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에
밤 깊어 불빛은 발기한다
인생을 이해한다고 믿는 자들에게
오래 병렬로 누워있는 자들에게
흩어놓으면 아무 것도 아닌 불안들에게
직렬의 불빛은 환상이다
인생이 밑줄친 문장같이 어떤 한 줄로 요약되기를 바란다 감동 받고 그 감동이 이웃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라고 쓴 문장을 읽었다 이것이 감동의 한 갈래가 되는가
나는 생각한다 움직이지 않는 저수지의 물결과 성의 없는 친구의 답변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조금씩 정직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바람이 분다
바람냄새를 맡는다
환생에 실패한 영혼의 신음을 듣는다
코와 눈과 귀는 반죽같이 뭉쳐졌다
손을 내밀자
급하게 달리던 바람이 급정거를 한다
이 고요한 순간에 난 태어난다
봄의 심리는 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지천에 핀 모든 꽃은 근친이다 그리고 꽃나무에서 꽃잎이 바닥에 떨어지는 동안이었을 것이다 부고가 날아왔다 그 찰나에 한 생이 저문 것이다 꽃잎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 비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늦게 철이 든다 내 시선에 닿는 문장들을 불러본다 까마귀 영감은 전깃줄 위에서 섭외된다 포도밭 아가씨는 머리를 잘랐다 한적한 구도로 삼촌은 아직 졸고 있다 추풍령에서 내려온 바람씨는 맞선을 보러 가는지 쌩 지나간다 그림자는 수컷인지 중간 부위가 점점 부풀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