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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후 첫 번째 주일
성경 ; 사6:1-8, 롬8:12-17, 요3:1-17
제목 ; 성령으로 육신의 악행을 깨뜨려버려라!
지난주일 오후, 제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정원에
있는 느티나무를 보니, 그 꼭대기에 장로님이 올라가 계셨던 것입니다. 장로님
이 듣기에는 좀 서운하실지 모르지만, 일흔이 가까운 노인께서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셨으니, 담임목사인 제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장로님께서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신 것은, 느티나무 가지를 아래로 잡아매
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뭇가지가 운동장 쪽으로 더 많이 늘어지게 해
서 나무그늘을 더 많이 만들고자 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느티나무를 좀 더
쓸모 있게 하려고, 장로님은 그처럼 무모한 모험을 하셨던 것입니다.
장로님과 이 권사님은 느티나무를 잡아맨 후에는 은행나무도 좀 더 멋있
게 만들어보려고 시도했던 가 봅니다. 그러다가 그만 은행나무 가지를 부러뜨
리고 말았습니다. 느티나무는 원래 부드러운 성질을 갖고 있지만, 은행나무는
느티나무처럼 잘 휠 수가 없는 성질의 나무였습니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시도
하다가 그만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장로님과 이 권사님은 매 주일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교회를
좀 더 아름답게 가꾸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
주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2005년도에 대변신을 한 번 했습니
다만, 지금도 두 분과 함께 여러 교우들이 힘을 합쳐 일함으로써, 우리 교회는
계속 변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외형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계속 변신을 거듭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
일 오전뿐만 아니라, 주일 오후와 수요일 저녁에도 모든 성도가 다 함께 참여
함으로써 말씀과 기도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영적으로도 늘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교회
가 이 시대 우리 지역사회에서 참으로 쓸모가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쓰레기 분리수거함이 곳곳에 설치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조금 내려
가다 보면 어수용 씨 댁 앞에도 하나 있고, 좀 더 내려가서 이발소 앞에도 하
나 놓여 있습니다. 빈병이나 비닐, 그리고 옷가지 등을 분리해서 버리라는 것
입니다. 그런 것들은 함께 모아서 재생처리장으로 보내질 것입니다.
재생(再生)과 중생(重生)은 비슷한 뜻을 가진 낱말입니다. 사전(辭典)에서
는, 재생을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됨’이라 풀이했고, 중생은 ‘영적으로
다시 새사람이 됨’이라고 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재생이란 육체적으로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을 말하고, 중생이란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
나게 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재생이나 중생은 ‘쓸모없어서 버리게 된 것을 새롭게 해서
쓸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쓸모없는 물건을 새롭게
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재생이라 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쓸모가 있는 유
익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중생이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새롭게 변화되어야 쓸모가 있습니다. 교회도
새롭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발전하게 되는 것이고, 사람도 새롭게
거듭나고 변화되어야 쓸모가 있고 유익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
면, 그야말로 쓰레기가 되어 쓰레기장에 버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날, 밤이 깊어갈 즈음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
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서 유대인 의회의 의원이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주
님께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아무도 행
할 수 없을 것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질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대답하셨습니
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누구든지 다시 태
어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께서 이미 니고데모가 찾아온 목적을 간파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실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는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내용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미 전해 들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주께
서 말씀하신 복음 중에는 하늘나라에 관한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때문에, 그
는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야만 천국을 볼 수 있다.’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무슨 뜻입니까? 나이 많은 사람
이 어떻게 다시 어머니 태에 들어갔다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고 반
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이 육체
적으로는 그의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 영적으로는 성령으로부터 태어나는 것
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부모를 통해서 육체적으로 태
어나게 되어 있지만, 예수를 믿게 될 경우에는 성령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영적
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됨으로써 하
늘나라에 갈 소망을 갖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는
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입으로만 ‘예
수는 나의 주님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
를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의 고백은, 예수를 믿기 이전의 인생 목표나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예수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살겠다는 뜻인 것입
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4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어서 하
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성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사람은 여전히 육에 속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자는 육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사
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육신이 고달프다거나 괴롭다고 해서 예배에도 빠지
고, 육신이 원한다고 해서 금해야 하는 것을 가까이할 경우, 그런 사람은 아직
육에 속한 자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선생은 우리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기를 ‘육신이 어떠한 것을 요
구하더라도 그것을 들어줄 의무는 없다(롬8:12)’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육신을 그대로 따라갈 경우에는 길을 잃게 되거니와, 결국
나중에 가서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13)’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씀을, ‘쉬운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죄의 본성에 따라 산
다면 죽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몸의 악한 일을 죽인다면 살
것이다.’ 요컨대, 육신의 요구를 물리쳐야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규용’이라는 분이 쓴 ‘아들아,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라’하는 책이 있습
니다. 이 책에서 이규용 씨는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간이 육신의 욕심대로
살 경우,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꿈을 이루
기 위해서는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서현교회’라는 곳에서 목회하시는 김경원 목사님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
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교계의 어느 원로목사님과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합니
다. 그런데, 그 원로목사님이 어느 정도 식사를 하시더니, 그 이후에는 음식을
일체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식사하던 분들이 “왜 그만 드십니까?”하
고 여쭙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더 이상 먹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몸에 아주 해로운 것이 과식이다. 조금 모자란 듯이 먹어
