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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루> 구로사와 아키라, 드라마, 일본, 142분, 1952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 이키루는 '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삶'이 아닌 '살다'의 진행형의 표현에서 삶에 대한 더 깊은 표현을 느낀다. 처음 영화를 볼 땐, 전형적인 셀러리맨의 죽음이 아닐까 싶어 망설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역시 거장은 거장이다. 드라마틱한 구성의 힘과 성격의 변화와 내면 묘사가 탁월하게 어우려져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드라마의 정통을 가장 잘 체득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료사회의 한계와 참된 삶의 각성에 대해서까지 풍부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주인공 와타나베씨가 부르던 삶을 찬양하는 일본 유행가를 들어보자.
삶은 찰나의 것 소녀여, 빨리 사랑에 빠져라 그대의 입술이 아직 붉은 색으로 빛날 때 그대의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을 때 내일 일은 아무도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암선고로 인해 절망하고 잃어버린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황하는 와타나베는 삶의 무의미 속에 갈증을 느낀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는 여직원을 만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서 답을 찾았다. 그래서 관료제도의 제한과 한계 속에서 그는 지역민을 위해 헌신적인 사업에 몰두하게 된다.
사람은 평생 이해받지 못한다. 오해받거나 무시받거나 지나친 찬양을 받는다. 와타나베의 삶도 그렇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만족적 삶을 살 줄 알았다.
영화를 보며 세 가지 조직 생각이 났다. 하나는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이고, 나머지 하나가 공동체다. 국가는 관료제 사회를 구축해 개인을 지배하려 한다. 기업은 사적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려 한다. 하지만 기업의 논리를 견제해야할 국가가 기업과 하나가 된 현실에서,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소비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세뇌에서 스스로를 구출할 방법은 참으로 없는 것 같다. 건강한 개인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가 국가와 기업을 대체해야 한다. 그것이 비인간적 사회에 인간적 사회를 구축해나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역설과 반어의 이름붙이기를 다시 감행하고, 저마다 자유의 비행을 시도해야 한다. 역설과 반어는 상식을 뒤짚은 작업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혹은 나는 이것이 되고 싶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나는 당신을 미워한다, 혹은 나는 이것이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존재를 구속하는 언어의 감금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자유놀이의 기초 방법이다. 영화 <아키라>에서 주인공은 한계 내에서 인간의 의지가 현실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그 자체의 노력과 투지는 찬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두개의 조직 즉 국가와 기업이라는 조직의 구조적 통찰이 바탕이 되지 않았기에 개인의 불꽃같은 산화가 되고 말았다. 국가야말로, 기업이야말로 이런 헌신적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시대에 대해 사보타주할 것을 권한다.
= 줄거리 =
공무원인 와타나베 칸지는 어느 날 자신이 간암에 걸렸으며 남은 시간이 많이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그는 대단히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고 한번도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들 내외가 있지만 그들은 이미 그에게서 한참 멀어져 있다. 남겨진 시간은 길어야 1년.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자신의 삶이 가치 있었다는 증거가 될만한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하고 버려진 땅을 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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