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이가 대구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네."
남편이 무얼 말하려고 뜸을 들이는지 난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일용이. 촌스런 그 이름처럼 그는 남편의 어릴 적 고향 친구이다.
결혼 후 서울에서 종종 만나던 남편의 대학 친구들보다 일용이란 친구에 대해 제일 많이 들었다.
술이라도 한잔 할 것 같으면 하도 일용이 얘기를 많이 해 아예 외울 정도다.
일용이 아버지는 평생 이안댁의 일꾼으로 지냈으며, 엄마는 벙어리였는데 역시 이안댁의 부엌 허드레일을 해주고 바가지에 밥을
얻어다 애들을 먹였다고 한다. 일용이랑 남편은 같은 중학교에 다녔는데 집안 형편이 그러니 도시락도 싸올 형편이 못되어 남편이 몰래 밥을 싸다 주곤 하면 자존심이 강한 그는 절대 받지 않더라는 거다.
일용이는 머리도 비상하고 글도 잘 썼다며 남편이 부회장 선거에 출마할 때도 일용이 원고를 써주었는데 그걸 못외워 떨어졌다는 걸 무슨 자랑이라고 내게 수도 없이 얘기를 했다. 나중엔 일용이 학생회장을 했다나보다. 어쨌든 양조장집 도련님인 남편에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한 일용이의 모습이 멋지고 남자다워 보여 존경심을 갖게 되었나보다.
그러나 일용이의 학력은 중졸로 끝났다. 서울로 진학한 남편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버렸지만 고향을 찾을 때마다 일용이를 찾곤 했다. 우리가 결혼을 했을 즈음 일용이도 장가를 갔다. 고향에 갔을 때 일용이의 신혼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색시가 시골 사람같지 않게 키도 크고 얼굴도 말끔한게 촌살림하기 원통하다고 제 혼잣말을 했을 성 싶게 생겼다. 아들 둘을 낳고 잘 사는가 했는데 애엄마가 춤바람이 나서 가출을 했다는거다. 그 동네 여자들 몇몇이 밤마다 읍내 새로 생긴 카바레에 춤을 추러 다니다 그리 되었다는데 속사정은 알 수가 없다. 남편의 말처럼 남자답고 멋진 일용이가 어쩌다 그런 신세가 되었는지 내심 일용이에게 실망스러움을 느꼈다. 그런데 일용이는 일용이다. 그는 혼자서 아들 둘을 묵묵히 키워 냈다.
남편은 아침부터 일용이에게 가보고 싶어 내 눈치를 힐끔거리며 안달이 났다.
비가 퍼붓는데 날잡아 오늘 갈 게 뭐냐고 내일 가라고 하니까 그러마 하더니 오후에 비가 개기 무섭게 또 들썩거린다.
한번 맘 먹으면 기어이 그날로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이 B형 남자를 누가 말리랴.
봉투에 넉넉히 돈을 넣고 따라 나설 수 밖에. 안그러면 나 몰래 덥썩 병원비라도 계산해주고 내 주머니를 털게 뻔하니까.
일용은 그동안 술로 세월을 보냈던 모양인데 지난 3월에 이미 뇌경색이 와서 한차례 입원을 했었고, 이번엔 어지럽고 똑바로 걸을 수가 없어 큰 병원에 가보라해서 대구로 나왔단다. 말도 어눌해졌고 아마 뇌신경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 같다.
병상은 둘째 아들애가 지키고 있었다. 군에서 전역하자 마자 이런 일이 생겨 복학도 미루고 아버지를 돌봐 드리고 있단다.
