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20) 중 「담요」를 읽고
손보미 작가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수상,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중편소설 『우연의 신』,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짧은 소설 『맨해튼의 반딧불이』가 있다. 제25회 대산문학상외 다수 수상했다. - 작가소개에서
손보미 소설에 우리가 사로잡히는 이유는 산뜻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기미들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그러나 말로는 절대 표현될 수 없는 삶의 기미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와 역할에 대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와 소설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담요」 속에서 인간이 삶의 고통을 통과하며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하여 읽으라는 설명을 들었다.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오로지 기미만으로 견고하다고 믿어왔던 삶이 부서지는 순간을 놀라운 솜씨로 포착해 냈다. 관습적인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는 또 사람의 거짓된 진실에 목마른 우리는 부정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또 어떤 자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는지 몹시 궁금해하지만, 이 비밀스러운 소설가는 이에 대해서 입을 다문다.
주인공은 『난 리즈도 떠날 거야』라는 책을 쓴 소설가다. 소설은 무명작가였던 주인공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다 주었는데 친구인 한과는 단절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설책에 한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장’의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설가인 ‘나’가 장에 대해 쓴 『난 리즈도 떠날 거야』라는 소설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
2년 후 ‘한’이 죽고, 장례식에서 ‘장’을 만난다. ‘장’의 아내는 병중에 임신한 상태였는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감행한다. 아내는 죽고, 7살 아들은 남는다. 전도유망한 장은 스캔들에 휘말려 좌천되어 시골 파출소 소장으로 온다.
장의 아들이 열다섯 살 되던 날, 아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록밴드 ‘파셀’ 공연을 보러 갔다가 광적인 관객이 총을 난사해 아들을 잃는다. 날씨가 추워서 아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담요를 준비했다. 아들의 몸에서 마지막까지 있었던 담요를 장은 출근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항상 가지고 다녔다. 어렵게 구했던 앞자리의 표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소설 주인공이 쓴 소설 『난 리즈도 떠날 거야』는 록 밴드 ‘파셀’의 공연장 이야기를 쓴 소설이었다. ‘도심의 공연장에서 총기난사 사건 발생’이라는 헤드라인이 있던 사건이었다. 도서관에서 신문 기사나 사진을 찾고 그 자료들로 소설을 쓴 것이었다.
장은 주인공에게 연락해 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아들이 죽은 후, 변화한 것은 항상 담요를 지니고 다닌다는 것과 야간 순찰을 더 늘려서 직접 순찰한다는 것이었다. 장은 아들이 죽은 겨울을 싫어했다. 낡은 차에 성에가 자꾸 끼는 것도 싫었다.
사건 후로 6년이 흐른 어느 겨울밤, 장은 순찰하다가 추위에 떠는 어린 부부를 만난다. 빨리 귀가하도록 말하고 아들이 이야기하면서 ‘‘파셀’의 공연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담요를 준다. 어린 부부를 꼭 아들인 것만 같아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고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소설가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그의 소설은 눈부시게 발전했다.”라는 평을 듣는다. 장에 대한 소설은 단순히 허구가 아니라 비유적 표현이긴 했지만 현실이었다.
액자소설 형식의 이 소설은 소설 속 장의 이야기가 소설 속의 소설에 묘사된다. 인간 삶의 아이러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소설의 ‘담요’는 무엇을 의미할까? 죽은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늘 함께했던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