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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하나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우리는 복음을 위탁받은 자입니다.' 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위탁받았다고 합니다. 누가 위탁했느냐 하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위탁한 것입니다. 위탁이라는 것은 대신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위탁판매, 위탁교육이라는 말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일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 일은 천사들도 흠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21에는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복음을 위탁하시고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1.복음을 위탁받은 바울은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여러 지역을 다니며 전도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1절에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은 줄 믿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라고 합니다. 너희 가운데 왜 들어갔습니까? 전도하기 위해, 교회를 세우기 위해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안다고 합니다. 바울 자신만 안 것이 아니라 너희도 이제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상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사람이 씨를 뿌릴지라도 거두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전도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고 열매 맺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씨앗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좋은 땅에 떨어져 며칠 뒤에 싹이 날수도 있지만 바람에 멀리 날아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한 해 두 해가 지나서도 싹을 틔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호주 시드니 조지가에서 40년을 전도한 분의 간증을 아실 것입니다. 젊은 날을 방탕했던 제너씨는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하루에 10명에게 전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천했습니다. “선생님, 구원받으셨습니까? 오늘 밤에라도 죽음을 맞이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라는 말과 전도지를 전해준 것입니다. 그렇게 무려 40년을 열심히 전했는데 한 사람도 당신 때문에 예수님 믿게 되었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전도자로서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어 낙심하고 있었는데 영국의 어느 교회에서 예배 중에 한 성도가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간증합니다. 시드니에 갔다가 노인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미국에서 집회를 하였는데 그곳에서도 동일한 간증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또 인도외교관이었던 사람도 같은 간증하는 것을 듣고 집회 가는 곳마다 조사를 했습니다. 이 숫자가 무려 146,000명에 달하는 것을 알게 된 목사님은 이후에 시드니로 가서 그분을 찾았습니다. 제너씨는 임종을 앞두고 주님 앞에 가져 갈 것이 없어 낙심하고 있는데 이 사실을 들려줍니다. 당신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람이 146,000명이나 된다고. 며칠 뒤 편히 눈을 감았습니다. 지금 나로 인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전도! 해야 됩니다.
cts방송에 ‘콜링갓’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브라이언 박 목사님이 계십니다. 스포츠머리에 키는 엄청 커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한국 발음이 좀 어색한 것처럼 보이는 분입니다. 시청자의 기도제목을 전화로 받아 중보기도해주는 목사님입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UCLA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 유명한 증권회사에 들어가 26세에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습니다. 친구들 10명이 버는 돈보다 혼자 더 많이 번다고 자랑하고, 돈 버는 것이 가장 쉽다고 교만하던 그가 너무 빨리 꿈을 이루다 보니 술, 담배, 마약에 빠졌습니다. 젊은 날에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만족이 없자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36년 동안 불교신자였고 21년을 술과 마약에 빠져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느냐면 길거리에서 전도를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후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전도! 하면 됩니다. 길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디든지.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자체가 누군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 아닙니까. 전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며, 듣지 못하면 어찌 믿으리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길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땅에 찍힌 농부의 발자국은 비 한 번 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싹이 나서 열매를 맺듯이 전도자의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전도의 열매는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맺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박재삼 시인이 말한 대로 ‘지치지 말지어다. 사람아, 바람은 아직도 천 년 전의 그 간지럼 태우는 장난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 몇 번 해봤다고 지치는가!’ 그를 몇 번 만나 전해봤습니까? 한 두 번 하고 안 된다고 포기하지는 않았습니까?
