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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와 찬양 --------------------------------------------------------- 한가족 찬양단
*사 도 신 경 --------------------------------------------------------- 모 두 다
*찬 송 가 ------------------ 내 진정 사모하는 (88 /88)----------------- 모 두 다
대 표 기 도 --------------------------------------------------------- 박상용 집 사
말 씀 ------------------ 교회는 나의 새 가족입니다---------------- 박 희 본 목 사
*찬 양 ---------------------------------------------------------- 스룹바벨찬양단
헌 금 ---------------------------------------------------------- 헌 금 위 원
성 만 찬 ----------------------------------------------------------- 모 두 다
광 고 ---------------------------------------------------------- 담 임 목 사
봉헌기도/축도 -------------------------------------------------------- 담 임 목 사
* 는 일어나십시오.
English Service (Sun. 2:30 p.m.) Presider(예배인도자 ): Priscilla(박윤숙 강도사)
Adoration & Praise (경배와 찬양 )----------------------------------------All together(모두다)
*The Apostle's Creed (사도신경)------------------------------------------All together(모두다)
*A Hymn(찬송가)----------God is so good. (좋으신 하나님 )-----------------All together(모두다)
Representative Prayer (대표기도)---------------------------------------- 이미선 집사
Sermon (말씀)--The love of God (하나님의 사랑)- - Paul Park (박희본 목사) & Priscilla(박윤숙 강도사)
*Offering Song & Offering (봉헌찬양 및 헌금)-All to Jesus I surrender(내게 있는 모든 것을)-All together
Announcement(광고)/ Offering Prayer(봉헌기도)/ Benediction(축도)---------- Paul Park (박희본 목사)
Closing Song(예배마침 찬양)------------God sent His Son-----------------Song team(찬양단)
( * Stand up please. 일어나십시오)
교회는 나의 새 가족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누구든 그리스도인이 되면- 모든 아기들에게는 가족이 있듯이 그 사람은 새로운 가족에 속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기들이 그들을 먹이고 보살펴 줄 엄마와 아빠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들을 사랑해주고 보살펴줄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18절을 보시면- 모든 것이 온전했던 에덴동산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아담에게 공동체인 가족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가족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우리도 자신의 존재방식 대로- 공동체로 존재하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한 몸으로 살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고 말씀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은- 살아 있는 몸의 한 일부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몸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로 연결된 기관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 몸입니다. 서로 지체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의 몸이지 건물이 아니며, 유기체이지 조직이 아닌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일시에 3000명이 구원을 받았어도 12명 미만인 가족 셀의 돌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집에서 집으로 다니면서 음식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필요에 민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는 가족적인 모임에서 한 조직으로 변해갔습니다. 교회는 단지 매 주일, 공적인 건물에서 모이는 한 조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실상 ‘교회’라는 단어는 건물을 관련시켜서 안 되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십자가를 세운 건물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 함께 에베소서 2장 19-22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말씀을 보시면- 건물과 성전이 언급되고 있지만- 무엇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해 줍니까? ‘너희’입니다. 너희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 곧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우리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교회생활을 추구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셀로 시작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생활은 가족 단위인 셀 그룹에 초점을 맞춰 살아야 합니다. 셀 안에서 필요한 부분을 함께 도와주고, 특별히 영적인 부모역할을 하는 셀 리더를 통해서- 도움을 받고, 양육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장하면, 우리 모두는 셀 리더로 다른 사람을 돌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디자인한 교회생활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나 형제자매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우듯이 우리는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또 각자의 필요를 위해 어떻게 힘쓰는지 등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서 가장 성숙한 분들은 ‘사도’나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20절을 보시면 그들은 성도들의 머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들을 지원하는 터(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모퉁잇돌은 예수님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22절을 다시 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란 말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성도는 거룩한 백성이요, 동일한 천국시민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속”이란 하나님의 가족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21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가 함께 지어질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한 가족으로- 공동체로 함께 연결되어 있어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지고- 살아 있는 몸의 중요한 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몸의 기관들이 몸에 연결되어 있어야 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우리의 인간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역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각 지체들이 몸 전체를 통해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몸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과 기능을 찾아야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손가락이 손에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팔이 몸에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몸에 연결(연합)되지 않은 지체는 그 어떤 기능도 역할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공급받지 못하면- 우리의 영적인 삶은 시들기 시작하고- 결국은 무기력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교회에 잘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제를 소홀히 할 때, 그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도 함께 시들어가고, 결국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가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만큼 거만하고 무모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교회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고- 그만큼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도 칭합니다. 왜냐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의 아내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또는 “나는 당신을 받아드리지만 당신의 몸은 거절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멀리하거나 교회를 떠나서는 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록 사회적으로 성공한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적으로 태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영적으론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각들이 발달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성인이 되려면, 대략 20년은 걸립니다. 영적인 성장도 역시 시간이 요구됩니다. 물론 신체적 성장과는 달리, 영적 성장은 모두가 다 같은 속도로 성장하지는 않지만- 거쳐야 하는 과정은 같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11-14절을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는 말씀을 보시면, 육신의 나이로는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성숙한가를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년 간 그리스도인이었을지라도 몇 달밖에 안 된 신자같이 자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린사람은 젖부터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성장합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성장이 멈추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13,14절을 보시면, 우리가 ‘의의 말씀’을 경험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 나라 밖에서 살 때에- 우리는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범죄 하기 전에는-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기 전에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탄의 거짓말인-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받아드림으로서- 영적 죽음이 왔고, 그 결과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 것입니다(엡4:18). 