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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도 "우먼파워" 17대 국회 39명 입성 역대 최다 |
[조선일보]
여성에게 가장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던 분야 중 하나인
정치계도 17대 총선을 기점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39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당선됨으로써
여성이 전체 의원의 13%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5.9%(16명)이었던 16대 여성 국회의원 비율의 두 배를 넘어선 수치이다.
여성 의원수가 30~40%에 이르는 선진국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 평균인 15.2%에는 근접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인 고(故) 이태영 여사가
생전에 제자들에게 “여성 의원이 20명만 있었어도 가족법 개정하는 데
37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라며 여성 정치인 양성을 염원했던 것이
17대 국회에 와서야 비로소 이뤄진 셈이다.
이계경(李啓卿)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여성정치인 시대가 열렸다고 하지만 여성 의원 수는 이제 겨우 10%를 넘겼다”며
“여야를 초월해 여성 당선자끼리 모여 여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각 당에서도 여성 후진양성에 힘써 18대에는 여성의원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도록 힘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여성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6대 국회까지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은
모두 101명이다. 초대부터 16대까지 의원 총수가 3863명이었으므로,
지금까지 여성 의원이 차지한 비율은 평균 2.6%에 그친 것이다.
그나마 이들도 대부분 유권자가 직접 선출한 것이 아니라,
전국구 등에서 ‘여성 몫’을 할당받아 진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민이 지역구에서 선출해 국회에 내보낸 여성 의원은 지금까지 모두 24명으로,
재선 이상을 빼면 실제 인원은 15명뿐이다. 이는 전체 의원수의 0.3%에 지나지 않는다.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2004년은 사실상 ‘여성 정치 원년’으로,
여성 의원이 세력화하면 고질적인 남성 중심의 정치 문화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어느 적정수준 이상의 생활환경을 경험하고 나면,
그것이 스스로의 생존에 있어 최저점이라고 인식한다.
즉, 그 이하의 생활환경으로 내몰린다거나. 자신이 구축한 지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인식하였을 때는 필요이상의 위기감을 느낀다.
이것은 신여성들이 눈을 뜨고 여성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하던
19세기말, 20세기 초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요부형 여성이미지 Femme Fatale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희생자적 역할에서 돌연 동등한 성의 자유를 주장하고,
해방을 부르짖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은 스스로가 구축하고 유지해 온 사회전반적인
지위에 대한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두려움과 경계심을 갖게 된 것이다.
남성들의 이러한 경계심은 여성을 ‘남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악마’로 규정지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우리는 60,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의 권익에
대한 아무런 목소리가 없는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대 말까지도. 아니 바로 몇 해 전. 어쩌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권익을 주장하기라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단적으로 직장의 여사원은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관례였고,
멀리가지 않고 내 어머니만 보더라도 같은 학벌에 더 좋은 업무성적에도 불구하고
남자입사동기들보다 직급이 낮을 뿐 아니라. 입사동기들 중에 여성은
어머니 한 분 뿐이시다.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에 가로막혀 이 땅의 여성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숨죽여 지내왔다.
인간이 음속을 뛰어넘고 복제인간이 나타나는 21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것에 대해 사회는 어떻게 평하고 있을까.
앞에서 본 조선일보 기사를 다시보자.
정치권도 "우먼파워" 17대 국회 39명 입성 역대 최다
2004년은 사실상 ‘여성 정치 원년’으로, 여성 의원이 세력화하면
고질적인 남성 중심의 정치 문화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과연 13%의 국회의원이 나머지 87%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매스컴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비약하고 있다.
경제규모 11위의 대한민국에 여성 의원 수는 이제 겨우 세계평균에 가까워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기사의 타이틀이나 내용 삽화는 다분히 여성의 힘이 막강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남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 진정한 양성평등이 자리 잡히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보도들은 여성권익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자기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안하무인적 행태’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검색에 올라온 질문이다.
158436 남녀평등이라 하는데 여자들은 왜 그럴까요?
(조회:677/답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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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충격적인 이 발언이다.
더욱 충격인 것은 이러한 발언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준 사람이 한명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글을 읽은 사람이 677명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매스미디어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따라서 변화에 앞장서서 달려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의식의 격차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의 변화를 담아내야하는 매스미디어가 변화하는 세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다. 아주 어릴 적 유아프로그램에서부터 여성의 성역할에 대해 규정지어 주고 있는
사회에서, 그것을 보고 그것을 믿고 자라온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미디어 안에서 또 다른 길을 찾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또 한 가지 이유는 비단 유아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드라마, 음악, 애니메이션에 걸쳐
폭넓게 나타나는 제작자의 나태함을 들 수 있다.
김청기(우뢰매, 스페이스간담V등)대에 이르러서 절정에 달했던 일본 아동 물에 대한
표절은 이미 그 역사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고,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문제제기나,
자각 없이 그저 <잘 팔리는> 것들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못된 행태가 몇 십 년을 그대로
지속되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표절한 작품들을 대량 출시하기에 급급한 제조회사들이 과연,
시대의 변화나,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 할 수가 있었을까.
일본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_ 따라서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대부분
아무런 준비과정 없이 그대로 어린이 방청시간대에 방영되고,
또 이 땅에는 그것을 똑같이 카피한 <국산>애니메이션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라, 그 양이 적기는 하지만
특촬물(일본-후레쉬맨, 스필반 등/한국-우뢰매, 영구와 땡칠이 등)이나,
뽀뽀뽀 등의 어린이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외국 것에 대한 표절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지난 방송 분을 프로그램 자체에서
순환하듯 옛날 것을 모방하여 방송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전이 있을 턱이 없다.
돈벌기가 급한 어른들은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자신의 아이들이 자신과 똑같은 시각을 가지고 자라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붕어빵을 찍어내듯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단지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일본 준성인용 애니메이션 ‘란마2/1’을
연소자등급으로 분류해버리는,
문화전반에 대해 경직된 시각을 버리지 못하는 나라이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어려웠던 사회적 환경에서 어린이를 위한 컨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지금에 이르러서도 구시대의 인습을 타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그 사회의 미래가 된다는 것을 부정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른이다. 각종미디어가 넘쳐나는 오늘날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어쩌면 학교 교육보다, TV, 비디오가 아닐까.
지난 97년, 영국 BBC에서 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꼬꼬마 텔레토비’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조금 느린 듯한 대사와 반복되는 영상 등,
2~5세의 아직 듣고 말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고려하여 수많은 연구와 조사를 거쳐,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위해서 정말 캐릭터의 행동 하나에까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퀄리티는 제쳐두고서라도
그 연령대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시도라도 있었는가.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무수한 악영향이 있다.
저질 포르노와 표절이 판을 치는 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미지는
(갖가지 어린이 교육컨텐츠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성인대상의 프로그램에 비해 쉽게 생각된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정반대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심각하게 이점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바뀌어야 아이들이 바뀐다.
아이들이 바뀌어야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악순환을 계속할 뿐이다. 세상은 바뀌는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트러블이 생겨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영상을 전공하는 사람이다.
글을 접으면서... 특히 우리들,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조금 더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