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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폭포가 아니라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폭포다. 일행으로 처음 만난 현대중공업 직장 동료인 송한호 과장이 찍어준 내 모습이다.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의 위력과 멋이 감동적이다. 내 모습이 물줄기 같이 역동적이 었으면 좋겠다. 30분은 족히 걸리는 매우 가파른 산행 코스다. 정상에 당도하자 벌써 13시를 넘겼다. 가져온 간식과 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굽어 내려다 보이는 구룡폭포 상류의 상팔담(潭)은 아름다운 연못이 되어 비경으로 비쳐졌다. 8개의 옥구슬 같은 연못이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흐르는 구슬픈 피리같은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한다. 아름답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남발해서는 안됨을 알았다.
바위와 나무 그리고 푸른 물이 만들어주는 장면 앞에 한 없는 이야기로 수필을 쓰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 한수를 읊조리고 싶었다. 그 감흥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해도 다음에 쓸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위안을 했다. 희망이란 단어의 위대함을 떠올려 본다.
신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이 아닌가. 선녀와 나뭇군의 전설의 무대가 이곳이다. 하늘과 인간이 교류한 전설이 어려있는 현장이다.
흐르고 싶은 물을 담아 못을 만들어 내고 세상에서 기장 멋진 비경을 만들어 낸 신에게 감사했다. 잠시 헤어져 있다가 만났는 데도 반갑고 기뻤다. 먹든 빵도 나누고 마실 물로 준 악우님이 너무도 고마웠다. 내 가진 것은 마음뿐이라 줄 수 없어 안타깝다.
긴 산행은 끝나고 금강산 막걸리와 소고기를 구운 꼬지로 그곳에서 만난 김종수님 일행과 하산주를 나누었다. 술을 시켜놓고 나를 기다리는 송과장에게 미안했다. 달콤하면서도 취기를 만들어 내는 막거리가 3천원. 남북한이 합동으로 복원중인 절이 이채롭다. 불심이 깊은 악우들은 기도를 하러 법당에 들렀다.
울산에서 온 300여명의 악우들이 틈틈이 눈에 띈다. 5~6개 산악회에서 왔으니 그정도 될성 싶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기분이 들어 있을지 사뭇 궁금해 진다. 내 가슴에는 감동과 기쁨으로 가득 한데.... 꼭 술에 취한 것만은 아닐테다. 아름다운 산수에 취하고 인심에 취하고 기쁨에 취했으리..
다시 온정각에 도착하자 비가 내린다. 하늘의 심술인가. 홀연한 산에는 흰구름이 덮히고 비를 뿌린다.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흠취하며 저녁 식사를 했다. 무조건 1만원짜리요 중국 연변 아가씨들이 써빙을 한다. 다양한 메뉴중에서 하나를 정해 정찬을 했다.
무리가 없었다. 현대아산의 회사 브랜드 답지 않은 낙후된 숙소가 아이러니컬 했지만 이곳이 규율로 무장된 곳이라 어지하오리까. 금강산의 밤은 빨리 왔다.
3. 환상적인 교예단의 묘기를 보다.
밤 6시부터는 아치형 문화관에서 열리는 평양 모란봉교예단 써커스 묘기를 관람했다. 북한의 문화성 산하의 예술단체로 국제대회에서 금상과 대상을 수십 차례 수상한 이름있는 단체다. 인민배우, 공훈배우 등 일류배우 등 12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외 순회공연도 자주 한다.
국제 교예축전에서 입상한 눈꽃조형, 공중2회전, 널뛰기, 장대재주 등 다양한 묘기를 연기를 했는데 미인과 미남의 배우라는 것도 그렇고 인간을 초월한 묘기에 기립 박수를 여러 번 받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널뛰기 공연에서의 묘기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금강산의 밤이 낯설지 않게 시작 되었다.
송한호,이철우 부부랑 생맥주 집에서 1차로 한 잔을 했다. 숙소에서 송과장이 산 들쭉술과 소주 그리고 홍어 무침으로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여러 악우들이 모여들고 방마다 작은 파티가 이어졌다.
파티기 끝날 무렵 연하디 연한 한 여성 악우가 남편을 찾아 헤메다 나와 만나자 와락 울음보를 터뜨렸다. 우는 아이 달래느라 애(?)를 먹었고 나와 일행인 송과장은 그 방을 부부에게 내 놓고 말았다.