그래서 우리 속에 양심이 있지만, 그 양심이 이기적인 마음과 세상 풍조에 눌려 그 분별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가 어머니가 보지 않을 때, 가위를 집어 든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위험한 장면입니까? 그것은 그 아이가 가위의 사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위로 눈이라도 찌른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듭난 순간부터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영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의로움을 가르치는 ‘신령한 젖’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을 보면-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했는데- 사실, 아기들은 젖을 스스로 먹을 수 없습니다. 젖을 먹여주는 엄마가 필요한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아기가 우유병을 스스로 들고 먹기까지는 여러 주가 걸리지 않습니까?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신령한 젖을 먹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까이서 그 아이를 돌봐주는 셀 그룹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젖을 먹일 더 성숙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셀에 소속되지 않으면, 무리를 잃어버린 양과 같이 되고, 가족이 없는 아이와 같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대인들은 독립적인 개인주의가 팽배하기 때문에- 교회에 다녀도 영적인 고아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수동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은 영적인 성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셀 안에서 1:1 후원자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고- 상호책임 관계가 이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서로’라는 말이 50번 이상 등장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권면하며, 문안하고, 섬기며, 가르치고, 용납하고, 존경하고, 서로의 짐을 나눠지며, 또 서로 용서하고 서로 복종하며, 서로 헌신하는 등-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서로 하라는 명령이 적여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멤버십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한 가족으로서 행해야 하는 책임이고, 명령입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와 이렇게 교제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내 주위에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면, 거룩해지기가 더 쉽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시험 없는 거룩함은 없는 것입니다. 고립은 속임을 낳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숙은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데에는 성경 말씀을 믿는 것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믿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에게 행동의 책임을 점검받을 수 있는 관계를 통해서 더 빠르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2-14절을 보시면-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는 말씀을 보면
우리의 성장에 세 단계가 있음을 봅니다. 자녀 단계는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청년 단계로서 악한 자를 이기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아비 단계는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와 여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13절을 보시면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했는데- 14절을 보아도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아이들’이나 ‘아비들’이나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를 안다고 했는데 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누구든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아비들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앎은 상당히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여러분들도 제 아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 아내를 아는 것만큼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 차이입니다. 사귐이 오래 될수록 우리는 그 사람을 더 잘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들은 오랜 세월을 주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의의 말씀을 아는 자입니다.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영적인 아비입니다. “나는 주님과 오랫동안 사귐을 가져왔습니다. 또 주님은 나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어떤 것인지 알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압니다. 그래서 나는 의의 말씀을 분별할 줄 압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바로 영적인 아비입니다.
어느 사전에 의하면 ‘아버지’는 <재생산하는 남자>라고 정의합니다. 렐프 레이버도 셀 안에서 잃어버린 양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또 주 안에서 태어난 새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 곧 영적인 아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당신의 주인이심을 알도록 당신을 인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이 영적으로 당신의 아비입니다. 그 사람에게 가서 그들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도록 사용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이러한 영적인 아비가 없었다면- 또 그 사람이 당신과 사귀려고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사단의 어둠에서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 영적으로 청년입니까? 14절 끝부분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한 것을 보게 되면- 청년은 한 마디로 악한 자를 이기는 자입니다. 그가 어떻게 악한 자를 이긴 것입니까?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이 영적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줄 아는 제자로 훈련된 자라는 것입니다. 제자로 세움을 입어야 악한 자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의 과정을 거쳤어도 유혹에 대한 면역력을 가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나 그 상황이 되면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했고,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서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경고해 줍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우리가 서로 상호책임을 질 것을 명하셨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고 권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가까운 친구, 곧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셀 그룹이 필요한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교제가 아니라, 진실하며, 때로는 아주 깊은 나눔을 가질 수 있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진실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와 감정을 표현하고, 실패를 편안하게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물론, 거기서 이야기 한 것들은 무덤까지 비밀이 지켜지는- 무슨 말을 해도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모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셀 모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서 더 말씀 드릴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관하여- 진실하게 문제를 내려놓을 수 있는 한 가족으로- 공동체의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누군가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그를 쫓아가서 교제 가운데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야고보서 5장 19절을 메시지 Bible로 보면- “만일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멀어져 방황하고 있는 사람을 안다면 그들을 단념하지 말고 그들을 찾아가라.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오라”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로 인한 유익 가운데 하나는- 인도자를 통해서 영적인 보호의 역할을 감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양 무리를 영적 전쟁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하고, 지도하고, 돌보도록 목자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20장 28-30절을 보면-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고 하신 것을 보게 되며- 히브리서 13장 17절을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하신 말씀을 봅니다.
