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과 비교하면 한풀 꺾이긴 했지만 필리핀으로 이주하는 한국인의 수는 여전히 ‘다소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게 사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현지에서 사업체를 꾸려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전체적인 소득수준까지 낮은 나라에서 사업을 성공시킨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PRE> </PRE>
◇돈 좀 들어도 正道 걸어라◇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사전답사나 사업 타당성 검토 등 필수적인 조사과정 등은 충분히 시간을 두고 거쳐야한다.
또 사업 전망과 수익성 예측도 냉철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런 과정들 외에도 필리핀에 사업체를 차리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제한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이 중요한 검토사항이다.
필리핀은 외국인이 투자할 수 있는 범주를 각 업종에 따라 세부적으로 분류를 해놓고 투자에 제한을 두고 있는 나라다. 특히 한국에서 이주하는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많은 업종의 경우 외국인 투자 제한법에 따라 외국인이 투자를 할 수 없거나 제한을 받고 있는 업종이다. 지역에도 제한이 있다. 사업장이 들어서는 부지에 따라 하고자 하는 사업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한국에서 학교 근처에 술집을 차리려면 허가가 나오지 않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규제들 때문에 한국인들은 대체로 필리핀 현지인의 이름을 빌려 사업을 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우선 현지인 이름으로 되어 있는 사업체를 보호받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안전장치를 걸어놓아야만 한다.
불법·편법 훤히 꿰뚫고 있는 경찰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이나 노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 사실상 보통 사람이 생계형 창업 차원에서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 인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낫다.
더 큰 문제는 필리핀 당국, 특히 한인타운 지역 경찰들은 한국인들이 불법, 또는 편법으로 돈을 벌고 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에서 한인들이 공무원들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리 듯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지의 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틈새를 찾는 노력만 기울인다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경찰의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사업을 해나갈 수 있다.
물론 이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믿을 만한 컨설팅 업체에 합법적인 사업방식을 상담받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돈은 좀 들지만 나중에 경찰에게 뜯기게 될 돈을 미리 내는 셈친다면 오히려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현지에서 한국인 사업가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짝 한번 들여다보자. 필리핀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벌여놓은 사업은 어학원과 전화영어 회사, 홈스테이, 식당 등이다.
먼저 어학원은 한인들이 사는 곳이면 발에 채일 정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필리핀으로 이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어학원을 적은 자본으로 열 수 있는 생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인기사업 어학원, 빈익빈 부익부그러나 어학원의 난립은 이런‘필리핀 드림’을 과거의 일로 만들고 만 것이 엄연한 현지의 현실이다. 소자본의 시대는 가고, 대형화된 몇몇 어학원만이 수익을 내고 있는 형편이다.
현지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어학원의 손익분기점은 수강생 40명 선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야 학원에 40명 등록시키는 일이 대수냐 싶겠지만 공교육에서 영어를 충실히 가르치고 있는 필리핀에서 한인들이 운영하는 어학원은 한국에서 건너오는 유학생과 방학을 이용한 언어연수생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원들을 방문해보면 학생수가 20명을 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성수기라 할 수 있는 한국의 방학기간에도 수강생이 그리 많이 늘지 않는 점이다. 최근 어학원의 대안사업으로 부상하며 붐을 이루고 있는 전화 영어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도 이미 레드오션으로 변한 지 오래다. 역시 현지인들 상대가 아니라 한인들끼리 한정된 파이를 나눠먹고 있기 때문이다.
홈스테이나 게스트 하우스, 학생들을 상대로 한 하숙집도 그리 사정이 좋지 않다.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하숙집들은 현지인 집 주인에게 방 한 개당 한 달 10만원 정도를 내고 렌트를 한 뒤 이를 다시 한달 25만∼30만원 정도를 받고 하숙을 놓고 있다. 간단히 생각하면, 필리핀 물가가 싸니 식사를 제공해도 돈이 좀 남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지인처럼 밥을 줄 수는 없기 때문에 한 달 식비만 1인당 10만원 정도가 소요되고, 요즘 학생들의 구미에 맞게 인터넷을 설치하고 한국 방송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위성TV도 설치해야 한다.
결정적인 것은 전기세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가장 전기세가 비싼 나라이기 때문이다. 1인당 한 달 약 5만원어치의 전기를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 현지 하숙집 주인들의 전언이다. 여기에 수도요금 등의 나머지 자잘한 비용들까지 빼고 나면 30만원의 하숙비로는 운영비용도 건지기 힘들다는 것이 현지 한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결국 많은 한인들이 하고 있는 이런 사업들은 이제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특출한 장점을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사업자금을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라도 받는 편이 낫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과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
심 미 자유기고가
◇필리핀사업 요주의!◇
‘전기요금 고지서’ 꼭 확인
1. 사업체 인수 시에는 명의자와 합의하라.
기존 사업체를 인수하게 되면 실제 사장과 명의상의 사장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규제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 성행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명의자로부터 각서나 계약서를 반드시 따로 받아놓아야 한다.‘나중에 딴소리하기’는 이 나라에서는 일상이나 다름없다.
2. 전기세는 반드시 사전에 확인하라.
앞서 말했듯 필리핀의 전기요금은 현지 물가에 비하면 살인적인 수준이다. 이는 가정집뿐 아니라 번듯한 빌딩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사무실 렌트비보다 전기세가 더 많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계약하기 전에 반드시 고지서 등을 보여달라고 요구해 전세를 확인해야 한다.
3. ‘현지 전문가’의 사업장을 둘러보라.
현지에서 창업 컨설팅을 받게 될 경우에는 컨설팅을 해주는 당사자의 사업 현황을 체크해야 한다. 자신의 밥벌이도 시원치 않으면서 창업 전문가를 자처하며 접근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