야지, 배부르게 먹으면 필요 이상의 것이 체내에 들어가서 뱃살만 늘어나게 된
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그
원로목사님처럼 단호하게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원로목사님은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이지만, 아주 건강하시다고 합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필요한 음식의 120%를 섭취하고, 우리
가 욕하는 돼지는 80%만 섭취한다고 한다.’고 하시면서 ‘식욕을 비롯해서 모
든 욕심을 절제할 수 있어야 육신도 건강해지고 영적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
고 강조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의 악한 행동을 깨뜨려
버려야 한다(현대어성경,롬8:13)’고 했습니다. 그러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는 말은,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
던 생활을 버리고,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대로 계속 살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습니다. 일단 마음을 고쳐먹은 후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즉시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를 적극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육신의 욕심을 따르면, 결국 나중에는 망하게 되어 있
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에게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수지맞는 일이
다.’라고 하면서 계속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탄의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나뭇가지를 잘라내면 금방 말라죽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에 남아있는 수액이 다할 때까지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육신의 욕심을 따를 경우,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
닙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일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파멸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승리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육신의 욕심을 열심히 물리쳐
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1.우선, 성령의 불로써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이 불살라 없애버려야 합니
다.
성령은 물과 성령, 또는 바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하는 일이 바람
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바람으로 표현하기도 하거니와, 성령이 우리의
욕심과 죄를 깨끗이 씻어 내기도 하고 태워 없애는 일도 하기 때문에, 성령을
물과 불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현대병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병이라고 하는 암(癌)은 아주 작은 종양(腫
瘍)이나 암세포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합니다. 그 종양이나 암세포를 일찍 발견
해서 잘라내면 암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양이나 암세포를
그냥 내버려둘 경우, 그것들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암 덩어리가 되는 것이
고, 그래서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암에 걸린다고 해서 영원히 죽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적으로만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욕심으로 인한 죄악은, 육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까지도,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 원인은 지나
친 욕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더러운 욕심과 죄악 덩어리들을 성
령의 불로써 태워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욕심과 죄악 때문에,
우리 인생은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말씀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거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
은, 암에 걸렸어도 통증을 모르는 것처럼, 죄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을 때에 환상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
전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 성전에서 천사들을 보게 되었고,
또한 그 천사들의 합창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이제 나는 죽었구나!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요, 또 입술이 더러운 백성들 중에 살고 있는데, 이런 내
가 만군의 여호와를 내 눈으로 직접 뵙게 되었으니,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좋
을까?”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왜 더러운 입술로 인해서 죽게 되었다고 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주석학자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입술로 원망과 불평을 더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으로 범죄한 것이 입술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사야 선지자는 입술이 부정한 까닭에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나타나서는 부집게로 벌겋게 타는 숯불을 집어서 그의 입술에
댔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말하기를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이제
네 죄는 사라졌고, 너는 용서받았다.”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털어놓고 회개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우선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성
령을 보내주셔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죄와 욕심을 불살라 없애주실 것입니다.
물론, 한 순간에 모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워낙 죄의 뿌리가 깊
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두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매
일 새롭게 거듭나고 변화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한 순간에 모든
죄가 다 사라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죽는 그 순간까지, 죄악의 세
력과 싸워서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2.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자녀 된 본분과 사명을
잘 감당해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죄의 세력이 더 크게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
럼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 그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
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하
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좋아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으나 사나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낙심도 하고 좌절도 하는 것
입니다. 신앙양심이 허락지 않는데도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시험에 들게 되고, 그래서 환난과 시련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루터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루터가 개혁운동을 하다가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자리에 누워서 ‘이제
는 모든 게 다 끝났어!'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그 때,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그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상복을 입은
아내를 보고 깜짝 놀라서 “아니, 누가 죽었소?”하고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그러
자, 아내는 “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에, 루터는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하고 외쳤습니다. 루터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그렇게 누워 있
을 리가 없지요.”
아내가 하는 이 말 한마디가 루터의 마음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그는 벌떡 일어나, 그가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하
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우
리 곁에 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이끌어가는 죄악의 세력을 열심히 물리쳐
이겨내고,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우리 후손에게는 자랑스러운 믿음의 조상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후원계좌 ;(농협)423070-52-033781(정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