사탄은 교회에서 멀어지고 마음이 떠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과 영적인 인도자로부터 돌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사탄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겁니까? 그래야 사탄의 속임수에 대항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시간에 우리의 선택(결단)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모든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동적으로 인류라는 공통된 가족이 되지만- 그 아이가 보살핌을 받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듯이- 영적으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 새 피조물이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큰 가족 구성원이 되지만- 그렇지만 우리 자신이 그 가족의 실제 모습인- 지역교회의 한 일원이 되어서- 몸 안에서 연합된 삶을 살지 못하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그냥 다니는 것과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 몸의 한 지체로 연합된 삶을 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방관자인 반면에- 구성원이 되어 지체와 더불어 연합된 삶을 사는 자는- 참여자로 구별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은 소비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몸을 이루어 사는 사람은 기여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그냥 다니는 사람들은 책임을 공유하지 않고,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의 한 일원이 된 사람은- 결혼하여 서로에게 헌신한 부부처럼- 상호책임을 지고, 몸 안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소비자가 되지 마시고, 기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여자는 참여자입니다. 교회가 하고자 하는 일에 책임을 함께 지려는 사람입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는 한 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까? 왜냐면 그것이 우리가 영적인 형제자매들에게 헌신하고 있음을- 이론이 아닌 실제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사랑하는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약점과 문제를 자기 문제로 봅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허물과 약점을 함께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약점을 자신의 수고로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완벽한 교회를 찾기 위해 시간을 낭비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선 문제없는 완벽한 교회는 절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하나님처럼 불안전한 죄인들을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예루살렘 교회는 서로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교제(코이노니아)에 매우 열심히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들도 그와 똑같은 것들에 헌신하기를 바라십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것, 그 이상입니다. 다른 크리스천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는 이것을 이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5절을 쉬운 성경으로 보면 “그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난 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에게도 주었던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을 자기 힘에 지나도록 넘치는 연보로 바울 사도를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우리 자신을 헌신함으로서 크리스천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 헌신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된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아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교회생활을 충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헌신했다는 것을 보여줄 정도로-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ㅣ한가족교회 소식 ㅣ
1. 저희 교회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서로 문안하십시오.
2. 3월에 open 하는 문화교실을 위해 3층 과 1층 카페실을 증축해야 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을 우리 모두가 특별헌금으로 참여코자 합니다. 증축될 때까지 모두가 기쁘게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오후 모임은 새신자 양육모임과 기타 세대 별 셀 모임이 1:30-2:20이 있고, 2:30-3:30까지 영어 채플이 처음 시작됩니다.
4. 박승인 전도사님과 강신천집사님 부부가 3월 1-4일 새 비지니스 구상을 이해 미국에 가셨습니다. 많은 기도부탁합니다.
5. 목사님은 3월 3일과 10일 충주 아가페신학에서 강의가 있습니다.
- 3 월 달 집중 기도 제목 -
1. 주일 예배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나타나 예배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치유되고 변화되도록 기도합니다.
2. 새로 시작되는 기도 셀에서 친밀한 교제권이 형성되고, 전도하는 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3. 지역전도를 위해, 문화 교실로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건물이 완성되도록 기도와 물질로 헌신합니다.
4. 토요일 지역 전도를 위한 문화 교실에 많은 봉사자가 나와 활발하게 전도에 힘쓸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5. 은행 원금환수를 위해 모두가 자발적으로 건축헌금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교회의 비전)
우리의 비전은 이 땅(가정, 교회, 지역사회)에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성령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핵심가치)
1.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의 인도하심에 가치를 둔다.
2. 우리는 섬김과 돌봄을 통해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가치를 둔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거룩한 삶에 가치를 둔다.
4.우리는 성도의 권세로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5.우리는 영적 추수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가치를 둔다.
6. 우리는 영적 아비(어미)로 셀 모임이 번성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7. 우리는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일에 가치를 둔다.
(성도의 실천사항)
1. 매일 말씀의 실재로 경청의 방을 하고 성경읽기를 한다.
2. 매일 중보기도를 한다.
3. 매일 지체들에게 축복과 격려의 말을 한다.
4. 매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셀 모임과 주일예배에 참여한다.
5. 매주 후원자와 만나고 후원자가 된다.
6. 내가 먼저 주변에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겸손히 섬긴다.
7.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 대접하기를 힘쓴다.
8.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전파에 힘쓴다.
9. 매주 가정예배와 품성훈련에 힘쓴다.
10. 매일 잠자기 전에 가족과 대화하고 기도드린다.
주일예배봉사담당 |
3월 4일 |
3월 11 일 |
3월 18일 |
3월 25일 |
4월 1일 |
대표 기도 |
박상용 집사 |
윤태흥 집사 |
임한일 집사 |
최여수 집사 |
강신천 집사 |
가족 특별찬양 |
문장식 가족 |
박상용 가족 |
박승권 가족 |
박승인 가족 |
박희본 가족 |
* 3 월 달 헌 금 위 원 : 이호영, 이수호 집사님.
* 이번 주 예찬 : 김순옥, 윤정애. 다음 주 예찬 : 주응미, 이명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