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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의 빡센 설악산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 야근 연속과 회사 체육대회까지 하고 나니 어느 덧 한 주가 지나가네요.
설악산에서 보냈던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 좋았고 많은 일들이 있어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픈 욕심이 있지만, 설악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암변 등반에 대해서만 기록을 올려봅니다.
주의) reader를 배려하면서 썼다기 보단, 훗날 제가 제 등반기록을 봤을 때, ‘아 그 때 그랬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썼기 때문에 다소 길고 읽는 분들은 지루하거나 난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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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 날짜: 2012년 5월 26일 토요일. 출발 시간 아침 6시
-등반 코스: 울산바위 돌잔치길 제1봉(총2피치), 제2봉(촛대바위), 제3봉(총4,5피치?)
-난이도: 5.11b
-날씨: 더웠음
6시에 돌잔치로 출발하여 어프로치 중반까지는 걸을 만했으나,
출입금지 구역부터는 길이라고 생각될 만한 곳은 없고, 정글을 헤쳐 가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춰도 앞사람들을 금방 놓친다는 생각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여기 길이 맞긴 한 걸까?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길을 외우고 알고 가는 거지?
나 같은 길치는 백번 와도 길을 헤매겠군’
앞사람이 어떤 곳을 밟는 지를 보면서 걷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옥문에 들어서며
역삼각형 모양의 바위 동굴에 도달하니, 여기가 스타트 지점이라고 한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 여기를 ‘지옥문’이라고 부른다는 사실. 이 지옥문에 들어서면, 지옥이 시작된다.
돌잔치길의 스타트 지점은 매우 좁아서 불편한 곳이었다.
특히 사람이 많으면 앉을 만한 곳이 많지 않고,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건이 떨어지면 그것을 주우러 한참 내려가야 해서 조심해야 한다.
박총 신발 한 짝이 떨어지는 덕분에 우린 대기하는 동안 은택 선배의 코칭으로 주마를 사용하는 연습을 했다.
연습 장소는 직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 수월했지만, 돌잔치 크럭스 같이 거의 직벽인 곳에선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됐다.
제1봉(1피치 + 2피치)
1피치는 좌측 크랙을 따라 올라가는 부분이었는데 크랙 모양을 보니 레이백 구간 같아서 급실망.
‘아놔, 레이백해야 하나? 나 이거 진짜 못하는데. 펌핑 오겠다.’
최대한 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려 했으나, 어떻게 올라갔는지 기억이 안 남.
단지 확보지점이 좁고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
스타트 지점에서 대기하는 동안, 앞 팀 사람들이 1,2피치를 올라가는 모습을 봤는데 대부분이 2피치에서 고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흐음, 저기가 매우 어려운가 보네. 볼트따기? 나 볼트따기 못 하는데…그러고 보니 난 못하는 것도 많군.’
이러는 사이 벌써 내 순서가 왔고 난 또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첫 볼트따기 차례! 한 손으로 슬링을 척 잡은 다음에 올라가려 했으나 실패.
‘유쌤 보니까 여기에 다리를 올리는 것 같던데, 거참 높군. 어찌 다리를 올리지?’
위에서 유쌤이 한 쪽 발로 슬링을 밟으라고 하셨는데 이해가 안 돼서 헤맸다.
아래에선 장환선배가 승마 타듯이 발을 어레인지하라고 알려준다.
‘승마 타듯이? 그래 해보자. 어랏? 이게 생각보다 쉽진 않네?!’
마음의 발은 승마 타듯이였지만, 실제 발은 그렇게 내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어찌어찌하여 올라간 다음에 또다시 나타난 볼트따기. 2번째 볼트에 걸쳐진 슬링은 내 키론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어 너무나 안타까웠다.
절실한 마음으로 손을 휘저어봤지만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슬링님.
능무선배의 텐빨과 나의 절실함으로 2피치 등반 완료.
제2봉. 걸어서 촛대바위가 있는 곳까지
제1봉을 끝내면, 걸어서 제2봉까지 가게 된다.
초반엔 내 정신이 괜찮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앞에선 능무선배가 활짝 웃으면서 ‘혜미 얼른 와. 그냥 오면 돼’.
그러나 고개를 왼쪽으로 도는 순간 느껴지는 고도감과 가파르게 보이는 경사 때문에 쉽사리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확보비너를 걸고 한 발짝을 뗄 때마다 난 속으로,
‘Oh my god, 나 여기서 굴러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여긴 지금 몇 미터? 굴러 떨어지면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질까? 중간에 의식을 잃게 될까? 아님 바닥에 닿는 순간까지 정신이 깨어있을까?’
‘여길 어떻게 그냥 걸어가지? 내 확보 비너는 안전한가?’
