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지맥 1차(2009년 5월 18일)
구 간 ; 한북정맥의 380m봉-말머리재(39번도)-장군봉(425m)-수리봉(530m)-계명산(622m)-됫박고개(315지도)-박달산(369m)-오산리(56번도)
(부부산행)
오두지맥이란?
한북정맥에서 분기하는 8개 지맥중의 하나이며 한강봉과 첼봉 중간인 380m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계명산(622m), 월롱산(229m), 오두산(119m)까지의 도상거리 39,6km를 말한다, 이는 대부분 파주시의 수많은 도로와 야산, 군부대, 공장지역, 공원묘지 등을 지나며
특히 이 지맥은 다른 지맥과는 달리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점인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끝을 맺지만 마주 보고도 가지 못하는 북한 땅 개풍군을 바라보며 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느껴보는 접경지역인 이곳에서 이념의 쓰라림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지맥이라 할 수 있다.
송추 유스호스텔입구 말머리재(39번도로)
사진 왼쪽 아래 임도로 100여m따르면 우측으로 산길이 있다.
이곳으로 진입하고 사진 우측은 한북정맥쪽이다.
기산 보루성(530m)
수리산 정상에 위치한 기산 보루성은 양주시 전 지역에 분포된 28개중의 하나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출토물로 보아서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남쪽 부분은 높이 4m 길이 13m의 성벽이 잘 보존해 있으며
활석을 이용해 바른층 쌓기로 축조한 성이다.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봉산과 북한산,
그 앞의 산은 일영봉이지만 바로 앞의 이상한 건축물은 알수가 없다.
소나무 사이로 살짝 보이는 군 부대건물
부대를 거쳐야만 옳은 지맥을 하는데 통제구역이라 어쩔수 없이 우회를 했다.
다음 시간 내어 39번도 목암고개에서 됫박고개로 내려올 계획이다.
마루금에는 노송이 많아 운치를 더해주는 지맥이다,
앵무봉과 개양산 갈림길 헬기장에서 부대쪽으로 길이 있어 가 보니
부대로 연결된 철 사다리가 있어 혹시나 싶어 살폈지만
어쩔수 없어 돌아 나왔다,
우회하는 길에 만나는 도솔암.
가난한 절인 모양이다,
지붕에 비가 새는지 천막지로 덮어 놓은것을 보니 절에서도
貧富의 차를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나른 절에서 보기 힘든
스님 혼자 예불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진짜 스님으로 보였다.
아래 보광사의 오래된 향나무.
관음제일이라 그런지 신도들이 많았다.
普光寺 大雄寶殿(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 83호)
임진 왜란으로 모든 건물이 불 탔으나 광해군 14년(1622)에 승려 설미와 덕인이 법당과 승당을 복원하였다,
그후 현종 8년(1667)에 승려 지간과 석련이 중수 하였고 영조 16년(1740)에도 중수가 이루어졌다,
철종 14년(1863)에 쌍세전과 나한전 등이 건립되었고 고종 21년 (1884)에는 관음전과 별당이 고종 30년에는 산신각도 지었다.
그뒤 광무 5년 (1901)에도 중수가 있었고 6,25전쟁으로 일부 소실 되었으나 재건과 중창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앙의 불단 위에는 목조비로자나삼존불과 문수보살상,보현 보살상이 봉안되어있다
저번에 다녀온 앵무봉이라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
지맥에는 벗어나 있는 앵무봉과 가지못한 군부대능선
됫박고개(315지도)
이곳에서 능선길은 무덤길이고 옆으로 난 임도가 계속 같이한다.
독도가 번거러우면 임도만 따라도 될것 같다.
참나무 시들음병 방제 안내판에서는 우측철탑(70번) 있는곳으로 진행한다.
아주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모형 로켙
무슨 용도인지 이해 안됨.
무슨 철조망인줄도 모르고 진행하며 앞으로 본 박달산
지맥에는 벗어나 있지만 가 보기로 했다.
박달산 오름길에 뒤돌아본 지나온 능선
고공낙하 훈련장 시설물이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본 앵무봉과 종주하지 못한 군 부대지역,
이 사진을 한장 찍는데 아래부대 근무자가 등산객이 부대를 찍는다고 신고를 해
부대 비상이 걸려 소령 2명과 중사 한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박달산으로 올라왔다,
신원 조사를 하고 사진조사도 전부해보고서는 1시간만에 내려가고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갔다.
