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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북항은 1902년 북빈 매축사업에서 출발해 대한민국 최대의 무역항으로서 고단함 속에서도 긍지와 자부심 넘치는 세월을 1세기 동안 버텨왔고 이제 100여년 만에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맞았다. 사진은 북항 재개발 사업 공사 현장. 국제신문DB |
- 초량 왜관 거주하는 일본인들 늘어나자
- 1902~5년 '북빈 매축'
- 부두·역·세관 등 들어서
- 총독부, 조선수탈 이용
- 부관연락선 오가던
- 6·25 전쟁물자 들어오던
- 월남 파병용사 떠나던
- 애절한 삶의 추억 담겨
- 재개발 방식 논쟁, 친수·문화공간 선택
- 자본·권력 논리에 휘둘리지 않게 경계
부산역에서 창을 통해 바다 쪽을 바라보면
멀리 바다를 가로지르며 형체를 드러낸 북항대교와 그 앞에 파헤쳐진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북항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다.
북항 재개발사업은 부산신항 건설로 기존 북항의 항만 기능이 이전된 것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9월에 제안되었다.
이후 기본계획수립과 시민여론 수렴 그리고 관련법 제정 등 준비 기간만 4년여가 걸렸으며
2008년 말에 비로소 착공하게 된 부산의 대표적인 숙원사업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돼 이명박 정부를 거쳐 현재의 박근혜 정부에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될 대규모 장기개발계획으로, 8조 원이 넘는 사업비를 들여
중앙부두와 일반부두인 1~4부두 일대 150만 ㎡를 2020년까지
친수공간과 국제해양관광 거점으로 재개발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 부산항의 얼굴이 어떻게 바뀔까
북항은 바닷길로 부산에 들어오자면 바로 맞이하는 부산항의 얼굴이다.
재개발은 이를 확 뜯어고치는 사업이다.
'1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부산항의 면모가 확 바뀝니다.'라는 재개발 사업의 선전문구가 이를 잘 드러낸다.
항구의 면모를 바꾸는 사업인 만큼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부산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업으로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고, 개발계획과 함께 발표된 '경제적 파급효과 31조 5000억 원', '고용효과 12만여 명'
등의 장밋빛 지표들은 부산의 미래가 이 사업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재개발 현장을 보고 있자니 노무현 정부 막바지 개발계획을 확정할 당시
지역사회를 들끓게 했던 논쟁거리가 떠오른다.
북항의 재개발방식, 즉 두바이 방식과 시드니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초고층의 랜드마크 빌딩과 비즈니스 센터가 즐비한 첨단도시 두바이와 오페라 하우스로 대변되는 친수·문화도시 시드니 가운데 어떤 곳을 개발의 주된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당시 부산시민은 북항이 시민의 공간인 친수공간으로 돌아오기를 선호했고
따라서 개발의 큰 방향은 시드니 방식으로 가닥 잡혔다.
경제 침체로 그 어떤 지역보다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배고파하던 당시의 부산시민이
그래도 시드니 방식의 친수공간에 더 많은 지지를 나타낸 것은 오랜 기간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온 북항이 이제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 원형은 1902년 시작된 북빈 매축 사업
새롭게 바뀔 북항의 모습에 대한 기대는 그동안 북항이 걸어온 애환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회고로 이어진다.
재개발이 역사와 의미의 단절로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앙부두와 1~4부두에 해당하는 북항의 공간은 일본인의 매축으로 형성되었다.
개항(1876년)과 함께 부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약 11만 평의 전관거류지(초량 왜관)를 형성하여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늘어난 일본인들은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바다를 메우는 매축을 시작한다. 해안과 산지 사이의 좁은 공간에 거주지가 한정된 부산의 지리적 특성상 매축이 용지 해결책이 된 것이다.
부산의 여러 곳에서 매축이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 북항의 원형이 된 것은 1902~5년에 이루어진
'북빈(중앙동 일대)매축'이었다.
북빈의 매축지는 당시 부산의 시가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곳에는 부두와 역, 세관 등의 공공시설과 근대적 상업시설들이 들어섰다.
근대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북항에는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연락선 부두와 조선 내륙은 물론 만주까지 이어지는
부산역이 자리하고 있었다.
북항은 그야말로 사람과 물자 그리고 정보가 넘쳐나는 번잡한 공간이었다.
막일하는 부두노동자로서, 흘러들어온 물건을 파는 잡상인으로서, 많은 부산사람이
북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왔다.
하지만 정작 북항의 주인은 되지 못했다.
