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다움과 콤플렉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남성이 추구하는 남성다움은 서구의 남성다움과 유사한 면이 나타나고 있어 지구상의 남성들에게 남성다움은 보편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길러낸 특수한 유교 중심의 전통적인 남성상인 여유있고 너그로운 군자상도 포함되어 복합적인 남성다움을 보여 준다.
남성다움은 보통 이상적인 요인들이 모여 만들어지기 마련이어서, 실제로 대부분의 남성이 남성다움의 특징들을 두루 갖추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주변에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남성, 겁이 많아 남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남성, 나약한 남성 등 흔히 여성다움으로 일컬어지는 성향을 지닌 남성도 허다하다.
남성다움이라는 집단적 이상과 남성 개인의 실제적인 삶 사이에는 일종의 긴장감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상형에 자신을 맞추어 보라고 노력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형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비하시키거나 패배감을 느끼기도 한다. 남성 세계가 치열한 경쟁, 업적 중심의 성향, 야심, 적극성 등을 남성적인 기질로 규정할수록 남성다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더욱 사로잡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성 콤플렉스가 생긴다. 이런 콤플렉스는 남성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왜곡된 감정을 발산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삶이 콤플렉스에 얼마나 휘둘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콤플렉스란 사고의 흐름을 훼방하고 당황케 하거나 화를 내게 만들거나 마음을 찔러 목메게 하는 어떤 것이다. 약점에 찔리면 사람들은 곧잘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흥분하게 되는데, 콤플렉스는 바로 그 약점에 자리잡는다. 그런 뜻에서 흔히 콤플렉스를 열등 의식으로 생각하지만 열등감으로 생기는 불쾌한 감정뿐 아니라 우월감과 희로애락 같은 다양한 감정도 포함한다.
우리 나라 남성이 가지고 있는 남성 콤플렉스는 사내 대장부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 만능인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 장남 콤플렉스 등 일곱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콤플렉스를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 콤플렉스가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혹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콤플렉스가 매혹의 대상일 때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하거나 깨닫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오히려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도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콤플렉스를 스스로 깨닫기까지는 불쾌감과 고통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던 남성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기존의 역할과 사회적 위치를 더 이상 무리 없이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부여한 남성다움으로 인해 많은 남성이 심리적인 갈등에 싸이고 콤플렉스에 빠져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남성 콤플렉스는 여성과는 반대로 남성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데서 생기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마초(macho) 이미지와 마치스모(machismo)현상이다. 마초란 신체적, 성적, 심리적, 또는 지적으로 남성은 우월하다고 여기며 행동하는 남성으로 권위주의적인 남성 또는 남존 여비 신봉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의 나약한 감정이나 불안정한 성 정체감을 감추기 위해 초남성다움(hyper-masculinity)을 더욱 드러내려 한다. 마초 이미지가 지배적인 사회일수록 남성에게 이 이미지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의 덕목으로 추구하는 우월성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편견에 힘입어 남성에게 부과된 억압된 가치이기 때문이다.
한편 남성다움에 자신을 잃은 남성이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로 마치스모 현상을 들 수 있다. 자신을 잃고 불안해진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일삼거나 구타하는 등 무모한 짓을 함으로써 남자임을 과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월감을 과시하는 마초와 달리 마치스모는 남성이 자신의 우월감을 받쳐 주고 확인할 수 있는 기제가 없을 때 느끼는 갈등에서 비롯된다. 결국 마초와 마치스모 현상은 남성 우월 신화의 음과 양이라 할 수 있다.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흔히 여성적이거나 남자답지 못한 점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게 되면 움츠러들거나 완강하게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유교적 권위주의가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남성 콤플렉스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보는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먼저 남성다움의 역사적 변모 과정과 그 신화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무엇보다도 많은 남성이 신기루처럼 도달할 수 없는 이상화된 남성상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탐색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