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0기상, 아침식사==>03:00세석산장출발==>05:00장터목대피소도착[06:00아침식사출발]==>07:00천왕봉도착==>법계사==>12:00주차장도착, 14:00 출발==>17:00 전북 장수 논개 생가 견학[19:00 출발] ==> 21:30 인천 도착
9월 26일 지리산의 어둠이 피곤에 지쳐 한참 잠들어 있을 새벽 두 시. 옆에서 먼저 일어난 일행들이 배낭을 꾸리며 내는 "바스락"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조금만 더 잤으면 하는 간절한 피곤함을 야속하게 몰라준 일행들이 야속하기만 하다.1시간이 여유나 있는데 30분만 더 자도 괜찮을 듯 싶었는데 바스락 그리는 소리는 멈출 기미를 보어지 않았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우기에는 젊고 젊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전날 20킬로그램 이상을 등에 매고 13시간 이상을 강행군 한 때문인지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누워서 몇 분을 뒤척였을까?
정신을 가다듬은 후에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먼저 일어나 채비를 마친 일행 몇 명이 어둠을 등뒤로 하고 모여 앉아 야참인지 아침인지 모를 밥을 먹고 있다. 나는 장터목에서 먹을 생각으로 잠시 시간이 있어 배낭을 둘러 맨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라본 하늘은 정말 상쾌하고 개운했다. 어둠 속에서도 맑은 하늘과 차갑도록 시퍼런 하늘. 종종 흘러가는 흩어진 구름은 한밤의 피곤함을 말끔히 쓸어갔다.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린아이의 보드랍은 손등처럼 부드럽고 포근했다. 하늘에 고운 밤별들도 우리들의 지리산 종주를 밝은 빛으로 축하를 해주고 있다.
새벽 3시.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나와야 할 사람이 아직 안 나왔다. 그가 없으면 우리들은 출발은커녕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들의 유일한 홍일점 홍실장이다. 잠에서 덜 깼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여자의 몸으로 16킬로그램 이상을 매고 13시간 이상을 강행군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자의 몸으로 대단하다 그는 매주 1-2회 산행을 이끄는 산악회 회원이다. 전날 출발하기 전에 버스 안에서 배낭이 얼마나 무거운지 한 번 들어보니 내 배낭보다 조금 덜 무거웠다. 그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새벽 3시 그를 뺀 우리 일행들은 먼저 올라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뒤에 바로 따라왔다고 했다. 오늘 천왕봉을 올라 안개가 걷힌 지리산의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구름이 끼지 않는 날 천왕봉을 오르면 3대가 덕을 쌓는다'산을 찾는 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나는 이루고 싶었기에 무한한 희망과 기대를 안고 정상으로 향한다. 발걸음은 정말 가벼웠다. 새벽이슬에 묻은 밤하늘의 고운 별빛과 달빛들이 발걸음에서 톡톡 터진다.
세석산장을 출발한 지 두 시간만인 다섯 시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밤하늘에 별빛들이 서서히 안개로 드리우기 시작한다. 안개가 드리우지는 만큼 우리의 희망은 그 안개의 농도만큼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잠깐씩 걷히는 희망. 우리가 서 있는 여기서 한 시간만 오르면 더 오르면 우리가 오르고자 했던, 이틀을 밤낮으로 고생하며 오는 이유가 그곳에 있다. 해가 뜨려면 1시간 반이나 여유가 있었다. 천왕봉을 오르기에는 충분했다. 안개가 결국 산장 주위에 잔뜩 내렸다. 우리들의 희망이 제로에 가까운 안타가운 시간.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그렇게도 믿고 고대했던 유일한 희망 그 위로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벼루고 벼르던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는 없는 건가? 순간 울음이 목구멍 가까이 차고 올라온다. 아직 울음은 아니었다. 저번에도 보지 못했고 이번에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서운했다. 지난 여름에 이번 산행을 그렇게도 기약 해놓고 기다렸는데. 기대나 희망이 크면 실망도 그만큼 큰 법. 그 진리를 진작 터득했음에도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아 적잖이 실망을 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안개가 내린 길을 헤집고 올라갔고 일출시간을 계산한 일부 등산객들은 여유 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아침을 먹고 있다. 일행들도 아침을 먹고 정상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그냥 곧바로 올라갈 것이냐로 의견이 분분했다. 안개가 내려 어차피 천왕봉을 올라도 일출을 못 볼 것인데 아침이나 천천히 먹고 올라가자는 의견과 혹시 올라가 기다리면 안개가 걷혀 일출을 볼 수도 있을지 모르는데 정상에 올라 기다리자는 의견이 있었다. 걷힐 기미가 없는 주변의 자욱한 안개는 우리들의 분분한 의견을 쉽사리 결정케 했다. 안개가 낀 정상을 올라간다 해도 일출을 보지 못할 것 같아 우리는 여유 있게 아침을 해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니 6시다. 안개가 내리지 않았다면 20여분 후면 황홀한 태양이 떠오를 시간. 내내 머릿속에 아쉬움이 나는 시간. 그래도 일찍 마음을 접으니 마음만은 편안했다.