북항은 거류 일본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매축하여 만들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관리되면서 조선을 수탈하고 지배하는데 기여했다.
해방 이후에도 폐쇄적 항만으로 운영됨으로써 일반시민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러기에 이제는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비록 공간의 주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많은 부산사람이 북항과 관련한 애절한 삶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일제 강점기 수많은 사연을 담고 오가던 부관연락선에 얽힌 이야기들, 해방과 함께 돌아온 귀환동포들로 붐비던 장면, 6·25전쟁 시기 모여든 피란민들 속에서 구호물자를 사고팔던 애환, 월남전 파병용사들을 배에 실어 떠나보내던 기억, 항구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거칠게 살아가던 부두노동자들의 고된 일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북항에 관한 기억은 비단 나이 든 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부산사람이라면 북항에 관한 일정한 집단적 기억을 지닌다.
북항의 과거 모습은 근대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그림엽서나 사진 자료를 통해 지금도 볼 수 있으며, 소설이나 영화 등 작품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하면서 부산다움의 상징으로 이미지화되었기 때문이다.
재개발로 새롭게 변모할 북항이 진정한 시민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억과 이미지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성형 실패' 경계
북항 재개발계획 속에 과거의 기억과 의미들이 자리할 곳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개항장 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옛 부산세관 건물(1979년 철거)을 복원하자는 주장이나 새로 국제여객터미널을 만들고 현재의 터미널에는 역사공원과 박물관을 두자는 제안 등은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물론 재개발되는 공간에는 쇼핑·금융센터, 관광호텔, 요트계류장 등 상업적 시설들이 다수 들어서게 된다.
개발사업의 수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개발의 방향이 자본논리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지난 9월에는 일부 변경된 북항 재개발 사업계획이 새 정부에 의해 확정·고시되었다.
주요 내용은 중심부 아일랜드에 수변공원과 해양문화지구를 설치하고, 해안가에도 2개의 거점공원과 수변공원 그리고 역사문화시설을 설치하는 등 친수공간을 늘여 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재개발이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시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부산시민의 줄기찬 요구에 맞는 것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며, 또한 정권이 바뀌면서 장기 개발계획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했던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재개발되는 북항이 명실공히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생의 공간이 될 수 있을지는 사업부지 내에 몇 개의 공원과 문화시설이 있는가 만으로는 담보될 수 없다.
수많은 자본 중심의 개발계획들은 숨긴 채 보여 주기 식 친수공간만 부각해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항에 얽힌 시민의 다양한 경험과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 그리고 그러한 기억들이 공생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는 자각이 충분치 않으면 언제든 자본과 권력의 논리는 쉽게 재개발공간을 장악해버리게 될 것이다.
부산시민이 북항 재개발에 지속해서 관심을 두면서 때로는 발언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공원·친수공간 많지만 역사성 담은 장소 부족, 해관·파병광장 등 제안
■ 센트럴베이 프로젝트
지난해 10월 북항 재개발 사업 현장에서 열린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기공식 장면. |
'센트럴베이'는 북항 재개발의 사업명이다.
부산항 개항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이 계획에 따르면, 북항 일대에는 3-4부두 쪽에서부터 복합항만지구(국제여객터미널), 상업업무지구, IT영상전시지구, 복합도심지구 등이 들어서고, 핵심공간인 중앙의 해양문화지구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 테마파크 등의 문화·위락시설이 조성된다.
해안 쪽은 항만시설과 친수공간, 이면부는 복합도시기능 공간으로 활용되는 형태이다.
전체 사업면적 약 150만 ㎡의 77% 정도를 공원이나 친수 공간 등 공공시설이 차지하여 사업의 공공성은 높은 편이다.
이는 라운드테이블을 구성해 논의하는 등 지속해서 사업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해온 시민사회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흔히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 등 항만 재개발의 선례들과 견주어
외형적으로 센트럴베이를 평가하곤 하지만, 그 공간에 자신만의 고유성을 담아내지 못하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은 흉내 내기에 불과할 뿐이다.
고유성은 공간의 역사성과 깊이 관련된다.
지난 8월 소개된 민간의 용역보고서에는 국내 최초 해관을 기념하는 '해관광장', 6·25전쟁 당시의 '피난역사공원', 파월장병들을 기념하는 '파병광장' 등 부산항의 근·현대사를 재현하는 다양한 공간들이 제안되고 있다.
국제공모로 진행될 친수공간조성에 이러한 제안들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생각을 모아가야 하겠다.
이상봉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부교수 정치학 박사·지역정치 전공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