‘내일은 릿지를 한다는데, 이런 게 릿지라고 하던데. 아이고, 이런 걸 어떻게 내일 하루 종일 하지?’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이제 제2봉으로 가기 위해선 뜀바위를 건너야 했다.
다리를 쫙 벌려서 건너편 바위로 건너가야 하는데, 한 쪽 다리를 내딛기도 무서웠다.
내가 서 있어야 하는 바위와 건너편 바위의 간격은 1미터 가량.
1미터는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지상에서의 1미터와 낭떠러지가 있는 곳에서의 1미터는 하늘과 땅 차이임.
내가 발을 헛디디는 순간 아래 허공으로 슈욱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달팽이 걸음으로 난 건너가기 위해서 조금씩 앞으로 이동했고, 보다 못한 장환선배는 잡아주기까지 했다.
돌잔치길을 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멘탈붕괴가 일어났던 곳이었다.
촛대바위에서는 모두 점심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신발도 벗고, 바위에 기대면서 제3봉 크럭스 피치를 등반하는 앞팀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주마를 사용하면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는데, 너무 힘겨워 하는 게 보여서 안쓰러웠다.
‘1시간 후의 내 모습이겠군. 남일 아니다.’
제3봉. 3,4피치
<3피치>
제3봉의 1피치가 그 유명한 5.11b 코스.
우측에 크랙이 있어 크랙을 잡고 올라가거나 그 좌측 구간에서 주마로 올라갈 수 있다.
앞팀은 모두 주마를 사용하면서 크럭스 피치를 올라간 반면에, 유쌤은 캠을 꽂으시면서 등반으로올라가셨다. 능무선배도 등반하시는 모습을 보고, ‘이야~~능무선배님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내 차례.
주마를 사용하는 것보단, 등반해서 올라가는 것이 나을 거란 얘기에 난 등반하기로 결정.
팔자 매듭 묶고, 비너에 연결 후 바위에 다가섰다.
‘나 잘 할 수 있을까? 올라가긴 할 수 있을까. 에잇 going back이란 없어’
크랙을 잡고 발도 나름 째밍한다는 느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래에선 ‘혜미 파이팅~~’
얼마 올라가지 않았는데도, 벌써 힘이 빠지는 것 같아, 안전장치에 퀵을 걸고 휴식 취하기
(솜다리길에서 휴식 취한 앞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제 입장에선 남일이 아니었어요 ㅠ).
팔을 탁탁 털고, 스트레칭도 하고. 나를 보는 사람들도 보고. 그리고 다음 퀵을 향해 출발 (내 마음의 출발).
손을 크로스로 하면서 나름 레이백으로 올라가려 했다 (내 머릿속에는 레이백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어떤 자세였는지 모르겠음).
올라가기 위해서 다리 한쪽을 올린 다음에 일어서려고 했으나 실패.
다리로 일어서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난 팔힘으로 퀵을 잡고 올라갔다.
위에선 능무선배가 엄청나게 텐션을 주는 게 느껴졌다.
중간쯤 올라갔나.
팔 힘으로 퀵을 잡고 올라갔던 터였는지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다리 힘도 잘 사용하면서 올라가야 했으나 잘 되지가 않아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여지기 시작했다.
울분, 실망감, 좌절감, 짜증 그리고 민망함
‘난 그저 올라가고 싶은데, 도대체 왜 이게 안 되냐~!!우씨 화가 나네.’
‘남욱선배가 사탕을 나눠줬을 때 받아먹을걸. 당 떨어진다. 아이 니드 에너지. 목도 마르군.’
‘난 왤케 못할까.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는 건 아닐까…………..’
'조난당할 때 이렇게 자일에 매달린 채 기운이 없어서 못 올라가거나 하강도 못하면 추울 때 저체온으로 죽겠군.'
‘하지만 going back은 없어. 어떻게든 올라가야 돼.’
결국 유쌤이 내려와서 도와주기로 하시고, 난 자일에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위를 척!하고 보니, 빨간 선글라스를 낀 뽀로로 천사가 내려오고 있었다.
유쌤은 가방 무게가 느껴지지 않도록 들어주시거나, 중간 중간에 내 하네스를 끌어올려주셨다.
반강제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주마도 사용하게 되었다.
사용하면서 앞팀 사람들이 왜 한쪽 발에 슬링을 걸치면서 올라갔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반동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고, 다리로 힘을 주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바위와 내 몸 사이에 공간이 많아서 붕 떠 있는 느낌이 강했다.
뽀로로 유쌤의 하네스 끌어올리기 기법으로 어느덧 언더 크랙도 보이기 시작했고, 거길 필사적으로 잡으면서 지옥의 3피치 등반 완료.