어려서 한번 본 것 뿐이라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지냈는데 제 엄마랑 빼닮았다. 제 형은 대학 졸업반이라 취업 준비도 해야하니 올 수가 없어 제가 아버지를 떠맡은게지. 우리 둘째보다 두살 어리다는데 웃자란 콩나물처럼 키만 부쩍 큰 게 약해 보여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극구 사양하는 걸 밥이나 한끼 먹자고 데리고 나와 식당에 갔다. 라면 같은 걸로 끼니를 떼웠다더니 돈가스를 시켜 달란다. 말을 부치니 대답도 곧잘 하고 아주 예의도 바른 게 홀애비가 키운 애답지 않게 반듯하다. 한창 꿈도 많고 친구들이랑 어울릴 나이에 아버지 병수발 든다고 꼼짝을 못하고 매어 있다는게 얼마나 힘겨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일용보다 그 아들애가 가엾고 맘이 쓰리다. 나도 그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진 엄마의 병간호를 3년 동안 혼자 도맡다싶이 한 적이 있었으니까.
"얘야, 인생은 마라톤이야. 지금 남보다 뒤쳐져 가지만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어. 나중에 역전을 하는 기쁨을 누릴 때가 꼭 있을거야. 시간은 자꾸 흐르고 모든 상황은 바뀌기 마련이니 지금 고통스러워도 꾹 참고 기다려. 참는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도한 사람이 밥을 굶는 법은 없다잖아." 내가 하는 말이 그애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다. 오랜 후에라도 그날 어떤 아줌마가 내 힘겨움을 안타까워하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고 그래서 한순간이지만 용기가 나더라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다행한 건 요즘도 엄마와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고,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하며 성남 어디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거다.
헤어질 때 그 아들애 손을 꽉 잡고 흔들어 주었더니 수줍게 웃는다.
"어쨌거나 일용이 자식 농사는 잘 지은 것 같애."
그러면 되었지 원통하고 분할 게 뭐 있나. 그만하면 장한 삶이지. 그러니 일용답게 벌떡 일어나 주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첫댓글 천사보를 달고 나오신 두분의 행적에 가슴이 뭉클합니다.일용이..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ㅎㅎ 어서 벌떡 일어나시구려. 이렇게 안타깝게 그대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친구가 있으니..부원장님이 양조장집 아들이였나요? 옛날 양조장했으면 정말 부잣집 아들이였구나요.
옛날엔 그랬나봐요.ㅎㅎ 근데 우리가 3대째인지라 난 돈구경도 못해봤네요. ㅋㅋ
느티나무님 글 읽으려고 자주 들어오는데 항상 좋으네여...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되는데... 둘째아들 화이팅
애독자 한분을 확보하니 글쓰는 재미가 나는데요. 항상 격려해주시는 전광석화님도 화이팅!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돌보는 둘째아들이 가엾고 안쓰러워요... 위로와 따듯한 말씀대로 용기를 내어서 얼른 좋은 날이 오길 바래요.
행복한 동무며 멋진 두 분..
제가 행복한 게 아니라 항복한 거예요. ㅋㅋ
느티나무님을 볼 때마다 천생연분이란 단어가 그저 생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내 일보다 남의 어려움을 더 잘 챙겨주시는 두분의 마음이 항상 저에게는 자극제가 됩니다. 일용이 친구분이 빨리 쾌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천생연분인지 평생원수인지 모르겠어요. 항상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때문에 저절로 도를 닦게 되네요. 다 하늘의 뜻으로 이렇게 만났겠지요.
느티나무님은 어느 문학지에 등단하셨던분 아니신지요?
어느 문학지요? 동명이인 느티나무가 또 한 그루 있나봅니다.ㅎㅎ
웃는 얼굴 만큼 마음이 이쁜분이예요..두분은... 사람은 나이가 들면 얼굴에서 인격이 보인다하더니 정말...ㅎㅎ 친구가 호인이니 아픈친구도 아들농사 잘지었네요.. 얼른 쾌차해서 부원장님 맘 편해지면 좋겠어요...느티나무님 보고싶다..ㅎㅎ
나도 보고싶어요. 그 흑기사 대동하시고 한번 다녀 가세요. ㅎㅎ
ㅎㅎ 다른 기사 작업중입니다..곧 다녀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