아침을 먹고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서운하면서도 편안하고 개운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오솔길에는 낙엽이 뒹굴며 가을이 깊어짐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나뭇잎과 낙엽으로 뒹구는 풍경은 천왕봉 정상으로 향할수록 가을이 제법 깊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바위 위에 뿌리는 내린 일부 나무들은 단풍으로 곱게 몸치장을 하고 우리 일행을 반겼고 일부 나무들은 우리의 발걸음을 붙들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새벽에 일찍 올라간 등산객들이 일부 내려온다. 한결같이 굳은 인상이다. 웃는 이가 아니 웃음을 담은 입술을 볼 수가 없다. 전날은 등산로에서 마주치면 서로 먼저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정상에서 내려오는 누구도 인사를 먼저 하지 않는다. 표정들이 굳어있다. 나는 믿고 싶다 전날 피곤하여 인상이 굳어 있는 것으로....,우리는 일찍 포기를 했으니 아니 일찍 지리산의 생리를 알고 마음을 고쳐 먹었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조바심이 없다.
정상에 서는 순간 안개로 가려진 발 아래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올라왔기에 그리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쉬움은 남을지라도. 단지 풀지 못한 숙제를 언젠가는 다시 풀어야 할 곳이란 나만의 숙제를 남겨놓고서 말이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험난했다. 자갈길에 급경사로 나이가 젊은이들도 힘들었다.
두어 달 전에도 이 길을 집사람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걸었었는데..., 그때 무릎이 아프다고 내려가는 이 길을 힘들게 걸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집사람이 생각난다.. '아, 산은 사람들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구나.'
법계사에 들러 소원을 빌었던 그때의 소원은 아직도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그때 풀지 못한 한 가지 궁금한 점을 확인했다. 불상은 없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만 모셔두고 그 앞에 기도하는 적멸보궁이란 뜻을 확인했다.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 서기 544년 연기조사께서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인도에서 모셔와 봉안한 절로써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다. 법계사를 적멸보궁의 절이라 하며 적멸보궁이란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전을 본당으로 사리탑에 예배하는 것이다.
산행이 마무리에 접어들고 주차장에 거의 다다를 즈음 냇가에서 몸을 씻었다. 이틀 동안 씻지 못한 몸을 물에 담그니 날아갈 듯 시원하다.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계곡물의 차가움과 염분으로 찌든 살갗이 닦여지는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몸을 씻고 밖으로 나와 몸을 닦고 쉬는데 산행 내내 같이 한 일행중 한 분이 내 앞에 앉아 있다가 묻는다. 아직도 나누지 못한 사연이 있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천 어디사시죠?"
"저요. 연수동입니다"
"아네 그럼 직장은....,?"
"00경찰서요"
"네 00경찰서라고요?"
"네 맞는데요....,"
"우리 아들이 거기서 근무하는데"
"어느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인데요?'
"아니 직원은 아니고 군 복무중입니다."
"그럼 어디서....,?"