<4피치>
4피치는 난이도가 5.8로 3피치보단 훨씬 쉬운 길이라고 하지만, 앞팀 말등자가 굉장히 힘겨워 하는 것을 보고선 또다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크랙이 나름 깊고 잡기 좋아 보이고 발 디딜 곳도 좀 있는 것 같은데?! 과연 난?!’
그리고 앞팀 말등자가 이미 설치되어 있는 캠을 회수하는 것을 보면서 난 속으로 외쳐댔다
‘노우~~~~~~가져가지 마세요~~~~~~~!!’
앞팀 말등자가 반쯤 올라갔을 때, 난 출발하기 시작했다.
한 50센치미터 올라가니 또다시 온갖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가 더 쉽다고? 아닌 것 같은데. 자꾸 밸런스가 깨질 것만 같아!!!’
‘이쯤이면 꽤 올라왔나?’하고 아래를 본 순간, 난 또다시 좌절.
확보지점에서 2-3미터 정도만 올라와 있었던 것.
거기서부터 난 필사적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고 포기.
결국 또다시 뽀로로 유쌤이 내려오시면서 이번엔 내 가방을 매주셨다.
뽀로로 유쌤의 발 딛기 기법과 하네스 끌어올리기 기법으로 멘붕 상태로 등반하니 4피치 완료.
확보지점과 멀리 떨어져 있는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며 멘붕 상태를 유지했다.
나머지 피치 (5,6,7피치?)
3,4,피치에서 강렬한 멘붕을 겪은 나머지, 후반길은 어떻게 등반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음
코스가 계속 꺾이기 때문에 앞/뒤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점이 답답했고, 중간에 작은 오버행 같이 생긴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머릴 빼내는 게 쉽지 않았다.
바위 포토존에서 고도감이 느껴지는 사진을 유쌤이 많이 찍어주심
제3봉을 다 오른 후 포토타임이 가장 즐거웠다.
사람들 표정에서 돌잔치길을 올랐다는 뿌듯함과 보람이 느껴졌고,
특히 난 지옥문에서부터 겪은 고난의 길이 드디어 끝이라는 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갓 등산교육을 마친 졸업생이 돌잔치길을 등반했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기회인 동시에,
한편으론 굉장히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난 가지 말았어야 한 길을 간 것일 수도 있다.
참을 忍자를 속으로 되새기면서 인내해준 돌잔치팀 분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무사히 등반하지도 못했을 것 같아 참으로 감사하다.
용기도 북돋아주시고 인내해주신 유쌤과 선배님들 감사 드려요~^______________^
첫댓글 1빠...생 고생이 느껴지는군..ㅋㅋㅋㅋ..그런데 왜 뽀로로야?? 아~~헬멧, 썬그라스,얼굴 비슷하군
ㅎㅎㅎ 글 잘쓰네요 아마 여자로 태어나걸 행운으로 여겨야 하는 몆 안되는 사건일걸.. 똑 같은 상황에서 정환이가 올라갔다면..ㅋㅋ
그 뒤에 똑같은 상황을 경필 선배님(5등)이 올라갔는요, 역시나...
절대공감!!!!
헉. 그 구간이 제일 무서웠다니 ㅎ
근데 사실 그 때 나도 확보가 안돼 있어서... 심리적 도움만 되는 손이었음 -_-;
저만 거기가 제일 무서웠나봐요-.- 심리적 도움은 엄청났어요!ㅋ
돌잔치~그땐 힘들었는데 생각할수록 신나고 즐거웠던기억만나네~^^
앞으론 선배들이 챙겨주는거 잘받아먹고 뽀통령말씀잘듣고~ㅋ
후기읽다보니 절로 신나네~thx!!^^
짝짝짝..
생생한 후기가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기게 해주네....
혜미만 아니라 모두 힘들었어... 힘든 만큼 곰바위 정상에서 기쁨도 컸고....
휭~~하니 바람 부는 벼랑에 서있는 기분이..
굴러 떨어지면 어떨까??? 하는 부분... 난 미처 생각치도 못했던 내용을 보고, 많이 웃었음!! ㅎㅎㅎ
고생 마니 했어~ ^^ 덕분에 두 단계 이상은 등반 실력이 상승되었을꺼임~!!
가장 중요한건... 무엇보다... 꾸준히!!! 하는거 같으니깐... 지금처럼 꾸준히 해효~~
네^^ 다음 돌잔치길은 실력을 훨씬 업그레이드한 다음에 도전!
"going back은 없어" 마음에 듬 ㅋㅋ
혜미야~ 참을인(忍)ㅋ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어질 인자를 썼었네요:p 정정했어요 감사해요~
3피치는 잊지못할 구간이었답니다....선배님들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