밤은 깊어가고 사회주의 땅 금강산에도 어김 없이 밤은 찾아왔다. 숙소 근처에 찾아 온 포장마차에서 가져 온 술과 안주로 북한아이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누각에서 한 잔을 더 나누었다. 참 으로 묘하다는 느낌을 여행때마다 느끼곤 한다. 꼭 이래야만 풀리는 것이 우리네 정서인지 혼란스럽다.
10여명의 악우들은 한 밤의 소야곡이 흐르는 노래방을 경유 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지나 듯 그렇게 했다. 만문한 안영환. 이성희 부회장 숙소로 송과장과 둘이서 침투 해 무작정 잠을 잤는데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이동구성으로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밤을 보냈노라고.... 얼굴이 후끈 달라 오를 만큼 송구할 따름이다.
다음날 아침은 한식 뷔폐로 해결하고 8시에 만물상 코스로 가기 위해 집결했다. 해맑은 얼굴들이 카메라에 담겼다. 다행히 비는 멎었고 울산에는 폭우로 난리라는 TV뉴스가 들려 온다. 휴대폰 없는 세상이 행복 했다.
4. 9.16(일) 만물상 코스
만물상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기자기 했다. 도중에 여러 채의 북한 건물이 있었는데 故정주영 명예회장님이 남측 인사로는 처음 묵었다는 초대건물도 보이고 무란봉교예단이 묵고있는 호텔, 북한인 들이 전용으로 이용하는 온천장도 보인다. 107구비를 돌고 돌아 주차장에 당도했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蘇東波 1036-1101)는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이나 실컷 구경할 수 있다면'이라는 글을 남겼다는 말과 같이 옛날 중국인들 까지 가보고 싶어 했다는 금강산-- 같으므로 개골산(皆骨山)
사람들로 붐벼 진행이 안 된다. 안개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가운데 곰짝달싹도 못하고 머나 먼 길을 간다. 안개에 묻혀서 1만2천봉우리도 가려졌다.
매우 가파른 길을 올라 망양대에 올랐다. 계략적으로 해발 1,040여m 높이다. 안개가 걷힌 바위 사이로 기묘한 금강산의 모습이 보인다. 안개속에서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산의 모습을 담았다. 어제 밤에 마신 줄이 다 깬 금강산의 등산은 그렇게 했다. 걸음걸이가 불편한 할머니들이 기를 쓰고 오르는 금강산.
불현 듯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서 본 노부부가 생각났다. 제법 가파른 몽마르뜨 언덕을 할머니는 기를 쓰고 올랐는데 영감님이 뒤 쳐서 늦어지자 표현이 가능한 모든 비난을 하면서 외쳐대고 있었다. 자식들이 보내준 여행비가 아까워 그 무덥던 몽마르뜨를 올랐다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길은 더 지체되고 태연하게 금강산을 오르겠다는 의지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산은 그렇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받아 주고 있었다.
안개 자욱한 금강산이 무대위로 사라진다. 그 아름답던 금강산의 모습도 가슴에 안고 추억 어린 밤을 기억속에 아로세기며 성냥갑 처럼 만들어진 온정리를 떠나 남한으로 향한다.
동해남부선 북측역사도 보이고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가 내년 7월을 완공목표로 신축되고 있었다.
남북 합자회사인 금강산 샘물공장, 유한캠브리에서 헐거벗은 북측 산야에 60만 그루의 밤나무를 심어 둔 흔적이 보이기도 했지만 곳곳에 대포를 숨겨둔 이중적인 섬뜩함을 연출하고 있는 북한이다.
성냥갑 처럼 같은 크기의 금찬리 마을이 멀리 보이고 초라한 학교가 눈앞에 펼쳐진다. 자전거가 유일한 사유재산이라니 그렇 듯 하다.
그들이 정한 규정을 어긴 몇몇 악우들이 그들의 검열에 걸려 벌금을 냈다 한다. 사진 촬영 금지 등 각종 규제로 그곳을 무사히 빠져 나온 것이 기뻤다.
남측 금강산도 식휴경 식당에서 된장찌게로 구수한 저녘식사를 마친 일행은 비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뚫고 울산으로 달려 자정 정각에 당도 했다.
아쉬움도 있었고 시정 사항도 있었지만 추후에 방영 하기로 하고 마무리를 한다. 아무런 대과 없이 잘 따라 준 함께 했던 악우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며 이 산행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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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회원님정말즐거운여행이였습니다 다음에 자주만납시다,
으음! 같은날 형님내외 가 갔다는거 아입니까? 나도 가자 했지만 여기의 스캐쥴이 중복되어 못갔지요. 아쉽네요.
앗, 그래요 함께 못해 아쉽네요...다음엔 같이 합시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