알바의 경배, 누추한 동물들이 있는 마굿간 거기다 말이 먹는 여물통이 있는 구유에 예수님 낳으셨다는 것은 참으로 뭔가 큰 의미를 찾아야 할 일 같습니다. 왕가의 대리석 바닥에서 고퀄리티(고품질) 옷과 위엄의 자리에서 경배를 받으셨다면 우리같이 낮은 사람은 범주에도 들이 못할 분이 예수님이라하여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가 되셨을 지도 모릅니다. 기독교는 부자들만 믿는 종교야 하는 편견이 들지 않았을까요
주님은 모든 인류를 향한 접근성을 위해 낮은 자로 오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을 수 있어 걱정하지마 예수님도 말구유에 오셨어 너 출신이 뭐가 중요해 일단 믿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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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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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이라 할 때 천명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은 하늘을 의미하여 하늘의 군사를 의미합니다. 그 천사에서 천사는 하늘의 사역자로서 메시지를 전하는 사자입니다. 즉,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의 태어남을 전하는데 천사장 정도는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 모두가 음정을 가지어 찬양 했는지 메시지로서만 찬양을 했을지 모르지만 ‘시’로서 우리 하나님의 이 땅의 오심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창조주의 회중이 있는 하늘의 하나님임을 의미합니다. 이를 모방하여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마귀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이제는 모방을 하는데 다 거짓살인 마귀의 선동일 뿐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이 땅에 최초로 태어나 만들어 질 뿐입니다. 하늘의 피조물 천사라도 육을 가져 아기로 태어날 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땅으로 내려오셔 낮은 자의 모습으로 태어난 유일한 창조주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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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직장에 헤르메스라는 매장이 있습니다. 최고는 수천에서 억대하는 가방등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요즘 매우 인테리어를 더 멋지게 하여 더 넓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화이긴 하지만 신의 아들로 사역자나 수호자라고 합니다. 저런 사치나 신화같은 것에 빠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처럼 고퀄리티의 천군 천사와 같이 주님의 사역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주님 복음의 수호자요 메신저로서 주님의 복음을 힘차게 영광스럽게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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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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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 14의 구절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하나됨의 목적과 같습니다. 이를 비유적으로 일체라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합니다. 일체는 비유적 표현이지 하나님은 오직 한 육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양태론이란 이단을 낳습니다. 늘 한결같은 맘으로 영원히 성부, 성자, 성령 3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시고 자신의 백성들의 사랑하고 평화(에이레네: 평화, 복지, 번영)을 위해 일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일체는 늘 이러한 맘으로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개념을 모르면서 양태론적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목회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삼위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한 육체의 하나님으로도 인정하여 유사 양태론자 목회자가 부지기수입니다. 이 글을 읽고 아니라는 목회자가 댓글을 달라하면 아예 없을 것입니다. 제발 깨어 나시기 바랍니다. 저의 이런 바른 관념은 제 한국성서대에서도 기독교 방송 삼위일체 전문가의 발언과도 일치합니다. 저를 이단으로 편견을 가지고 저를 무시는 목회자는 제가 눈으로 본 바입니다. 양태론을 전하는 주일학교 교제가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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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초가 안되니 교회가 안정적으로 성장을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입니다. 바로 가르치어 안정을 주려해도 이단으로 내쫓으니 우수운 상황이 반복이 됩니다. 자꾸 말하여 귀찮을 정도인 무당방언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우 저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통보수신학을 가지신 분들이 신사도운동을 반대함으로 무당방언을 반대하는 좋은 경향이 나타나고는 합니다. 하지만 관련없는 찬양단체까지 다 매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나중에 신사도운동이 뭔지 주제설교로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다시 오늘의 본 주제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의 탄생, 하나님의 이 땅의 오심은 늘 한결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피조물의 본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주님은 평화, 복지, 번영을 위해 일하십니다. 늘 하나님을 바로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평화, 복지, 번영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변질이 있을 시 주님은 치시고 교회 갱신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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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마리아 경배의 변질을 치시고
근대 루터교의 성령 하나님의 성화를 무시함을 치시고
현대 교회의 무당방언을 치실 때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알박기 무당방언 교회가 하나님과 사회적으로 외면을 받아 빛나게 발전하는 아파트 지대에서 홀로 장벽을 치고 개발되지 못한 빈약한 외톨이가 되듯이 더욱 그런 교회는 고립이 되고 약해지고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하나님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성도사이에도 신사도운동이라는 이단으로 지정 받아 교회 내의 이단 세력으로 규정되어 더욱 고립은 심화되어 사라지게 될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말하는 저로서는 전혀 고소하지 않습니다.
모든 교회는 고집을 버리고 빨리 갱신되고 새롭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 복지, 번영을 누리며 하나님을 모두가 신실히 경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낙오하는 교회를 보며 마음 아퍼하지 않는 형제란 없습니다.
제발 힘을 내! 돌아와! 하는 탄성만이 있을 뿐입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경배하고 우리 성도의 평화와 복지 번영이 창대하도록 축복을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 죄를 사하시려 아들 예수님을 보내심을 믿습니다. 활공교회에 번영을 주옵시고 한빛교회 평화를 주옵시고 힐릴라이프선교회에 복지를 주시옵소서 이러한 행복이 우리 직장, 가족, 지역민 나라들에 충만하도록 모두 하나님을 바로 알아 경배하게 도와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