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6월 30일 금요일 맑음
“야 ! 정말 매실 좋다. 얼마예요”
“만 오천원이예요” “싸네. 매실청을 벌써 담았는데, 이런 좋은 매실이면 한 자루 더 담아도 돼” 기분 좋게 개시를 해주시는 아주머니가 고맙다.
“나 이거하고 이거 두 개 저 차에 실어 줘요” 만 원짜리 세 장이 또 들어온다. 마수걸이를 잘 했더니 술술 풀리기 시작한다.
비래동 농협 맞은 편 편의점 앞에서 손바닥만한 그늘을 빌려 노점을 벌렸다.
돈을 벌려고 보다 한 풀이다.
아침 여섯 시 핸드폰이 울렸다.
“예, 예 알았어요” ‘저 사람이 뭘 알았다는 건가 ?’ 꿈 속에서 오락가락했다.
“여보, ‘왕특’이 오천원, ‘특’이 이천원이래” 미안해하는 소리다.
공판장에서 경매를 하고 낙찰된 가격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뭐라고. 이런 도둑놈들 봤나. 안 돼. 나 그렇게는 억울해서 못 팔아. 전화를 걸어” 오정동 농수산시장 대전청과 공판장이다.
“나 그 값으론 못 팔아요. 어떻게 하면 되죠”
“그럼 오셔서 가져가세요” “힘드는데 그냥 넘기지” 안사람이 사정을 한다.
“엇그제 공주공판장에서도 만 팔천원을 받았던 물건인데 오천원이 뭐야. 안 돼” 급히 서둘러 트럭을 몰고 오정동을 향했다.
막상 분기가 충천해서 나섰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6시 20분 경. 농수산시장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다.
경매된 물건이 중간상에게 넘어가고, 중간상은 다시 소매상에게 넘긴 물건을 실어 나르느라 콩이 튀듯 분주하니 차를 몰고 들어갈 길도 막막하다.
그러나 이왕 나선 길, 밀릴 수 없다고 이를 악물고 밀고 들어가니 조금씩 길이 열린다. 이럴 때 사고를 내면 엎친 데 덮치는 격이 될라 극도로 긴장하고 빼꼼 열린 길을 따라 접근해가니 뜻있는 곳에 길이 있으리란 말이 사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도 경매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 넓은 공간이 물건과 사람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어제 밤 11시. 매실을 싣고 왔을 때는 우리 매실만 있었는데, 여기저기 매실이 쌓여있다. 밤 새워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러니 쌀 수밖에....
어제 시새가 좋았다는 소식에 몰려든 것이리라. 괜히 약은 척 했다.
그런데 내가 참지 못하는 것은 내가 받는 가격보다 그들이 파는 가격이다.
작년에 대전공판장에 매실을 내고 그 게 농수산시장에서 얼마에 팔리나 돌아 보았었다.
만 오천원에 팔린 날에 이만오천원에 팔리더니 육천원에 팔린 날도 그대로 이만오천원이 아닌가 ! ‘에라 이 도둑놈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과연 누구 배를 불리기 위한 시스템인가 ?
“내 매실 찾으러 왔습니다” “예, 싣고 가세요. 어제 물건을 내린 하차비 9천원 주시고, 실어주는 사람을 이용하시려면 상차비 9천원을 주시면 됩니다”
그 좁고 복잡한 틈바구니에서 물건을 실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
농수산시장을 떠나면서 걱정 보따리가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막상 싣고 나오긴 했지만 어떻게 한다.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공주공판장으로 가서 아침 경매를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산으로 가서 매실청을 담던지... 마지막은 길거리에서 소매를 하는 거지’
제일 좋은 것은 공주공판장으로 가는 것인데 아침 경매 7시 반까지 댈 자신이 없다. 벌써 시간은 7시에 가까워지니까....
정산에 가서 매실청을 담는다 해도 통을 사야하고 설탕을 배달시키기가 촉박하다. 그럼 길거리 판매 ?
너무 오랫 만에 나서는 일이라 조금 쑥스러워진다.
‘그래도 그 것밖에 없다. 한풀이를 한 번 해 붙이자.’
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트럭을 몰고 나섰다. 이리 갈까 ? 저리 갈까 ? 차라리 돌아갈까 ? 궁리를 하다 보니 그래도 아는 곳이 최고다.
내 동네 비래동,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 떠오른다. 농협 건너편.
트럭을 대고 팔려고 하니 주차 단속차가 금방 왕왕대며 쫓아낸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지’ 매실을 길에 내려놓고 트럭을 골목에 세웠다.
‘왕특’ 40자루, ‘특’이 12자루. 싣고 내리기도 힘이 벅차다.
‘왕특’은 택배로 이만오천원하던 최고품이었으나 오늘은 만오천원. 빨리 팔아
치우기 위해서다. 그래도 공판장 가격보다 세 배는 더 받는 거 아닌가.
“여보 뭐해요 ?” 안사람이 새벽에 나간 내가 궁금한가 보다.
“응, 매실 팔고 있지” “뭐요. 어디서 ?” 아마 토끼눈일 거다.
“비래동 농협 맞은 편이야” “왜 하필 우리 동네에요 ?”
“그럼 비래초등학교 앞으로 갈까 ?”
“몰라요. 나 미쳐” 마누라가 미치면 안 되는데.... 큰일 나지
내가 다니던 병원과 약국 앞이지만 다행히 아는 사람은 눈에 띄지를 않는다.
“배달 해줘요 ?” 10kg 매실 자루를 들고 가기가 어려우실 거다.
“그럼요. 댁이 어디신데요.” “좀 먼데요” “그래도 가야죠”
매실 두 자루를 양 쪽에 들고 따라 나선다. 쉬운 일은 아니다.
날은 왜 그리 뜨거운지....
2km가 넘는 금성백조 106동이 왜 그렇게 미웠던지....
땀을 뻘뻘 흘리는 내가 딱해 보였던지 “물 한잔 하고 가실래요 ?” 고맙기만 한 말이지만 빨리 가 봐야지. 인사만 하고 돌아 선다.
한 자루, 두 자루 팔려나가는 재미에 더운 줄도 잊는다.
“맛있게 생겼네.” “싸다” 말해주시는 분들은 안 사셔도 고맙고....
“만원에 하나 주세요. 매실 살 생각은 안했는데.... ” 곤궁한 형편에 집안 식구 누군가 매실 애호가가 있지만 사지 못했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 흐른다.
‘그래. 그냥은 못 주겠나 ?’ “그래요. 좋은 물건 구하셨어요. 맛있게나 드세요”
“이제 시장도 못 보겠네” 어려웠던 옛 우리집 생각이 났다.
지나가는 사람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갖가지 사연들을 이고 진 사람들이 오고 간다.
점심시간 대에는 사람이 줄어드니 매실도 팔리지 않는다.
“이따가 서너 시 지나야 장보러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 기다렸다가 다 팔고 가요” 저만큼 옆에서 노점상을 하시는 할머니께서 포근한 팔을 벌려주신다.
‘그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4시가 지나고, 이제 다섯 자루만 더 팔면 된다.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요양병원인데요. 아버님께서 운명하셨어요” 눈 앞이 하얘지고 머리가 띵하다.
“누가 임종을 지켜 본 사람이 있나요 ?” “아뇨, 없었어요”
경숙이가 간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 먼 길을 홀로 떠나셨구나’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 앉았다. “매실 얼마예요 ?”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럴수록 정신을 차려야지.’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빠, 아버지 모시고 장례식장으로 갈테니까 오빠는 그리로 직접 와”
안사람과 앞일을 상의하고 천안으로 서둘러 떠났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갑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