2.전도는 희생이 따릅니다. 2절을 보시면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고 많은 싸움을 하는 중에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싸웠다는 말은 함께 다투었다는 것이 아니라 모진 역경을 겪어왔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면서 고난당하고 능욕 받고 모욕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 영혼을 얻기 위해 너무도 많이 희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수고를 자랑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은 그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 더 큰 고난당하신 것을 알고 있었고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얻기 위해 한없이 낮아지고 자기를 부인했어도 주님이 더 낮아지셨고 부인하신 것을 알았기에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의 빚 진 자요, 은혜에 빚 진 자로 살았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모습으로, 율법 아래 있지 않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않는 자의 모습으로 다가간 것은 한 영혼이라도 얻고자 하는 그의 희생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전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휠체어 가수로 더 알려진 김 혁건 씨(히트곡, 돈 크라이)가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친구 박용우가 그를 전도하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냥 전화로 예수님만 소개하고 믿으라고 할 수도 있겠고 편지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는 큰 절망 중에 있는 친구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기 위해, 그와 함께 있으려고 귀국한 것입니다. 한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유학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희생, 헌신을 택한 것입니다. 김 혁건 씨는 친구의 전도로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삶의 희망도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재활을 열심히 하여 비록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지만 다시 노래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희생이 따릅니다.
이 희생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물놀이를 하던 아이가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수영할 줄 모르는 엄마와 수영강사가 밖에서 지켜봅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들어갑니까? 왜 수영도 못하는 엄마가 겁도 없이 들어갈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는 엄마가 아이를 살리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전도는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이 있는 자입니다. 전도의 수고와 희생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눈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구하기 위해 전도하는 그 자체가 최고의 사랑표현입니다.
그래도 선교보다는 전도의 희생이 덜 합니다. 선교는 언어의 어려움, 문화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 나라말로 예수님 전하기 위해 적어도 몇 년 동안 언어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에스겔3장에 보면 그래도 내가 너를 같은 언어를 쓰는 자에게 보내는 것이 다행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말이 통하는 네 민족에게 보내니 다행인줄 알라고 합니다. 의료선교사로 조선 땅에 와서 선교한 알렌선교사가 당시 조선은 남여칠세부동석인지라 교회당 입구에서 자리안내를 하는데 한국말이 서툴러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수컷들은 이쪽으로 들어가시고 암컷들은 저쪽으로 들어가시오.” 선교는 언어와 생활문화까지 익혀야 하니 똑같이 전도하는 거라도 얼마나 수고가 많겠습니까! 그래도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은 그 민족을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전도의 동력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파송된 선교사로 오신 것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음당한 것도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3.전도는 하나님을 힘입어 해야 합니다(2절).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힘입어 해야 하는데 특히 전도가 그렇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힘으로, 성령의 역사로 해야 합니다. 내 열심과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힘입어 해야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능으로도 힘으로도 아니 되되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 혼자 가지 말고 성령님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열정만으로 되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광야로 나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 가서 간다게 내시를 만나 전도합니다. 바울은 마케도냐에 와서 도우라는 지시를 받고 순종합니다. 그가 아시아로 가지 말고 유럽으로 가는 것도 성령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전도했고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여 담대히 나가 전했습니다. 그는 또 환상 중에 이방인에게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고넬료 집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바울도 2절에서 하나님을 힘입어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힘입었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았기에 고난과 능욕도 이기고 좌절과 낙심하지 않고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들은 배타고 가면서도, 바닷가에서도, 지붕위에 올라가서도 기도했습니다. 전도의 문이 열려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구했습니다. 위협과 고난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와 기도는 분리할 수 없는 두 레일과 같습니다.
4.마지막으로 전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4절). 전도는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겠지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는 일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이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천사들 앞에서 잔치를 배설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맨발로 달려 나가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이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기뻐하는 일이 전도임을 알았습니다.
요8:29에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보내신 뜻대로 전도하셨습니다. 전도할 때 항상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아버지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를 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전도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있게 됩니다. 혹 나에게 간증이 없다면 내가 하나님을 전하며 자랑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설에 가족들 만나도 다른 이야기보다 먼저 전도하십시오. 늘 기도하고 있다고 예수님 믿으시라고 하십시오. 전도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고 나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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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