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61:1]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본 시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요단 동편의 마하나임에서 압살롬의 군대를 피하고 있을 때 기록된 듯하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 여기서 '부르짖음'은 '소리치다'를 뜻하는 동사 '라난'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런데 동사'라난'은 기쁨에 겨워 크게 소리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와 같은 몇몇 문맥에서는 죽음의 위협 등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게 울부짖는 것을 뜻하기도한다...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 '유의하소서'는 '귀담아듣다' 혹은'귀기울이다'의 뜻으로서, 깊은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거기에 응답하시기를 갈망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기도'는 '엎드려 간절히 구하다'를 뜻하는 동사 '팔랄'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약성경 중에서 자주 사용되며 기도의 간곡성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잠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악인의 제사 ... 정직한 자의 기도 - 여기서 '제사'는 진정한 제사의 정신을 상실한 체 단지 의례적인 형식과 율법의 외적 준수에만 집착하여 드리는 값비싼 제물의 제사를 기리키며, '기도'는 비록 그 외적 형식은 미비하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순종과 헌신의 기도를 의미한다. 실로 성경에서는 이처럼 외적 형식에 대한 내적순종의 우월성을 강조한 곳이 많이 있다...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 본절의 '기도'에는 '믿음의'라는 수식어구가 붙어 있는데 이는 병든 자를 치유하는 신유의 기적이 '믿음'을 요구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비록 '기름'을 바르는 의학적인 치유 행위를 무시할 수 없다 할지라도 여기에는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기도는 믿음으로 하여야 한다. 한편 '구원하시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세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신체적인 질병에서의 구원, 곧 질병의 치유를 가리킨다고 본다. (2) 혹자는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본다. (3) 혹자는 위의 두 견해를 모두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다.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주께서 일으키리라'는 진술은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칸 하마르티아스'는 조건문으로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 있지는 않다 할지라도 일부는 죄가 병의 원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또한 이러한 사실은 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으로 병을 주신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설사 병든자의 질병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기도는 죄사함의 은혜를 유발하여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막 2:5).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사죄(謝罪)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식하고 병든 자를 위해 믿음의 기도를 행하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의뢰해야 한다.
[시 86: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골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를 항상 힘쓰고 - (1)어떤 특정의 소원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심령으로 부단히 기구하는 동시에, (2)일정한 기간을 내어 그 소원이 간절하기만 하면 이와 같이 힘쓰게 될 것이다. 기도의 주요 목적이 사고를 만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구함이라면, 사고가 생긴 그 대에만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주요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기도는 영적 생명력을 섭취하는 방편의 하나로서 잠시라도 정지하면 안되는 것이니, 마치 우리 육신의 호흡을 일시라도 정지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경 읽는 것을 음식에 비유한다면, 기도는 호흡에 비유할 수 있다.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이 문구는 위에 훈시된 항상 기도함에 관한 두 가지 긴요한 주의건을 말한다. (1)항상 기도을 힘쓰는 자는 간구에만 몰두하고 감사를 잊어버리기 쉽다. 미래의 축복을 갈망하는 것만이 기도의 목적이 아니고, 과거에 받은 축복을 기억하여 가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때에도 우리는 역시 감사해야 된다. 아버지의 잠잠하심도 자식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2) 항상 기도함에 있어서의 또 한가지 주의건은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항상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대에 신자들도 낙심하거나 피곤을 느끼는 시험에 빠질 우려가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 신자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기도자의 유익을 위하여 응답의 시기를 먼 장래의 어느 때로 정하신 까닭이겠고, 혹은 그런 기도의 응답은 그 기도자에게 무익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밖에 다른 선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오묘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자는 혹시 기도 응답을 못받는 때에도 실망이나 영적 피곤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도리어 전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기를 시작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한번 더 각성한 태도로 기도를 계속할 것이다. 그런즉 이상의 논조(論調)로 보아서 항상 감사함으로 각성하는 자라야 기도를 계속 실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