"의경으로 있습니다"
"아니 제가 00경찰서 소대장으로 있는데.....,"
<"......,">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산행 내내 오솔길을 동행하며 이야기를 하고 지내왔지만 산행이 끝나갈 즈음에서야 대원의 아버지란 걸 알았다. 우리는 너무 반가워 다시 악수를 했다. 산행의 끄트머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렇게 산행은 대원의 아버지를 만나 즐거움은 배가되었다. 혹 산행 중에 내가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보일걸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산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며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추억을 만들어 준다는 진리를 다시금 터득하게 되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 중에는 악한 사람은 없다란 나만의 믿음을 재차 확인하여준 산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의 고향을 보여주고 싶어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고향집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일행들을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났고 전부터 아는 사람들은 없었다. 1박 3일 동안 서로가 서로를 믿게 되고 정이 들었기에 나 자신 스스로 가족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그들을 초대했다. 고향집 바로 윗동네 논개 생가를 구경한 후 집에 들리니 추석절 전후라 집에 와 있는 형과 형수님 구리고 동생과 재수씨 그리고 언제나 찾아가도 마다하지 않고 반겨주시는 부모님이 환대히 맞아주신다. 내 고향은 언제나 나를 반가이 맞아주어서 좋다. 내가 어렵거나 잘살거나, 아프거나 기쁘거나, 울고 싶거나 웃고 싶거나 하면 찾을 수 있는 엄마의 마음처럼 편안한 안식처이다.
싫은 표정 짓지 않고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웃어주는 고향,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갈 수 없는 고향을 등지며 사는 사람보다는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을 마주보며 살아갈 수 잇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언젠가는 늙어지면 돌아갈 내 고향인 것이다. 약속도 없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갑자기 데리고 간 나와 일행들을 반가이 맞아 진수성찬으로 대접해준 부모님 그리고 형님 내외분과 동생 내외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저도 지난주 친구들과 성삼재에서 돼지령 임결령 형제봉....세석에서 하루 묵고 친구중 한명이 다리 부상으로 정상은 포기하고 거림으로 하산 후 진주에서 고속타고 올라올수 있었습니다.지리산은 처음 산행이였었는데 정상에 오르기가 그리 만만치 않았답니다.다음주 다시 정상 도전 해 보렵니다.
첫댓글 그대 나를 아느냐고 물어신다면....나 이제 그대를 모른다고... 대답만 그리 하시겠지요? 좋은 글, 여운이 남아 읽고 또 읽어 보네요..산다는 게 그런거지 하며 마음 달래 봅니다.
수고많이하셨습니다~~~~ 흐믓산 미소 보냅딉니다~~~~ ㅎㅎㅎㅎ 글구 종주하면서~ 아니 출장을 통털어서라도 늦잠은 처음이었는데~~~ 제가 있던 산장객실에는 넘 조용했지요~~~ 연실 시계만 보면서 설잠을 잤는데~~~크크크크~~~막판에 눈을 뜨니 5분전이더라구요~~ㅋㅋㅋ후기 즐감하고 갑니다~!!!^.~*
오래 묵혔다 풀어 놓으니? 시골 된장맛 그되로 입니다? 걸죽하고 구수한 된장국 맛나게 음미했습니다? 늘 안전산행 하시길 바래요...
목빠지는 줄알았다가~~~ㅋㅋㅋㅋ 올려주심사 간청했었나이다~!!ㅎㅎㅎㅎ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저도 지난주 친구들과 성삼재에서 돼지령 임결령 형제봉....세석에서 하루 묵고 친구중 한명이 다리 부상으로 정상은 포기하고 거림으로 하산 후 진주에서 고속타고 올라올수 있었습니다.지리산은 처음 산행이였었는데 정상에 오르기가 그리 만만치 않았답니다.다음주 다시 정상 도전 해 보렵니다.
산에서 사람이 떠오른다는 글귀,,,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구절이네여,, 항상 아름다운 11월 되세영^^
소롯길님~~~방가요~!!!ㅎㅎㅎㅎㅎ 지난6월에 거림지구로 올랐었는데~~~ 그땐 비가 왔었지요~~~~^^*
너무 고맙고 가슴 뜨끈따끈하고 훈훈함 아직도 느껴집니다......고맙습니다...함께한 모든분들도,,*^^*
오랜만이네요. 이몸도 언제쯤 2부가 나오나 기다렸죠. 나와는 하산길이 달랐지만 축하드리고요, 끝까지 완주를 한 아마노님의 후기도 기대해 보내요. 아마노님 사진 한장 삼화에서 찾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