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로 몸을 지탱하는 게 조금 힘들지만,
이제까지 이리 아프지 않고 살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와서
내가 거쳐갈 어느 한 순간도 미리 알았던 것도 아니고,
계획한 대로 살아 온 적도 없었다는 걸,
내일도 해가 뜰 것을 믿고,
오늘까지 살아 왔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하늘에 계신 분이 우리를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그걸 믿지 않는다면,
얼마나 걱정 불안에 떨었을까!
이웃이라 내세우는 나라의 지배도 받아보고,
내 집을 떠나 난민도 되어보고,
전쟁도 겪고,
제주도에도,
거제도에도,
부산 용두산 '하꼬방'에서도 살아 보았지만,
그 어느때도 악몽을 꾸지 않고 자랐다니!
누군가 한 말,
"각본 없이 살다"라는 말,
절실하게 실감난다.
그런데 요즘 내가 사는 곳이
세상에서 살기 좋은 곳 열네 번째 도시란다.
차 안 다니는 길이 많고,
넓은 공간에 쉴 곳이 연이어 있는 곳이어서
잠시 걷고 뼈가 아픈 이 늙은이가 앉아 쉴 곳이 넉넉하다.
아이들이 뛰어 놀 공간도 많다.
그런데 엄마나 아빠와 밖에 나와
아이가 어른에게 줄넘기 배우는 것을 가끔 본다.
돈암동 한옥 마을 골목에서
줄넘기, 고무줄 놀이, 공기 놀이, 사방치기, 소꼽장난, 숨바꼭질들...
온갖
놀이를
동네 아이들과 함께 익히고 놀았다.
그런데 왜 요새 아이들은
어른에게 '레쓴 받듯' 노는 걸 배우게 되었을까?
에릭슨의 놀이시기를 생각해 본다.
기초 신뢰감을 든든히 갖추고,
독자성과 유연성을 기른 뒤에
제각기 다른 아이들이
놀이시기에
서로 조정하며
함께 놀기를
익히고
즐기는 때가
놀이시기이고,
평생 이웃들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발달 과업을
그 때 이룬다 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알고,
서로의 욕구를 순조롭게 만족할 놀이를 찾아
함께 즐겁게 노는 방식을 익혀
어른으로 평생 세상살이 할 수 있게 된다는데....
어른들의 지시 없이 아이들 스스로 찾아내듯이
어른되어 스스로 어른답게 살 길을 찾는다는 것이다.
학령기에 살아갈 과업을 훈련받아
평생을 살아갈 길을 다지게 되기에
놀이시기는 자신으로 평생을
이웃과 함께 (이 세상에서)
어찌 살 방도를 익히는 때이다.
그래서 우리네도
어린 시절에 어떤 꿈을 꾸며,
그 꿈을 실현하며 자랐는가 궁금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꿈'을 가지라 하면
어른이 되어 어떤 직업에 종사할 것인가를 말한다.
놀이 시기를 아이들이 스스로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지시를 받아 버릇해서 그런 것일까?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위해
비행기 종사자가 되어
부모님이 싸게 여행하시게 하겠다는
현대판 심청이 같은 꿈을 요즘 아이에게 듣게 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야기는 식상한 말이 되었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면 소용없는 것이니!
'자아'는 혼자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만들어가는 것
이웃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바뀌고,
영글어 가는 것일지니!
울산에서 아프간 난민과 함께 살아온 한 해를 그린
김 영화님의 책을 읽으며
혼자만 생각하고 이웃과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과정을 감사하며 감격했다.
발써 세상 떠난 노 옥희 교육감부터,
작은 도서관 운동하는 착한 엄마,
통역사 하는 젊은이,
난민들의 언니 구실하는 사회복지사,
작은 수의 이런 사람들이
현수막 걸고 반대 데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도록
포기하지 않고,
작은 힘을 아끼지 않고 움직여서,
모두 좋은 이웃으로 바뀌게 한 역사를 이루었다.
그들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을가?
유연하게 솔선하는
잘 놀아본 어린이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웃의 아픔을 짐작하고,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하니까!
김 호산나 양은 선교사 딸로 이국에서 산 체험이 있었다니!
만나보고 싶다.
물론 김 영화님도...
그리고 우리 각 사람들이
자기 엄마의 품에서 젖먹이 때부터
엄마와 얼마나 눈을 맞추며
마음을 서로 알아주며
사랑을 나누어 왔던가 떠 올려보자.
아니면,
어른들의 눈치보며
바깥 세상에서 어떻게 버틸까 노심초사하며
마음 조리며 살아 온건 아닐까?
제대로 이웃을 볼 줄도 모르고,
동무의 신음 소리도 듣지 못하고,
쓰잘데 없는 고집만 부리며 살아온 건 아닌가?
그러니 눈치 없이 제 주장만 하면서
마치 똑똑한 척 해 온 것 아닌가?
정말 사람다운 삶이
서로 마음 알아주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 것 아닐까?
쓸데 없이 경쟁이나 하면서
자기 소모하며
허송세월 한 건 아닐까?
그러다 보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기만 할텐데...
이제라도 제대로 우리 놀이시기를 찾는 것이 어떨까!
포기하지 말고...
ㅁㅇ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