軍이 그동안 많이 해이된걸로 알고 있었지만 신고체제와 빠른 기동력을 보고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점 고쳐먹기로 했다.
우리때문에 잠깐이나 마 고생하신 군인 여러분 죄송합니다,
정상석과 제단 .
정상은 헬기장이며 주변으로 목재데크로 전망및 휴식대를 새로 만들었다,
내려가는 삼거리 소나무 있는곳에서는 직각으로 우틀한다.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보물 제 93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 8
이 불상은 천연 암벽을 몸체로 삼아 그 위에 목, 머리, 갓등을 만들어 얹어놓은 2구의 거대한 불상이다.
왼쪽 불상은 원형갓을 쓰고 오른쪽 불상은 사각형 갓을 쓰고 있다,
각각 男像과 女像이라 전하고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17.4m의 크기로
우리나라 쌍석불 입상중 최대규모이며 조각 수법은 마애석불과 비슷하나
민속적 얼굴로 변화된 한국적인 미륵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 선종과 관련한 기자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지금도 전설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설내용*
고려시대 중기 3대 선종은 자식이 없어 셋째 부인인 원신궁주(元信宮主)이씨까지 맞이 했으나여전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의 꿈속에 어느날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長芝山 남쪽 기슭에 사는 사람들이요.
배가 매우 고프니 우리에게 먹을것을 좀 주시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깬 궁주는 이 내용을 왕께 아뢰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 큰 바위들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불공을 올리도록 하였더니
그해 원신궁주는 태기가 잇었고 왕자인 한산후(漢山侯)가 탄생 했다고 전해진다.
용암사 大雄寶殿
우측에 있던 대형석산을 지나 석불과 군 부대 때문에
바로 진입을 못하고 철망을 따라 우회하다 끝나는 지점에서 뒤돌아본 산줄기.
각개전투 훈련장과 새로 등산로를 정비한 곳에서는 진로에 감이 안 잡힌다.
이정표가 있는곳 부터는 무조건 매봉으로 방향을 잡조 끝나는지점의 간매봉은 그대로 보내고
직진하여 오솔길로 들어가면 된다.
다음부터는 길이 애매한데 지맥을 할 정도라면 충분히 독도를 할수 있으나
오산공단에 들어와서는 계속 중앙길을 따르면 정확하게 왔다는 쾌감을 느낄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고향산천을 그리워하며 언제라도 가고 싶어 하는 곳이 고향일 것이다. 고향에 있을 때는 고향의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모르고 살았지만 집 나오면 개고생이란 말 있듯이 항상 생각나는 것은 고향뿐이다.
不孝父母死後悔라고 살아생전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살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그리워지는 것이 우리 인생살이의 旅程인 모양이다,
아련한 추억이 그리움으로 변하여 차곡차곡 가슴에 접혀 쌓인다.
그래서 생각 난 것이 오두지맥이다.
앵무산, 월롱산, 기간봉, 오두산은 다 갔었던 산이지만 당시엔 산줄기가 이어지는 줄도 몰랐던 터라 더욱 궁금해져 따라 보기로 했다.
감악지맥을 시작할 때처럼 구파발에서 7시 30분 출발하는 첫 마을뻐스(15-1)로 말머리재에 도착하니 8시 10분이다.
한북정맥까지 약 1km구간은 지난번 답사를 했기에 오늘은 생략하고 송추 유스호스텔 앞 임도로 조금 따르다 우측으로 어프로치 했다.
어떤 이는 이 지맥을 한북정맥의 본줄기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의치 않기로 한다.
산자분수령에 의한 산줄기가 틀림없으니 산줄기만 따라가면 되는 것이지 산 이름 따라 가냐 하면서 未踏峰을 하나씩 하나씩 넘으며 흐르는 땀을 훔친다.
이제는 숲도 성년이 다 되었다, 대신 숲이 좋으니 전망이 없다, 어떤 때는 땅만 보고 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숲 사이로 흘러드는 밝은 햇살은 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그런 신비함속에 마음을 정리하니 한결 가볍고 홀가분해서 좋다.
약 9시간의 산행으로 계획된 56번 도로까지 종주하고 그곳에서 33번 버스(1500원)로 마두역까지 바로 올수 있는 대중교통이 있다는 것도 여기서 알았다.
특히 오늘 산행은 한치 알바 없이 깨끗한 독도로 무사히 마침을 자축한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