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2123 십자가 말고 다른 길은 없었는가 210228 사순절 둘째 주일
오늘은 우리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묵상하는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으로 절망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정의 실현과 민족 해방을 위해 우리 한국교회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3.1운동 102주년이 되는 3.1운동 기념 주일입니다.
주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을 당하셨고, 우리 선조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도록 3.1운동을 일으켰는데, 그 희생을 생각하는 거룩한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세계 모든 만물은 생물체와 무생물체로 나뉘고
생물체-생명 활동을 하는 생물을 크게 나누면 동물, 식물입니다
동물의 본능은 명확하다. 생존과 번식이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번식을 위해 싸웁니다.
본능 [本能]
배우거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동물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갖추고 있는 행동 양식이나 능력으로, 동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그 결과 생존합니다
ex)돌고래 영상
ex) 연어의 일생 영상
연어는 태평양에서 놀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긴 여행을 떠난다. 바다에서 민물로 된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란 너무나 힘들다. 또한 중간에 포식동물도 기다립니다. 죽기 위한 여정이지만 그래도 갑니다. 그리고 번식에 성공하면 바로 죽습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 연어나 돌고래나 모두 모정이라 말해지는 그것은 번식의 본능입니다.
2. 사람의 본능은 어떨까?
일본·한국·중국 등 6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 침팬지 게놈 프로젝트’ 에서는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 구조가 무려 98.75%나 같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적 차이가 1.25%에 불과합니다.
=>본능은 사람과 동물이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동물의 본능인 생존과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외에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自由意志), 신의지(神意志-신에 대한 갈망)가 있습니다.
=>사람의 본능 = 동물의 본능(本能)+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신의지(神意志)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여러 대안 가운데서 선택하거나 또는 어떤 상황에서 자연·사회·신의 구속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의 힘이나 능력.
*신의식(神意識, 라틴어: Sensus divinitatis)은 신에 대한 의식(sensus deitatis) 또는 종교의 씨앗(semen religionis)을 뜻하는 기독교 용어입니다.
장로교운동의 프랑스의 개신교 개혁신학자인 장 칼뱅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신의식이란 인간에게 신을 아는 지식이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신의지(神意志)는 사람 누구에게나 있다 –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신을 찾는 마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본향을 향하는 마음!!
*회의론자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하여 반대하던 철학자 데이브드 흄<David Hume>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종교가 전혀 없는 사람을 찾아보라. 만일 찾는다면 분명히 그들은 어느 정도 짐승에서 멀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3. 예수님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능을 가지셨을까?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셨을까?
주님은 우리가 각자 어머니에게서 났듯이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어린 시절이 있었고 청년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음식을 드셨고, 피곤하면 쉬시기도 하셨습니다.
좋은 일을 만나면 기뻐하셨고 슬픈 일을 만나면 슬퍼하시고 웃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사람이 가는 한 길, 죽으셨습니다.
완벽한 사람이셨습니다.
4.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실 때 수제자인 베드로가 “절대 그럴수 없다”고 가로 막고 나섰습니다.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님을 생각해서, 사랑하는 주님을 그렇게 돌아가시게 할수 없다는 순수한 감정의 발로에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엄히 책망을 하셨다. 사랑하는 제자를 사탄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5.그러면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러셨을까?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고통을 모르셨을까?
아니요, 주님은 십자가와 고난의 무게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물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셨고, 할수만 있으면 이 고난의 잔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에게 채찍을 맞으실 때는 피를 흘리시며, 괴로움에 지쳐 쓰러지기도 하셨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그 젊은 청년의 나이에 너무 지쳐서 지고 가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실 때는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울부짖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신 분으로 모든 고통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6. 그런데도 왜, 참 하나님이시기도 하셨던 주님께서, 하늘군대를 보내서 대적자들을 물리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실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시지 않고, 그 엄청난 고통을 혼자 다 당하시고 마침내 죽기까지 하셨을까?
그것은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댓가로 실제로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죄로 인해 우리가 받을 고통을 당하시지 않고, 우리 죄를 대신하셨다고 할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7.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첫째, 주님이 당하신 지독한 고통은 바로 우리 모두의 죄의 고통을 합한 고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사람이 되셨다고 해도 공생애 기간 동안 신적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물위를 걸으시고, 바람을 잔잔케 하시고, 각색 불치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신 것이 바로 그 증거이십니다.
따라서 웬만한 고통이라면 문제없이 감당하실텐데 그 죄의 짐이 너무 무거워 주님께서도 감당하실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온 인류의 모든 죄짐을 지셨기에 주님께서도 감당하실수 없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운명하실 때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절규하셨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그 무슨 은혜이던지 차고 넘칩니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1)주님께서 광야에서 두 번에 걸쳐서 행하신 기적, 5병이어의 기적과 7병이어의 기적은 광야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 7광주리가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2)구약 광야시대에도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을 때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고 살았는데, 언제나 부족하지 않고 넘치게 내려 주셨습니다.
주님의 대속의 은혜는 오고 오는 모든 사람에게 넉넉하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를 위해 말로 다할수 없는 고난을 다 당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
엄청난 고통을 받으신 주님의 십자가에서 우리가 깨닫는 또 하나의 깨달음은
둘째,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우리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서 비난받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회가 독선적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조금 어폐가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다른 종교에도 선이 있고, 우리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유익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다른 종교에 우리가 믿는 구원이나 내세,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그 종교들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종교라면 사람이 지은 죄가 그대로 있음에도 천국에 간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죄함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받나요?
ex)고해성사(告解聖事)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은총을 받는 성사입니다
-고해자는 사제가 요청하는 ‘보속’을 함으로써 자기 죄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하여서 고백행위를 완수해야 합니다.
ex)불교의 경우는 수도 참선 등 수양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다는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고해성사를 한다고 해서, 수도 참선을 하여 마음을 바로 갖는다고 해서, 죄가 용서될수 있을까요?
ex)실정법을 봅시다.
누가 법을 어기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재판을 받고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요.
그래야 그 사람은 자유로울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망다녀야 하고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정법에서는 법의 시효가 있지만, 양심의 세계, 더구나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시효가 없습니다.
반드시 합당한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죄의 댓가를 어떻게 치르지요?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십니다.
죄가 있으면 죽음으로 죄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절망입니다. 끝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 죄를 대신해 준다면 물론 죽지않고 영원히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치를수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우리는 누구든지 자기 한 목숨 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대신 죽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리 훌륭한 종교라고 해도 우리를 위해 대신 죄값을 치를수 없으니 선하고 착한 종교라고 해도 거기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죄를 대신 지고가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행전 4:12절 말씀에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ex)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게바파, 아볼로파, 바울파가 생겨서 분쟁이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내 고린도교인들을 책망하면서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 말씀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고전1;12-13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죄인된 우리가 구원받을수 있는 길은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ex)구약성경의 제사제도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베푸신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대신 양을 잡아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 사람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손수 베푸신 속죄의 제사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폐하시고 예수님을 속죄 양으로 삼아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양은 양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지은 죄를 양이 대신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속죄제사는 온전한 속죄양으로 오신 주님이 오실 때 까지만 유효했고, 이제 주님이 오셔서 속죄 양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새 언약이 시작된 것입니다.
새 언약은 이제 누구든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주님을 믿으면 속죄의 은혜를 입는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지고가신 십자가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위대한 인물도 많고, 선한 종교, 훌륭한 스승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구원할수 없는 것은 그들은 우리의 죄를 대속할수도 없고, 대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그들은 자기 죄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대속하고 구원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모든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고 말로 다 할수 없는
엄중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길이 오직 십자가 대속외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혹독한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은혜 감사하며,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